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17 – 결국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야 (1)
“안녕하세요!”
MC 유명현의 멘트를 시작으로, 모든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미스터리 패밀리의 유명현입니다.”
그가 허리를 접으며 인사하자 옆에 있는 고정 연예인 패널들이 그를 따라 머리를 숙였다.
“이야, 오늘 날씨 완전 좋은데요?”
유명현의 옆에 있는 개그맨, 이철민의 멘트.
“맞습니다. 이렇게 날씨도 좋은 날, 대단한 분들이 미스터리 패밀리를 찾아 주셨습니다!”
유명현의 말에 이철민을 비롯한 연예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누구지?”
“크으, 저는 이미 앞에서 인사를 나눴습니다.”
미스터리 패밀리의 가장 연장자인 지한웅의 말에 곧장 야유가 쏟아졌다.
“아이고, 한웅 씨. 앞에서 본 걸 또 이야기하면 어떻게 합니까.”
“한웅이 형 때문에 김이 팍 새 버렸잖아요.”
지한웅은 머리를 긁적이며 미소를 지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여러분. 제가 워낙 좋아하는 분들이 나와서 흥분을 해버렸네요.”
이미 수년간 호흡을 맞춰온 그들이었기에.
나누는 대화마다 제작진들의 웃음을 터트리기에 충분했다.
나와 백영훈, 그리고 옆에 있는….
“자, 그럼 소개 올립니다. 오늘 미스터리 패밀리의 게스트!”
대기하고 있는 우리를 가리키며 유명현이 소리쳤다.
“이 시대의 최고의 톱 배우, 송유나. 떠오르는 연기 천재, 진희성. 찰떡 연기를 소화하는 백영훈. 세 분 모셨습니다!”
스태프의 사인을 받은 우리는 서둘러 카메라 앞으로 걸어갔다.
송유나.
결국, 마지막으로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배우였다.
HS 엔터 연예인들로만 구성한 예능 게스트.
회사에서 드라마 홍보 목적으로 나와 백영훈을 내보내려 했고.
한 드라마의 배우들이 나오는 것이 아닌, 소속사의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것이다 보니.
아무런 홍보 목적이 없는 톱 급의 배우 송유나까지 출연시켜 달라고 요청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송유나까지, HS 패밀리로 예능에 출연하게 됐다.
“반갑습니다.”
유명현은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눴고.
지한웅과 이철민은 송유나를 보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송유나! 송유나!”
송유나는 그런 그들의 반응에 활짝 웃음을 지었고.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섰다.
“자자, 여러분. 유나 씨만 온 게 아니에요. 희성 씨랑 영훈 씨도 왔잖습니까.”
유명현은 지한웅과 이철민을 자제시키며 웃음을 유발했고.
옆에 있던 개그우먼 이현영과 장민지는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어머, 희성 씨 진짜 잘생기셨어요.”
“드라마 정말 잘 봤습니다. 그래서… 이상형은?”
그들의 인사에 나와 백영훈은 웃음을 터트렸고.
역시나 고정 연예인들을 말로 자제시키는 건 MC 유명현의 몫이었다.
“우리 HS 패밀리 여러분이 미스터리 패밀리를 찾아 주셨는데, 다들 인사 한번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드디어 입을 열게 된 우리.
먼저 송유나가 고개를 숙였고.
모든 시선은 그녀를 향했다.
“안녕하세요, 미스터리 패밀리 시청자 여러분. 배우 송유나입니다. 반갑습니다.”
“와아아아!”
그녀의 인사에 환호성이 터졌고.
스태프 중에도 역시나 그녀의 팬이 있었는지, 굵직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미스터리 패밀리에 처음으로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배우 진희성입니다. 오늘 열심히 미스터리 미션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인사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크으, 희성 씨는 저희 방송 많이 보셨나 봐요?”
“그럼요. 매번 본방 사수는 아쉽게도 못 했지만, 항상 즐겨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당연하죠. 이렇게 바쁘고 유명하신 분이 어떻게 본방을 보셨겠어요.”
“어, 그럼 한웅 씨는 본방 사수 늘 하셨겠네요?”
그들은 서로를 물어뜯으며, 특유의 개그 코드를 선보였다.
“하하, 넘어가시죠.”
그렇게 백영훈까지 인사가 끝난 후.
우리는 오프닝이 끝나기 전, 짧은 홍보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 드라마 촬영으로 바쁘시다던데, 희성 씨는 어떠세요?”
유명현의 준비된 멘트.
미스터리 패밀리는 콘티와 짧은 대본만 있을 뿐.
모든 게임에 대본이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대본이 정해진 건, 오프닝이었지.
그 대본 역시 드라마처럼 모든 말이 적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질문지만 주어진 대본.
나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 저는 KTS의 드라마 ‘요리를 너무 잘해’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오, 요리 드라마라면 제가 즐겨보는 장르인데, 희성 씨는 어떤 역할로 나오시는 건가요?”
“저는 주인공인 임준기 역을 맡았습니다.”
유명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드라마 홍보 시간은 지금뿐이에요. 서둘러서 딱 홍보 한번 해주세요.”
그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요리를 너무 잘해 드라마는 KTS의 월화 드라마입니다. 미스터리 패밀리 방송 다음 날, 10시에 방영되니까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내 말에 유명현은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저희 KTS의 드라마는 항상 재밌는 거 아시죠?”
같은 방송사라는 연결 고리.
“우리 희성 씨가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많은 시청 부탁드릴게요.”
다음은 백영훈에게로 넘어갔고.
동 시간대 KTS 드라마 ‘요리를 너무 잘해’의 경쟁 드라마였기에.
역시나 홍보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예상한 그대로였다.
내가 찍은 KTS 드라마만을 홍보해야 했으니까.
“그럼 유나 씨는 요즘 어떤….”
유명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는 쉬고 있습니다. 우리 HS 엔터 식구인 희성 씨와 영훈 씨를 위해서 함께 나온 거죠. 여러분, 저희 희성 씨, 영훈 씨 드라마 많이 사랑해 주세요.”
방송에서 내게 식구라는 표현을 쓰는 송유나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방송용 언어라는 것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
왜냐, 카메라가 꺼지는 순간 그녀는 나와 백영훈에게는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짝-.
개그우먼 이현영의 손뼉 슬레이트로 오프닝이 마무리되었다.
역시나 송유나는 나와 백영훈이 아닌 자신의 매니저에게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진 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미스터리 미션입니다.”
유명현의 말에 우리는 하나같이 그를 주목했다.
미스터리 패밀리는 미션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정해지고.
승자에게는 선물이.
패자에게는 벌칙이 주어진다.
그렇기에 미션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집중했다.
“이번 게임에서 승리하시면, 승점 1점을. 진 사람에게는 마이너스 1점이 돌아갑니다.”
“네!”
“그럼 첫 번째 게임은… 줄줄이 말해요!”
“으악, 그거 너무 어려운데.”
지한웅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흔들었고.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지난 모니터링을 떠올렸다.
이미 수차례 방송으로 접한 게임이자 즐겨 보았던 미션.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두 글자를 외치면, 뒤에 올 단어를 3초 안에 말씀하시면 됩니다.”
유명현은 나와 송유나, 그리고 백영현을 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예를 들어, ‘모나’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나는 유명현의 말에 손을 번쩍 들었다.
“리자!”
지한웅이 탄성을 내뱉으며 손뼉을 부딪쳤다.
“오오, 맞습니다, 모나리자. 희성 씨가 순발력이 엄청나게 좋네.”
“하하, 감사합니다.”
미소를 짓는 내 얼굴로 카메라가 줌 인이 되었고.
손가락으로 브이를 취하며 카메라에 손을 흔들었다.
일렬로 선 채로 시작된 게임.
몇 번의 게임을 통해 송유나와 지한웅이 탈락했다.
그리고 재차 시작된 게임.
“자, 그럼 시작합니다. 순서는 민지 씨, 그다음이 희성 씨….”
유명현의 사인에 맞춰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했다.
탈락하지 않기 위해 게임에 몰입했고.
점차 떨려오는 심장 소리에 나는 마른침을 삼켜냈다.
유명현은 손을 뻗어 장민지를 바라보며, 단어를 던졌다.
“시작합니다. 수수….”
장민지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고.
“하나, 둘….”
유명현의 카운트가 끝나기 전에 그녀가 소리쳤다.
“께끼!”
“수수께끼, 정답입니다. 민지 씨 하마터면 늦어서 탈락할 뻔했어요.”
그녀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고.
다음 차례인 내게로 모든 시선이 쏟아졌다.
“희성 씨, 허리….”
“…….”
제시어에 나는 당황한 얼굴로 입을 벌린 채 유명현을 바라보았고.
그는 굳은 얼굴로 카운팅을 시작했다.
“하나, 두울, 세….”
게스트인 나를 배려한 그의 느린 카운팅.
심장 박동 수는 점점 더 빨라졌고.
침을 꿀꺽 삼킬 새도 없이 소리쳤다.
“아파!”
삽시간에 웃음은 현장을 덮쳤고.
깔깔대는 소리는 연예인들을 포함해, 앞에 있는 스태프들에게서도 쏟아졌다.
“하하.”
“허리 아파요? 하하하.”
나 역시 곧장 웃음이 터졌고.
현장은 박장대소를 하느라 게임이 이어지지를 못했다.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 감독조차 웃음이 터져 카메라가 흔들렸으니까.
내 옆에 있던 이현영은 나를 감싸기 위해 미소를 삼키며 말했다.
“허리 아파. 항상 누구나 외치는 말 아닙니까?”
“에이, 현영 씨. 아무리 희성 씨를 감싸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허리 아파가 정답이겠어요. 하하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게 말했다.
“희성 씨, 이건 실드가 안 되겠는데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고.
“정답은 허리케인이죠. 희성 씨 예능에 너무 소질 있는데요? 하하.”
모든 카메라가 내 주위에 모여든 연예인들을 찍기 위해 움직였다.
***
하루 내내 프로그램 촬영이 이어졌고.
어느새 밖은 해가 사라져 어둑해지고 있었다.
송유나는 팔짱을 낀 채, 저 멀리에 대기하고 있는 진희성을 바라보았다.
‘진희성 쟤랑은 왜 이렇게 자주 마주치는 거야.’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홱 돌린 후.
시작될 현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촬영이 시작됐고, 송유나는 언제 불만을 토로했냐는 듯 다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오늘 너무 나오고 싶었던, 미스터리 패밀리에 나오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송유나를 향한 박수가 쏟아졌고.
“제가 미스터리 패밀리 예능을 찍을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하고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하고, 다음에도 또 찾아 주신다면 언제든 달려오겠습니다.”
“희성 씨, 그럼 이번 드라마 시청률 잘 나오면 또 오시는 거죠?”
유명현은 진희성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는 밝은 얼굴로 곧장 입을 열었다.
“그럼요. 언제든 불러만 주시면, 찾아오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 시청자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진희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스터리 패밀리 시청자 여러분. 미스터리 패밀리도 항상 사랑해 주시고, 내일 첫 방영될 KTS 드라마 ‘요리를 너무 잘해’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늘 촬영한 예능의 방영 날은 드라마 1화가 나오기 전날로 예정되어 있었고.
진희성의 말에 메인 PD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장민지와 이현영이 소리쳤다.
“기대하고 있어요.”
“무조건 본방 사수할게요.”
그녀들의 인사에 진희성은 입꼬리를 올렸고.
송유나는 지루함을 숨기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백영훈의 인사까지 끝난 뒤, 유명현은 벌칙자를 발표했다.
“오늘의 꼴지는… 지한웅 씨와 송유나 씨입니다.”
유명현의 말이 끝나자 그들의 담당 카메라는 지한웅과 송유나의 얼굴을 클로즈업했고.
송유나는 살짝 일그러진 얼굴을 서둘러 풀어냈다.
“그리고 승자인 이철민 씨와 진희성 씨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철민은 손목을 풀며 지한웅을 향해 외쳤다.
“오케이. 오늘 한웅이 형 벌칙은 제가 하겠습니다!”
이철민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고.
자연스레 송유나의 벌칙은 진희성이 맡게 되었다.
“그럼 오늘의 벌칙은 물 폭탄입니다. 승자인 철민 씨와 희성 씨가 머리 위에 있는 물 풍선을 터트려 주시면 됩니다.”
곧장 벌칙이 세팅되었고.
송유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진희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도 내가 선배이고 여배우인데, 알아서 잘 피해가며 물 뿌리겠지?’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희성은 신이 난 얼굴로 그녀의 뒤에 자리했다.
파앗-!
그때, 지한웅의 머리 위로 쏟아진 물.
그의 세팅된 머리는 한껏 축 처졌고, 초라해진 얼굴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하, 한웅이 형, 죄송합니다.”
이철민이 얄미운 얼굴로 지한웅에게 사과했고.
“다음 주에 두고 보자, 철민이.”
선전 포고를 외치며, 결국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어진 진희성의 차례.
송유나는 진희성을 굳게 믿었는지, 손으로 어떠한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았고.
쏴아아-!
이내 그녀의 머리 위로 터진 물줄기.
머리 위에 정면으로 물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하하!”
현장은 진희성의 익살스러운 표정에 웃음이 터졌고.
송유나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꽉 깨물었다.
‘진희성 저 자식이….’
그런 송유나에게 진희성은 수건을 건넸고.
그녀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굳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유명현이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 유나 씨 화나신 거 아니죠?”
송유나는 서둘러 굳은 얼굴을 미소로 풀어내며 이를 깨문 채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화는요. 예능인걸요. 하핫.”
그녀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려왔고.
‘하아- 진짜 짜증나.’
송유나는 밝게 답하며 속으론 한숨을 삼켜야 했다.
“그럼 저희는 다음 주에도 재밌는 웃음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짝-!
슬레이트가 쳐진 뒤, 진희성은 패널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송유나에게 다가갔고.
“유나 씨,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그의 말에 송유나는 곁눈질로 그를 쏘아보았다.
“하아, 아니요.”
그러며 곧장 현장을 벗어나자,
송유나의 매니저 최 실장은 그녀에게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가장 먼저 출발한 차는,
이변 없이 송유나의 차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