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20)화 (20/303)

20화 #6 – 조연 (1)

사진 속에 있는 남자.

그는 얇고 동그란 테의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렇긴 하나, 나와 너무나도 닮은 모습이다.

아니, 닮은 정도가 아니라 똑같다.

눈 바로 아래에 있는 눈물점까지도.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얼굴을 재차 확인했다.

이마 라인부터 눈매, 콧대와 콧방울.

어색하게 웃을 때 미묘하게 한쪽만 올라가는 입꼬리까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울을 꺼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하나, 사진으로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은 전부 동일했다.

다시 노트북 앞으로 와 사진을 보자마자 너무나 똑같은 얼굴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손으로 양팔을 쓸어내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살면서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던데….

이게 도플갱어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아니지, 저 사진 속 남자는 지금 살아 있을 수가 없겠구나.

지금이 몇십 년이나 지난 후인데, 말도 안 되지.

만약에 저 사람이 살아 있다면, 그래서 나와 만난다면 거울을 보는 거나 다름없겠네.

스스로의 상상력에 실소를 터트렸다.

사진을 클릭해 확대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옛날 시대 사진이라 그런지 화질이 굉장히 떨어졌다.

미묘한 특징도 보고 싶었지만, 자세한 비교는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저 사진 속의 남자가 나와 닮았다는 것.

아니, 분명 또 다른 나 자신이나 다름없었다.

대체 저 사람은 누굴까….

***

띠리리리리.

세차게 울리는 알람 소리.

1초의 게으름도 없이 벌떡 일어나 곧장 침대를 벗어났다.

그렇게 기다리던 날.

바로 오디션 날이 밝았다.

이날을 기다리며 2주를 쉬지 않고 연습했다.

툭 치면 대사가 쏟아져 나올 정도로.

아직 창밖에는 해가 위로 떠오르기도 전인 새벽녘.

하지만 서둘러야 한다.

숍에 가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세팅하고, 마무리 연습을 하고 나서 오디션장에 가야 하니까.

순식간에 몇 시간이 지난 후.

김 실장이 운전한 차는 한 건물에 도착했다.

“희성아, 차가 많아서 주차하고 올라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

“알겠어, 형.”

차에서 내려 로비에 들어서자, 마치 시장통에 온 것처럼 사람이 가득했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빼곡한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오디션에 온 거라고?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오디션은 애들 소꿉장난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최근에 한 단막극의 주연 오디션과도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지상파 미니시리즈는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이 꽤 많았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조연 중 내 나이 또래라면… 내 역할 하나뿐이다.

즉, 나와 같은 역할을 위해 오디션을 보러온 경쟁자들이라는 소리.

그 인원은 셀 수조차 없었다.

심지어 오늘 오디션에서 주연 오디션은 없다고 한다.

주연은 오디션이 아닌, 소속사와 따로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것.

이 오디션은 조연 공개 오디션이었고, 게다가 소속사가 있는 배우들만 오디션을 볼 자격이 주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보였다.

“희성아!”

넋을 놓고 사람들을 바라보던 내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

김 실장이었다.

“형, 사람 좀 봐.”

“많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진짜 많다.”

김 실장 역시 인원수에 놀랐는지 입을 떡 벌렸다.

“오늘 심사석에는 4명이 있을 거야.”

단순하게 캐스팅 디렉터나 조감독 정도가 면접을 보던 이전 오디션과는 달랐다.

“4명이면….”

“연출을 맡은 메인 감독이랑 작가, 캐스팅 디렉터. 그리고 조감독까지.”

“조감독이면….”

“응, B팀 맡을 서브 감독.”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4명이나 심사를 보는 이유.

그도 그럴 것이, 조연급은 단역급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니시리즈가 16부작이라면, 조연이 최소 10화 이상을 등장한다.

주인공만큼까지는 아니지만 극 중에서 꽤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뜻이지.

작중 설정과 서사가 존재하는 역할이니까.

그래서 연기력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비중이 큰 조연의 연기가 어색할 경우, 보는 시청자의 몰입도가 확 떨어질 터.

그 말인즉, 시청률도 함께 떨어진다는 소리이다.

그러니 조연 선발에 힘을 줄 수밖에 없다.

나는 김 실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형, 근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늘 안으로 다 끝날 수 있을까?”

내 말에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희성아, 이거 오전 조야.”

“뭐라고?”

그의 대답은 내 귀를 의심케 했다.

“우리는 오전 조로 오디션 보는 거고. 오후 조도 따로 있어.”

“…미친. 말도 안 돼.”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는 이런 일을 많이 겪었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우리가 보려는 배역. 그거 하나로만 사흘을 오디션 본다더라.”

“그렇게나 경쟁이 센 거야?”

“응, 지원자가 400명이라고 하더라.”

무려 400의 지원자.

그 숫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 배역을 따내려면 무려 399명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뜻 아닌가.

그 숫자에 자동적으로 턱이 벌어졌고.

혼잣말로 작게 읊조렸다.

“미친 듯이 해야겠네.”

***

“형, 오래 기다렸지.”

김 실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고생했다.”

“고생은 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온 힘을 다해 본 오디션이었기에 차에 올라타자마자 힘이 쭉 풀렸다.

그는 차에 시동을 켜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때, 잘한 것 같아?”

김 실장의 시선은 내가 아닌 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대나 부담을 주지 않으려 덤덤한 척 묻는 것 같았다.

“준비한 대로 괜찮게 한 것 같기는 한데, 영 불안하네.”

솔직히 말해서 연습을 할 때보다 더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듯이 연습을 한 탓도 있겠지만.

꿈에서 보았던 일제 강점기 시대, 그리고 시계공으로 일하던 그 장면들이 떠올랐고.

그 덕에 생생한 몰입감을 느끼며 연기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합격하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쟁쟁한 후보들이 너무 많았고, 오디션을 보는 명수 또한 무시할 수가 없었다.

김 실장은 백미러로 나를 쓰윽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불안해할 필요 없어. 다들 같은 마음일 거야.”

“응, 그래도 후회 없이 하고는 왔어.”

“그럼 된 거야. 긴장했을 텐데, 수고했다.”

그의 말에 떨리던 심장 소리가 안정을 찾았다.

“이랬는데, 되면 진짜 좋은 거니까!”

“맞지. 이거 결과는 한 일주일 정도 걸린대.”

그의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오디션을 봤는데, 생각보다 일찍 나오네?”

“응, 그렇다더라고. 어차피 단막극 끝나고 쉬지도 못하고 바로 준비한 거잖아. 이참에 좀 쉬기도 하자.”

그는 백미러로 나와 눈을 맞췄다.

“어, 그래도 대본 연습은 하면서 쉴게.”

“하하, 그래.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하자.”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전날 혼신을 다해 오디션을 봤지만, 그렇다고 마냥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오디션 결과가 나오려면 아직은 멀었지만.

혹시나 배역을 따낼 수도 있기에, 대본 연습을 멈춰서는 안 된다.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휩싸여 자신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내 마음을 대변하는지.

하늘에서는 구멍이 난 듯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따라 비가 많이 오네.”

김 실장이 블라인드 옆으로 조금 보이는 비를 보며 말했다.

“그러게. 하루 내내 비가 오려나 봐.”

“비 오니까 조금 쌀쌀해진 것 같다. 커피 마시면서 조금 쉬었다가 할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장 테이블을 잡고 의자를 밀어내며 내게 물었다.

“아메리카노로 마실 거지?”

이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재빨리 답했다.

“형, 내가 다녀올게.”

“아니야. 대본 연습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쉬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고, 나는 김 실장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히며 답했다.

“하도 앉아 있는 게 힘들어서 그래. 내가 갔다 올게, 형.”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연습실 바로 앞에 위치한 커피 머신이었기에, 김 실장을 대신해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고맙다. 희성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컵 두 잔.

김 실장과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생각보다 일주일이 길다.”

내 말에 김 실장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결과를 기다리는 게 생각보다 힘들지?”

“응, 이번에는 마음 좀 내려놓고 있으려고.”

그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이번 오디션의 경쟁률이 워낙 치열했으니, 내게 섣불리 용기나 기대를 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긍정적인 말로 나를 띄워 두었다가 오디션에서 떨어진다면, 그게 더 슬플 테니까.

김 실장이 입을 열지 않아도 그 마음을 잘 알기에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떨어질 때는 떨어지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할 터.

나는 의자를 테이블 쪽으로 가까이 당겨 앉았다.

그리고 덮어두었던 대본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형, 우리 대본 연습 다시 시작할까?”

김 실장은 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답했다.

“그러자!”

그때 울리는 김 실장의 휴대 전화.

“희성아, 잠깐만.”

그는 내게 손짓을 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같이 대본 봐야 하니까, 조금만 쉬고 있어.”

“그럴게.”

그가 연습실을 나간 뒤.

적막한 연습실 안에는 내리는 장대비 소리만이 세차게 울려 퍼졌다.

자연스레 창가로 시선이 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블라인드를 걷고는 멍하니 비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일주일간 들었던 걱정도 고민도 사라졌다.

평화롭게 불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볼 뿐.

번쩍-!

그때 하늘에서 빛이 깜빡이더니 굉음과 함께 번개가 내리쳤다.

동시에 머리가 확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악!”

갑자기 찾아온 현기증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머리를 감싸고 눈을 질끈 감자, 순간 떠오르는 장면.

무대가 끝난 후 무희와 눈이 마주치던 바로 그 순간.

그때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와 함께 동반된 두통.

머리의 지끈거림이 심해졌고, 무언가 머릿속 깊은 곳에서 숨겨져 있던 게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통에 머리카락을 쥐어뜯듯이 꽉 움켜쥐었다.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가득했고.

순식간에 말끔히 사라진 두통.

그리고 이내 떠올랐던 장면이 사라지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뭐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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