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1055화 (1,05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55화

【P.9X】

『한준서의 취미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도 싸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이어폰을 끼고 너튜브를 보고는 했는데, 다리를 다치고 입원하고 회복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너튜브에서 영화와 드라마로 넘어간 것이었다.

영화 리뷰 채널 [영화객]이 그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OTT 사이트 플러스+는 영화와 드라마의 접근성을 높여주어, 고등학생인 한준서도 편하게 과거의 작품부터 얼마 전에 끝난 작품, 그리고 플러스+의 오리지널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뭐 보지?”

고2 겨울방학을 맞이한(보충수업이 있긴 하지만 학기 중보다 여유 시간이 많아서 좋다.) 한준서는 플러스+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어떤 작품이 재미있을까 고민했다.

누구나 그렇듯 이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리고는 했다.

많은 작품들의 포스터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후기가 좋은 드라마, 별점이 바닥인 영화, 평론가들에게는 혹평을 받았지만 관객들에게는 호평을 받은 영화, 외할아버지와 함께 봤던 드라마, 포스터부터 보기 싫은 영화 등등.

알고리즘이 자신이 좋아할 만한 작품들을 골라준다는데, 어떤 기준인지는 전혀 모르겠다.

손가락을 슥슥 움직여 오늘 볼 작품을 찾고 있던 한준서의 눈에 한 영화가 들어왔다.

“이거 재미있었지.”

[쉐도우맨1]

한준서가 중2, 그러니까 오계리에 가서 다리를 다치기 전 개봉한 마린사의 히어로 영화로, [그린윙]과 함께 개봉한 영화였다.

[쉐도우맨] vs [그린윙] 구도는 중학생들에게도 화제였지만, 가출을 앞두고 한참 심란했던 한준서는 영화관에서 보지는 못했다.

“영화관에서 봤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레드본2]의 땜빵으로 들어왔다가 인기를 얻어 시리즈화될 정도였으니, 작은 화면이 아니라 영화관 스크린으로 봤다면 더 재미있었을 터였다.

한준서가 아쉬운 표정으로 [쉐도우맨1]을 누르자, [쉐도우맨1]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감독: 라이언 윌]

[주연배우: 에반 블록]

당연하게도 에반 블록은 [쉐도우맨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라이언 윌은 [쉐도우맨1]의 감독으로 유명했다.

왜 [쉐도우맨 시리즈]가 아니라 [쉐도우맨1]의 감독이라고 하냐면.

“쉐도우맨2부터 감독이 바뀌었지.”

[쉐도우맨1]을 성공적으로 완성한 감독이 2편을 맡지 않는다는 소식에 마린사와 사이가 나빠졌나 했지만, 라이언 윌 감독은 고개를 저으며 ‘아쉽지만, 내 쉐도우맨은 이것으로 완성입니다.’ 하고 인터뷰했다.

그 이후로도 마린의 자회사와 계속 작품을 만들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사이가 나쁜 건 아닐 터였다.

“쉐도우맨2도 괜찮긴 했는데…….”

리첼 힐이 연기하는 ‘벨 나트라’라는 새 인물도 등장했고 스토리도 재미있었지만, 팬들은 조금 아쉽다고 했다.

다들 라이언 윌 감독이 맡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라이언 감독이 말했던 ‘내 쉐도우맨’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자 절판된 만화 [쉐도우맨]을 찾아낸 누군가가 ‘이 캐릭터를 못 찾아서 그런가 봐.’ 하고 글을 올렸다.

진 나트라.

쉐도우맨과 대립하는 빌런이자, 쉐도우맨이 해결해야 하는 숙명.

[쉐도우맨1]에서 이상 웜홀 안으로 사라졌던 아이가 나트라 행성으로 떨어져 빌런이 된다는 설정에 팬들은 정말 아쉬워했다.

-아쉽다. 이렇게 전개했어도 진짜 재미있었을 텐데 왜 스토리를 수정한 거지?

=아역배우가 연기하기엔 많이 어려울 것 같으니까 그렇겠지.

=하긴. 시리즈 내내 쉐도우맨과 대립하니까 에반 블록만 한 포스가 있어야 할 것 같긴 해.

만약 진 나트라에 어울리는 아역배우를 찾은 라이언 감독이 계속 [쉐도우맨 시리즈]를 제작했다면 어떤 스토리였을지 한준서도 궁금했다.

그렇다고 [쉐도우맨2]가 망한 건 아니었다.

멋지게 흥행하고 올해 1월에 개봉한 [어셈블]에도 레드본, 그린윙 등의 히어로들과 함께했으니까.』

여기서 [쉐도우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반가운 마음에 읽어 내려가던 서준은 라이언 윌 감독이 [쉐도우맨1]만 제작했다는 이야기에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쉐도우맨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진 나트라’를 연기할 만한 아역배우가 없어 아예 시리즈에서 하차한 모습이 정말 라이언 윌 감독다웠다.

“그래도 진 나트라가 없다니…….”

그러면 [쉐도우앤나이트]도 없고 [이레귤러스]도 없고 [나이트 진 시리즈]도 없는 게 아닌가.

“아, 이레귤러스는 있으려나.”

마린이 시즌2를 안 만들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여튼.

이해가 가면서도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감독이 만든 [쉐도우맨 시리즈]는 어떨지,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은 어떤 연기를 보여줬을지, 그리고 라이언 윌 감독이 [쉐도우맨 시리즈] 대신 만든 영화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못 보겠지.’

아쉬움을 접고 서준은 다시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잠시 [쉐도우맨1]을 보고 있던 한준서가 정보창을 끄고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히어로물이 땡기지 않았다.

“아, 이거…….”

한준서는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화면에 뜬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악령]

한준서가 다리를 다쳤을 때, 오계리에서 촬영 중이던 영화였다.

그래서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꽤 재미있었는데.”

다친 후 바로 보기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마을에서 촬영한 영화가 어떤 건지 궁금해서 봤다.

아기 무당 역을 맡은 아역배우의 연기가 조금 어색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이지석의 연기도 좋았다.

“흥행은 못 했지.”

간당간당하지만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했다.

[주연배우: 이지석]

[감독: 최대만]

‘이지석이 주인공이면 망하는데.’ 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직접 본다면 달랐겠지만, 실패를 각오하고 볼 정도로 보고 싶었던 영화는 아니었던 것이다.

“확실한 홍보수단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OTT 사이트에 [악령]이 업로드된 이후 올라온 좋은 후기들을 보면 아쉬운 일이었다.

편견을 이겨내기 위해 오랜만에 주연을 맡았던 이지석도 아쉬워하면서 [악령] 이후로는 조연으로만 나오는 추세였다.

아쉬운 성적에 최대만 감독도 낙담했지만, OTT 사이트 순위가 괜찮은 걸 보면 다시 도전할 기회는 있을 것 같았다. 인터뷰에서 차기작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던 좀비 영화처럼 스케일 큰 건 못하겠지만.』

“악령…… 흥행 못 했구나…….”

서준이 출연한 [악령]은 천만 관객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훌륭하게 흥행했다.

그 이후 이지석은 주연배우로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 드라마 [내의원]의 허의관으로 출연했고, 최대만 감독도 [이스케이프]를 제작할 수 있었다.

서준은 어렸을 적 보았던 이십 대의 이지석을 떠올렸다.

주연으로 출연했던 작품들의 흥행 실패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행동에 스며들어 있던 부담감과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던 배우.

첫 생의 이지석은 현실의 이지석처럼 장난기 많은 얼굴로 웃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서준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니, 괜찮을 거야.’

종호 삼촌도 있고 도훈이 형도 있으니까.

그리고 지석이 형은 연기를 좋아하니까.

몇 번의 실패가 있어도 이겨내고 멋진 배우가 될 게 분명했다.

최대만 감독님도 잘 이겨내서, 현실과 같은 시기가 아니라도 언젠가 [이스케이프]를 만들어낼 터였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서준은 계속 페이지를 읽었다.

이제 어떤 내용이 나올지 조금 많이 신경이 쓰였다.

『한준서는 [악령]도 보지 않기로 했다. 두 번 보긴 했지만, 역시 아직 좀 껄끄러웠다.

“이건 재밌긴 한데, 너무 긴데.”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으로 나타난 건 KBC 드라마 [내의원]이었다.

[피디:최민성/작가: 소은진]

[배우: 강윤호(허의관)/김종호(태종)/ 이지혜(원경왕후)/윤주혁(세종)……]

[내의원]은 올해 4월 방송한 KBC 드라마인데, 방영 전 문제가 조금 있긴 했지만 시청률도 좋고 화제도 되어 올해 KBC 드라마상을 싹쓸이하지 않을까, 한준서는 생각했다.

방영 전 있었던 문제 중 첫 번째는 대본 수정.

아이인 성녕대군이 나오는 장면이 꽤 있었는데, 캐스팅한 아역배우가 잘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전부 연기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해 대본을 조금 수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준서는 원래의 [내의원]이 어땠는지 궁금했다.

“박도훈 배우는 괜찮으려나?”

두 번째 문제는 원래 세종 역을 맡았던 배우 박도훈의 하차였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한때 맡았던 ‘정우’라는 캐릭터를 너무나도 잘 연기해서 오히려 그게 독이 되었던 박도훈.

관계자들은 그 이후 출연한 영화가 폭망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 박도훈이 연기를 하면서도 여유를 갖지 못하고 완벽하게 연기하려고 했다고 인터뷰했다.

또 그 강박감 때문에 [내의원] 촬영 당시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나 결국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 결과 공황장애로, 지금은 치료를 받고 있다고 기사가 떴다.

OTT 사이트로 박도훈의 예전 작품들을 재미있게 봤던 한준서는 얼른 박도훈이 회복해서 다시 연기활동을 시작하길 바랐다.』

“하아…….”

손으로 이마를 짚은 서준은 나오는 한숨을 참지 않았다.

[강윤호(허의관)/윤주혁(세종)]이라는 내용을 볼 때부터 참아왔던 한숨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쪽에선 [이지석(허의관)/박도훈(세종)]인데, 저쪽의 이지석은 주연으로 캐스팅되지 못했고 박도훈은 하차해 버렸다.

‘도훈이 형이 공황장애라니…….’

연예인들에게는 흔한 병이라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볼 병은 아니었다.

서준은 기억을 더듬어 [내의원] 때의 박도훈을 떠올렸다.

완벽하게 연기하려던 박도훈에게 열심히 다가가 칭찬했던 것과 [(선)어린 사자왕의 위엄]을 발동해 박도훈을 의지하게 해 무리로 삼았던 것이 떠올랐다.

‘이쪽에선 내가 멘탈 케어를 해줬는데.’

첫 생의 세계에서는 서준도 이지석도 없이 김종호뿐이라, 멘탈 케어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았다.

상냥한 도훈이 형이 괴로워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어떻게 나 하나 없다고 이렇게 되지?”

첫 생의 사고부터 김수한의 공무원 도전(?), 사라진 진 나트라, [악령]의 흥행실패, 박도훈의 공황장애까지.

서준은 새삼 첫 생의 세계에는 ‘이서준’이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엄마 아빠가 떠올랐다.

‘이서준’이 없다면 엄마 아빠의 자식도 없는 걸까. 아니면, 다른 영혼을 가진 누군가가 태어나 살아가는 걸까.

몬스터 인형을 잔뜩 만들어 주었던 희상이 삼촌과 밥을 잘 먹지 않았던 소꿉친구들도 떠올랐다.

또 조카인 줄도 모르고 연락했던 찬이 삼촌과 아기 서준과 [48시간]을 찍었던 브라운블랙 형들도.

‘다들 어떻게 지냈을까.’

서준이 없으니 몬스터 인형을 만들 필요도 없었을 테고 그러면 이민준과 김희상이 몬스터사라는 회사를 설립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또 소꿉친구들은 몸이 약하게 자랐을지도 모른다. 특히 김지윤이.

그리고 서은찬과 브라운블랙은 데뷔하자마자 묻혔을지도 몰랐다. 거기에 당시의 코코아엔터는 운영이 엉망이었으니 곧 해체했을지도.

여기까지 [첫 생의 책]을 읽고 나니, 생각이 저절로 불길하고 나쁜 쪽으로만 이어져 서준은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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