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37)화 (137/303)

137화 #25 – 누군가에게는 위기, 누군가에게는 기회 (6)

10화에서 17%까지 올랐던 시청률.

한번 오르막을 타더니, 그 이후로는 쉴 새 없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형, 11화 시청률 봤어?”

나는 흥분된 얼굴로 김 실장에게로 다가갔고.

그는 활짝 웃으며 내게 답했다.

“당연하지. 벌써 18.9%야.”

“이대로 가면, 다음 주 13화쯤에는 20% 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말하자, 김 실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일 12화에서 20% 넘을 수도 있지.”

“에이- 너무 김칫국은 마시면 안 돼.”

김 실장은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지금 우리 반응 잘 타고 있어. 곧 동 시간대 1위도 찍을 수 있을 것 같고.”

그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수목 드라마 중 ‘블랙맨’은 2위를 달리고 있었고.

그 시청률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기에.

나도 기대를 하고는 있었지.

하지만 그 기분에 사로잡혀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 있지만 말이다.

눈에 힘을 주고 김 실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 얼른 연습할게, 형.”

김 실장은 내 말에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나 차에서 나가 있을게. 촬영 준비 시작할 때, 데리러 올게.”

“고마워.”

김 실장이 나가고 홀로 남은 차 안.

곧장 눈빛이 돌변해 배역에 몰입했고.

그대로 대사를 읊으며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이 지났을까.

똑똑.

김 실장이 차 창문을 조심스레 두드렸고.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현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현장에서 밝은 표정으로 서 있는 최서빈을 발견하고는.

곧장 그에게 달려갔다.

“선배님.”

“어, 희성아. 왔어?”

“네, 선배님 촬영은 오후 아닙니까?”

“맞아.”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계를 바라보았고.

아직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근데 왜 이렇게 일찍 현장에 나오셨습니까?”

평소 최서빈은 자신의 촬영이 아니어도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는 했다.

그런 습관은 나와 너무나도 같아, 항상 현장에서 둘이 같이 연기를 봤지.

하지만 요즘은 꽤나 고된 촬영 스케줄에,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모두 보는 것은 무리였다.

자신의 촬영이 끝나면, 다음 촬영 전까지 연습은커녕 잠을 자기도 부족한 시간이었으니까.

나는 최서빈을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선배님, 요즘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을 텐데, 조금이라도 쉬다가 오시지….”

내 말에 최서빈이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안 그래도 요즘 피곤해서 다른 연기는 다 못 봐.”

“근데 왜 벌써 나오셨습니까?”

“너 단독 신이잖아.”

“…….”

임하준이 찍었던 7, 8, 9화.

그가 나왔던 부분을 빠르게 대체해 찍다보니, 나의 긴 단독 신은 없었다.

짧게 지나가는 독백 신은 많았지만.

내 긴 대사와 감정을 쏟아내야 하는 신은 이번이 처음이었지.

나 역시도 이번 신을 수없이 연습했지만.

한껏 긴장한 마음으로 걸어온 것인데.

최서빈이 이런 내 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기보다는 놀라운 마음이 먼저였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지, 인마. 너 촬영이라 일찍 나와서 기다렸어.”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때.

“곧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스태프가 내 옆으로 다가와 전달했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최서빈이 내 옷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연습은 많이 했어?”

그러고는 살짝 삐뚤어진 내 넥타이를 매만져준 최서빈이 재차 입을 열었다.

“아니다. 희성이 네 연기는 완벽하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

“아유- 아닙니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하던 대로만 하자. 이제 우리 시청률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잖아.”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감사해요.”

“감사는 내가 해야지. 너 아니었으면, 다시 이렇게 못 왔어.”

우리가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자, 차 감독이 저 멀리서 소리쳤다.

“자자, 거기 둘. 연애 그만하고, 얼른 촬영합시다.”

그의 말에 현장에 있던 모든 스태프는 웃음을 터트렸고.

최서빈은 옅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가, 여기서 보고 있을게.”

그가 내 연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떨리거나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최서빈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그가 내 연기를 봐주는 것도 이제는 익숙했기에.

오히려 최서빈이 내 연기를 봐주고 있다는 사실에 안정감이 들고 든든하기까지 했다.

차 감독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내 연기를 봐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최서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잘하고 오겠습니다.”

서둘러 카메라 앞으로 달려갔고.

“레디, 액션!”

이내 모든 카메라가 나를 크게 잡아냈다.

잠시 뒤.

“컷!”

차 감독이 진지한 얼굴로 소리친 후.

고개를 빼꼼 들고 입을 열었다.

“좋았는데, 숨 고르고 다시 한번 가볼게요.”

그의 말에 나는 몰입했던 배역에서 빠져나와 숨을 헐떡이며 답했다.

“네, 다시 해 보겠습니다.”

나는 입술을 말아 넣은 채 대사를 복기했고.

굳었던 몸을 풀고 있자, 내게 물을 건네는 사람.

김 실장이 아닌, 최서빈이었다.

“희성아, 물 한번 마셔.”

“아, 감사해요. 선배님.”

최서빈은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까 거기서 연기 좋았는데, 조금만 힘을 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아. 무거운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은 되는데….”

그는 내게 아낌없는 조언을 내뱉었고.

메가폰 너머로 차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촬영 들어갈게요.”

그의 말에 최서빈이 서둘러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내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했다.

“잘해.”

“네, 선배님.”

최서빈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그 눈빛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내게 용기를 북돋아준 최서빈은 빠르게 차 감독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가 떠나고 홀로 남은 카메라 앞.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돌변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쏘아보았다.

“레디, 액션!”

***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그 아래서 나른한 몸으로 휴식을 취하던 중.

지이잉.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전화.

오랜만에 보는 이름.

서인우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선배, 나야 인우.

“알지. 잘 살고 있어?”

-그럼. 선배 드라마 잘 보고 있어. 진짜 대단해. 쉬지도 않고 바로 또 작품 들어가고.

“하하, 아니야.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고 있어?”

-나야, 그냥 휴식 중이지. 선배는 촬영 중이야?

“응, 요즘 계속 바쁘게 촬영 중이야. 지금은 대기 중이라 통화 가능해.”

-아, 딱 맞춰서 전화했네. 선배, 그럼 이번에 우리 포상 휴가는 못 오는 건가?

‘상간녀의 유혹’ 팀에 내려진 포상 휴가.

내가 출연한 작품에서 처음으로 내려진 포상 휴가였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절대 갈 수가 없는 상황.

나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응, 못 가지. 언제 가더라?”

-우리 다음 주에 출발이야. 선배 못 간다고 연락받았거든.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전화해봤어.

“계속 촬영이라, 하루도 아니고 며칠은 도저히 뺄 수가 없을 것 같아.”

-너무 아쉽다. 선배가 우리 드라마에서 제일 고생하고, 끌어줬는데….

“에이, 다 같이 열심히 한 거지.”

-그래도… 우리끼리 가게 돼서 미안하네.

“아니야. 미안할 게 어디 있어. 내 몫까지 재밌게 놀고 와줘. 우리는 다음에 술이나 한잔하자.”

-알겠어. 선배 몸 잘 챙기고, 힘들어도 밥이랑 잘 챙겨 먹으면서 촬영해.

“그럴게. 너도 가서 놀다가 다치지 말고, 조심히 다녀와라.”

-응, 가서 또 연락할게.

서인우와 전화를 끊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김 실장이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상간녀의 유혹 포상 휴가?”

“응, 다음 주에 출발이래.”

내 말에 김 실장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못 가서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어.”

“뭔데?”

그는 휴대 전화를 내게 내밀었고.

김 실장의 입꼬리가 길게 휘어졌다.

그가 내민 화면은 12화의 시청률이었고.

그 시청률은 무려… 20.3%.

“헐!”

나는 입을 떡 벌리며 탄성을 내질렀다.

몇 화는 더 지나야 20%가 넘지 않을까 싶었는데, 벌써 넘어버린 수치에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김 실장 역시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 활짝 올리고 있었다.

“포상 휴가는 못 갔지만, 그래도 좋은 결과가 있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희성아.”

그의 말에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대로만 계속 가면 좋겠다.”

내 다리 위에 올려둔 ‘블랙맨’ 대본을 빤히 바라보며 의지를 불태웠다.

힘든 촬영을 끝내고 포상 휴가는 비록 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보다 더 값진 촬영을 하고 있기에, 아쉽거나 후회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점점 오르는 시청률을 보며, 더욱 촬영에 열정을 쏟으며 매진하고 싶어질 뿐이었다.

***

“이야, 오늘 밥차 장난 아닌데?”

나는 최서빈과 함께 밥차에서 음식을 뜨며 감탄했다.

“그러게요. 오늘 포식해야겠습니다. 하하.”

우리는 음식을 잔뜩 떠서 자리에 앉았고.

차 감독이 나와 최서빈을 발견하고는 우리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배우들이랑 먹어야겠네.”

“좋죠, 감독님. 하하.”

“맛있게 드십시오.”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었고.

짧은 대화들을 이어가고 있지만, 젓가락질은 쉴 틈이 없었다.

“요즘 둘이 케미가 좋다고 인터넷에 난리더라?”

차 감독의 말에 나와 최서빈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저희 케미 좋은 거, 예전부터 유명했습니다.”

최서빈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때, 테이블에 놓였던 휴대 전화의 알람이 울렸고.

그 알람에 최서빈의 시선이 내 휴대 전화로 옮겨졌다.

“뭐야, SNS 알람이야?”

그의 말에 휴대 전화를 바라보니, 내 계정을 누군가가 태그했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람을 클릭했다.

그리고 보이는 사진들.

‘상간녀의 유혹’ 팀에서 포상 휴가를 간 사진이었다.

-‘상간녀의 유혹’ 포상 휴가 2일 차.

여기에는 없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희성이ㅎㅎ!

밝게 웃으며 찍힌 단체 사진이었고.

그 사진 가장 가운데에는 포토샵으로 합성한 내 모습이 있었다.

일부러 내 빈자리를 만들어 사진을 찍은 뒤.

내 전신을 그 빈자리에 합성한 사진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고.

옆에서 기웃거리며 내 휴대 전화를 본 최서빈 역시 피식 웃음을 보였다.

“이야, 희성이 너 합성해서 올린 거야?”

“네, 그런가 봐요. 저 사진에 제 계정도 태그했더라고요. 하하.”

“다들 사이도 좋고, 너랑 못 간 게 아쉬운가 보다.”

우리의 대화에 차 감독이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았고.

최서빈은 이 내용을 그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차 감독은 쓰읍, 소리를 내며 내게 말했다.

“아이고, 저기서 주연이었는데, 못 가서 내가 괜히 미안하네.”

차 감독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연기하고 촬영하는 게 좋습니다.”

내 말에 최서빈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고.

차 감독은 몸을 가까이 당겨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쉬지도 못하고 여기 들어와 준만큼 열심히 해보자. PBC에서 보너스 좀 세게 준비해 놨다니까, 마무리까지 잘해보자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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