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22)화 (122/303)

122화 #23 – 막장과 작품 사이 (5)

[진희성, MBS ‘상간녀의 유혹’ 주연 캐스팅… 기존 이미지 벗어던지나….]

[진희성, ‘상간녀의 유혹’ 출연 확정. 작품과 상반되는 순수한 이미지의 진희성, 과연….]

[MBS 드라마 ‘상간녀의 유혹’. 바람난 유부남 役 진희성 캐스팅 확정.]

[진희성… 새롭게 도전하는 드라마, 불륜 클리셰 그대로 가져가나….]

드라마 출연이 확정된 후.

인터넷에는 내가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기사들이 연일 쏟아졌다.

하지만 그 기사의 주된 내용은 내가 ‘주연’에 캐스팅된 것이 아니었다.

순수하고 착한 이미지로 굳어가던 내가 유부남, 불륜남으로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가득했지.

그래서 더더욱 기사는 하루, 아니 시간마다 새롭게 업데이트되며 드라마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아직 확정된 것이라고는 주연인 나 하나뿐이었지만.

벌써부터 이렇게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설렜다.

다시 주연으로 올라온 자리가, 시작을 하기도 전부터 관심을 받고 있으니까.

더불어 이런 관심과 우려 높은 목소리에 걱정도 되었다.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터.

나는 더더욱 드라마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뒤.

굳은 몸을 스트레칭하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지이잉.

하루 내내 울리는 휴대 전화.

새 드라마에 들어간 기사를 보고 축하하는 지인들.

물론 그중 대부분은 기사와 같은 반응이었다.

착하게 잘 쌓아온 이미지가 불륜남, 바람남으로 굳어져도 괜찮겠냐는 연락이었지.

벌써 밀려드는 연락에 메시지 창을 닫은 뒤.

다시 기사를 살폈다.

그중 기사 하나를 클릭하자 창을 가득 메운 댓글들.

-우리 희성 오빠가 유부남인 게 말이 돼?

└유부남인 것보다 바람남인 게 더 용서 안 돼.

└우리 오빠가 어떻게 이런 쓰레기 역을 하는 거야.

└ㅇㅈ 오빠, 도망쳐요!!

-우리 오빠가 왜!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 건데!

-WG 엔터 일 안 하냐?

-이적하자마자 맡은 역할이 이런 불륜 드라마인 게 실화?

-회사 일 좀 해라. 이딴 식으로 일할 거면, 우리 오빠 왜 데려감?

-이적하고 하는 첫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라니… 회사 뭐 하냐ㅡㅡ

모두 같은 말을 하는 댓글들이었다.

내가 이 역할을 맡은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

또 내 의지가 아닌, 회사의 압박으로 하게 되었다는 것.

팬들은 내가 아닌 회사 WG 엔터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그 오해를 풀어야만 했다.

이 모든 건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더불어 오해를 떠나, 나를 좋아하는 팬들의 마음을 안심시켜 줘야만 했다.

한숨을 길게 내쉰 뒤.

SNS를 클릭했다.

그리고 팬들을 위해 한 글자, 한 글자에 마음을 담아 꾹꾹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진희성입니다.

팬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들어가게 된 ‘상간녀의 유혹’ 작품으로 걱정이 많으신 것 같아…

.

.

.

회사의 압박과 지시가 아닌, 제가 선택한 작품입니다.

단순히 ‘불륜’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니었고.

저는 그 작품성을 보며, 이 작품에 꼭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회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회사를 설득했습니다.

팬 여러분.

제 선택을 한번 믿어 주셨으면 합니다.

아마 드라마를 보시면 왜 제가 이 선택을 했고, 이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었는지.

아실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디서든 응원해 주시고, 격려와 걱정해 주시는 팬분들이 있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팬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는, 진희성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제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딩동.

딩동.

딩동.

글을 올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우리 희성이가 그렇다면, 당연히 믿어야지!

-오빠, 항상 응원해요!!

-우리 희성 오빠, 하고 싶은 거 다 해.

-진희성의 행보를 응원합니다.

-오빠가 직접 선택한 거라니까, 걱정 안 하고 믿고 기다릴게요!

-오빠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요. 사랑해요!!

-이번 작품도 대박 나길 응원합니다.

-맞아. 단순하게 불륜 드라마라고 해서 욕하지 않을게요. 진희성 파이팅!

올라온 댓글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제야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고.

자연스레 올라가는 입꼬리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긴 심호흡과 함께 대본을 다시금 펼쳐들었다.

***

“왔어?”

차에 올라탄 최서빈이 배 실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응.”

그는 몸을 돌려 최서빈에게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서빈아, 오늘 컨디션은 좀 어때?”

“나쁘지 않아.”

최서빈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

“오늘 대본 리딩 끝나고, 내일 일정은 없는 거지?”

“어, 내일은 쉬었다가 다음 날 광고 촬영 있어. 알고 있지?”

그의 말에 최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배 실장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앞으로 돌렸다.

“그럼 출발할게.”

차는 곧바로 최서빈의 집을 벗어났고.

도로에 올라타자마자 최서빈이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거 아직 한참 남았는데, 대본 리딩을 일찍 하네?”

“원래 우리가 차차기작이 아니라, 지금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차기작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밀린 거야?”

배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중간에 뭐가 잘못돼서 블랙맨 방영이 좀 늦어진 거래. 그래도 이미 일정을 잡은 거라, 대본 리딩은 제날짜에 하기로 했어.”

“뭐…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지.”

최서빈은 의자에 등을 푸욱 기댄 채, 대본을 집어 들었고.

룸 미러로 그의 모습을 본 배 실장은 흘러나오던 라디오의 전원을 껐다.

한참을 달리던 차 안.

최서빈은 대본을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배 실장에게 물었다.

“형.”

“응, 서빈아.”

“요즘 회사에는 별일 없어?”

회사에서 가장 잘나가는 배우인 최서빈이 회사에 대해 묻는 것은 당연했다.

이미 WG 엔터에서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니까.

늘 인사처럼 묻는 질문이었기에, 배 실장은 조금도 놀란 표정 없이 그를 향해 답했다.

“별일은 없지.”

그의 말에 최서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배 실장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맞다, 진희성 말이야. 드라마 확정됐더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서빈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어, 안 그래도 기사 봤어.”

“하긴. 기사가 워낙 많이 났어야지. 갑자기 무슨 막장 드라마를 한다고 해서, 회사에서도 떠들썩했더라고.”

최서빈은 그의 말에도 어깨를 들썩이며 대수롭지 않게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크랭크 인은 언제래?”

배 실장은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생각했고.

“어… 아직 대본 리딩도 안 돼서 일정이 안 잡힌 거로 알고 있는데, 아마 3달 뒤쯤?”

“아직 멀었네.”

“MBS에서 이번에 시작한 드라마 알지?”

최서빈은 몸을 앞으로 당기며 말했다.

“어, 저번 주에 시작한 거?”

“응, 그 드라마 차차기작이거든. 진희성 드라마는 완전 멀었지.”

그의 말에 최서빈은 휴대 전화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럼 나랑 한 4주 겹치겠는데?”

배 실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빨간 불 신호등에 걸리자마자 스케줄 달력을 보며 답했다.

“그러겠네. 진희성 그 드라마가 8화 끝나고, 9화 시작될 때쯤에 우리 블랙맨 1화가 시작하겠다.”

최서빈은 배 실장의 말을 경청했고.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래도 얼마 안 겹치네.”

배 실장이 룸 미러로 최서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나저나 그 자식은 대체 왜 블랙맨을 깐 거야?”

그의 말에 최서빈은 곧장 입을 닫아버렸고.

배 실장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갔다.

“진희성이 감이 없는 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너랑 하는 블랙맨을 까고 들어간 게 고작 막장 드라마라니… 참.”

계속되는 배 실장의 말에 최서빈은 곁눈질로 룸 미러에 비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깔 수도 있지.”

최서빈은 어느새 팔짱을 낀 자세로 한숨을 내쉬었고.

창밖을 바라보며 배 실장이 듣지 못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뭐… 자기도 배우니까, 하고 싶은 게 있기는 하겠지.”

진희성을 떠올리는 최서빈의 눈에는 살기가 아닌.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진희성 마음을 알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제안을 거절한 건 거절한 거니까.’

최서빈은 입술을 움찔거리며 생각에 잠겼고.

그 모습을 바라본 배 실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그에게 물었다.

“진희성한테 화 많이 났어?”

배 실장의 걱정 어린 질문에, 최서빈이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뭐 그런 거로 내가 화가 나겠어.”

배 실장과 최서빈은 하루 이틀 사이가 아니었다.

몇 년간 함께해온 형제나 다름없는 관계였고.

최서빈의 말투, 표정을 보면 배 실장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진희성과 함께 작품을 하지 못해 그가 시무룩하다는 것을.

그리고 배 실장은 뒤를 돌아 최서빈을 향해 한쪽 눈썹을 올리며 장난치듯 물었다.

“그러면 삐친 거야?”

순간 최서빈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고.

“…무, 무슨 소리야!”

그의 말에 배 실장이 어깨를 들썩이며 미소를 지었다.

“형. 나, 최서빈이야. 내가 뭘 삐쳐…!”

당황한 듯 횡설수설하는 최서빈의 태도에 배 실장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하… 참….”

최서빈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숨을 빠르게 내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

몇 주 전에 찾아왔던 이곳.

‘상간녀의 유혹’의 감독과 작가를 만나 미팅하였던 곳이다.

대본 리딩까지는 한참이나 남았지만.

송 감독의 요청으로 재차 미팅을 하게 되었다.

배역들의 특징과 체크할 것이 있다는 그의 말에 서둘러 온 미팅 장소.

긴 심호흡을 한 뒤에야 문을 두드렸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송 감독이 아닌 스태프가 문을 열며 나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이랑 작가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셔서 앉아 계시면, 곧 오실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지난번 앉았던 자리로 다가가 착석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라온 대본을 만지작거리던 그때.

재차 문이 열렸다.

나는 송 감독을 향해 인사하기 위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오셨습니까?”

숙인 고개를 들자,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밝게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사람.

송 감독이 아닌, 신민영이었다.

“민영 씨!”

“희성 씨, 오랜만이에요.”

지난번 작품 이후로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는 그녀였기에.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민영 씨, 안 그래도 오늘 기사 뜬 거 보고 연락하려고 했는데. 여기서 벌써 보네요.”

“희성 씨 주연이라길래, 제가 짠하고 놀라게 하려고 했는데, 아침에 기사가 났더라고요.”

바람을 피우는 불륜 소재에 막장 드라마라는 이야기가 퍼졌고.

그래서 더더욱 이 드라마에 들어올 여자 주연의 자리가 궁금하고, 그만큼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신민영으로 캐스팅 확정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너무 반가웠다.

함께 작품을 하며, 그녀와 친분도 생겼을뿐더러.

그녀의 연기는 흠잡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지.

우리는 자리에 앉아, 그동안 회포를 풀 듯 안부를 묻기 시작했고.

대화를 주고받던 도중.

신민영이 손뼉을 부딪치며 내게 말했다.

“참, 그거 들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어떤 거요?”

“여기에 조연으로 인우 씨도 온대요.”

신민영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서인우요?”

지난번 작품에서 삼총사, 남매로 불렸던 우리.

또 한 번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럼 삼총사의 재결합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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