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님 (3)화 (3/303)

3화 #1 – 카메라 울렁증 (3)

빨간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카메라.

그 옆에는 작은 책상을 놓고 한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바로 오늘 내 오디션을 보고 평가해 줄 사람.

그는 바로 캐스팅 디렉터였다.

캐스팅 디렉터의 양옆을 보아도 빈자리라고는 없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 아닌, 그러니까 오디션을 보는 사람은 바로 캐스팅 디렉터 단 한 명이라는 것.

사실 이런 단역 오디션에는 메인 감독이나 드라마 작가는 잘 오지 않는다.

아니,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메인 감독이나 드라마 작가는 주연이나 조연을 뽑는 오디션에나 참석하지, 나 같은 단역을 뽑는 자리에는 굳이 오지 않는 것이지.

단역은 큰 비중이 없기 때문이다.

뽑고자 하는 단역의 역할과 잘 맞는지, 한 명 한 명 따져보지 않는다는 것.

그저 그 단역의 역할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몰입도를 해칠 정도의 연기는 아닌지, 배역과 어느 정도 맞는지만 확인하여 캐스팅한다.

그러니 중요한 메인 감독이나 작가가 오지 않고 캐스팅 디렉터 한 명만으로도 여러 단역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이지.

“37번 참가자?”

카메라를 보고 얼어 있자, 캐스팅 디렉터는 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의 말에 나는 마취가 풀려난 듯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아… 네!”

그리고 캐스팅 디렉터 옆, 오디션 진행 스태프가 나를 바라보며 아무 감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나는 캐스팅 디렉터를 바라보고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진희성이라고 합니다.”

그는 내 인사에도 아무런 미동도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종이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제출한 서류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는 펜을 쥔 손으로 서류를 훑어보며 질문을 던졌다.

“음… 단역은 몇 번 해봤네요?”

“예. 여러 차례 단역 경험이 있어 익숙합니다.”

당연히 거짓말은 아니다.

단역 경험이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

단지,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할 때마다 엄청 깨졌다는 게 팩트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뭐… 카메라가 있는 촬영장에서도 잘했느냐고 묻지는 않았으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

“그럼, 잘하겠네. 한번 봅시다.”

“네.”

그래, 할 수 있다.

캐스팅 디렉터만 앞에 있다면, 내 연기는 늘 연습한 그대로 완벽했으니까.

항상 해왔던 오디션대로만 하면 된다.

하지만 오늘은 여느 오디션과는 달리 눈앞에 카메라가 있었다.

그것도 빨간 불이 확실하게 들어와 있는 카메라.

카메라가 있는데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으려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길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긴장하지 말자.

잘할 수 있다.

연습 많이 했잖아.

길지도 않아, 겨우 세 줄이야.

“희성 씨?”

생각보다 길었던 내 호흡에 캐스팅 디렉터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를 불렀다.

꿀꺽.

나는 그의 목소리에 놀라 침을 크게 삼켰다.

오디션장에 내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 네.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곧장 역할에 몰입을 시작했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뱉자마자 내 눈빛은 돌변했다.

“공주님을 노리는 적군들이 늘고 있습니다.”

첫 대사를 내뱉자마자 이상하리만치 확 몰입이 됐다.

얼마 전에 꿨던 꿈속에 들어간 것처럼.

아니, 마치 그 꿈속에서 보았던 병사에 빙의가 된 것처럼 말이다.

가슴이 웅장해지고 알 수 없는 용기가 터져 나왔다.

내 대사 다음인 공주의 대사.

오디션에서는 내가 맡을 배역의 대사를 외치면, 캐스팅 디렉터가 상대역의 대사를 읊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입을 열지 않는 캐스팅 디렉터를 바라보았다.

그는 넋을 놓은 듯한 눈빛으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아차! 싶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입을 열었다.

“확실한 것이냐.”

그의 대사에 순식간에 몰입한 나는 재차 대사를 내뱉었다.

“예. 이곳도 언제까지 안전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서 거처를 옮기셔야 합니다.”

“싫다. 내가 이곳에 남아야 하는 이유를 너도 알지 않느냐. 내가 여기에 남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다면, 어찌 되는 것이냐.”

나는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바라보며 다음 대사를 읊었다.

“하오나….”

공주에게 내뱉는 호위무사의 대사.

‘하오나’라는 세 글자였지만, 이 안의 감정이 내 표정과 몸짓에서 모두 절절하게 드러났다.

위험한 상황 한가운데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는 공주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고민하고 있는 호위무사의 모습 그대로.

“나는 이곳에 있을 것이다. 떠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떠나도 좋다.”

캐스팅 디렉터의 낮은 중저음 목소리와 국어책을 읽는 듯한 대사.

그럼에도 몰입을 한 나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긴박하게 느껴졌다.

이내 엄청난 결심을 한 얼굴과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제가… 아니, 저희가 공주님을 지키겠습니다. 필히…! 그럴 것입니다.”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멋을 부리거나 과장된 목소리가 아닌, 전쟁에서 아군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외치는 강단 있는 목소리.

내 연기가 끝나자마자 캐스팅 디렉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희성 씨.”

그의 말에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답했다.

“네.”

“왜 이렇게 오래 단역 생활을 했어요?”

“…예?”

“아니, 연기를 너무 잘하는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연기에 진정 감탄한 모양이었다.

희열이 솟구쳤다.

오디션에서 내 연기를 보고 이렇게 극찬을 해주다니.

단순하게 합격 통보만 해줘도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텐데.

단역에게 연기를 잘한다는 평가를 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격찬이다.

나는 그에게 연신 허리를 접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내가 바로 대사를 했어야 하는데, 희성 씨 첫 대사에 몰입을 해버려서 대사를 늦게 쳤네. 미안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바로 다음 주 월요일이 촬영인데, 올 수 있죠?”

“그럼요. 가능합니다!”

“문자로 시간이랑 장소 보낼 테니까 늦지 않게 와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

수많은 사람을 뚫고 오디션을 본 건물 밖으로 나섰다.

뭐지…?

연기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내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오디션이나 연습을 할 때와는 격이 다른 몰입감.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무언가에 빙의가 된 듯했다.

그렇다고 실제로 빙의가 되어 그 연기를 했던 순간이 기억 안 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온전한 내 몸으로 내가 연기를 했으니까.

잠깐만….

그러고 보니 오디션장에 분명 카메라가 있었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카메라가 분명 빨간 불이 돌고 있었는데도 떨지 않고 연기를 했다.

비록 짧은 세 줄의 대사였지만, 토시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 것 같은데…?

조금 전 연기를 했던 순간이 떠오르며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렇게 카메라 공포증이 사라지고 있는 건가?

가슴속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걸 느꼈고,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 오늘처럼만.

늘 하던 대로, 연습하던 대로만 한다면 앞으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후우우.

오늘 역시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심호흡을 시작했다.

손꼽아 기다려온 월요일.

바로 드라마 ‘황국에서 피어나는 꽃’의 촬영 현장이다.

현장으로 걸어갈수록 보이는 많은 사람과 카메라들.

현장에 놓여 있는 짐들과 카메라에는 PBC 방송국 마크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소품들에는 ‘황국에서 피어나는 꽃’의 줄임말인 ‘황꽃’이라는 글자가 크게 박힌 스티커들이 붙어 있다.

‘황꽃’이라는 글씨가 적힌 소품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가 이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다.

오늘은 부디 떨지 말자.

연습한 만큼만, 오디션을 보았을 때만큼만 하자.

“안녕하십니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보이는 스태프들에게 한 명, 한 명 인사를 시작했다.

활기찬 내 인사에도 여전히 받아주는 스태프는 몇 없었다.

내 인사에 무반응이나 스치며 고갯짓해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 저쪽으로 가서 계세요. 여기까지 오지 말고.”

내가 바닥에 널브러진 소품보다 걸리적거린다는 듯 핀잔을 주는 스태프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정도로 기가 죽을 내가 아니다.

이런 현장이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모든 스태프에게 인사를 마친 뒤, 나는 단역 배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 대기했다.

“저기요.”

처음 보는 낯선 사람.

그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네? 저요?”

“예. 혹시 그거 들으셨어요?”

나에게 재차 말을 거는 단역 배우.

처음 보는 얼굴이었음에도 내게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

“예. 오늘 촬영에 송유나 나온대요.”

“…송유나요?”

내 머뭇거리는 말투에 그가 내게 재차 물었다.

“왜요? 송유나랑 뭐 있어요?”

“어… 아니요. 얼마 전에 영화 촬영장에서 본 적은 있어서요.”

“우와, 신기하다. 저는 완전 처음 보거든요! 어때요, 화면이랑 실물도 같아요?”

그때 송유나가 감독 못지않게 내게 지랄했지.

탑 배우답게 예쁘장한 얼굴과는 달리, 성격은 좀….

그러고 보니, 오늘 내 역할은 공주의 호위무사였다.

나 같은 단역들에게 주연급 되는 배우들이 누군가까지 상세히 알려주지 않기에 궁금하긴 했다만, 그게 송유나일 줄이야….

내게 질문을 던졌던 그에게 답하기도 전에 웅성거리는 소리에 모두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모든 이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내 시야에는 낯익은 밴이 멈춰 섰다.

곧장 문이 열리며 도도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는 여성.

송유나다.

그녀는 저 멀리에 있는 감독에게 걸어갔고, 그걸 확인한 스태프는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 배우 왔으니, 스탠바이 합시다!”

단역 배우 쪽으로 다가온 스태프.

그의 호명을 듣고 나는 바로 촬영장으로 걸어갔다.

도착하자 보이는 수많은 스태프와 카메라들.

카메라가 많은 것도 모자라 까칠한 송유나까지.

스탠바이를 하기 위해 대기하는 와중에 땅에 붙어 있는 내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 흐르는 등줄기의 땀 한 방울.

젠장.

이 죽일 놈의 카메라 울렁증이 다시 도진 건가.

분명 오디션 때는 나아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오디션 때만큼만 한다면 충분할 터.

나는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대사를 뻥긋거리며 대사를 복기했다.

그나마 연습이라도 해야 좀 진정이 될 것 같았으니까.

“어? 뭐야?”

그때 내 뒤에서 들리는 앙칼진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

바로 송유나였다.

나를 향하고 있던 시선은 이내 김찬기 감독에게로 옮겨갔다.

“감독님. 얘 뭐예요?”

그녀의 말에 김 감독은 놀란 얼굴로 서둘러 송유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왜, 유나 씨 무슨 일이야?”

“하.”

그녀는 기가 차다는 듯 숨을 내뱉었다.

“얘 말이에요.”

송유나는 삿대질하듯 손가락을 뻗어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김 감독은 그 손가락 끝이 향한 나를 바라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김 감독은 나를 흘긋 보고는 다시금 송유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문제 있어?”

“이 인간, 연기 진짜 못한단 말이에요.”

송유나는 나를 한껏 째려보며 덧붙였다.

“바꿔주세요. 저 얘랑 같이 못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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