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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113)화 (113/303)

113화 #22 – 새로운 곳에 내리는 뿌리 (1)

짝짝짝짝-.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군데군데에서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송유나는 터지는 박수 소리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영화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의 시사회.

“이야, 몇 번을 봐도 장난 아닌데?”

최 실장은 엔딩 크레딧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송유나에게 말했고.

그녀는 이내 얼굴에 미소를 지워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누가 나온 영화인데.”

“맞지. 우리 유나가 나온 건, 다 완벽했지.”

송유나가 옆에 함께 앉은 배우들을 곁눈질로 살폈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진희성이었다.

그는 손뼉이 부서져라 부딪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고.

진희성을 바라보던 송유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우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보낸 뒤.

하나둘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벌써 며칠간 이어진 시사회.

송유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차에 올라타 몸을 기대었다.

“하아, 이제 시사회는 다 끝난 거지?”

그녀의 물음에 최 실장이 스케줄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응, 오늘을 끝으로 시사회는 끝났고. 그다음은….”

“아, 다음 거는 내가 물어보면 알려줘.”

“…알겠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잘라낸 송유나.

그녀는 몸을 의자에 푸욱 기대고 목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고.

최 실장은 여전히 영화에 푹 빠져 있는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근데 한국에서 나온 그 어떤 좀비 영화보다 더 실감 나서 너무 재미있더라. 현장에서 봤을 때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최 실장은 미간을 찌푸리고 허공에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실감 나게 편집한 장면에 배경 음악까지 깔리니까, 이야….”

송유나는 그의 말이 듣기 싫지 않았는지 조용히 듣고만 있었고.

그는 마른침을 삼켜내며 영화를 평론했다.

“게다가 좀비 역할 하는 분들 연기가 진짜 대박이었어. 특히, 진희성 그 배우는 대체 어떻게 연기를 한 거래?”

최 실장의 말에 송유나가 감았던 눈을 살짝 뜨며 그에게 답했다.

“왜?”

“아니, 진짜 좀비로 살아본 사람 아닌가 싶더라니까?”

“참나, 무슨 좀비로 살아봐.”

“그만큼 좀비 연기가 기가 막혔다는 거지. 다들 좀비 연기는 희성 씨 이야기밖에 없던데?”

송유나는 그의 말에 팔짱을 낀 채, 쓰읍 소리를 내며 다시금 눈을 질끈 감았다.

룸 미러로 그녀가 눈을 감은 것을 확인한 최 실장은 곧장 차에 시동을 걸었고.

“유나야, 그럼 출발할게.”

“어.”

그대로 차는 북적이는 현장을 벗어났다.

차가 도로를 달린 지 십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감고 있던 눈을 뜬 송유나.

팔짱을 풀어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인터넷을 클릭해 자신이 출연한 영화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를 검색했다.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 좀비 영화… 韓 개봉부터 초대박!]

[‘K-좀비’ 글로벌로 이끌 영화,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

[영화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 개봉부터 현재까지 관객 수 배로 늘어…]

호평 기사들이 줄을 이뤘고.

송유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평론가 리뷰를 클릭했다.

-한국에 좀비가 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라는 호기심과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는 작품.

대중적으로 보기 불편하지 않게 수위 조절이 된 것도 큰 장점 중 하나였다.

뻔한 클리셰를 벗어난 작품으로….

-주춤한 국내 영화 시장을 긴장시킬 재난 블록버스터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

한때 인간이었던 좀비를 바라보는 생존자의 슬픈 시선.

좀비로 변한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까지, 흠잡을 것이 없는….

평론가들 역시 혹평보다는 호평이 훨씬 많이 차지하고 있었고.

이에 활짝 미소를 지으며, 일반 관객들의 댓글 리뷰를 하나하나 살폈다.

-이건 K-좀비 영화 톱 급이다!

-근데 진희성 연기는 진짜 미친 거 같음. 좀비로 살아봤던 사람 아님?

└진희성 배우님 예전 작품부터 봐왔는데, 이번 연기는 더 쩔었음.

└맞아. 진희성 언젠간 한국 영화계를 씹어 먹을 거 같음.

└이 댓글에 코인 태웁니다!

-이 영화 N차 관람 필수입니다~ 저는 오늘 벌써 2차 찍고 왔어요.

관객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고.

그중 진희성에게 쏟아진 댓글들은 압도적으로 많았다.

송유나는 그 댓글들을 모두 읽어 내려갔고.

휴대 전화를 바라본 채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진희성… 잘하긴 잘하더라.”

***

“희성아, 오늘도 고생했다.”

김 실장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몸을 돌리며 내게 말했다.

“아니야. 오늘 일정 벌써 끝난 건가?”

“응, 끝이지.”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니, 해는 아직 하늘에 쨍하니 떠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끝난 일정.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 몸을 김 실장에게 당겼다.

“형, 그럼 이제 뭐 해?”

“뭐야, 더 일하고 싶은 거야?”

김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답했다.

“아니, 형은 이제 뭐 하냐고.”

“나는 뭐… 집에나 가야지. 따로 약속은 없어.”

김 실장의 말에 입꼬리를 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나랑 오늘 어디 좀 같이 가자.”

“어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는 그에게,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백화점.”

“옷 사게?”

“응, 나 괜찮은 코트 하나 사고 싶은데, 같이 골라주라.”

“오케이.”

김 실장은 그렇게 핸들을 꺾어 백화점으로 향했고.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제저녁.

HS 엔터에서의 마지막 정산금이 들어왔다.

평소보다 많은 유류세를 떼고 들어온 것 같았지만.

이미 계약이 끝난 회사였고, HS 엔터와 굳이 논쟁을 펼치며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드라마와 광고가 있기에, 금액은 꽤 큰 편이었다.

그래서 이번 정산금으로 어떤 것부터 하면 좋을까, 생각을 했고.

이번에는 나를 가장 가까이서 자신의 일처럼 살펴주는.

그리고 나를 믿고 함께 WG 엔터까지 따라와 준 김 실장을 위해 무언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선물을 주겠다고 한다면, 그는 분명 받지 않을 터.

내가 조금 비싼 밥을 사주는 것도 거절하는 그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조금의 꼼수를 써서 내 옷을 골라달라고 부탁한 것이지.

김 실장을 위해 선물을 해줄 생각에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에 도착해 김 실장은 내 옷을 고르는 줄 알았기에.

열정적으로 내 몸에 옷을 이리저리 대보기 시작했다.

“이 옷은 어때?”

“좋은데, 형은 어떤 것 같아?”

내 물음에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희성이 너한테 진짜 잘 어울리는데?”

슬쩍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형도 하나 고르는 건 어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지만.

역시나,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에이- 나는 필요 없어. 그리고 내가 사면 돼.”

김 실장은 곧장 다른 코트를 집어 들어 내 몸에 대어보더니.

“이야, 희성아. 이 옷이 제일이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옷을 바라보았다.

“오오, 이 코트 진짜 괜찮은데?”

“봤지, 내가 보는 눈은 있다니까.”

“하하, 형이 봤을 때도 괜찮아?”

나는 그의 반응을 살피며 물었고.

그는 옷을 찬찬히 훑어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응, 이 코트가 조금 비싸긴 한데, 희성이 너는 사람들도 만나고 하니까, 이런 거 하나 장만해두면 잘 입을 거 같아.”

“음… 그러겠네.”

“어, 게다가 이 코트가….”

김 실장은 자신이 들고 있는 코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게 설명을 늘어놓았고.

나는 손을 뻗어 직원을 불렀다.

그러자 이내 직원이 다가왔다.

“물건 사이즈 봐드릴까요?”

“네, 이 코트, 라지 사이즈 있을까요?”

그러자 그녀가 코트를 받아들며,

“예, 사이즈 있습니다. 보여 드릴까요?”

“아니요. 그걸로 바로 계산할게요.”

“네, 계산은 앞쪽에서 도와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김 실장이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희성아, 너는 키가 있어서 XL로 사야 해.”

그의 말에도 나는 계산대로 향해 걸어갔고.

직원은 밝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339만 원입니다.”

“네, 여기요.”

나는 그녀에게 카드를 내밀었고.

“결제는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일시불로 해주세요.”

“예, 카드 받았습니다.”

김 실장이 재차 입을 열었다.

“희성이 너 옷 코디할 때, 코트는 전부 XL사이즈로 하던데. 아니면 입어보고….”

그는 카드를 내민 나를 만류했고.

나는 김 실장에게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계산을 마쳤다.

“감사합니다. 예쁘게 입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직원에게 받은 커다란 쇼핑백.

나는 그 쇼핑백을 그대로 김 실장에게 내밀었다.

“자, 형 선물이야.”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걸 왜 나한테 줘?”

“형한테 좋은 옷 하나 해주고 싶어서.”

뭐라 말하려는 김 실장의 손에 서둘러 쇼핑백을 쥐어주었고.

그는 내 손을 밀어내며 답했다.

“안 해줘도 괜찮아.”

“나 믿고 같이 WG 엔터 와준 거잖아. 그것도 그렇고, 항상 고마워서 선물해주고 싶었어.”

김 실장이 손사래를 치며 내게 말했다.

“아니야. 네가 나 챙겨서 회사도 옮겨준 건데.”

“받아줘.”

“그래도 이건 너무 비싼….”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쇼핑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L는 내 사이즈도 아니어서 못 입어. 반품도 내 카드 아니면 안 되고!”

“에이, 여기서 바로 환불하면….”

나는 그의 말에 재빨리 매장을 빠져나왔고.

내게로 달려오는 그를 향해 말했다.

“안 입을 거면, 버리든지.”

김 실장이 눈썹을 늘어뜨리며 쇼핑백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희성아, 고마워. 진짜 잘 입을게. 근데 이거 너무 비싼 옷이라….”

“괜찮아. 앞으로 더 잘 되면, 더욱 비싸고 좋은 거 사줄게.”

그는 이내 입꼬리를 올리곤 쇼핑백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김 실장의 표정에 오히려 흐뭇한 건 나 자신이었다.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백화점을 나오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

“하아, 이게 벌써 몇 번째 집이냐.”

며칠 내내 알아보는 집.

하지만 마땅히 괜찮은 집을 찾지 못했고.

서둘러 집을 이사하고 싶은 마음에 점점 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이사라는 건, 집 찾는 게 90%니까. 급하게 찾지 말고, 좋은 매물 나올 때까지 천천히 찾아보자.”

김 실장은 나보다 더 깐깐한 눈빛으로 집을 살폈다.

“다음 집이 오늘 보여주실 마지막 집인가요?”

그가 공인 중개사에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여기가 집도 굉장히 넓고 깨끗해요. 생활권도 좋고….”

그녀의 말에 김 실장이 곧장 질문을 던졌다.

“보안은요?”

“보안도 철저합니다. 24시간 상시 경비도 있고, 애초에 아파트 입구에서도 입주민 확인 절차 하고요.”

공인 중개사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집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입주민이 아니라면 열리지 않는 차단기.

거기에 경비원이 앞을 지키고 있었고.

그것부터 만족스러운 마음을 가진 채 집 안으로 향했다.

20평 후반의 집.

너무 넓지 않으면서도 좁지도 않은 집이었다.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당연히 운동장 같은 집이었지만 말이다.

거실과 안방이 분리되어 있었고.

서울에서 이 가격에 이 정도의 깨끗함, 거기에 보안까지 철저하다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형, 여기 어떤 것 같아?”

김 실장은 나보다 자취 선배의 입장에서, 화장실로 다가가 수압을 체크하고 있었고.

“요즘 수압은 다 좋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필수야.”

그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나머지 방과 주방을 확인했다.

요리를 잘 해먹지는 않았지만 가끔 부모님이 오시면 대접할 만큼 꽤 괜찮은 주방.

거기에 서재 겸 연습실로 쓸 방까지.

창밖으로 보이는 건, 비록 한강 뷰는 아니었지만.

서울 도심의 시티 뷰와 아파트 뷰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들었다.

나는 김 실장에게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한참을 찾아 헤맸는데, 여기 오려고 그랬나 봐.”

내 말에 그 역시 공감하는 듯 눈썹을 들썩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희성아, 이 집 완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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