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16 – 파도를 타는 사람과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 (5)
“봤어?”
“그럼요. 지금 인터넷 도배되고, 청원까지 올라오고 난리 났어요.”
스태프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은 내가 온 것도 못 본 채 이야기에 열중이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드라마 ‘붉은 꽃’.
그러니까 박민준이 출연한 드라마 폐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제 어떻게 한대?”
“논란이 너무 커지니까, 제작진 측에서 발표하지 않을까 싶어요.”
“뭐라고 하려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토론을 펼치듯 말을 이어나갔다.
“역사 왜곡은 아니다, 장면에 오해가 있었다, 뭐 이런 식이지 않을까요?”
“드라마 1화 방영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초반 시청률이 바닥 치겠네.”
“에휴, 그러게요.”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스태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인사를 보냈다.
“희성 씨, 오셨어요?”
“네, 이야기 나누고 계시길래….”
“혹시 희성 씨도 기사 보셨어요?”
“예, 오다가 인터넷 봤습니다.”
“진짜 큰일이에요.”
“그러게요. 이미 방영 중인 드라마라 타격이 어마어마할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그들은 심각한 얼굴로 자신들의 일인 듯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기에, 그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저는 연습 좀 하러 가겠습니다.”
“네, 이따가 뵙겠습니다.”
그들을 지나 차로 돌아가는 길.
주변 스태프, 배우, 매니저 그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드라마 ‘붉은 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더불어 연관된 이야기는 주연 배우인 ‘박민준’이었지.
그 드라마가 대한민국에 일어난 엄청난 사건인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사실 당연했다.
여기는 같은 업계 현장이었으니까.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종종 보였다.
그럴 줄 알았다.
시작부터 삐끗대던 드라마였다.
첫 촬영 때 징크스처럼 뭔가 풀리지 않았다더라.
이와 같은 이야기들을 수군대며 마치 무료함을 달래듯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리고 박민준에 대한 질문은 내게도 쏟아졌다.
“희성 씨, 박민준이랑 드라마 찍지 않았나?”
조감독이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물었고.
이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래, 연락해봤어?”
재차 묻는 조감독을 향해 결국 입을 열었다.
“박민준이랑 개인적인 친분은 없어서요.”
내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을 거란 예상과 달리,
그는 마치 안심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다행이네.”
오히려 그의 태도에 놀란 것은 나였으니까.
“네?”
조감독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대답했다.
“아마 박민준, 그 작품 이후로 한참 쉴 수도 있어.”
“아….”
그의 말에 탄식을 내뱉었다.
논란이 터진 작품을 맡았기에, 드라마 종영을 하고 난 뒤에도 여파가 이어질 거라는 의미.
하긴.
연예계는 한번 구설수에 오르기 시작하면, 이후로 시달리는 것은 일도 아니지.
조감독이 진지한 얼굴로 내게 조언을 던지듯 말했다.
“그리고 박민준 SNS나 인터뷰할 때, 혹시 박민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옹호하는 말도 하지 말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조감독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굳이 엮일 필요 없다는 말이야. 휘말려서 좋을 거 하나 없는 게 이 바닥이니까.”
“…예, 조언 감사합니다.”
그는 그대로 촬영장을 향해 걸어갔다.
하루 내내 듣는 박민준에 대한 이야기와 드라마 ‘붉은 꽃’에 관한 기사들.
지금쯤 정신이 하나도 없을 박민준이 떠올랐고.
나락으로 향할 거라는 주변의 말에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통쾌함이었다.
박민준을 생각하면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이내 미소를 지워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그 드라마에 주연을 수락했더라면?
지금쯤 내가 그의 자리에서 좌절한 채 후회하겠지.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지웠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느낌.
쿵쾅대는 심장에 손을 살포시 얹었다.
“진짜… 다행이다.”
***
며칠 내내 인터넷과 SNS에는 드라마 ‘붉은 꽃’과 박민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박민준은 그저 주연을 한 것뿐인데 문제가 있느냐, 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어쨌든 역사 왜곡 드라마를 촬영한 건 박민준의 선택이다.
그러니 출연한 배우들 역시 문제가 있다.
이러한 의견들이 압도적이었고.
그렇게 사람들은 박민준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가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한 건, 드라마 1화가 방영된 뒤.
방영 전부터 주연 배우인 박민준에게 들어왔던 광고들이,
이젠 줄줄이 계약 파기를 외쳤다.
[‘붉은 꽃’ 역사 왜곡 논란에 광고 철회.]
[첫 주연 맡은 박민준에게 기대했던 식음료 업계. 역사 왜곡 드라마에 부랴부랴 손절하나….]
[박민준에게 밀려오던 광고, 어쩌다 광고주들을 잃었나.]
박민준의 이미지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헐, 희성아….”
휴대 전화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김 실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왔다.
“왜?”
“이것 좀 봐.”
그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방금 올라온 기사.
[‘붉은 꽃’ 끝내 방영 중지! 역사 왜곡은 있을 수 없는 일. 국민들이 해냈다….]
[뜨거운 감자 ‘붉은 꽃’의 주연 박민준 曰 “나는 잘못 없다.”]
드라마는 끝없는 국민 청원에 결국, 방영 금지가 떨어졌고.
지난주 방송을 끝으로 방영은 중지가 됐다는 기사.
논란에 드라마 시청률이 바닥을 칠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에 드라마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로 인해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건 당연히 주연 배우인 박민준이었지.
서둘러 드라마에서 발을 빼려는 그의 기사들을 보며 나는 실소를 터트렸다.
몇 주 전, 숍에서 마주쳤을 때.
박민준은 자신이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에 나를 깔보며 말했고.
드라마는 잘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끝이 났고.
그때의 박민준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큰소리를 치더니, 결국 바닥을 치는구나.”
내 말에 김 실장이 눈썹을 들썩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아니야.”
그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의 휴대 전화를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아이고, 박민준 인성 좀 봐. 그 와중에 자기만 살려고 급하게 인터뷰를 엄청나게 하고 다니네.”
“그러게.”
“조용히 있는 게 낫지. 이러면 이미지만 더 나빠질 텐데, 어지간히 조급했나 보다.”
기사에는 박민준이 퀭해진 눈으로 고개를 숙인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왔고.
그 모습과 숍에서 내게 소리쳤던 얼굴이 오버랩되어 보였다.
항상 기고만장하던 박민준의 모습에 통쾌함까지 느껴졌고.
동시에 박민준을 제외한 인물들이 떠올랐다.
“근데 그 드라마 제작진은 너무 안타깝다.”
내 말에 김 실장이 공감을 표하며 눈썹을 늘어뜨렸다.
“그러니까, 거기 감독이랑 작가가 장난 아니었잖아.”
“응, 작감 라인은 최고였는데, 그 라인으로 이렇게 되니까 정말 아쉽다. 아무리 그래도 역사 왜곡을 하면 안 됐지.”
“당연하지.”
“아무튼, 촬영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그건 안타깝다.”
김 실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희성아, 그때 내가 이 드라마 계속하자고 했잖아.”
첫 주연으로 캐스팅이 왔던 드라마였기에, 거절한 것을 가장 안타까워한 건 바로 김 실장이었다.
그리고 재차 나를 회유하려고 했지.
“네가 작품 보는 눈이 확실히 좋은가 봐. 그때 내 생각만 밀고 나갔으면, 우리… 아유, 상상도 하기 싫다.”
김 실장은 미안하다는 듯 입술을 말아 넣었고.
“너무 미안할 뻔했네.”
난 그를 향해 괜찮다는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야. 형은 날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주연으로 캐스팅 온 거니까, 형도 아쉬워서 그랬던 거고. 진짜 괜찮아.”
그제야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입꼬리를 올렸다.
“앞으로 더 신중히 고르자. 쭉쭉 오를 좋은 작품으로만!”
“그러자.”
***
“컷, 오케이!”
메가폰 너머로 들려오는 유 감독의 활기찬 목소리.
흡족하다는 듯 입꼬리를 길게 올렸고.
나는 서둘러 스태프들에게 인사 후 유 감독에게 다가갔다.
“고생하셨습니다.”
“희성 씨, 방금 연기 너무 좋았어.”
그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감독님께서 워낙 잘 찍어 주시니까, 연기가 잘 나왔나 봅니다.”
“아이고, 우리 희성 씨는 이렇게 말도 잘한다니까?”
그런 그의 귀 쪽으로 몸을 기울여 답했다.
“감독님, 진담입니다.”
“하하하.”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희성 씨, 식사해야지?”
눈썹을 들썩이며 묻는 유 감독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예, 가시죠.”
첫 촬영 때에 유 감독과 식사를 했고.
놀라고 긴장했던 그 당시와는 달리, 이후 여러 번의 식사를 통해 점차 익숙해지고 있었다.
감독과의 독대 자리가 말이다.
“얼른 들게.”
“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가득 차려진 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저를 들었다.
“밥차도 맛있기는 한데, 이렇게 희성 씨랑 나와서 먹으면 더 맛있단 말이지?”
“하하, 저도 감독님과 나오면 너무 좋습니다.”
하나둘 밑반찬이 비워지고.
배가 든든해질 때쯤.
유 감독의 젓가락이 허공을 빙빙 돌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시선 안에서 움직이는 그의 젓가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 감독님.”
“응?”
그는 내 부름에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답했다.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갑자기 내 시선을 서둘러 피하는 유 감독.
연신 깜빡이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내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더불어 꺼내기가 힘든 말이라는 것도 말이다.
가벼운 말이었다면 굳이 눈을 피하지는 않았을 터.
“우리 드라마 방영일이 이제 한 달 정도 남았잖아.”
그의 말에 나는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네, 알고 있습니다.”
“요즘에 드라마 시청률들이 워낙 낮으니까, 좀 걱정이 되네.”
그는 쓰읍 소리를 내며 물을 들이켰고.
나는 오히려 의지에 불타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더 열심히 촬영하겠습니다.”
“아휴, 희성 씨는 이미 잘하고 있지.”
“우리랑 동 시간대 드라마도 워낙 쟁쟁하고….”
그는 말끝을 흐렸고.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빙빙 돌리는 거지?
그리고 유 감독은 마른침을 삼켜내며.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예, 말씀하십시오.”
“혹시… 예능 가능한지….”
유 감독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흘리듯 물었고.
작은 목소리에 그에게 되물었다.
“네?”
“요즘 예능은 따로 안 하나 해서 말이야.”
그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예능 출연.
유 감독이 그토록 빙빙 돌리며 내게 말하려던 것.
바로 홍보를 위해 주연 배우인 내가 예능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예전에 한 번 예능 출연을 한 적이 있다.
처음치고는 선방했지만, 예능 캐릭터로 굳어버릴까 싶은 걱정에 이후 출연은 더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 감독의 부탁….
내게 말을 하기까지 굉장히 고민을 하고, 또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표정이 눈에 훤히 보였고.
내가 곧바로 입을 열지 않자, 유 감독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혹시 가능한가 싶어 물어봤는데, 불편하면 안 해도 괜찮아.”
내 생각에 그는 곧바로 부탁을 철회했고.
나 역시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드라마였기에, 뭐든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 드라마로 입봉하는 유 감독과 마찬가지로.
숨을 길게 들이마신 뒤, 유 감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시간은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할게요.”
“응?”
“예능이요. 드라마를 위한 건데, 당연히 해야죠.”
내 말에 유 감독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무리한 거라면….”
“아닙니다. 예능,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