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21 – 처음과 끝 (1)
…미친.
난장판이 되어버린 집을 바라보며,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저 넋을 놓은 채 엉망이 된 집을 바라보았지만.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일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몇 달간 해외 촬영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온 내게.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내게, 안정감을 내뿜어야만 할 집에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얼굴이 벌게졌지만.
잔뜩 화가 난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알아차리기에도 바빴을 뿐.
“하아, 하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내 동공은 빠르게 흔들렸다.
그렇게 짧은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번뜩 정신이 든 나는 서둘러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서둘러 휴대 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김 실장이었으니까.
그는 두 번의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형!”
-어, 희성아. 잘 들어갔어?
“어디야?”
-나 신호 걸려서 아직도 너네 집 근처지. 왜?
“빨리… 우리 집으로 좀….”
숨을 헐떡이며 말하는 내 목소리에, 김 실장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직감했는지.
전화 너머로 급히 유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어, 바로 갈게.
그의 말에 나는 대답 대신 마른침을 삼켰고.
그건 극도의 긴장감에서 나오는 반응이었다.
-희성아, 무슨 일인지 지금 말할 수 있어?
“집에… 누가 들어온 것… 같아….”
-뭐?
김 실장의 목소리는 잔뜩 격양되었고.
그 흥분을 사그라트리기 위해 긴 호흡을 내뱉었다.
-알겠어. 잠깐만, 내가 바로 전화할게. 움직이지 말고 있어!
“어.”
그렇게 김 실장과의 전화가 끊겼다.
선뜻 집에 발을 들이지 못한 채.
5분의 시간이 흘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런 일.
대체 어떤 이가 이 집을 침입했는지, 도둑인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지금.
섣불리 홀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한참을 올라와야 도착할 수 있는 원룸 촌.
그중에서도 허름하고 좁은 원룸에 살고 있던 내게, 무엇을 위해 이 집에 온 것이지?
도무지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훔쳐갈 것이 없는 집이라지만, 내 공간에 침입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
그때.
쿵쿵쿵쿵.
“하아, 하아. 희성아!”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김 실장이 달려왔다.
“형!”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뛰어 올라왔는지 얼굴이 터질 듯 빨개져 있었고.
누구보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집에 안 들어갔지?”
달려오며 묻는 그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김 실장이 내게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잘했어. 바로 경찰 올 거야.”
전화를 잠시 끊자 하더니,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이다.
당연히 이런 일에 경찰 신고가 먼저였을 테지만.
너무나도 하얘진 머리 탓에 나는 경찰이 아닌, 김 실장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항상 나를 지켜주는 그가 있기에.
김 실장이 옆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에 사로잡혔고.
우리는 눈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 지문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안까지는 들어가지 말자.”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열린 현관문 사이로 몸을 살짝 비집고 들어갔고.
좁은 집이었기에,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집 안이 훤히 보였다.
“하아….”
김 실장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입을 떡 벌리며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더 걸어가 고개를 돌려 안을 바라보았다.
옷장, 서랍 할 것 없이 모든 수납공간이 열려 있는 상태.
문밖에서 살짝 보았던 것보다 상태는 더 심각했다.
팟-!
나는 손을 뻗어 불을 켰고.
어두운 바깥과 대비되는 밝은 집 안.
하지만 어두운 바깥의 길거리보다 집 안의 상태가 더 심난했다.
어질러진 거실, 뒤죽박죽 뒤엉킨 침대의 이불과 베개.
그 심각함에 내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져 갔고.
어느새 파르르 떨고 있는 내 몸을 김 실장이 토닥이며 말했다.
“희성아, 우선….”
김 실장이 나를 달래던 그 순간.
갑자기.
“으아아악!”
화장실에서 뛰어나오는 검은 물체.
아주 진한 검정색의 부스스한 긴 머리.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가 뛰쳐나왔고.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
그리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달려와 내게 부딪쳤고.
꿈쩍하지 않은 그녀는 재빠르게 김 실장을 밀어낸 뒤, 집에서 빠져나갔다.
다다다다다….
“거기 서!”
빠르게 달려가는 발소리.
김 실장은 그녀를 향해 소리쳤고.
그녀의 밀침에 휘청거렸던 김 실장이 몸을 일으켜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그녀를 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고.
김 실장과 함께 뛰지 않았다.
아니, 함께할 수가 없었다.
내 얼굴은 퍼렇게 질렸고, 떨리는 입술은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
나의 보금자리에서, 그것도 엉망이 된 집.
더불어 화장실에서 뛰쳐나온 긴 머리의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이 장면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비단 떨리는 건 입술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화장실을 가리키던 손마저 떨려오고 있었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넋을 놓은 채,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흐른 뒤.
김 실장이 가쁜 숨을 내쉬며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경찰과 함께였다.
“…형!”
“희성아.”
김 실장은 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발견하며 서둘러 달려왔고.
내 어깨를 쓸어내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그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1층에 경찰분들이 도착해서, 방금 그 여자 잡았어.”
“정말?”
“어, 바로 경찰서로 출발했어.”
그 말에 나는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안쪽까지 안 들어가셨죠?”
경찰은 나와 김 실장을 바라보며 물었고.
김 실장이 나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네, 신발장까지만 들어갔고, 처음 들어왔을 때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찰에게 상황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탁탁!
“딴짓하지 말고, 대답하세요!”
소란스러운 경찰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경찰이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이름.”
단호하고 차가운 말투에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여성이 입을 열었다.
“…정여진.”
타닥타닥-.
정여진의 말과 함께 경찰은 타자를 두드렸고.
그녀는 넋을 놓은 채 눈을 깜빡였다.
“봐. 이렇게 이름은 잘 말하면서, 주소는 어떻게 알았냐는데 왜 대답을 안 해요?”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고.
경찰의 같은 질문은 벌써 다섯 번을 반복하고 있었다.
“진희성 씨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냐고요!”
그는 한계에 다다른 듯 눈을 희번덕거리며 물었고.
정여진은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따라갔어요.”
그녀의 말에 경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언제부터요?”
“몇 달 전에… 스케줄 끝나고 오빠를 따라갔어요.”
“집까지?”
“네.”
정여진의 입꼬리가 옅게 휘어졌고.
그녀는 진희성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근데 오빠가 먼저 유혹한 건데….”
정여진의 말투에 경찰의 미간이 움찔거렸고.
그녀는 소름 돋을 정도로 입을 찢으며 말했다.
“희성 오빠가 저를 사랑해요.”
정여진이 고개를 높이 치켜들고 경찰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 물론 저도 오빨 사랑하고요.”
경찰은 그녀의 말에 굳은 얼굴로 일관하며 답했다.
“그래서 오늘 왜 그 집에는 들어갔어요?”
딱딱한 그의 말투, 차가운 눈빛에 정여진은 살짝 움찔했지만.
머리를 손으로 긁적이며 답했다.
“오늘 해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거, SNS 통해서 알았어요.”
“진희성 씨 SNS요?”
“아니요. 영화 촬영 스태프 SNS에서 봤어요.”
경찰은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대체 거기서 뭘 한 겁니까?”
“그냥… 오빠 기다렸어요.”
탁탁!
경찰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정여진 씨, 똑바로 대답해요. 대체 거기서 뭐 하려고 기다린 거냐고!”
그의 호통에 정여진이 몸을 파르르 떨더니.
이내 다시 순진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톱을 이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불안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
경찰은 그치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 집에서 진희성 씨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숨어 있었냐고!”
“…….”
정여진은 고개를 숙인 채 눈동자만을 굴려 주변을 살폈고.
계속해서 물어뜯은 손톱에는 어느새 핏방울이 고였다.
“그냥… 그냥 오빠랑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뭐?”
경찰의 눈썹이 움찔거렸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사래를 치며 외쳤다.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정말 오빠를 보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려왔고.
경찰은 그녀의 말에도 눈빛 하나 꿈쩍이지 않았다.
“저… 오빠 좋아, 아니, 사랑해요. 근데 제가 오빠를 왜 해치겠어요.”
정여진의 말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조사를 이어갔다.
***
“아, 우리 오빠 오늘도 너무 잘생겼잖아….”
박순희는 눈에서 하트가 쏟아지는 얼굴로 진희성의 SNS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희성 오빤 SNS로 팬들이랑 소통도 해주고, 진짜 오빠는 천사인가요?”
그녀는 자신의 휴대 전화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마우스를 흔들어 절전 모드가 되어 있던 컴퓨터 화면을 띄웠고.
서둘러 인터넷을 더블클릭했다.
“오늘도 우리 오빠 검색으로 하루를 시작해야지. 헤헤.”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인터넷에 ‘진희성’을 검색했다.
항상 보던 진희성의 프로필 사진임에도, 그녀는 처음 보는 것처럼 빙그레 웃으며 사진을 바라보았고.
마우스를 내려 새로 업로드가 된 글들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기사들.
“어?”
박순희는 서둘러 기사 목록을 클릭했다.
“오빠 아직 개봉 안 했는데, 기사가 왜 이렇게 많이 떴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뜬 진희성의 기사 목록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흥미롭다는 듯 기사 제목들을 읽기 시작했고.
점차 그녀의 얼굴이 찡그려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진희성 “끔찍한 스토킹에….”]
[배우를 스토킹한 여성 구속… 진희성의 집까지 침입]
[사생팬은 팬이 아니다. 연예계 스토킹 비상!]
[선 넘는 팬의 사랑. 그런 건 사랑이 아닌 범죄]
[진희성, 스토킹은 팬심이 아니다. 무단 침입한 스토커 구속….]
기사 제목을 읽은 박순희는 입을 떡 벌렸고.
그녀의 온몸에는 소름이 쫘악 번졌다.
미간을 찌푸린 채 기사를 정독하던 그녀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소리쳤다.
“설마…!”
그리고 서둘러 진희성, 스토커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방대한 기사와 자료에 금세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고.
박순희는 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런 미친!”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여진… 내가 얘 팬 카페에 이상한 글 올릴 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박순희는 자신의 메일함을 클릭했고.
HS 엔터에 보냈던 자신의 메일 내용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이것 봐. 내가 이럴 것 같아서 회사에 연락까지 한 건데….”
그녀는 마음고생을 했을 진희성을 생각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곧 눈물을 손으로 훔쳐내고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건 백 퍼, 소속사에서 경고를 무시한 거야. 우리 오빠한테 이런 일 안 일어나게 할 수 있었잖아.”
박순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진희성의 SNS를 클릭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보낼 수 있는 메시지 버튼을 눌렀고.
어깨를 들었다 내리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팬 카페에 운영진 박순희라고 합니다. 오빠에게 긴히 알려드릴 말이 있어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