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1052화 (1,05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52화

『(상략)

[(단독)배우 이서준, 현재 의식불명으로 입원 중.]

결국 뜬 기사에 한준서는 침음성을 흘리며 기사를 클릭했다. 거기에는…….(하략)』

하아…….

서준은 깃털 펜이 써 내려가고 있는 페이지에서 어렵사리 눈을 떼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준서의 시점으로 적혀 있는 상태라서 안다호나 최태우, 부모님과 코코아엔터의 상황을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짧게 나왔던 단어와 문장들만으로도 얼마나 놀랐을지, 얼마나 슬퍼하고 있을지 예상이 되었다.

아니, 자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괴롭겠지.

걱정하고 있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서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게다가 예상하지 못한 게 하나 더 있었다.

“파르비타, 시간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시계는 없었지만 서준이 느끼기에는 생의 도서관에 온 지 아직 6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밖에서는 벌써 48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빨리 현실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생일을 맞이하려 했던 서준의 계획은 시작부터 어긋나 버리고 말았다.

그에 파르비타가 대답했다.

“이번 일로 생의 도서관에 문제가 생겨서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 거야. 그래도 여기서 한 시간이 흘렀다고 1년이 지났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서준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안 그래도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더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코코아엔터의 대처도 신경이 쓰였다.

차라리 서준의 답장을 흉내 내 올렸다면 새싹들이나 대중이 서준이 쓰러진 것을 알아차리는 게 늦었을 텐데.

‘이것도 나침반 때문이겠지.’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이 쓰러진 걸 알게 되는 게, 어떻게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잠시 생각하던 서준은 이내 생각하길 포기했다. 도저히 예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돌아가는 것만 생각하자.’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도움이 되었던 나침반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 서준이 파르비타를 바라보았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거지?”

“그래.”

“미밍!”

파르비타와 미밍이 웃으며 대답했다. 온전한 자신의 편이라는 게 느껴지는 믿음직스러운 미소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설명해 줄게. 이쪽으로 와봐.”

파르비타가 서준을 데리고 집필실 문 쪽으로 향했다.

나갈 생각인가? 했지만 파르비타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문 앞에 멈춰 섰다.

“서준 네가 생각한 대로, 네가 다시 살아나려면 삶의 책을 다시 집필대 위에 올려놔야 해.”

“하지만 저 책을 빼면 안 된다며?”

집필대에서 [한준서의 책]을 뺀다면 서준은 곧바로 죽어버리고 만다.

지금 제작 중인 [한준서의 책]은 서준이 즉사하는 것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맞아.”

파르비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씩 웃었다.

“그래서 우리는 집필대를 하나 더 만들 거야.”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집필대를 하나 더 만든다고? 그게 가능해?”

집필대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니.

맞는 말이긴 하지만,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에 서준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의아해했다.

“그럼 진즉에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서준이 깨어나자마자 집필대를 새로 하나 만들어 [이서준의 책]을 올려놨다면 금방 현실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서준의 물음에 파르비타가 대답했다.

“우리도 그러고 싶긴 했는데, 말했듯이 지금 이곳을 장악하고 있는 건 무한환생이거든. 안 그래도 생의 도서관의 힘이 약한데, 생의 도서관의 힘으로 집필대를 만들었다가는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몰라서 말이야.”

서준이 [한준서의 책]을 읽는 동안 마법서를 보고 있던 리치왕도 덧붙였다.

“저희도 이런 일은 처음이거든요. ‘첫 생’을 만나 문제가 생긴 ‘자신’을 만나는 것도, 집필대를 만드는 것도요. 그저 오랜 연구 끝에 이게 가장 좋은 계획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서준은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생긴 건 처음이었다.

파르비타와 전생들이 자세히 쓰인 안내서처럼 서준을 위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도와주고 있었지만, 그들 또한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그저 가장 확률이 높은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서준을 위해서.

“정말 고마워.”

서준의 말에 파르비타와 미밍, 리치왕과 천마가 미소를 지었다.

“감사 인사는 계획이 성공하면 해줘. 이어서 설명하자면, 집필대를 만드는 건 까다롭고 힘이 많이 들어. 한 존재의 평생을 기록하는 곳이니까. 그래서 생의 도서관의 힘을 쓸 수는 없어.”

파르비타의 말을 이어 리치왕이 말했다.

“그래서 저희는 무한환생의 힘을 써서 집필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무한환생의 힘으로 만든다고?”

서준이 눈을 깜빡이자 파르비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한환생의 힘을 약화시키기에도 좋은 방법인 것 같지 않아?”

“하지만…… 무한환생이 집필대를 만들어줄까?”

서준이 [한준서의 책]이 쓰이고 있는 집필대를 바라보았다. 종이 소용돌이가 팔랑팔랑 돌아다니고 있었다.

“첫 생만 신경 쓰는 것 같은데.”

[한준서의 책]을 만들기 바빠, 서준을 위해 새 집필대를 만들어달라고 해도 들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서준을 신경 썼으면 애초에 이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을 거다.

그에 천마가 서준이 본 이래로 가장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속여야지.”

악의 도서관 출신답게 사악함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니, 선의 도서관 출신 파르비타도 비슷한 얼굴로 낄낄 웃고 있었다.

“……속인다고?”

서준이 의아해할 때,

똑똑-

집필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왔구나!”

서준이 놀란 것과 달리, 파르비타는 활기차게 헤엄쳐 집필실의 문을 열었다.

고동색의 문이 열렸다. 그 앞에 언제 밖으로 나갔는지 모를 기록석과 제루엘이 무언가를 들고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건……!”

그 ‘무언가’를 본 서준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먼지가 잔뜩 끼고 후- 하고 불면 종이 하나하나가 먼지로 변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낡고 오래된 책.

“첫 생의 책이잖아!”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한준서의 책]이 아니라 서준이 아기 때 읽었던, 선의 도서관에 보관해 두었던 [첫 생의 책]이었다.

“사라진 거 아니었어?”

[한준서의 책]이 있어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냐. 선의 도서관에 있었어.”

“그래서 우리가 가져왔지!”

기록석과 제루엘이 웃으며 말했다.

서준이 손을 뻗어 [첫 생의 책]을 집었다. 파르비타가 날아다니며 설명했다.

“우리는 이걸로 무한환생을 속일 계획이야. 첫 생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녀석이니만큼, 이 책도 분명히 중요하게 생각하겠지.”

“그래서 다시 깨끗한 책으로 만들려고 하겠죠.”

낡은 [첫 생의 책]을 바라보던 서준이 뒤를 돌아 [한준서의 책]이 쓰이고 있는 집필대를 바라보았다.

“집필대는 지금 쓰이고 있으니까…… 새로운 집필대를 만들겠구나.”

“맞아!”

전생들이 악당처럼 킬킬 웃었다.

“그리고 그걸 우리가 뺏는 거지!”

서준도 따라 웃었다.

마음에 드는 계획이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그냥 여기 바닥에 책을 놓아두면 돼. 집필실 안 어디든 무한환생의 눈길이 닿으니까 말이야.”

파르비타가 집필대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을 가리켰다.

“무한환생이 책을 인식하면 알아서 집필대를 만들 거야.”

서준은 파르비타의 말대로 조심스럽게 바닥에 [첫 생의 책]을 놓아두었다.

그리고 전생들과 함께 조용히 [무한환생]이 반응하기만을 기다렸다.

“무한환생이 그냥 무시할 확률도 없진 않습니다만…….”

리치왕이 재수 없는 소리를 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무한환생]은 제대로 [첫 생의 책]을 인식했다.

화아악-!

바닥에 놓인 낡은 [첫 생의 책]의 아래로 밝은 빛이 생겨났다.

* * *

그 능력의 이름은 [무한환생]

처음 존재했을 때는 자아라는 게 없었으나, 주인인 ‘첫 생’의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오랜 시간을 떠돌면서 나름 자아라는 것을 가지게 된 존재.

[무한환생]은 지금 혼란에 빠져 있었다.

주인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삶의 책을 만들고 있었는데, 주인의 삶이 담겨 있는 또 다른 책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데 낡았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오래되었다. 페이지도 듬성듬성 빠져 있고 글자들도 지워진 것이 많았다.

[무한환생]은 안절부절못했다.

소중한 주인이, 주인의 삶의 책이 저렇게 낡아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저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한준서의 책]을 만들고 있는데.

하지만 저기 [첫 생의 책]이 있는데.

책을 만들 집필대는 하나밖에 없었고 [무한환생]은 두 개의 책 중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할지 감히 선택하지 못했다.

둘 다 소중한 자신의 주인의 삶이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새로운 집필대를 만들기로.

* * *

[첫 생의 책] 아래에서 밝은 빛과 함께, 나무줄기 같은 것이 생겨났다.

나무줄기는 [첫 생의 책]을 올려두고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정한 높이에서 멈추더니, 이내 나무줄기는 두꺼운 기둥이 되었고 윗부분은 ▲ 모양으로 변했다.

한쪽에 낡은 [첫 생의 책]이 놓여 있었다.

새로운 집필대였다.

“성공한 거야?”

“잠깐만.”

서준의 물음에 파르비타가 새로운 집필대 쪽으로 날아갔다.

그때 [첫 생의 책]이 차르륵 펼쳐지더니 안에 있던 낡은 종이들이 모두 먼지처럼 사라지는 게 보였다.

“!!”

큰일 났나 싶어 서준과 전생들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와 동시에 반대편에 깃털 펜과 새하얀 종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글자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숨을 죽이고 깃털 펜이 써 내려가는 글자들을 보고 있던 파르비타가 외쳤다.

“됐어! 성공했어!”

새하얀 종이에 첫 생, 한준서의 탄생부터 새롭게 적히고 있었다.

그에 서준과 전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공할 확률은 높았지만, 실패할 확률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이제 바로 내 책을 올리면 되는 거야?”

얼른 돌아가고 싶다!

기대를 가득 담아 묻던 서준은 파르비타의 얼굴을 보고는 아, 하고 탄식했다.

나 저 표정 알아.

“기다려야 하는구나?”

한숨처럼 말하는 서준에 파르비타가 킬킬 웃었다. 미밍과 전생들도 따라 웃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잖아.”

“써도 너무 쓴데…….”

세상에서 가장 쓴 기다림이지 않을까.

그래도 새로운 집필대가 눈앞에 있으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긴 했다.

“근데 네 세계에도 그런 말이 있어?”

“비슷한 게 있더라고.”

어떻게 쓰디쓴 인내의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서준은 팔랑- 날아오르기 시작한 [첫 생의 책]의 종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서준’이 없는 세계.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새롭게 쓰이기 시작한 페이지에는 단어나 문장이 빈 곳이 없어, 서준이 읽지 못했던 것들도 많이 적혀 있을 터였다.

“저거 읽어봐도 될까?”

“그래. 기록석이 도와줄 거야.”

파르비타의 말에 기록석이 능력을 발휘했다. 아마 검색 같은 능력이 아닐까 싶었다.

“최대한 관련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볼게.”

‘이서준’이 없는 세계이니, 서준의 지인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페이지들일 것 같았다.

팔랑-

[한준서의 책] 때처럼 깃털 펜이 완성한, 허공을 날고 있던 [첫 생의 책]의 페이지들 그중 하나가 빛났다.

리치왕이 스태프를 흔들어 그 종이를 사냥했고, 미밍이 서준에게 전달해 주었다.

“미밍!”

“고마워.”

서준이 바닥에 앉아 종이를 살펴보았다.

【P.37】

자신의 지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엔 너무 앞 페이지가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한 서준은 이내 종이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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