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20 – 낯선 곳에서 (8)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분장실.
배역의 대부분은 좀비로 변했고.
극 중 나 역시 좀비로 변해 평소보다 촬영 준비 시간이 배가되었다.
“오늘이 마지막 좀비 분장이시네요?”
분장 팀에서 조연 배우들을 담당하는 스태프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게요. 이제 맨얼굴로 다니는 게 더 어색할 것 같아요. 하하.”
“저는 요즘 꿈도 좀비 나오는 꿈을 꾸잖아요.”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고.
옆에 앉은 한동민이 그녀를 향해 답했다.
“그래도 이제 한국 가시면, 저희 좀비 얼굴이 그리울 수도 있어요. 하핫.”
“맞아요. 이렇게 매일같이 좀비만 보다가 한국에 가면, 여기가 생각날 것 같아요. 힘든 것만 빼고요. 하하.”
우리는 분장을 하며 친해진 분장 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라면 얼굴에 피곤이 가득했을 텐데.
‘마지막’이라는 특수함으로 분장실에는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대화를 나누며 분장을 하다 보니, 어느덧 얼굴에는 살색보다 붉은색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었고.
뜯어진 피부, 뚝뚝 흐르는 피로 좀비 분장이 완성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니에요. 마지막 신 촬영도 잘하고 오세요.”
그녀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몇 달 동안 분장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 말에 그녀는 밝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희성 씨도 힘든 분장 받느라 고생하셨어요. 파이팅입니다!”
나와 분장 팀 스태프는 눈인사를 주고받았고.
그렇게 마지막 촬영을 위해 현장으로 향했다.
두 달이 넘는 긴 시간의 해외 촬영.
대망의 마지막 신만을 앞두고 있는 지금.
현장에는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다 함께 찍는 촬영은 이 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겠지.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할 시간도 없이 곧장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강 감독의 메가폰이 켜졌고.
치직-.
돌아가는 수많은 카메라.
밝게 켜진 조명.
그에 맞춰 몰입한 배우들까지, 모두 준비가 끝난 후에야 강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디, 액션!”
강 감독의 목소리가 사막에 울려 퍼지자, 모든 배우는 순식간에 각자의 배역에 몰입했다.
나 또한 곧바로 눈빛이 돌변했다.
“크아아!”
좀비가 떼로 달리기 시작했고.
유일하게 남은 생존자.
즉, 인간으로 살아 있는 주연 배우 한시아와 송유나에게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목뼈가 부러진 듯 뒤로 확 꺾였고.
어깨의 수평은 맞지 않은 지 오래였다.
허리 또한 꼿꼿하게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몸의 뼈라는 뼈는 인간과는 다르게 뒤틀림을 표현했다.
좀비 특유의 표현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한국에서부터 이 영화를 준비하며, 안무 레슨을 받았지.
좀비로 변해가는 과정, 좀비가 달리는 장면을 보다 더 실감 나게 연출하기 위해.
작은 신 하나하나에도 디테일을 표현하기 위해 수없이 연습했다.
내 빨개진 눈과 벌름거리는 코.
사람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며 한시아에게 달려갔고.
그녀는 막다른 길에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현준아… 나야. 나 민영이라고…!”
한시아는 울먹이며 내게 말했고.
그녀의 말에도 대답 대신 고개를 꺾으며 다가갔다.
“걱정했는데… 네가 왜… 네가 대체 왜 여기에 이렇게 있는 건데!”
감정을 느낄 리 없는 나는 윗입술을 들어 치아를 내보였다.
“키아아악!”
괴상한 소리와 함께 점도가 높은 검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그녀에게 다가갔고.
한시아의 얼굴에는 멈추지 않고 눈물이 흘렀다.
“현준아… 사랑해….”
콱-!
나를 향한 그녀의 애절한 사랑 고백에도.
“꺄아!”
결국, 나는 그녀의 목덜미를 물었다.
“크으으윽.”
한시아의 살점이 내 입을 통해 찢겨 나갔고.
그녀의 몸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며 온몸이 뒤틀리고 있었다.
“현…준아….”
한시아의 눈이 파르르 떨려왔고.
나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녀의 살점을 물어뜯었다.
“컷, 오케이!”
강 감독의 사인에 나와 한시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그녀의 거친 숨소리에 나는 넘어졌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괜찮아요?”
한시아는 내 손을 바로 잡으며 일어났고.
“그럼요.”
빙그레 웃으며 몸에 묻은 모래를 털었다.
그때 강 감독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이야, 시아 씨랑 희성 씨, 마지막까지 연기 너무 좋았어요.”
그의 말에 한시아와 나는 활짝 웃으며 허공에서 눈빛이 마주쳤다.
“희성 씨, 흔들리지 않는 눈빛. 대체 얼마나 연습한 거야, 몸에 디테일이 장난 아니던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 그게 보였다니까 다행입니다.”
내 말에 한시아가 감탄을 쏟아내며 말했다
“맞아요. 진짜 좀비인 줄 알고 중간에 너무 무서웠다니까요? 하하.”
“칭찬이죠?”
“당연하죠. 좀비 대역하시는 무술 팀이나 안무 팀 분들과 견주어도 되겠던데요.”
그녀의 말에 강 감독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꺾인 각도까지 정말 완벽했어요. 진짜 고생 많았네, 희성 씨.”
“아닙니다. 감독님이 고생하셨죠.”
그는 내 말에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곧장 메가폰을 쥔 채, 뒤를 돌아 소리쳤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의 말에 현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이 합창하듯 외쳤다.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 길고 길었던 호주에서의 영화 촬영이 막을 내렸다.
***
“해외 촬영에 힘들었을 텐데, 불평불만 없이 나 하나 믿고 잘 따라와 줘서 감사했습니다.”
강 감독은 자리에 서서 술잔을 높이 들고 말을 이어갔다.
“너무 고생 많았고, 내일 출국이니까 오늘은 적당히 마시고. 한국 가서 제대로 회식 한번 합시다!”
“네.”
“자, 다들 고생 많았어요!”
그의 선창에 우리는 술잔을 높게 들어 부딪치며 외쳤다.
“고생하셨습니다!”
크으.
호주에서 다 같이 먹는 첫 회식이자 마지막 회식이었다.
바쁜 촬영으로 모일 기회가 없었고, 더군다나 이렇게 온 스태프와 배우가 함께할 자리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지.
그렇기에 이런 기회에 회포를 풀며 술잔을 기울였다.
두 달간의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빈 술병이 쌓여가기 시작했고.
볼이 발그레해진 송유나는 내 앞에 앉아 홀짝홀짝 술을 들이켰다.
항상 촬영이 끝나고 방에만 있었던 그녀는 그동안 못 마셨던 술을 마시는 것인지 연신 잔을 채웠고.
나는 그녀의 앞에 빈 잔에 물을 가득 채웠다.
“근데 유나 씨, 그 목걸이는 뭐예요?”
한동민이 살짝 풀린 눈으로 송유나의 목걸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송유나는 그의 말에 목걸이의 원석을 손으로 잡았고.
“이거요?”
“네, 항상 끼고 계시길래, 뭔지 궁금해서요.”
송유나는 잠시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목걸이가 그녀의 어머니 유품이라는 것을.
“흠흠, 우리 한잔할까요?”
그녀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울 거라 생각해, 화제를 돌리기 위해 나는 술잔을 들었고.
송유나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내 잔에 술잔을 부딪쳤다.
“크으.”
술을 입에 털어 부은 그녀는 잔을 테이블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어릴 때, 되게 묘한 일이 있었는데요….”
평소라면 배우들과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을 그녀가, 술이 들어가자 대화를 이끌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른 배우들은 송유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일인데요?”
한동민이 눈썹을 들썩이며 그녀에게 물었고.
“아주 어렸을 때인데, 엄마랑 한 건물에 갔던 적이 있어요.”
송유나는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근데 거기서 화재가 크게 났어요.”
어느새 옆 테이블에 있던 한시아와 김승희도 그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어머, 그래서요?”
한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고.
송유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불길이 심하게 번져서 숨을 못 쉴 정도였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서 저를 구해줬어요.”
그녀의 말에 한시아와 김승희는 손뼉을 부딪쳤다.
“아휴, 다행이네. 소방관이었나?”
송유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모르는 아저씨. 처음 보는 남자였는데… 덕분에 목숨을 건졌거든요.”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정말 갑자기 나타난 아저씨였는데, 그 사람 아니었으면… 저도 죽었을지 몰라요.”
“생명의 은인이네.”
김승희가 장난스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남자랑 운명이네. 잘생겼으려나? 하하.”
한시아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송유나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였는데요?”
송유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요. 네이비 색의 정장 바지, 거기에 흰 셔츠랑 줄무늬 넥타이. 그것만 기억나요.”
송유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한 손으로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곳에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을.
송유나는 앞에 놓인 소주를 들이켰고.
그녀의 눈에는 그리움의 눈물이 고였다.
***
길었던 회식이 끝난 뒤.
다음 날 출국을 위해 호텔로 들어와 피곤했던 몸을 뉘었다.
“두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네.”
김 실장은 침대에 누워 말했고.
“진짜 시간 빠르다. 벌써 한국 가는 날이라니….”
그에게 대답을 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점차 몽롱해지는 정신.
그렇게 마지막 날.
내 눈은 스르르 감겼다.
갑자기.
눈앞을 가득 메운 검고 회색빛의 자욱한 연기.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콜록, 콜록.
나는 서둘러 물에 젖은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았고.
“흐읍!”
잠깐만.
여기는… 꿈이다.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자욱한 연기에 따가운 눈을 겨우 뜨고.
더욱 입을 틀어막았다.
가득한 연기에 앞을 볼 수가 없었고.
손으로 벽을 짚으며 앞으로 향했다.
“살려주세요!”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콜록, 콜록. 여기 사람 있어요. 제발….”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그쪽을 향해 조심스레 발길을 옮겼다.
“괜찮으세요?”
나는 그녀가 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 소리쳤고.
내 목소리에 곧장 대답이 들려왔다.
“여기… 아이가 있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멀지 않은 곳에서 간절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서둘러 그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하아, 하아.”
불길과 연기에 숨을 참아내며 목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여기요!”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목소리를 내던 그녀를 찾을 수 있었고.
그녀의 품에는 어린아이가 파르르 떨며 울고 있었다.
“으아앙.”
엄마로 보이는 그녀는 우는 아이를 보며 내게 말했다.
“여기, 아이 좀 받아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그녀는 내게 우는 아이를 밀었고.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어린 여자아이를 품에 안아 들어 올렸다.
아이는 내 품에서 발버둥을 치며 소리쳤다.
“안 가. 엄마아-!”
예쁘장하게 생긴 어린아이.
그녀는 엄마를 보며 목 놓아 울었고.
바닥에 있는 아이의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달랬다.
“유나야, 괜찮아. 아저씨랑 먼저 가 있어. 엄마 금방 갈게. 뚝!”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다리가….”
그녀의 말에 시선을 옮기자, 그 끝에는 커다란 벽이 무너져 그녀의 다리를 덮치고 있었고.
나는 서둘러 그 벽을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무너진 벽은 내 힘에 조금도 꿈쩍이지 않았고.
그녀는 내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우리 아이까지 위험해요. 빨리….”
“그래도….”
“제발요. 아이만이라도 무사히 구해주세요. 부탁이에요.”
아이는 내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벽에 깔린 그녀는 내가 보았던 그 어떤 눈빛보다 간절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라면 그녀의 아이까지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테니까.
“빨리요. 제발….”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흘렀고.
나는 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빨리 나가서 사람 불러올게요!”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유나야, 울지 말고. 엄마가 많이 사랑해….”
나는 품 안에 아이를 꽉 안은 채 바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얼마나 달렸을까.
깜깜한 연기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고.
눈앞에는 밝은 빛이 강하게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깨끗한 유리.
그곳에 비친 나와 내 품속의 아이.
네이비 색의 정장 바지에 연기로 얼룩진 흰 셔츠.
아이는 손으로 체크무늬의 내 넥타이를 꼭 쥐고 있었고.
그 손에는 밝게 빛나는 원석의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