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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59)화 (59/303)

59화 #13 –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 (2)

강찬성이 구원 투수라니.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미간이 찌푸려졌다.

“형, 이거 뭐야?”

“뭔데?”

“강찬성, 얘가 추가 영입됐다는 거. 진짜야?”

그는 아랫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강찬성의 영입이 이해되지 않았던 나는 연신 쓰읍 소리를 내며 말했다.

“왜지, 걔 영화에서는 잘 안 되잖아.”

“그렇지. 이미 연예계 바닥에 소문이 나 있으니까.”

“그걸 장 감독님도 당연히 아실 텐데, 왜지?”

김 실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근데 영화 예산이….”

영화는 촬영 시작 전에 예산이 모두 정해진다.

그리고 그 예산에 맞춰서 장소 섭외, 배우 캐스팅, 촬영 등을 진행하는 것이지.

여느 영화나 그렇듯 예산이 남아도는 촬영장은 없을 것이다.

항상 예산에 맞춰 빡빡하게 진행되는 편.

이미 영화 촬영이 끝날 때까지 예산이 딱 맞게 짜여 있을 터.

나는 급히 대본에서 추가 영입한 강찬성의 분량을 확인했다.

분량은 넘치듯 많았고.

특히나 분량만큼 중요한 것이 그의 대사들이었다.

주연급 조연인 강찬성의 배역은 상당히 복잡한 연기를 요하는 장면이 많았다.

당연히 연기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

더군다나 최서빈과 견주어질 조연이었기에,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지거나 톱 배우급이 필요했을 터.

“그 배역에 유명한 사람이 왔어야 했을 거야.”

대본을 뒤적이는 나에게 김 실장이 말을 더했고.

나는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요한 배역.

하지만 갑자기 중간에 생각지도 못한 예산을 써야 했을 테고.

그 예산에 맞추려면, 최서빈 급의 섭외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강찬성이었구나?”

내 말에 김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강찬성이 드라마용 배우로 낙인찍혔잖아.”

김 실장은 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영화판에서는 몸값이 좀 싸. 그래서 강찬성을 섭외한 거지.”

“그렇지. 그래야 계산이 어느 정도 맞을 테니까.”

나는 캐스팅이 이제야 수긍이 됐고.

그럼에도 강찬성과 또다시 마주쳐야 한다는 게 불쾌했다.

“그래도 하필 그 새끼네.”

“어지간히 급했던 거지. 강찬성을 데려올 정도면 말이야.”

“그래도….”

앞을 바라보고 운전하던 김 실장은 신호가 걸리자마자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희성이 아마 너 때문일 거야.”

그의 말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랑 케미 좋다고 소문났었잖아. 실제로는 아니지만.”

김 실장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아….”

그는 나와 강찬성의 사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실소를 터트렸고.

나 역시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벅벅 문질렀다.

“아이고, 두야.”

김 실장이 손가락을 튕기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강찬성 합류 전에 회식 있대.”

“배우들이랑 미리 친해지라고?”

“응, 그래서 곧 전체 회식 한다더라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도 감독이랑 다른 대선배들 있는데, 너한테 또 뭐라 하겠어?”

김 실장의 말에 그와 눈을 맞춘 뒤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곧장 시선을 돌려 달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긴… 강찬성이 최서빈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긴 하지.

강찬성과 재차 촬영장에서 부딪힐 생각을 하니, 연이어 한숨이 삐져나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정해져버린 것을.

더군다나 내가 그의 출연으로 내 연기에 영향을 미치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래, 신경 쓰지 말자.

나는 내 연기에만 집중하면 돼.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생각을 비워냈다.

그리고 곧장 대본을 펼쳐 오늘 내 대사들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

며칠 뒤, 강찬성의 합류 회식 날이 되었다.

시간에 맞춰 회식 식당에 도착하니, 입구에 늘어선 사람들.

나는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달려가며 허리를 접었다.

“안녕하십니까.”

“어, 희성 씨 왔어?”

나이가 지긋한 조연 배우 백근우가 나를 반겼다.

“네, 선배님. 왜 안 들어가시고 여기 계세요?”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어차피 들어가면 계속 앉아 있어야 하는데, 합류하는 강찬성 씨 오면 들어가려고.”

“아… 네.”

나는 굳이 강찬성을 입구부터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백근우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희성 씨, 저번 주에 찍었던 신 말이야. 거기서….”

그의 계속되는 이야기.

선배의 말을 자르거나, 무시하고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말동무를 하듯 옆에 서 있었다.

그때, 차량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내리는 사람은 강찬성이 아닌, 최서빈이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최서빈은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내 옆에 있는 백근우에게 허리를 접었다.

그리고 내 옆으로 다가와 대화에 합류했다.

“날도 더운데, 안 들어가십니까?”

최서빈의 물음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어, 희성 씨랑 이야기 좀 하느라. 이제 들어가지, 뭐.”

나는 앞에 있는 문을 열었고.

우리는 나란히 들어와 신발을 벗었다.

딸랑.

그때 다시 한번 식당 문이 열렸고.

강찬성이 눈웃음을 장착한 채 들어왔다.

들려오는 문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그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젠장.

굳이 아는 체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바로 마주쳐 버리다니.

더군다나 옆에는 배우 생활을 오래한 백근우와 최서빈이 있었고.

강찬성 역시 연예계에서는 자리를 잡은 선배 아닌가.

그에게 인사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불편함을 겨우 누르며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강찬성과 눈이 마주친 채 말했다.

그런데.

내 인사에도 강찬성은 마치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듯 철저히 무시했다.

순간 내 얼굴은 일그러졌고.

강찬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 앞에 있는 백근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강찬성이라고 합니다.”

“어, 그래. 만나서 반가워요.”

백근우는 강찬성과 악수를 한 뒤, 예약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강찬성은 곧바로 뒤를 돌아 최서빈을 바라보았다.

“선배님, 안녕하….”

“찬성 씨.”

최서빈은 강찬성의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잘라냈다.

강찬성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고.

그 표정을 재빨리 풀어내며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네?”

최서빈이 고갯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방금 희성이가 인사했는데.”

강찬성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고.

“혹시 못 봤나 해서 말하는 거야.”

최서빈이 옅은 미소를 날리며 말을 이어갔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에 반해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는 최서빈의 말에 당황했는지, 목젖이 움직이도록 크게 침을 삼켜냈다.

“아….”

옆에 서 있는 나를 흘긋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최서빈에게로 옮겼다.

“제가 못 봤네요.”

입술을 말아 넣은 강찬성은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항상 짓는 저 가식적인 눈웃음.

“희성 씨, 간만이네?”

“…네.”

그는 활짝 미소 짓고 있지만, 주변을 맴도는 싸늘한 공기.

순간 몇 초의 정적이 흘렀고.

강찬성과 나 사이의 대화는 인사, 그뿐이었다.

“찬성 씨 왔어?”

그때 장 감독이 식당으로 들어오며 강찬성을 발견했고.

차갑던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네, 감독님!”

평소 워낙 많은 배우들을 보기도 하고, 눈치가 빠른 장 감독은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강찬성과 나를 빠르게 스캔하며 물었다.

“둘이 친한 거 아니었어?”

장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찬성이 입을 열었다.

“아시잖아요. 작품 한다고 너무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의 말에 장 감독은 나를 바라보았고.

강찬성은 그치지 않고 재차 말을 이어갔다.

“이제 친해지면 되죠. 그렇지, 희성 씨?”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장 감독은 강찬성의 웃음에 맞장구를 치듯 답했다.

“하하, 그렇지. 오늘 회식하면서 친해지면 되는 거지.”

“맞습니다, 감독님.”

강찬성은 장 감독의 옆으로 한 걸음 다가갔고.

“찬성 씨, 어서 들어가자고.”

“넵!”

“서빈 씨랑 희성 씨도 얼른 들어와.”

장 감독이 우리에게 손짓을 하며, 예약 룸의 문을 열었다.

시끌벅적한 식당 안.

쌓여가는 술병만큼이나 데시벨이 점점 높아져갔다.

강찬성은 배우들,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돌리기에 여념이 없었고.

굳이 그와 술잔을 기울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강찬성의 테이블로 시선을 주지도 않았다.

“희성아, 한잔하자.”

최서빈 역시 강찬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는지.

회식 내내 내 옆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네.”

나는 그에게 술을 따라 부었고.

이어 내게 술잔을 채우던 최서빈이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희성아, 강찬성이랑 드라마 촬영 때 무슨 일 있었어?”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뭐, 특별한 건 아니고 사이가… 좋지는 않아요.”

내 말에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고.

이내 심각해진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그게 다야?”

“네, 별일은 없었어요.”

최서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혹시 쟤가 너한테 해코지하는 건 아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는 술잔을 들었고.

나는 그의 잔에 다가가 술잔을 부딪쳤다.

탁.

최서빈은 술을 한 입에 털어 부은 후.

테이블에 술잔을 내려놓으며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그런 거 있으면, 나한테 꼭 말해.”

그는 곧바로 저 멀리에 있는 강찬성에게 시선을 보냈고.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대화는 테이블마다 주제가 너무나 달랐다.

연기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 감독의 테이블.

평가인지, 뒷담화인지 모를 백스테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히 주고받는 테이블.

그리고 박민준의 시선 끝에 담긴 테이블 하나.

그가 술잔을 들이켜며 바라본 자리는 가장 끝에 위치한 최서빈과 진희성 쪽이었다.

뭐가 그렇게도 할 말이 많은지, 그들은 서로 술잔을 주고받고.

진지했다가 웃었다가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박민준이 그 테이블을 주시한 건, 불과 몇 분 전이 아니었다.

거의 회식 시작과 동시에 최서빈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친분을 쌓고 싶었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최서빈은 단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도, 그렇다고 진희성 역시 다른 자리로 가지 않았다.

‘진희성, 저 자식은 왜 최서빈이랑만 붙어 있는 거야.’

최서빈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박민준의 시선은 최서빈이 아닌, 진희성에게만 향했다.

굳이 그들이 함께하고 있는 자리에 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진희성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쓰디쓴 술을 삼키던 그때.

“민준 씨, 여기 앉아도 되죠?”

강찬성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강찬성은 자리에 앉기 전, 박민준의 시선을 따라가 진희성을 흘긋 바라보았다.

“네, 그럼요.”

이미 몇 시간 전, 박민준과 인사를 나눴던 강찬성은 자신의 빈 술잔을 들고 그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강찬성과 박민준 사이에 쌓인 술병.

마주 보고 앉았던 둘은 어느새 나란히 옆으로 앉아 있었고.

가까워진 거리만큼이나, 그들의 대화도 제법 친해진 듯 보였다.

“민준아, 그래서 현장이 힘들지는 않아?”

“항상 뭐 똑같죠. 대기하고 연기하고, 또 대기하고….”

강찬성은 박민준에게 술을 따르며 물었다.

“그렇지. 현장 분위기는 어때. 배우들끼리 다 친해졌나?”

“친분….”

박민준은 찰랑거리는 술잔을 들고, 시선을 진희성에게 고정했다.

여전히 최서빈과 진희성은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모습.

“어디 다… 친해질 수가 있나요?”

박민준의 굳은 얼굴에 강찬성이 그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 시선 끝에는 진희성이 보였고.

강찬성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맞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법이지.”

강찬성은 술을 들이켰고.

입가에 묻은 술을 닦아내며 말했다.

“굳이 친해질 필요가 있나. 마음에 안 들면, 눌러버리면 되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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