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20 – 낯선 곳에서 (6)
“컷, 오케이!”
강 감독의 사인에 송유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녀를 향한 인사에도 송유나는 아무 말 없이 눈인사를 보낸 뒤, 촬영 현장을 빠져나갔다.
“유나야, 고생했어.”
“어.”
송유나의 매니저 최 실장은 곧장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고.
“오늘도 바로 숙소로 들어갈 거지?”
“그럼.”
“다른 배우들이 모인다고 하길래, 유나 너도 갈 건가 해서 물어봤어.”
다른 배우들은 촬영이 끝난 후에 매일같이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친분을 쌓는 것을 알기에.
최 실장은 오늘도 송유나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이변 없이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주변에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서로 별다른 대화 없이 어느새 송유나의 방 앞에 도착했고.
최 실장은 송유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나야, 들어가서 쉬어.”
그녀는 역시나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이었다.
쾅.
그대로 호텔 방의 문이 닫혔고.
송유나는 다시금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하아….”
문을 닫자마자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한숨이었다.
타지도 아니고, 타국에서 촬영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을 무렵.
여전히 그녀는 혼자였다.
처음부터 그녀를 챙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촬영 초반에는 송유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기 위해 다가오던 많은 배우들.
하지만 그녀는 그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고.
그렇게 며칠… 몇 주가 지나다 보니.
자연스레 그녀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자발적으로 갖는 외로움이었지만.
송유나는 불이 꺼진 방 안에서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대었다.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고.
그녀는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별… 진짜 많다.”
송유나는 뿌연 창문을 열었고.
창가에 몸을 기댄 채 목이 빠져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만 어둠 속에 빛나는 별들.
어느샌가 송유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붉어짐, 그뿐이었다.
송유나는 어깨를 높이 들었다가 추욱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러고는 마른침을 삼키며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오늘따라 엄마가 더… 보고 싶다.”
송유나는 목걸이의 원석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내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는지.
이내 입가에는 씁쓸하고 옅은 미소가 번졌다.
짧은 숨을 내쉬며 창문을 닫기 위해 손을 뻗었고.
그때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하하,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라고요?”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송유나의 고개는 황급히 아래를 향했고.
1층을 내려다보니, 호텔 앞에서 조잘거리고 있는 진희성이 보였다.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닦은 뒤, 눈에 힘을 주고 그들을 살폈다.
진희성과 한시아, 그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송유나는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 진희성과 한시아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요. 아, 희성 씨. 내가 어제도 말하고, 한 달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그랬나요? 하하,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해서 헷갈렸나 봐요.”
“어휴, 잊어버리면 또 알려줄게요. 하핫.”
그들의 쉼 없는 웃음소리.
송유나의 촉촉했던 눈은 어느샌가 바싹 말라 있었고.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기대고 있던 창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쌀쌀해진 밤공기에 겉옷을 챙겨 걸친 뒤.
서둘러 호텔 방 문을 열었다.
***
호텔 앞에는 우리가 하나둘 가져와 만든 테라스가 형성되어 있었다.
“시아 씨, 다른 사람들은요?”
그녀는 내 물음에 고개를 돌려 답했다.
“승희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일찍 잔다고 했어요.”
나는 한시아의 말에 눈썹을 늘어뜨렸다.
“승희 씨가 오늘 바람을 많이 맞아서 그런가 보네.”
“맞아요. 저도 오늘은 그냥 일찍 들어가서 쉬려고요.”
한시아는 피곤한지 입을 손으로 막은 채 하품을 하며 말했다.
“하긴, 우리 요즘 하루도 안 쉬고 달렸죠? 하하.”
내 말에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그래도 한국 가면, 이렇게 놀던 게 제일 생각날 것 같아요.”
한시아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갑자기.
“흠흠.”
등 뒤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 유나 씨?”
긴 카디건을 걸친 채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그녀의 모습.
호주에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됐지만.
송유나는 촬영 후 바깥으로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서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와 한시아의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지.
눈썹을 들썩이며 제자리에 서 있는 송유나.
한시아가 옆에 빈 의자를 빼내어 송유나를 향해 말했다.
“유나 씨, 서 있지 말고 여기 앉아요.”
한시아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송유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송유나와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고.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 촬영 많았던데, 고생했어요.”
그러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짧은 답을 보냈다.
“뭐… 네.”
되돌아오지 않는 반응에 나는 다시금 휴대 전화를 바라보았고.
송유나는 의자에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면 한시아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연신 하품을 해댔다.
그렇게 각기 다른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낸 지 몇 분이 흘렀을까.
한시아의 눈에는 한가득 피로가 쌓여 있었고.
결국 그녀는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저 너무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한시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푹 쉬고, 내일 봬요.”
그녀는 곧장 호텔 안으로 들어갔고, 송유나와 나 둘만이 테라스에 남았다.
나는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휴대 전화를 바라보았고.
송유나는 쓰윽 시선을 돌렸다.
“뭐 해요?”
휴대 전화를 돌려 그녀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저 SNS 만들려고 하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좀 어렵네요.”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말하자, 송유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어휴, 진짜….”
SNS의 빈 화면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던 그녀는 내 손에 있는 휴대 전화를 낚아챘다.
“지금껏 계정만 만들고 있던 거예요?”
그러더니 내 휴대 전화로 빠르게 검색을 눌러, 자신의 계정에 들어갔고.
“내 거 팔로우나 눌러요.”
송유나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자신의 SNS 계정의 팔로우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내 SNS 계정의 팔로우 숫자가 하나 늘었고.
송유나는 내 휴대 전화를 다시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그녀의 휴대 전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유나 씨는요?”
내 물음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아무도 팔로우 안 눌러요.”
“그럼 저만 유나 씨 팔로우 누른 거예요?”
내 말에 송유나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 도도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나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때 바람이 작게 일렁였고.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원석이 반짝였다.
그렇게 송유나는 호텔 안으로 쏙 들어갔고.
그녀의 뒷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인 뒤,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제 게시물 하나 올려볼까?”
아무것도 없는 빈 SNS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팬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만든 SNS.
첫 게시물에 뭘 올려야 팬들이 좋아할까?
턱을 어루만지며 눈동자를 굴렸고.
어느새 내 손은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을 누르고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여러 포즈와 표정을 취하며 셀카를 찍었고.
방금 찍은 다섯 장의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것 같은 사진 한 장을 골랐다.
그리고 곧바로 SNS 게시물에 업로드를 했고.
사진을 올린 지 몇 분의 시간이 흐를 무렵.
띵동-.
SNS 알람에 휴대 전화를 바라보았다.
그 알람은 조금 전 내가 올린 사진에 누군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표시였고.
“오, 벌써?”
미소를 지으며 알람을 클릭했다.
가장 먼저 내 사진에 표시를 한 사람이 누군지 기대하며 화면을 열자.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송유나였다.
“아무도 팔로우 안 한다더니만… 송유나 진짜….”
화면에 뜬 그녀의 이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이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
“레디, 액션!”
매서운 눈빛과 사나운 목소리의 감독이 소리쳤다.
최서빈은 그의 사인에 맞춰 극 중 배역에 몰입했고.
돌변한 눈빛과 함께 입을 열었다.
“네가 그때 그놈이야?”
상대 배역은 최서빈의 눈빛에 압도당했고.
그럼에도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그래, 그럼 어쩔 건데. 뭐 죽이기라도 하시게?”
약 올리듯 대사를 하는 상대 배역.
최서빈은 한숨을 내쉬며 손목시계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탁.
그리고 그 시계는 유리 테이블로 떨어졌고.
최서빈은 목과 손목을 빠르게 풀었다.
그의 행동에 상대방의 눈동자가 떨려왔지만,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소리쳤다.
“여기서 죽이면, 너는 무사할 것 같아? 죽여봐, 죽여보라고.”
최서빈의 눈은 이내 뒤집혔고.
살기가 가득한 얼굴로 몸을 숙여 입을 열었다.
“너 같은 새끼 하나 죽는다고 해서 세상은 안 변하겠지.”
“그래, 그걸 아는 놈이….”
최서빈은 상대 배우의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았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내가 알잖아.”
“읍, 읍…. 네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최서빈이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네까짓 놈…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그의 눈빛에 스태프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인 채, 오직 최서빈만을 바라보았고.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
현장에는 싸늘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컷, 오케이!”
한 번에 받아낸 오케이 사인이었다.
하지만 최서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간 이어진 촬영은 별 탈 없이 수월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드는 뭔지 모를 찝찝한 기분은 지워낼 수가 없었다.
다들 웃으며 손뼉을 치는 순간.
최서빈의 입에서는 한숨만이 연이어 쏟아졌다.
‘왜 자꾸 성에 안 차는 거지?’
그는 감독을 향해 소리쳤다.
“감독님, 죄송한데, 저 한 번만 다시 가도 되겠습니까?”
최서빈의 말에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눈썹을 들썩였다.
“이번 거 좋았는데, 왜?”
“제가 마음에 안 들어서요.”
그의 열정에 감독은 옅게 미소를 지었고.
이내 스태프들은 다시 촬영 자세를 취했다.
“좋아, 그럼 다시 한번 가볼게요.”
감독의 말에 최서빈은 눈을 질끈 감고, 다시금 배역에 몰입했다.
“레디, 액션!”
최서빈의 요구로 이어진 촬영.
잠시 뒤 성공적으로 신이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최서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야, 서빈 씨 방금 연기 좋았어요.”
감독의 말에도 최서빈은 고개만을 끄덕일 뿐이었다.
평소 자신의 역량이 100% 발휘되지 않는 듯한 느낌에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촬영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진 최서빈은 벽에 기대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진희성… 그 녀석이랑 있을 때는 분명 미친 듯이 연기가 잘됐는데….’
곧바로 눈을 뜬 최서빈은 휴대 전화를 열어 달력을 클릭했다.
“희성이는 지금 한창 해외에서 촬영하고 있겠네.”
날짜를 확인 후 휴대 전화를 덮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꺼진 화면을 보며 작게 읊조렸다.
“다음 작품… 데려가는 거 한번 생각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