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60)화 (60/303)

60화 #13 –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 (3)

“희성아, 오늘 강찬성이랑 같이 찍는 신 있더라?”

김 실장은 운전대를 붙잡고,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코로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이번에는 최서빈 선배 앞이라 그런지, 기가 팍 죽어서 연기만 하더라고.”

강찬성과의 연기에서 걱정했던 부분이기는 했다.

아무래도 호흡을 맞춰야 하는 배우와 관계가 좋지 않다면, 그게 100분의 1이라도 드러날 터.

물론 그걸 견뎌내고 연기해야 하는 것이지만.

어느 정도의 영향은 있으니까.

그런데 내 걱정과는 달리, 아직 한 번도 강찬성과 트러블이 생기지는 않았다.

자주 부딪치는 신이 없기도 했지만, 촬영장에서도 만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찬성은 자신의 촬영이 끝나면 곧장 차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고.

다른 배우들이나 스태프들과 소통도 하지 않았다.

이전 드라마 촬영에서도 그런 편이었지만, 이번 영화는 조금 더 심한 편.

최서빈을 대하는 게 불편한 건가?

“강찬성한테로 온 간식 차 있으면 이제 절대 안 가려고.”

김 실장은 강찬성과의 지난 일을 곱씹으며 치를 떨었다.

그러고는 차의 워셔액을 찍 뿜으며 입을 열었다.

“유리창이 뿌연 줄 알았더니, 오늘 날씨가 영 이상하네.”

“그런가, 어둡기는 하네.”

그의 말에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이 우중충했다.

“오늘 비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요즘 날씨가 자주 흐리네.”

“그러게. 차라리 한바탕 비나 내리고 맑아졌으면 좋겠다.”

더운 날씨에 흐린 하늘.

커다랗고 시커먼 구름이 빛을 온전히 가려버렸다.

오늘따라 먹구름치고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늘이 저러니까, 괜히 불안하네….”

창밖을 내다보며 혼잣말로 읊조렸지만.

그 말을 들었는지 김 실장이 룸 미러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기분이 안 좋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괜히 그런 날 있잖아. 모든 게 신경 쓰이는 날.”

김 실장이 눈동자를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근데 비는 안 올 거 같은데?”

“다행이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맞다, 오늘 전부 실내 신이라서 비랑은 상관없겠다.”

“음… 그럼 괜찮겠지.”

비가 올까 걱정되는 마음은 사실 없었다.

하지만 날씨 탓인지, 괜스레 불안한 느낌이 가득 차올랐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창문에 있는 가림막을 쳐버렸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래.

굳이 보면서 불안함을 느낄 필요는 없지.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촬영장에서 할 대사를 입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안녕하십니까.”

차에서 내리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가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밝은 인사에 스태프들이 나를 반겼다.

“희성 씨, 왔어요?”

“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일일이 돌린 뒤, 촬영 옷으로 환복하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그때 주차장에 들어오는 차 한 대.

최서빈의 차량이었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니, 아직 촬영 시작까지는 시간이 좀 남은 편이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는 최서빈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어, 희성아. 일찍 왔네?”

그는 환한 미소로 차에서 내렸고.

“저도 방금 왔습니다.”

최서빈은 서둘러 트렁크로 다가가며 답했다.

“나 바로 촬영이라 옷 먼저 좀 갈아입으러 갈게.”

“아, 네.”

오늘의 첫 신 촬영이라 서둘러 도착한 모양이다.

최서빈의 뒤를 따라 내리는 스타일리스트 박민지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내게 목례를 건넸다.

평소 통통 튀는 옷차림의 소유자.

항상 입는 옷 스타일이 바뀌는 그녀였기에, 오늘도 그녀의 스타일에 눈길이 먼저 갔다.

“오늘은 상큼하게 입으셨네요?”

박민지는 내 말에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오늘도 희성 씨가 알아봐주실 줄 알았어요.”

평소 최서빈은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와 대화를 많이 섞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자신의 옷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굉장히 신난 아이처럼 설명을 늘어놓고는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

“오늘 완전 꾸러기 룩이신데요?”

흰색의 나풀거리는 반팔 티셔츠.

그리고 자줏빛 코듀로이 반바지.

거기에 매치한 멜빵 포인트까지.

그녀는 헤실거리며 내게 답했다.

“맞아요. 젊을 때 이것저것 다 입어봐야죠.”

“민지 씨가 그걸 소화해 내니까 입을 수 있는 거죠.”

우리의 대화에 최서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수다 다 떨었으면 내 옷 좀 줄래, 민지야?”

“아… 맞다. 네!”

최서빈이 헐레벌떡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희성아, 이따가 현장에서 보자.”

“네, 선배님.”

***

“컷, 오케이!”

장 감독은 현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바스트 샷 바로 찍을게요.”

“네.”

현장에 서 있던 박민준은 곧장 대답한 뒤, 표정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이내 내리는 비.

쏴아아-.

갑자기 내리는 비는 무서운 줄 모르고 퍼붓기 시작했고.

문을 다 닫고 있어도 그 빗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나는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본 뒤.

다시 고개를 돌려 박민준의 연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와 사이가 좋든, 그렇지 않든.

다른 이들의 연기를 보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상대 배역의 감정선을 읽는 것 또한 중요했으니까.

재차 이어진 같은 신 촬영.

한참이나 이 자리에 서 있던 나는 굳은 몸을 풀기 위해 현장을 벗어났다.

김 실장에게 가기 위해 차 쪽으로 걸어가던 그때.

눈에 띈 어린 스태프.

그는 홀로 끙끙거리며 짐을 현장으로 옮기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머지 스태프들은 현장에 투입되어 있는 상태.

어차피 차로 돌아가 연습을 하려고 했던 터라, 그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던 짐을 하나 들며 입을 열었다.

“이 짐, 저기로 옮기면 되는 거예요?”

내 말에 그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이거 같이하시면 제가 혼나요.”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두리번거리며 현장 스태프들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그를 향해 답했다.

“저 계속 앉아 있으려니 지루해서 그래요. 게다가 밖에 비도 오는데, 얼른 짐 옮기셔야죠.”

그는 문 앞에 내리는 장대비를 바라보며 대답을 망설였다.

복도 끝 쪽에 질퍽하게 고이는 빗물을 바라보고.

짐을 번갈아 쳐다보는 모습.

그런 그의 망설임에 재빨리 짐을 번쩍 들었다.

“아… 정말 괜찮은데.”

“어디로 옮겨요?”

커다란 물건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묻자.

그는 손을 뻗었다.

“저기로요.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자신도 짐을 들고 내 뒤를 따라 움직였다.

몇 차례의 짐을 옮기던 내게 스태프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희성 님, 그런데 저 도와주셔도 되는 거예요?”

“그럼요. 지금 다들 현장 투입되어서 혼자 하시는 거잖아요.”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앳된 얼굴의 그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학생처럼 보였다.

“언제부터 일하신 거예요?”

“저 얼마 전부터 시작했어요.”

그때.

“희성아!”

나를 부르는 김 실장의 목소리.

그는 다급한 듯 손을 하늘 높이 뻗어 손짓했고.

“응, 바로 갈게.”

서둘러 대답한 뒤, 들고 있던 짐을 가져다 놓았다.

“저 여기까지만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네, 어서 가보세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스태프는 나를 향해 허리를 접었다.

김 실장과 다음 촬영 순서를 급히 확인한 뒤.

함께 현장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음 촬영이 박민준이랑 단역 배우들 여러 명이서 찍는 신이야.”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손목을 풀며 답했다.

“어, 복도 쪽에서 달리는 장면이잖아.”

그는 내 운동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착하면 발목도 한번 풀고, 신발 끈도 확인해.”

“알겠어.”

“비가 와서 미끄러울 수도 있으니까, 조심히 뛰고.”

그는 내가 어린아이처럼 걱정이 되는지 연신 내 몸을 살폈다.

“그리고 뛸 때도 여러 명이서 한 번에 달리니까, 부딪치지 않게….”

허공에 손을 뻗어 그를 말리듯 말을 끊어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형, 나 스물여섯이야.”

김 실장은 내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항상 조심하고.”

“알겠어.”

촬영 현장에 도착한 우리.

미리 도착했기에, 현장은 한창 세팅에 여념이 없었고.

김 실장과 나는 대기하기 위해 벽에 몸을 기대었다.

“희성아, 우리 내일 촬영은 신이 좀 많더라.”

“그래?”

“어, 저번에 나랑 대사 맞췄던….”

퍽.

쿠당탕!

김 실장이 나를 바라보며 말을 하던 그때,

“아악!”

눈앞에 검정 물체가 쓰윽 지나갔고.

나는 발을 감싸며 외마디 비명을 외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잠깐의 충격으로 한쪽 발이 살짝 찌릿거렸고.

바닥에는 스태프가 대자로 뻗어 있었다.

김 실장이 빛보다 빠르게 다가와 내 발을 확인했다.

“희성아, 괜찮아?”

“…어.”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넘어진 스태프 옆으로 보이는 카메라 한 대.

안경을 추켜올리며 일어나는 스태프는 아까 본 어린 스태프였다.

“죄송합니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발을 헛딛는 바람에….”

신발에 묻은 물로 인해 미끄러진 모양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연신 허리를 접었고.

발등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으세요?”

“네, 저는 괜찮은데….”

그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 후 떨어트린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헉!”

떨어뜨린 스테디캠의 연결 부위가 망가져버린 모습.

“이거 스테디캠이죠?”

“…예.”

이거 꽤나 난처해졌는데.

스테디캠은 카메라 중 고급 장비에 속한다.

촬영하는 스태프의 몸에 고정해서 촬영하는 카메라인데, 달리는 장면과 같은 액션 신을 찍을 때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장비였으니까.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했고.

“진희성, 네가 길목을 막아서 발에 걸린 거잖아. 다음 신 어떻게 할 거야.”

박민준이 내게로 다가오며 비아냥대듯 입을 열었다.

“뭐라고?”

어쩐지.

요즘 내내 잠잠하더니, 결국은 내게 시비를 걸고야 말았다.

“아까 보니까, 네가 굳이 여기서 대기하면서 발을 내밀고 있더라니.”

그의 계속되는 시비에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말조심해라.”

신입 스태프는 겁에 질린 듯 장비를 주워 담기 시작했고.

박민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 촬영 들어가야 하는데, ‘너, 때문에’ 촬영 밀리게 생긴 거 아니야!”

계속되는 억지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부릅떴다.

“왜 나 때문….”

“뭐야, 여기 왜 이래?”

그때 강찬성이 다가와 내 말을 잘라냈다.

강찬성은 자연스레 박민준의 옆으로 다가갔고.

박민준 역시 강찬성의 팔을 자신 쪽으로 끌며 자석처럼 찰싹 붙었다.

“선배님, 다음 신에 필요한 스테디캠이 진희성 때문에….”

박민준은 어린아이가 고자질하듯 입을 나불댔고.

“하아, 스테디캠이 망가진 거면, 그 신 밀리는 거 아니야?”

강찬성이 내 눈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희성 씨, 왜 현장을 망치고 그러지?”

그의 말에 나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둘이 언제부터 저렇게 쿵짝이 잘 맞았던가.

강찬성과 박민준은 서로에게 딱 붙어서 나를 내몰듯이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김 실장은 이미 스태프들에게 달려가 이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고.

나는 홀로 남아 그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장 달려온 스태프와 조감독.

박민준이 스태프를 향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감독님, 어떻게 해요. 희성 씨가 발을 뻗고 있어서….”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보태기라도 하듯 강찬성이 말했다.

“당장 다음 촬영 때 스테디캠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카메라 감독은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뛰는 신이라, 이 신을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은데요.”

그 말을 들은 조감독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이 장소, 오늘만 대여해둔 거야. 밀리면 다시 대여해야 하는데… 하아.”

박민준이 내 눈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러고는 이내 올라간 입술을 내렸다.

“희성아, 조금만 조심하지 그랬어.”

그의 말에 강찬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그래. 오늘 다른 배우들이랑 다 찍는 건데, 희성 씨가 조금만 조심하지. 어떻게 하냐.”

그들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메라 감독이 한숨을 푹 내쉬며 신입 스태프에게 소리쳤다.

“너는, 내가 그거 하나 조심해 달라고 부탁한 건데. 하아… 됐다.”

신입 스태프는 카메라 감독 옆에서 울먹이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여기서 구태여 잘잘못을 따져 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도 아니었으니까.

빨리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조감독의 말대로 다시 촬영장 대여에, 많은 배우들의 신을 미룰 수는 없었을 터.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손가락을 세차게 튕겼다.

“아, 멜빵!”

내 외침에 옆에 있던 카메라 감독이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요?”

“감독님, 옷 스트랩, 그러니까 이 연결 부위를 멜빵으로 묶어서 찍으면 어떨까요?”

그는 내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화가 난 얼굴이 아닌,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내 배 앞에 카메라를 올리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을 이어갔다.

“멜빵이면 완충 작용도 되기에 어느 정도 커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눈동자를 굴렸고.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데?”

이내 기대감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멜빵을 어디서 찾아요?”

“구해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민지.

최서빈의 스타일리스트가 떠올라 확신에 찬 얼굴로 답했다.

“좋아요. 그거로라도 대체해서 얼른 촬영해 봅시다.”

카메라 감독의 오케이 사인에 박민준은 한숨을 내쉬었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를 따라 강찬성 역시 헛기침을 내뱉으며 빠르게 현장에서 사라져갔다.

카메라 감독은 내가 구해온 최서빈 스타일리스트의 멜빵으로 스테디캠 대체 거치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우들은 각자 연습을 하며 대기하고 있었지.

카메라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면 곧장 촬영이 시작될 테니까.

몸을 풀며 시선을 돌리니, 장 감독이 시선에 들어왔다.

장 감독의 옆에는 아까 그 신입 스태프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고.

그들의 심각한 모습에 나는 자연스레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리고 신입 스태프와 눈이 마주쳤고.

갑자기 그는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지?

쭈뼛대며 다가온 신입 스태프가 내 곁으로 슬며시 다가왔다.

“저… 죄송합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아깐 너무 당황해서 제 탓이라는 말도 못 했어요.”

어린 신입 스태프의 사과.

그의 목소리는 잘게 떨려왔다.

조금 전 장 감독과 진지하게 나누던 대화가 이거였을까?

너무나도 떨고 있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에요. 혹시 장 감독님이랑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네, 아까의 상황은 제 잘못이라고 말씀드렸더니, 희성 배우님께 꼭 사과하라고 하셨어요.”

그는 내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답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제야 신입 스태프는 고개를 슬며시 들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웃으며 말하는 내 모습에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그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그는 허리를 연신 접으며 사과가 아닌,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희성 배우님.”

“아이고,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

나는 허리를 접은 그를 일으켰고.

그는 20대 초반의 그저 해맑은 얼굴로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수줍은 얼굴로 나와 눈을 맞추며 답한 뒤.

서둘러 카메라 감독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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