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11 –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 (8)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리는 차 안.
“흐흠-♪”
고요한 차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강찬성의 콧노래뿐이었다.
항상 예민한 강찬성이었기에, 그의 허밍은 신 실장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신 실장은 빠르게 눈치를 살피며 룸 미러로 강찬성을 힐끔거렸다.
순간.
마주친 둘의 눈.
신 실장은 순식간에 눈길을 돌렸다.
가끔 룸 미러로 눈이 마주쳤을 때, 강찬성에게 좋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강찬성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형, 피곤해?”
그의 말에 신 실장은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침을 삼켜냈다.
‘무슨 일이지?’
신 실장은 급히 입꼬리를 올리며 룸 미러를 통해 강찬성을 바라보았다.
“아니, 괜찮아.”
“그럼 다행이고.”
신 실장은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으며 시선을 앞차에 고정했다.
그때, 강찬성이 재차 입을 열었다.
“형, 아까 진희성 매니저가 사과할 때 얼굴 봤어?”
김 실장이 강찬성에게 사과를 할 때, 신 실장 역시 옆에 서 있었기에 기억을 못 할 수가 없었다.
신 실장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자세히는 못 봤는데, 이야기는 다 들었어. 왜?”
강찬성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의자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고 말했다.
“그 매니저는 진희성 따까리니까, 진희성 대신 온 거잖아.”
신 실장은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역시 김 실장과 다름없는 매니저란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강찬성은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배려 따윈 없는 단어를 내뱉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끽해야 영업직인데, 그런 사과를 하고 사바사바하는 건 뭐… 일도 아니겠지만.”
강찬성은 그런 김 실장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격양된 목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나한테 허리 굽힐 때 부들부들 떠는 거 보니까, 참 웃기긴 하더라.”
그의 말이 끝났음에도 신 실장에게서 대답이 없자, 강찬성이 운전석을 툭 치며 물었다.
“안 그래, 형?”
신 실장은 입술을 움찔거리며 한숨을 삼켜냈고.
곧장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응… 그렇지.”
강찬성은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게다가 진희성 표정, 진짜 개웃겼어.”
“진희성?”
“어, 지 매니저가 사과하니까 빡쳤을 거 아니야. 근데 아무 말도 못 하면서 표정 썩어 있었잖아.”
강찬성은 배를 부여잡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 강찬성을 곁눈질로 바라본 신 실장은 혀를 차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이틀 본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저런 광기 어린 점은 적응이 되지 않는 듯한 얼굴.
“그러게 꼬우면 나보다 잘나가야지.”
몸을 일으킨 강찬성은 아예 운전석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내 말이 맞지?”
놀란 신 실장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이 바닥은 찬성이 너처럼 잘나가야지.”
강찬성의 입꼬리가 휘어졌다.
“어디 조연 새끼가 주연한테, 아니 나 같은 톱스타한테 대들어. 싸가지 없이.”
다시 의자에 몸을 푹 기댄 강찬성은 팔짱을 끼며 작게 읊조렸다.
“이야기하다 보니까 그때 생각난다….”
강찬성이 입술을 움찔거리자 신 실장이 눈썹을 들썩였다.
“어떤 거?”
“나 처음 영화 찍을 때, 그 새끼 있잖아.”
그의 말에 신 실장은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강찬성에 관한 일을 빨리 기억하지 못하면 한마디를 들을 게 뻔했으니까.
다행히도 금세 기억이 떠올랐는지, 신 실장은 손가락을 튕겼다.
“아, 최서빈?”
강찬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 걔가 내 첫 영화에서 주연 맡았었잖아.”
“그렇지. 최서빈이 그때 영화 주연을 휩쓸 때였으니까.”
신 실장의 말에 강찬성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쓰읍, 소리를 냈다.
그의 표정에 아차 싶었던 신 실장은 재빨리 주제를 넘겼다.
“근데 최서빈은 왜?”
“뭐야, 기억 안 나?”
강찬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신 실장을 쏘아보았고.
신 실장은 그의 눈을 피하기에 바빴다.
강찬성에게 꾸지람을 들을 줄 알았지만, 그는 턱을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 영화 처음 들어간 건데, 그 새끼가 자꾸 드라마용 연기 좀 하지 말라고 쿠사리 먹였잖아.”
“아….”
신 실장은 그제야 기억이 떠올랐는지 탄식을 내뱉었다.
그 당시 힘들던 것은 강찬성뿐이 아니었다.
영화 촬영장에서 항상 NG를 내던 강찬성은 매번 주연인 최서빈에게 잔소리를 듣고는 했다.
그렇게 강찬성이 최서빈에게 받은 스트레스와 분노는 고스란히 신 실장에게로 돌아왔다.
“그 자식이 처음에 드라마, 드라마 얘기만 안 했어도….”
강찬성은 그렇게 첫 번째 영화 촬영 이후 자신이 ‘드라마용 연기’라는 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잠식되었고.
이후 영화를 추가로 세 작품이나 말아먹은 전적이 있다.
그 뒤로는 영화 캐스팅 자체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
순간 그 기억이 재차 떠올랐는지 강찬성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아… 최서빈, 거지 같은 새끼.”
신 실장은 룸 미러로 강찬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최서빈 말이야. 진희성이랑 친분이 좀 있다더라.”
“그래?”
그의 말에 강찬성은 의뭉스럽게 입꼬리를 휘었다.
“차라리 더 잘됐네.”
***
어둑한 밤이 찾아오고.
동시에 ‘연예계 엑스트라’ 4회 방영이 시작됐다.
쉴 새 없이 바쁜 드라마 촬영 덕에 본방 사수는 꿈 같은 일이지만.
오늘은 갑작스레 찾아온 장대비로 인해 집에서 편안하게 방송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항상 드라마를 볼 때면 음식과 함께였지만, 오늘은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당장 내일 새벽부터 촬영이 시작될 테니까.
얼굴의 /붓기(부기)/는 카메라의 적이나 다름없지.
서둘러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TV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난 시간.
드라마는 예고편 없이 끝이 났다.
TV에는 곧장 광고가 이어졌지만, 여전히 내 자세는 드라마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굳어 있었다.
내 눈으로만 모니터링을 해서는 주관적인 결과밖에 도출해내지 못한다.
객관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시청자들의 의견이 제일이지.
서둘러 시청자의 반응을 살폈고.
나에 대한 이야기와 평가를 바라보며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조연치고 나쁘지 않은 분량과 시청자 게시판 점유율.
이대로라면 예상보다 꽤 좋은 반응이었다.
드라마의 시청률은 3.7%로 스타트를 끊어, 어제 방영한 3회는 4.8%로 상승한 그래프를 보였다.
오늘 방송한 4회가 3회보다 재밌다는 댓글들이 이어졌고.
내일 아침이 되면 시청률은 더 올랐을 거라고 기대해도 될 정도였다.
그렇게 댓글들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내 필모가 탄탄하게 쌓여가는 중임이 확실했다.
발전될 미래를 떠올리며 가슴이 벅차왔고.
홀로 그려본 성공한 내 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가장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저 성장 중인 것이지, 아직 이렇다 할 만큼 이뤄낸 것은 없다.
차례차례 계단을 오르는 것일 뿐.
마음이 붕 뜨지 않게 차디찬 냉수로 속을 식혔다.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겨우 이 정도만 오르려고 다짐한 것은 절대 아니니까.
더 성장해야 한다, 더…!
TV 전원을 끈 뒤, 침대가 아닌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덮어두었던 대본을 다시 펼쳐들었다.
대중들에게 ‘조연’치고 눈길이 가는 배우가 아닌.
그저 내 연기를 보고 나밖에 보이지 않게 만들려면, 더욱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오늘도 대본 분석과 연습을 하며 열정 깊은 밤을 보냈다.
***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현장에서의 첫 번째 일과는 인사로 시작됐다.
인사처럼 돈 안 드는 투자는 또 없을 터.
아침부터 쏟아지는 촬영 신들에 서둘러 차로 돌아왔다.
스타일리스트는 오늘 찍을 의상을 정리하고 있었고.
김 실장은 내게 설명을 하기 위해 대본을 들고 서 있었다.
“희성아, 옷 갈아입기 전에 오늘 촬영 순서 알려줄게.”
“응, 오늘 촬영 많지?”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어, 오늘 희성이 네 신이 진짜 많은데, 바로 첫 신이 좀 신경 쓰여서….”
김 실장의 말에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성이랑 찍는 신 말하는 거지?”
“…어.”
매니저인 강찬성과의 대립 신이 오늘도 하나 있었다.
지난 대립 신보다 더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
극 중 형인 매니저 강찬성이 나를 한 대 때리는 장면이지.
물론 실제로 가격을 하지는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추후에 효과음을 넣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신경이 쓰이는 건, 감정이 격한 장면을 찍다 몰입이 과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애초에 그와 나 사이는 극 중 둘의 사이와 별반 다를 게 없으니까.
아니, 어쩌면 극 중보다 더 못한 사이일 수도 있지.
김 실장의 말에 오히려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걱정 마, 형.”
“불편할 것 같아서.”
나는 손을 허공에 가로저었다.
“연습 많이 했어. 게다가 굳이 몰입할 노력을 안 해도 충분한 신이잖아.”
내 너스레에 김 실장이 실소를 터트렸다.
“그래도….”
김 실장의 걱정 어린 얼굴에 나는 대본을 흔들며 답했다.
“나도 강찬성이랑 찍는 신에서는 실수하기 싫어, 절대.”
그는 내 단호한 표정에 입꼬리를 올렸다.
“형, 나 대본 연습 좀 더 할게.”
이에 김 실장은 손목시계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아직 시간 좀 남았다. 연습하다가 옷 갈아입어도 충분해.”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스타일리스트에게로 향했고.
나는 마음을 다잡은 뒤에 대사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스탠바이 할게요!”
스태프의 외침에 나는 들고 있던 대본을 김 실장에게 내밀었다.
“형, 나 갔다 올게.”
그는 내 어깨를 주무르며 답했다.
“응, 다음 신도 이어서 촬영하니까, 나도 바로 앞에서 보고 있을게.”
현장으로 걸어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까지 찍었던 신들 중 가장 감정의 극에 달한 장면.
수없이 연습했지만, 이번 신이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실수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른 배우들이 함께하지 않는, 오로지 강찬성과 나만의 신.
이 촬영에서 실수를 한다면 꼬투리가 잡힐 것이 뻔할 터.
세팅이 완료된 현장으로 걸어가며 나는 빠르게 몰입을 시작했다.
극 중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내며, 그 속으로 빠져들었지.
순간, 내 몰입을 깨트리는 한 사람.
“야, 진희성.”
바로 강찬성의 목소리였다.
그날 이후 강찬성과는 현장에서 마주쳐도 인사를 주고받지 않았다.
그전에도 강찬성은 내 인사에 대꾸를 잘 해주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내가 고개를 숙이는 정도.
그뿐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태도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니,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나를 쏘아보았고.
나 역시 굳은 얼굴로 강찬성을 맞이했다.
“선배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인사 안 하냐?”
주변에는 많은 스태프가 자리하고 있었고.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고개만 까딱거렸다
“참나.”
강찬성은 혀를 차며 현장으로 걸어갔고.
덕분에 내 극 중 몰입은 자연스레 충전이 됐다.
“자, 바로 촬영 시작할게요.”
임 감독의 목소리가 현장에 울려 퍼졌다.
첫 대사는 강찬성의 차례.
우리는 언제 신경전을 펼쳤냐는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첫 대사의 시작은 강찬성이었고.
그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뭐지?
대체 왜 웃는 거야.
“레디, 액션!”
임 감독의 사인으로 카메라의 빨간 불이 들어왔다.
강찬성은 올렸던 입꼬리를 순식간에 내리며 눈빛이 돌변했다.
…불안하다, 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