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24 – 두 얼굴의 그녀 (6)
서인우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뭐?”
그의 말에 내 눈은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서인우를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내가 아는 그 신민영 씨?”
서인우가 긴장한 듯 쩍 갈라진 입술을 혀로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 민영이.”
“…….”
나는 벙쪄버린 얼굴로 서인우의 눈을 쳐다보았고.
그 역시 내 반응을 예상했는지, 쓰읍 소리를 내며 내 눈길을 피했다.
그러고는 서둘러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았다.
“원래 그런 사이는 아니었는데, 요즘 어쩌다 둘이 자주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서인우는 마치 만나면 안 될 사이인 것처럼 내게 둘의 관계를 설명하기 시작했고.
순간 아차 싶었던 나는 그의 말을 잘라냈다.
“…축하해.”
사실 신민영에게 좋은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기에.
둘의 관계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미 관계가 이어진 그들을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그들의 관계에 끼어 왈가왈부하는 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했지.
둘이 못 만날 사이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그저 내가 신민영의 이중적인 면을 보았기에, 그녀와 연인 관계가 되어버린 서인우가 걱정되었던 것.
그뿐이었다.
이전에 우리는 삼총사라 불리며, 지난 촬영부터 친분을 유지했기에.
서인우가 내게 자신들이 연인이 된 것을 알려주려고 했을 터.
내 말에 그는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신민영과 작은 말다툼을 한 것을 알고 있는 서인우, 그래서 표정이 어두운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축하한다는 말을 들은 뒤, 더욱 굳어진 표정이었다.
내가 밝은 표정으로 축하해주지 않아 그런 것인가 싶었고.
이야기를 듣자마자 기쁜 마음이 아니었던 것이 미안했기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럼 언제부터 만난 거야?”
“얼마 안 됐어. 근데 선배한테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
여전히 어두운 얼굴의 서인우를 보며, 나는 심각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인우야.”
“응, 선배.”
“이제 연애도 하는 자식이 왜 이렇게 죽상이야?”
내 말에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선배… 민영이랑 사이가 많이 안 좋은가?”
그의 말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음….”
“고양이 이야기… 그게 참 별것도 아니었는데, 그렇지?”
서인우의 말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텐트에서 있었던 일은 전혀 모른다는 것을.
하긴.
자신이 내게 저지른 일을 굳이 남자 친구가 된 서인우에게 말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고 굳이 내가 그 일을 서인우에게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기에.
텐트에서 있었던 일을 말한다고 해서, 둘 사이가 멀어질 것도 아니었고.
또 그 이야기를 전한다고 해서 내게 도움이 되는 것 역시 아니었으니까.
그건 단지 나와 신민영 사이에 일어난 일일 뿐.
자칫했다간 내가 둘의 사이를 멀어지게 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런 답을 하지 않자, 서인우가 재차 입을 열었다.
“선배, 사실은… 민영이가 선배랑 나랑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뭐?”
그의 말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자신과 멀어졌기에, 나까지 서인우와 멀게 만들고 싶어 한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서인우는 자신도 막막하다는 듯 연신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나는 그냥 둘이 화해하고, 예전처럼 친하게… 늘 삼총사였잖아.”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늘어진 눈썹.
간절한 목소리까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뚝뚝 흘러넘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물론 신민영과 한때 친했던 것은 맞지만.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업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당연히 모든 인맥이라는 건, 살아가면서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굳이 힘들게 관계를 유지하면서까지 지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게다가 서인우의 연인이 됐기에 그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면?
더더욱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싫어서 자신의 남자 친구인 서인우에게도 나와 멀게 지내라고 했다는 신민영의 말에.
먼저 수그리고 신민영에게 사과하고 싶지는 않았다.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것은 서인우이지, 신민영과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고.
그들의 관계를 멀게 하고 싶지 않아 텐트에서의 일을 쉬쉬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서인우의 말에 그나마 남아 있던 일말의 정까지 떨어져 버렸다.
나는 그를 바라보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민영 씨가 먼저 사과한다면 모를까, 내가 먼저 그럴 마음은 없어.”
그러자 서인우는 시선을 내리깐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서인우를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나랑 멀어지는 것 때문에 고민이라면… 지금의 우리 관계를 유지할지 말지는 네 선택에 맡길게. 그거 가지고 널 원망하지도 않을 거고.”
“…그럼 민영이가 사과하면, 선배는 친하게 지낼 용의는 있는 거예요?”
그의 말에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친하게 지내질지는 잘 모르겠다만, 지금처럼 남남 같지는 않겠지.”
내 말에 서인우가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눈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근데… 그렇게 중간에서 이간질하고 굳이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거 보면, 사실 이번 작품 끝나면 민영 씨랑 따로 연락하고 지내지는 않을 것 같아.”
서인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잖아. 우리 그렇게 사이가 좋았는데, 그때 내가 민영 씨 생각해서 했던 말인 거 알면서도. 기분 상하게 했다고 이렇게까지 된 거면 솔직히 난… 별로야.”
조금의 거짓도, 과장도 보태지 않고.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행실에 대해 욕을 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저 그녀와의 관계 회복을 권유하는 서인우에게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니까.
서인우는 내 말을 충분히 이해했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답했다.
“선배 말도 맞죠. 그때 대화했던 게, 선배도 민영이를 위한 말이었던 거 저도 알고요.”
그는 멀어진 관계, 그리고 나와도 영영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민영이는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선배랑 다시 잘 지내볼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푹 숙인 서인우를 향해 나는 어깨를 토닥이며 답했다.
“이제 네 여자 친구니까, 나와의 관계는 네가 잘 생각해봐. 예전처럼 네가 나한테 달갑게 다가오지 않는다고 해도 이해할 테니까.”
그는 내 말에 입술을 잘근 깨물며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
벌써 드라마 방영 절반이 훌쩍 지났고.
어느덧 후반부, 11화 방영 날이 다가왔다.
시청률은 조금씩 상승하고 있지만, 홍보에 느슨해질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촬영을 이어나가야 했기에 다른 예능이나 프로그램에 나갈 시간은 없었지만.
매주 월화, 방영 전에는 늘 SNS를 통해 글을 올리고는 했다.
오늘도 SNS에 업로드하기 위해 현장에서도 휴대 전화를 잡았다.
그리고 김 실장에게 그 휴대 전화를 내밀며 말했다.
“형, 나 사진 좀 찍어주라.”
“SNS 올릴 거지?”
그는 이제 당연하다는 듯 내 휴대 전화를 받아 카메라를 클릭했고.
“응, 저녁 되기 전에 올리려고.”
나는 세트장 한쪽으로 걸어가 포즈를 취했다.
‘상간녀의 유혹’이 적힌 대본을 얼굴 가까이에 가져다 대고 미소를 짓자.
찰칵, 찰칵-.
김 실장이 셔터를 연달아 클릭했다.
“오오- 오늘 사진 잘 나왔다.”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게 휴대 전화를 내밀었고.
“고마워, 형.”
나는 그걸 받아 곧장 SNS를 클릭했다.
제일 상단에 뜨는 게시 글.
최서빈이 올린 게시물이었다.
옆에서 내 SNS를 함께 바라보던 김 실장이 글을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맞네, 이번 주에 블랙맨 1화 방영하네.”
“그래?”
서둘러 날짜를 확인했고, 곧장 입을 열었다.
“그러네. 서빈 선배도 이번 주 블랙맨 1화 시청해 달라는 글 올린 거네.”
PBC 마크가 크게 적혀 있는 배경 앞에 서 있는 최서빈의 모습.
그 앞에서 임하준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임하준이랑 친해졌나 보네.”
나는 그 사진을 바라보고는 서둘러 내 게시물을 클릭했다.
그러고는 조금 전 찍은 사진을 올리며, 글을 덧붙였다.
-‘상간녀의 유혹’ 11화도 본방 사수해주실 거죠?
오늘 밤, 9시 55분 MBS에서 만나요~!
짧은 글을 적은 뒤.
곧장 SNS에 게시했고.
기다렸다는 듯 팬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오빠ㅠㅠ 이제 월요일만 기다려요ㅠㅠ 언제 10시 되나요!
-우리 엄마도 요즘 저랑 같이 희성 오빠 보는 낙으로 살아요ㅎㅎ 오늘도 본방 사수할게용
-불륜 저지르는 거 보면 화나지만, 오빠 얼굴 보면 다시 사르르 풀려버리는 갈대 같은 내 맴.
-10화 복습하면서 11화 기다리는 중입니다!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들을 읽어 내려갔고.
흐뭇한 얼굴로 읽던 그때.
재차 SNS의 알람이 울렸다.
다시 새로 고침을 하자,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떴고.
그 알람의 당사자는 다름 아닌 최서빈이었다.
최서빈의 계정을 확인하자마자 사르르 입꼬리가 올라갔다.
몇 주 전, 그에게 걸었던 전화.
그 이후 최서빈과의 관계가 점차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숨을 길게 내쉬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
띠리리.
알람 소리에 눈뜬 아침.
적은 수면 시간으로 자연스레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가장 먼저 집은 것은 휴대 전화였다.
지난밤, 14화가 방영되었고.
아침이 되자마자 그 시청률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
시청률을 위해 드라마를 찍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가 방영되면, 매일 아침마다 전날 드라마 시청률을 확인하기에 급급했다.
시청률이 드라마의 인기 척도였으니까.
떨리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시청률을 클릭했고.
꽉 감은 눈을 조금씩 뜨며 숫자를 확인했다.
1….
1 뒤에 오는 숫자.
“제발…!”
손으로 휴대 전화를 가리며 살며시 숫자를 확인했고.
18.2%.
“와아!”
나도 모르게 시청률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3화까지 쭉쭉 올랐지만 넘지 못했던 18%.
그 18%가 넘은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남은 건 15, 16.
단 2화.
20%라는 숫자를 돌파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번 주 촬영이 그 마지막 2화의 내용이었으니까.
끝까지 마음을 다잡고 연습에 매진해야 한다.
짧은 준비를 마친 뒤, 올라탄 차.
김 실장은 오늘도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희성아, 컨디션은 좀 어때?”
“좋아. 형 어제 18% 돌파한 거 봤어?”
그는 내 말에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지. 이제 마지막 주는 20% 넘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그는 내게 미소를 보이고는 곧장 운전대를 잡았다.
잠시 움직이던 차에서 김 실장은 룸 미러를 통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희성아.”
“응?”
“우리 이번 드라마 잘 마무리하면….”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마침 신호에 걸리자, 그가 몸을 돌리며 내게 말했다.
“지금 시즌이 가을이잖아?”
그의 말에 나는 창밖의 낙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 잘 하면… 시상식 갈 수도 있어.”
시상식…!
그 단어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