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32)화 (132/303)

132화 #25 – 누군가에게는 위기, 누군가에게는 기회 (1)

“우리 마지막 회, 시청률 떴다!”

송 감독의 목소리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고.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감독님, 시청률 어떻게 됐습니까?”

그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곧장 입으로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제발… 20%….’

이내 송 감독이 심각한 얼굴로 코를 찡긋거렸고.

그의 제스처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송 감독은 양 주먹을 꽉 쥐고 흔들며 소리쳤다.

“20% 넘었다!”

“와아아!!”

식당 안에 있던 우리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환호를 질렀고.

송 감독도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20.1%. 턱걸이이기는 하지만, 마지막 화에서 20%를 넘겼다. 하아.”

손뼉을 부딪치고, 여기저기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나 역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의 20%.

1화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시청률이 결국은 그 퍼센트를 넘겼고.

모두가 만류하던 드라마였기에, 보란 듯이 받은 성적표.

시청률 20%라는 성적을 들고 환희의 포효를 내뱉었다.

“와아아!”

그동안 걱정했던 마음의 응어리가 한순간에 풀렸고.

나는 앞에 놓인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누구보다 시청률 앞에서 마음 졸였던 사람이 송 감독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 역시 늘 시청률이라는 압박 속에서 불안해했으니까.

탁-.

소주를 들이켠 후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자.

송 감독이 그 빈 잔을 바라보며 식당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다들 이제 소주 그만 마셔!”

“네?”

그의 말에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소란스러움을 접어둔 채 그를 주목했고.

송 감독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재차 큰 소리로 외쳤다.

“기분도 좋은데, 오늘은 소주 말고 제일 비싼 복분자로 시켜. 하하!”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직원을 향해 말했다.

“사장님! 저희 테이블에 놓인 소주, 전부 복분자로 바꿔주시고. 고기도 좋은 거로 다시 세팅해 주세요!”

“네, 바로 세팅해 드리겠습니다.”

송 감독의 말에 스태프와 배우들은 환호하기 시작했고.

“자자, 많이들 먹어. 오늘은 내가 전부 쏘는 거니까.”

“잘 먹겠습니다, 감독님.”

송 감독은 금세 나온 복분자를 잔에 가득 채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상간녀의 유혹 팀. 좋은 배우분들, 너무나도 잘 따라와 준 스태프들. 다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따라 잔을 높이 들었고.

송 감독은 기쁨에 겨운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좋은 성과를 얻으며 마무리하게 돼서 너무 행복하고, 고생했던 만큼 오늘 맘껏 드시고 먹고 죽읍시다!”

“위하여!”

머리 위로 높이 든 잔들이 허공에서 찰랑거리며 부딪쳤고.

이곳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선배, 한잔할까?”

서인우는 내게 술을 따르며 말했고.

“좋지.”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선배는 이제 쉴 거야?”

“아직 정하지는 않았는데, 조금 쉬다가 작품을 하지 않을까 싶어.”

그러고 보니 신민영과 연인 관계인 서인우.

지난 촬영 현장에서 그가 내게 진지하게 했던 이야기가 재차 떠올랐다.

신민영이 나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싫어했다는 말.

그런데 내게 자꾸만 말을 거는 서인우를 보며, 오히려 눈치를 보는 건 그가 아닌 나였다.

몇십 분 전, 드라마를 시청할 때 느껴지던 따가운 신민영의 눈빛.

지금 스윽 고개를 돌려보니, 다행인지 신민영은 자리에 없었다.

나는 서인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민영 씨랑은 잘 만나고?”

그는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촬영도 막 끝났으니까, 이제 데이트도 자주 해야지.”

서인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더 이상 그녀에게 궁금한 것은 없었고.

“인우 너는 이제 어떤 작품 하려고?”

나는 서둘러 주제를 환기시켰다.

한동안 서인우는 술잔을 채우며 나와 대화를 이어갔다.

***

회식의 여파로 다음 날은 하루 내내 집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시청률로 인해 흥분한 송 감독은 2차, 3차를 연신 부르며 밤이 새도록 회식을 즐겼고.

그로 인해 나 역시 다음 날까지 회식의 기운이 가득했다.

그리고 집에 있는 동안 수많은 연락이 쏟아졌다.

드라마의 마지막 회는 그 어떤 회차보다 중요하다.

잘 가다가도 마무리에 삐끗하는 경우가 꽤 많으니까.

하지만 ‘상간녀의 유혹’ 드라마의 마지막 회는 스토리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시청률 또한 자체 최고 시청률 20%를 돌파했기에, 지인들에게 고생했다, 축하한다는 연락이 끊이지 않았지.

나는 그동안 못 잤던 잠과 휴식을 실컷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딩동.

그러다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님을 맞이했다.

“형!”

다름 아닌 김 실장이었다.

문을 벌컥 열자, 김 실장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이밀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일어났네?”

“어, 형은 하루라도 나 안 보면 힘들고 그런가?”

내 농담에 김 실장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 안 보니까 미치겠던데? 하하.”

“징그러워.”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고.

김 실장은 내 장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스레 테이블로 걸어갔다.

“근데 아침부터 우리 집에는 무슨 일이야?”

내 물음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내가 회식 끝나고 가면서, 오늘 너네 집 온다고 했잖아.”

“맞네. 형은 일 없어?”

“당연하지. 네가 일이 없는데, 내가 일이 어디 있겠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형은 WG 엔터 직원인데, 다른 연예인들 매니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좀 쉬어야지. 이제 막 드라마 끝나서 나도 며칠 쉬는 거거든?”

“오오, 하긴 형이 고생 많았지.”

우리는 커피를 들이켜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 맞다. 너 이번에 보너스 들어갈 거야.”

김 실장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내게 말했다.

“무슨 보너스?”

“시청률 20% 돌파해서 추가 보너스 들어온다고 아침에 연락받았어.”

“와, 대박인데?”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연신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드라마 주연을 맡아 출연료가 꽤 센 편이었다.

월화 황금 시간대 드라마의 단독 주연.

말하지 않아도 페이가 많을 수밖에 없는 자리지.

그런데 거기에 시청률로 인한 보너스라니.

더군다나 마지막 화에 돌파한 20%였기에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또 있어.”

김 실장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마른 입술을 적시며 말했다.

그의 표정에 나는 턱을 당기고 눈을 크게 떠 바라보았고.

김 실장은 양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 MBS에서 드라마 팀 수고했다고 포상 휴가 보내준대!”

그의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김 실장은 신이 난 얼굴로 재차 입을 열었다.

“무려 하와이로 간대.”

“…대박.”

휘둥그레진 눈을 한 채 그대로 의자에 털썩 기대었고.

이내 정신을 차리며 김 실장을 향해 질문을 쏟아부었다.

“그럼 언제 가는 거야?”

“날짜는….”

김 실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또다시 물음을 던졌다.

“그럼 형도 같이 가는 거지? 스태프들도 전체 다 오는 건가? 못 오는 사람 없이?”

아이처럼 신나 입을 쉬지 않는 나를 보며, 김 실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나씩 대답해줄게. 하하.”

김 실장 역시 내가 출연한 드라마에서 포상 휴가를 받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꽤 설레고 기쁜 모양이다.

한껏 치켜 올라간 눈썹이 그 기분을 증명하는 듯 보였다.

“포상 휴가는 보통….”

김 실장은 잔뜩 신난 하이 톤의 목소리로 내게 설명을 한참 늘어놓았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차분해진 우리.

김 실장이 불현듯 내게 말을 걸었다.

“희성아, 이번에는 쉬었다가 다음 작품 할 거지?”

“음… 아직 자세한 건 생각 안 해봤어. 왜?”

“아니, 포상 휴가도 있고. 이번 드라마 때 고생 많았잖아.”

그의 말대로 이번 드라마의 촬영 강도는 꽤 센 편이었다.

쉴 틈 없이 몰아쳤던 촬영 스케줄.

거기에 잠도 제대로 잔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나는 김 실장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연말에는 새로 들어가는 거 거의 없으니까 푹 쉬자.”

“그럴게.”

“작품도 고를 겸해서 좀 쉬며, 플렉스도 하고.”

그는 웃으며 말했고.

나는 보너스를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김 실장이 떠난 후.

홀로 남은 집.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늘 바쁘게만 살다보니, 이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것 또한 지루한 게 아니라 여유롭고 행복하게 느껴졌으니까.

바깥에는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 앞에는 대본도 없었고, 별다른 스케줄도 없었다.

“아… 오늘 저녁에는 뭘 해볼까?”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맞다, 서빈 선배 드라마 정주행해야 하는데.”

촬영이 바빠서 보지 못했던 드라마 블랙맨.

서둘러 소파로 자리를 옮겨, 드라마 1화를 재생시켰다.

어느덧 앉은 자리에서 블랙맨을 시청한 지 3시간이 훌쩍 지났고.

나는 망설일 것 없이 4화를 재생시켰다.

“이야, 서빈 선배. 이 드라마에서 특히 더 잘생기게 나오네.”

최서빈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짓던 그때.

지이잉.

소파에 올려둔 휴대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발신인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화들짝 놀라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 희성아. 통화 가능해?

“선배님, 저 지금 블랙맨 보고 있었는데. 하하!”

내게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TV 속에 나오고 있는 최서빈이었다.

-정말?

“네, 집에서 쉬면서 선배님 드라마 보고 있었거든요. 딱 4화 틀었는데, 선배님한테 전화 와서 소름 돋았습니다.”

-내 드라마 모니터링도 해주고, 고맙네. 하하.

“아닙니다. 워낙 잘나가는 드라마라서 촬영 끝나면 꼭 봐야지 했죠. 게다가 선배님 나오시는 드라마인데, 당연히 봐야죠.”

-그나저나, 드라마 시청률 잘 나왔더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거 축하해주고 싶어서 전화했어.

“아, 감사합니다.”

-드라마 막화 하는 날 전화하려고 했는데, 촬영이 정신없어서 이제야 전화하네.

“아유, 전화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촬영 많이 바쁘시죠?”

최서빈은 내 말에 혀를 내두르며 답했다.

-응, 아직 중반부도 안 왔는데, 정신이 없네. 너는 잘 지내고 있어?

“예, 저는 이제 한가하죠.”

-부럽다. 나 촬영 바쁜 거 좀 정리되면, 밥이나 한 끼 하자.

“너무 좋습니다. 저 이제 백수 아닙니까, 하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선배님.”

-그래. 드라마 막 끝났으면….

그때.

최서빈의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어수선해진 분위기에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뭐라고? 그거 확실한 거야?

최서빈은 내가 아닌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다급하게 물었고.

그 소리에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희성아.

“네, 선배님.”

-미안한데, 내가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예….”

내가 대답을 끝마치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고.

잠깐 들었지만, 최서빈의 현장에는 심각한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혹시… 현장에서 사고라도 난 건가?

누가 다친 건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급히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이럴 때 가장 빠른 소식은 인터넷 기사였으니까.

‘블랙맨’을 검색창에 치기 위해 타이핑을 하던 순간.

다급하게 울리는 연예 뉴스 알람.

[수목 드라마 ‘블랙맨’의 주연 임하준, 대마초 흡연 혐의로 검찰 송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