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86)화 (86/303)

86화 #18 – 더 어울리는 사람 (1)

“형, 통화 가능해?”

-희성아,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김 실장은 내 전화에 놀란 목소리로 물었고.

차분하게 그에게 말했다.

“혹시 지금 나한테 온 대본 있어?”

-뭐, 지금 일 이야기하는 거야?

그는 황당하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고.

김 실장의 반응에도 나는 진지했다.

꿈에서 보았던 좀비 떼,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떨던 내 모습까지.

너무나도 생생했기에, 내게 들어온 대본이 있는지 꼭 확인을 해야 했으니까.

“응, 좀 보고 싶어서.”

-희성아, 너 쉬기로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또 바로 일하려고?

“아니, 그냥 대본만 한번 보려고. 온 게 있어?”

김 실장은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그럼, 대본 온 건 많기는 하지. 어떤 거, 하고 싶은 게 있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전부 좀 볼 수 있을까?”

-알겠어. 우선 메일로 정리해서 보내줄 테니까, 확인해보고. 그리고 웬만하면 쉬는 동안은 일 생각 좀 하지 말고, 푹 쉬다가 와.

“그럴게.”

-그럴게는 무슨. 너 또 하루 내내 대본 보려고 하잖아. 아무튼, 이번에는 대본만 보고 좀 쉬어!

“하하, 알겠어. 형.”

김 실장은 정말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실장에게 수많은 첨부 파일과 함께 메일이 도착했다.

김 실장에게 온 대본을 확인하느라,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그럼에도 좀비가 나온 드라마나 영화는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아니, 비슷한 장면이 나오거나 캐릭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를 초조함에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다음 대본을 클릭했다.

…대체 그 꿈은 뭐지?

그냥 평범한, 흔히 말하는 개꿈인가?

하지만 그런 꿈을 내가 그냥 꿨을 리가 없었다.

좀비가 나왔던 그 꿈은, 이전에 꿨던 꿈들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생생하고 선명했다.

산속에서 벌벌 떨고 있던 장면, 내 이마에 흘렀던 땀방울.

그리고 내게 떼로 몰려왔던 괴이한 움직임의 좀비들까지.

그들의 살점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었고, 그저 단순하게 지나가는 평범한 꿈이 아닐 터였다.

더군다나 전생을 찾은 뒤로는 단 한 번도 평범한 꿈을 꿔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분명 이 꿈도 뭔가가 있을 것이다.

어지러운 생각들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두 눈을 질끈 감았고.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다.

***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취미로 캠핑을 한 적이 있었다.

다들 돈이 없던 때라 무료 캠핑장, 작은 텐트, 캠핑 장비도 야금야금 빌려 몇 차례를 갔지.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친구들과 하룻밤을 즐기는 여유와 우리만의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더없이 기뻤으니까.

그 당시에 우리가 가장 많이 나누던 이야기가 있었다.

좋은 텐트에서 넓게 자면 어떨까.

캠핑장에서 좋은 고기에,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어떨까.

유료 캠핑장같이 시설도 좋은 곳, 그런 데서 하루를 보내면 조금 더 행복하지는 않을까.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난로까지 따뜻하게 캠핑을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라는 말들이었다.

이 희망 사항의 공통점은 모두 ‘돈’이었다.

돈은 없고, 시간은 많던 그 시절.

이제는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는, 나이대와 시절로 접어들었고.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는 지금,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들 중 하나가 바로 캠핑이었다.

차도 있겠다, 그 시절에 누리고 싶었던 음식과 텐트, 캠핑용품도 살 수 있겠다….

캠핑을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거지.

거기에 이제 렌트를 하지 않아도 항상 주차장에 있는 내 차.

그 안에 캠핑용품과 음식을 가득 실은 채, 예약해둔 캠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함께 떠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친구들이 없었다.

모두 각자의 삶이 있었고, 몇십 명은 아니었지만.

다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함께 1박 이상의 날짜를 맞추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캠핑은 홀로 여유롭게 떠나기로 한 것이지.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캠핑장.

산 중턱에 있는 평평한 캠핑장은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꽤 없는 편이었다.

애초에 캠핑장 자체가 크지도 않았을뿐더러, 사람이 없는 곳으로만 열심히 검색해서 찾은 곳이기에 예상대로 사람들이 없었지.

그래서 더욱 좋았다.

나 홀로 산을 빌린 듯한 느낌이 물씬 들었기 때문이다.

오후 느지막이 도착한 캠핑장.

서둘러 텐트부터 펼치기 시작했다.

텐트를 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산은 금방 해가 지기 마련이니까.

어느덧 텐트가 완성되어 하루 동안 지낼 숙소가 마무리되었고.

내 이마에는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지만, 자꾸만 새어나오는 미소는 감출 수가 없었다.

“이야, 이런 여유가 얼마 만이냐.”

연기를 시작하고 아무 걱정도 없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이렇게 홀로 시간을 보내며 재정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럴수록 더더욱 성공에 대한 갈망은 커져갔다.

연기 욕심 또한 그것과 비례했다.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이런 행복과 함께 부모님과 주변에 베풀 수 있다는 건.

그저 마음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텐트 앞에 모닥불을 피우고, 의자에 몸을 푸욱 기대었다.

타닥타닥-.

금세 불이 붙어 화르륵 타오르며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저녁을 먹기 전,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몸을 녹이며 멍하니 불을 바라보았다.

불멍을 하며 시간이 지체 없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행복했다.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이런 여유로운 시간 또한 내 심신을 위해 필요했던 것 같다.

“…이게 힐링이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호호 불어 한 모금 들이켠 후.

유유자적하며 캠핑을 즐기던 그때.

차가운 공기가 내 볼을 스쳐 지나갔고.

앞에서는 붉은 불꽃이 높게 솟아오르는 이 분위기를 놓치기가 아까웠다.

서둘러 가방 속에 있던 휴대 전화를 꺼내들었고.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우와! 진짜 잘 나왔다.”

휴대 전화에 담긴 사진을 바라보며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고.

순간 머릿속에는 ‘진희성수기’가 떠올랐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내 팬 카페에 들어가 보는 편이었다.

내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는 것도 하루 일과 중 하나였지.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검색하고, 팬 카페를 보는 게 쑥스럽다고도 하지만.

나는 너무나 좋았다.

진희성, 나 자신을 아무런 조건 없이 좋아해주는 팬들.

그들에게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고마웠으니까.

그래서 팬들이 올리는 사진과 글을 모두 확인했다.

고마운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베풀 방법은 열심히 활동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찍은 이 사진을 팬들에게도 보여주며, 소통하고 싶었고.

휴대 전화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이러니까 SNS 하고 싶은데?”

SNS 앱을 설치했지만, 섣불리 회원 가입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은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다 쉬고, 회사 가면 SNS를 만들어도 되냐고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휴대 전화를 닫은 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

-♪♬

빠른 BPM의 음악을 배경음으로 틀어놓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식기류를 한쪽으로 밀었다.

“하아… 귀찮은데, 내일 일어나서 치울까?”

털썩 자리에 엉덩이를 붙인 뒤, 옆에 있던 캔 맥주를 오픈했다.

치이익.

“그래, 내일 치우고 오늘은 힐링만 하자.”

홀로 묻고 답하며 입꼬리를 올린 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넘겼다.

“크으.”

차디찬 알코올이 입 안을 타고 식도를 적셨고.

조용히 들려오는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행복하다.

하루 내내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쉬고 노는 게….

생각에 잠긴 것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 김 실장이 보내준 대본들이 펼쳐졌고.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어제 보았던 대본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다음 작품은 어제 맨 처음에 봤던 대본, 그 장르로 해도 재밌겠는데?

어느새 신나는 음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새로운 작품과 내가 연기를 했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캐릭터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김 실장이 제발 쉬라고 잔소리했던 말이 떠오르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진짜 쉬다가 가자.”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대본 생각을 휘휘 지워냈고.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며 음악에 심취하던 그때.

바스락.

뒤쪽 풀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시고 있던 맥주를 황급히 내려놓았다.

뭐지?

하지만 이내 잠잠해진 소리에 대수롭지 않게 의자에 등을 푸욱 기대었다.

바스락-.

재차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이번에는 등을 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똑똑히 들려왔다.

이 캠핑장… 산속에 있지만, 큰 산짐승이 없다고 해서 온 건데….

사부작사부작, 작은 움직임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고.

들려오는 음악 볼륨을 최대로 낮추기 시작했다.

-♪♬

너무 깊고 어두운 산속이었기에 음악을 모두 끄지는 않았다.

고요한 것 또한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지.

결코, 어제 꾸었던 좀비 꿈 때문은 아니지만 말이다.

잔뜩 경계 태세를 갖춘 뒤,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났다.

작은 동물이라면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도망갈 터.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그 동물을 멀리 쫓아내야 했다.

“흠흠.”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바스락거리는 쪽으로 소리쳤다.

“아아!”

괜스레 목을 풀며 소리치자, 역시나 풀숲이 들썩거렸다.

내 소리에 놀란 모양이다.

살며시 의자 옆에 있던 랜턴을 들고 소리가 나는 풀숲을 비췄다.

팟-!

하지만 랜턴의 센 불빛에도 풀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동물이 도망가지 않은 것 같은데…?

바스락.

그때, 풀숲이 들썩였고.

화들짝 놀라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아, 깜짝이야.”

주변이 너무 어두운 탓에 긴장이 되고 있었지만, 그대로 텐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조심스레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고.

그때.

“…살려주세요.”

작은 목소리가 풀숲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었지만, 사람임을 알게 된 순간 헐레벌떡 그쪽으로 달려갔다.

“도와주세요.”

간절하게 외치는 목소리.

“괜찮으세요?”

높게 올라온 풀들을 손으로 헤치며 소리가 나는 쪽을 뒤졌고.

그리 오래지 않아, 금세 사람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웅크린 채 몸을 벌벌 떨고 있는 한 여성.

“저 좀 도와…주세요.”

그 모습에 흠칫 놀랐지만, 자세히 보기 위해 미간을 찌푸리며 랜턴을 비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인데?

“걸으실 수 있겠어요?”

랜턴으로 길을 비추며 손을 내밀었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일어나는 그녀는….

“송유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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