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25 – 누군가에게는 위기, 누군가에게는 기회 (2)
[수목 드라마 ‘블랙맨’의 주연 임하준, 대마초 흡연 혐의로 검찰 송치….]
이게 뭐야?
최서빈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확인한 첫 번째 기사.
그 기사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돼….”
그리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과거 프로포폴… 임하준, 복귀하자마자 대마초 흡연 혐의로 입건….]
[프로포폴 임하준, 이번에는 ‘대마초의 늪으로 빠지나’]
[‘블랙맨’ 올라가는 시청률… ‘임하준’ 때문에 삐끗…!]
[임하준 구속으로 인해 ‘블랙맨’ 주춤… 촬영 영상 그대로 묻히나….]
임하준의 대마초 흡연 기사가 연이어 나왔고.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기사들을 하나씩 살폈다.
임하준은 과거 프로포폴 중독으로 인해, 잘나가던 배우 생활에 적신호가 켜졌었고.
그렇게 긴 자숙 생활을 맞이했다.
그러다 복귀한다는 기사와 함께.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이 최서빈과 함께하고 있는 ‘블랙맨’이었지.
애초에 범죄를 저질렀던 임하준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고.
또다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결국, 그는 대마초라는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르며 또다시 검찰에 송치되었다.
기사에는 자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서울 지방 경찰청 마약 범죄 수사대’는 배우 임하준에 대해 모발 검사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결과, 대마초 흡연에 관해 양성 반응이 나왔고….
복귀 후, 인기를 얻으며 자리를 잡아가던 임하준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사를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임하준이 아닌, 최서빈이었다.
임하준이야 당연히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지금 그가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블랙맨.
그 드라마의 시청률은 동 시간대 1위였고.
아직 드라마의 절반이 채 지나지도 않았다.
조금 전 전화를 통해 최서빈에게 들었을 때,
아직 그 드라마는 촬영 중반부도 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가장 걱정이 되는 건, 그 드라마의 스태프들과.
최서빈이었다.
“서빈 선배… 어떡하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자연스레 찌푸려졌고.
계속해서 올라오는 기사들을 확인하며, 휴대 전화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1분이라도 빨리 최서빈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지금 가장 정신이 없을 그였기에.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깨고 싶었지만, 습관이 무섭다고.
새벽같이 떠진 눈에 결국 침대를 벗어나고 말았다.
스케줄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론가 훌쩍 멀리 떠나지도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상 휴가가 기다리고 있기에.
홀로 가는 여행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지.
나는 서둘러 나갈 준비를 마친 뒤, 문을 열고 나섰다.
머지않아 도착한 곳.
“안녕하십니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자, 내 모습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
김 실장이었다.
“야, 너는 쉬라니까 뭐 하러 회사에 나왔어?”
“어디든 가야지, 하고 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또 회사에 왔다?”
웃으며 말하는 나를 보며, 김 실장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또 일하려는 건 아니지?”
미간에 힘을 주고 불안한 듯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
그런 그에게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아니야. 그냥 집에 있기 심심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닐까 하다가 잠깐 회사에 들렀어. 형이랑 점심이나 먹게.”
“그래. 일은 제발 좀 쉬자. 몸도 생각하면서 일해야지.”
“그럴게.”
김 실장은 턱으로 바깥을 가리켰고.
우리는 직원들이 수두룩한 사무실에서 잠시 벗어나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김 실장을 향해 물었다.
“형, 어제 임하준 기사 봤지?”
내 말에 그는 금세 얼굴을 찌푸렸다.
“당연하지. 지금 안 그래도 회사 난리 났어.”
“서빈 선배 때문에?”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 실장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가며 작게 입을 열었다.
“지금 블랙맨 휴방 때렸어.”
“헐….”
당연한 결과였지만.
막상 드라마 휴방이라는 소리에 탄식이 쏟아졌다.
미니시리즈 16화,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두 달짜리인데.
그 드라마를 휴방한다는 건, 엄청난 손실이었다.
올라온 시청률이 뚝 끊어질 테니까.
다시 이어서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시청률을 가져가는 것은 미지수일 터.
“하긴, 임하준 나온 분량을 그대로 송출할 수도 없을 테니까.”
“응, 찍었던 분량을 다 날리는 거지.”
“어휴, 서빈 선배 어떻게 하냐….”
김 실장이 혀를 끌끌 차며 답했다.
“임하준, 그 인간이야 위약금 왕창 물고 드라마 마무리될 테지만, 나머지 배우들이랑 출연진이 문제지.”
“그러니까. 심지어 잘 되던 드라마에 그게 무슨 민폐고, 난리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시청률이라도 낮았으면, 그냥 똥 밟았겠거니 하면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마무리 지을 텐데… 워낙 잘나가고 있던 드라마니까.”
같은 배우 입장에서, 블랙맨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을 떠올리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순식간에 그들에게 이입이 되었고.
눈썹을 늘어뜨리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김 실장을 향해 물었다.
“형, 그럼 드라마는 아예 중단되는 건가?”
내 말에 김 실장이 내 쪽으로 몸을 당겨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아침에 슬쩍 듣기는 했는데….”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김 실장의 입 쪽으로 귀를 가져다 대며 머리를 흔들었다.
“근데?”
“중단 안 하고, 대타 투입하려고 하는 것 같더라.”
“다행이네!”
내 말에 그는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쉿, 아직 내부에서 하는 소리야.”
그의 말에 나 역시 데시벨을 낮춰 물었다.
“근데 대타로 누가 오는데?”
김 실장이 아랫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게 문제지.”
“왜?”
“그 드라마에 누가 오겠냐는 거지. 솔직히 이제 시청률이고 뭐고 바닥을 치고 있는 게 빤히 보이는데, 임하준 자리로 누가 가겠어.”
그의 말에 나는 턱을 어루만졌고.
김 실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나 같아도 범죄자가 있던 그 배역에는 안 가고 싶겠다. 중간에 배역이 바뀌었는데, 누가 그 드라마를 보겠어. 흐름 다 깨지게.”
“그렇긴 하겠네.”
“당연하지. 열심히 보던 드라마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으로 나타났는데, 몰입 와장창 깨지지.”
김 실장의 말에 더더욱 최서빈이 걱정스러워졌고.
그를 떠올리며 나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
까만 어둠 속.
중간중간 밝은 빛을 내는 건, 몇 개 남지 않은 별들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 도심.
빵빵-.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이 저마다 라이트를 비추며 달리고 있었고.
나는 밤보다 더 까만 옷을 입은 채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순간 느껴지는 기운.
“흐음….”
이상한 느낌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지만.
코에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기조차도.
그리고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긴….
꿈속이다.
빵빵-!
클랙슨을 울리는 차들.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며 떠드는 번화가.
지극히 평범한 이 거리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하아… 오늘도 많이들 죽어 나가겠네.”
그리고 내 눈에 확 들어오는 저 여성을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작업하기 좋은 날이다.”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저 멀리에 뚜렷하게 보이는 그 여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160이 조금 넘는 아담한 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예상한 대로 그녀의 몸에는 힘이 없었다.
누가 툭 건들기만 해도 픽 쓰러질 것처럼.
나는 고개를 삐딱하게 젖히고 그녀를 뚫어지라 바라보다가, 눈동자만을 옮겨 손목시계를 체크했다.
“지금이 8시 2분이니까… 4분 남았네.”
그러고는 다시 까만 눈동자를 돌려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터덜터덜 어디론가 걷고 있는 그녀의 걸음.
“나도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
나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고.
순간.
누군가가 어깨를 누르는 것처럼 너무 무거워진 몸.
“아악.”
일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쉽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겨우 움직여 머리를 들었고.
눈앞에는 커다란 키의 남성이 나를 내리깔아 보고 있었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눈빛으로 나를 누르고 있는 남성.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업계에 있는 내 라이벌 같은 존재였지.
내 퉁명스러운 말에, 그 역시 순하지 않은 어투로 답했다.
“저 여자… 내가 데려가.”
그의 말에 나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고.
그를 향해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 나한테 떨어진 명단이야. 네가 뭔데….”
“저 여자, 건들지 말라고.”
내 말을 잘라버리며 답하는 그의 말에, 나는 음흉하게 입가를 찢었다.
“왜, 너랑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여자… 뭐야, 너 설마 지금 인간이랑…?”
“난 분명히 경고했다. 건들면… 나도 그땐 어떻게 할지 몰라. 명심해.”
“네가 경고하면 내가…!”
순간.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 그의 모습.
나는 벤치를 주먹으로 내려쳤고.
눈을 부릅뜨며 저 멀리 서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경고’라는 말 한마디가 머릿속을 어지러이 괴롭혔고.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발을 움직이지 못했다.
“젠장.”
팟-!
눈을 깜빡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하아… 꿈. 되게 오랜만에 꾼 것 같네.”
밝은 햇살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고.
정신을 차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곧장 서재로 향했다.
분명, 어디선가 본 장면 같은데?
서재에 쌓여 있는 대본들을 뒤적이며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꿈에서 봤던 그 대본을 찾을 수 있었다.
“찾았다!”
재빨리 장면을 찾은 나는 대본을 덮고 제목을 바라보았다.
“…블랙맨.”
최서빈이 나온 드라마.
그러니까 지금 임하준의 범죄로 인해 중단되어 버린 드라마, 그 ‘블랙맨’의 장면이었고.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아났다.
분명 내가 블랙맨을 거절한 이유.
꿈에서 봤던 장면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지난번 꿈에서는 조연, 아니 일반 단역보다도 더 못한 엑스트라 같은 인물로 등장했다.
거기에 내가 할 역할이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해 최서빈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지금 꿈에서 본 내 모습은 블랙맨에서 임하준이 맡았던 그 배역.
딱 그 모습이었다.
꿈속의 장면을 떠올리면 흥분이 될 정도로 드라마에 흥미가 차올랐다.
“대체 뭐지?”
지난 기억을 리셋하며,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대본을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래, 다시 천천히 읽어보자.”
몇 시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씻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대본을 모두 읽어 내려갔고.
입술을 잘근 깨물며 확신을 가졌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기를 들어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형.”
-응, 무슨 일이야?
“그 블랙맨 말이야. 임하준 자리 대타 구해졌대?”
-갑자기 전화해서 그거 물어보는 거야? 서빈 씨 걱정 많이 되는구나?
김 실장이 옅은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고.
나는 진중한 목소리로 그에게 답했다.
“형, 그거 대타 안 구해졌으면, 내가 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