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50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운전을 못 할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한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뒤부터는 잘 기억나질 않았다.
그래도 눈앞에 최태우가 있는 걸 보니, 제대로 온 것 같았다.
“서준이…… 우리 서준이는요……?”
“이쪽입니다.”
마중 나온 최태우가 서은혜와 이민준을 병실로 안내했다.
시간이 제법 흐른 덕분에 최태우는 침착한 모습이었다. 물론 속은 엉망진창이었지만.
똑똑-
노크를 하자 병실 안에 있던 안다호가 문을 열었다.
“……서준아!”
안다호에게 인사할 틈도 없이, 그 너머로 침대에 누워 있는 서준이 보였다. 서은혜와 이민준은 한달음에 달려가 침대 옆에 섰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삐-삐-삐-삐-
혈압과 맥박, 산소포화도 등이 나타나는 기계나 딱딱해 보이는 침대, 입고 있는 입원복만 아니었다면 서준은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가호흡이 가능한지 산소호흡기도 달지 않았고, 링거나 그 외의 다른 것들도 보이지 않았다.
“……서준아…….”
이민준이 떨리는 손으로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서준의 손을 잡았다. 서준의 손이 이렇게 차가웠던가. 평소의 체온보다 살짝 낮은 정도였지만 이민준에게는 마치 얼음과도 같이 느껴졌다.
서은혜는 눈물을 흘리며 서준의 얼굴을 매만졌다. 만지면 큰일이라도 날까 싶은 듯, 천천히 움직이는 서은혜의 손 또한 덜덜 떨리고 있었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감은 서준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그 평온함이 부부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거의 울 듯이 묻는 서은혜에 안다호가 어두운 얼굴로 설명해 주었다.
“한준서 배우와 인사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갑자기요?”
“네. 혹시 한준서 배우에게 뭔가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어서 검사해 봤지만, 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무언가 실마리라도 있길 바랐지만, 검사 결과 한준서에게는 아무런 바이러스도, 병원균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안다호와 최태우는 기꺼이 검사를 해준 한준서에게 감사를 표했고, 한준서는 서준이 얼른 깨어나길 바란다고 말하며 병원을 떠났다. 이번 일은 비밀로 해주기로 했다.
“서준이, 상태는 어떤가요?”
누워 있는 서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이민준이 물었다. 시선을 돌리면 금방이라도 서준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 물음에 안다호가 대답했다.
병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까지는 빠르게 할 수 있는 검사만 진행했고 더 자세한 검사는 앞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의사가 대략적인 검사 결과를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서준이는 수면 상태라고 합니다.”
서준만을 바라보고 있던 서은혜와 이민준이었지만, 그 말에는 뒤를 돌아 안다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안다호도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저 자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체온이 조금 떨어진 것도 자는 중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삐-삐-삐- 울리는 EKG 모니터로 서준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 이외에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도 자고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였다.
생각지도 못한 서준의 상태에 서은혜가 물었다.
“기, 기면증 같은 건가요?”
장소나 시간에 상관없이 잠들어 버리는 병.
그렇다면 다행일지도 몰랐다. 흔한 병도 아니었고 완치도 불가능했고 일상생활도 조금 힘들겠지만, 그래도 죽을병은 아니지 않나.
서은혜와 이민준이 약간의 희망을 품고 물었지만 안다호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뇨. 기면증이랑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병명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좀 더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서준이를 깨울 수는 없나요?”
“시도는 해봤지만…….”
서준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개를 젓는 안다호에, 안 그래도 슬픔으로 가득하던 서은혜와 이민준의 얼굴이 더욱 흐려졌다.
“서준아…….”
소중한 아들이 어디로 가버릴 것만 같아, 서은혜와 이민준은 서준에게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 괴로운 상황에서도 시간은 흘러갔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서준만 바라보던 부부와 안다호, 최태우에게는 숨도 쉬지 못할 것만 같은 끔찍한 시간이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1분 1초가 설레는 시간이었다.
자정이 되었다.
오늘은 3월 10일.
서준의 생일이었다.
-서준아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오빠! 생일 축하해요!!!
-서준아! 앞으로도 즐겁게 연기하길 기도할게!
12시가 되자마자 SNS와 [새싹부터]에 서준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진심이 가득 담긴 글과 편지들로 게시판이 가득해졌다.
-이서준 배우. 생일 축하합니다!
-ㅊㅎㅊㅎ! 빨리 나이트 진 찍어줘!
-드라마! 드라마 해줘라!
해일처럼 SNS를 뒤덮는 글들에 이제는 익숙해진 사람들도 서준의 생일을 축하했다. 새싹까지는 아니지만 그들도 서준의 작품을 좋아했다.
-날짜까지는 몰라도 이서준 생일 3월 아니었던가? 하게 됨ㅋㅋ
=22 내가 다른 사람 생일을 기억하다니.
=33 내 생일도 까먹는데.
게다가 며칠 전, 아니, 올해 초부터 들썩이던 새싹들이라 서준의 생일을 모를 수가 없기도 했고.
-데뷔 20주년 생일이라던데, 이벤트 뭐 한대?
올해는 더욱더 특별한 날이었다.
-헐. 미친. 여기 불꽃놀이 함.
=? 불꽃놀이가 놀랄 일임?
=이서준 생일 기념이래! (사진)
어두운 하늘에 ‘서준아! 생일 축하해!’라는 글씨가 수놓아진 사진이 보였다. 그 뒤를 이어 하트 모양과 새싹 모양, 바이올린 모양 등 서준과 관련된 도형들이 불꽃으로 만들어져 하늘을 장식했다.
-영어랑 다른 나라 글자도 있음!(사진)
=? 한강에서 하는 거 오늘 오후 아니었음?
=22 보러 가려고 했는데 날짜를 잘못 알았나ㅠㅠ
=+)ㄴㄴ여기 외국임. 한국시간으로 12시 딱 맞춰서 불꽃놀이 시작함.
=유럽>아시아>아메리카>유럽 순서로 불꽃놀이 이어진다고 하더라. (불꽃놀이 장소 목록)
=스케일 미쳤네ㅋㅋㅋ
=일정 잡기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ㅋㅋ
한국시각에 맞춰 해외에서도 서준의 생일을 축하하는 이벤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 때인 곳은 힘들었지만, 아침이거나 저녁인 곳은 모두 즐겁게 새싹들이 개인적으로 준비한 행사들과 [새싹부터](해외지부 포함)에서 준비한 큰 규모의 행사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 지금 처음 간 제과점 사장님이랑 서준이 생일 축하 파티하고 있음ㅋㅋ
=……예?
=+)회사 때문에 이제야 서준이 생일 케이크(나 먹으려고) 사러 왔는데, 12시(한국시각) 되자마자 제과점에서 생일축하 노래 나오는 거야. 움찔하니까 사장님이 새싹이냐고 물어보더니 아예 파티하고 있어ㅋㅋ 다른 손님들도 얼떨결에 같이 함ㅋㅋ
=갑자기분위기축하파티ㅋㅋ
=사장님+손님들이 함께하는 생일축하파티라니ㅋㅋ 재밌겠다ㅋㅋ
=일반손님: (어리둥절) ……생일 축하합니다? (박수 짝)
=앜ㅋㅋㅋ
=ㄱㅆ)쿠키도 선물로 주심! (사진) 맛있어!
[제목: 자. 이제부터 게임을 시작하자.]
(담요+작은 쿠션+겉옷+물+간식+편한 복장 등 사진)
저는 지금부터 새싹부터에서 준비한 영화관으로 갑니다.
히어로관(쉐도우맨 시리즈+쉐앤나+이레귤러스) 음악+영화관(연주 영상+오버 더 레인보우1, 2) 한국영화관, 드라마1, 2관, 연극관, 예능관, 팬미팅관 중에 어디를 갈지 고민했는데,
드라마1관 가서 내의원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왕 귀여운 서준이 왕 크게 봐야죠!
작품 끝까지 볼 수 있으면 이기는 게임!
같이 하실 분!
-1화에 1시간 아님? 24시간 동안 보겠다고?
=죽겠는데요. 글쓴이.
=ㄱㅆ)아니에요. 안 죽어요. 내의원 서준이가 안 나오는 장면은 편집했대요ㅎㅎ
=그럼 가능할지도!
-참여! 난 드라마 2관 감! 봄돌이랑 바벨탑(카메오 장면) 한걸음 봐야지!
=다큐멘터리도 드라마2관에 있지?
=ㅇㅇ[지금 우리는/바다에 있다] [산과 늑대]
-난 팬미팅관. 매번 광탈이라 못 가봤는데 이렇게라도 새싹들이랑 즐기고 싶음!
=222 선물 잔뜩 가지고 가야지!
한국과 전 세계 곳곳의 영화관을 빌린 [새싹부터]는 서준의 생일날로부터 일주일 동안 작품별로 나누어 서준의 작품을 상영하기로 했다.
-전부 보긴 힘들지만! 한 번은 꼭 봐야지!
-늦덕이라 영화관에서 못 본 거 있는데ㅠㅠ너무 좋다ㅠㅠ
새싹들의 반응은 무척 좋았다.
그것 말고도 예전에 했던 현수막 이벤트와 서준의 사진들과 작품을 촬영할 때 사용했던 소품, 옷 등을 전시해 둔 전시회도 열렸다. 촬영장 세트처럼 꾸며놓은 포토존도 있었다.
-서준이 사진ㅠㅠ너무 좋다ㅠ
-이게 쉐도우맨1 찍을 때 입었던 옷이라고?
-여기 있는 거 레플리카지?
=전 세계에서 전시회를 열다 보니 레플리카도 있긴 한데, 최대한 진짜 소품이랑 옷을 전시해 뒀다고 함. 표시도 되어 있을걸.
-영국 전시관에 성녕대군 마마 의상 있다!!
=그게 왜 거기 있엌ㅋㅋㅋ
=완전 랜덤이라더니ㅋㅋ 진짜 랜덤이넼ㅋㅋ
-포토존 사람 많은데, 포토존도 많아서 좋음.
=22 다들 열심히 준비해 줘서 고마워요ㅠㅠ
또 언제나처럼 이 행복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 위한 기부도 진행되었다.
-?기부금 숫자 바뀌는 속도가 이상한데? 오류 난 거 아님??
=ㄴㄴ아니래. 이게 실제 금액이래.
=……무섭네. 새싹.
=이래서 이서준 작품에 광고 넣는가 보다.
-여기 기부처들 기억해 놔야지. 다른 곳보다 여기서 찾아주는 곳들이 안전한 것 같음.
=듣기로는 직원들이 알아서 여기 별로라고 이야기한다고 하더라.
=직원(새싹): 여기 진짜 별로고, 저기가 진짜 좋은 곳이에요!
=내부에 적이 있어ㅋㅋㅋ
그 이외에도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한국과 전 세계에서 진행되었다.
-?언제부터 그레이가 실존함? (그레이 바이니 연주회 홍보 포스터가 붙여진 거리 사진) 날짜 보니까 4월이더라. 진짜 함?
=?? 뭐야? 영화 홍보야??
=앜ㅋㅋ 그거 새싹들 이벤트야ㅋㅋ 그 구역 안에서만큼은 ‘그레이 바이니가 있는 세계’인 거지. 새싹들한테 그레이 바이니 이야기하면 ‘오! 저도 그레이 씨의 연주 정말 좋아해요!’하고 말할걸ㅋㅋ
=그럼 이서준은 없는 거임?
=ㄴㄴ서준이도 있어.
=새싹1: 그러고 보니 서준 리랑 그레이 바이니 엄청 닮았지? 둘 다 연주도 잘하고.
=새싹2: 한 번 듀엣으로 연주하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런 거냐고ㅋㅋㅋ
-와. 여긴 이레귤러스 세계관임ㅋㅋㅋ나이트 진 팬들 돌아다님ㅋㅋ 막 진짜로 히어로 세계 사람들인 것처럼 왜 맨날 빌런들이 나타나냐고 한탄함ㅋㅋ
=새싹1: 내 생각엔…… 준이 나이트 진 같아.
=새싹2: 준은 촬영 때문에 바쁜데 어떻게 히어로 활동을 해.
=새싹1: 봐봐! 사진만 봐도 비슷하잖아!
=진짜 재밌게 노네ㅋㅋㅋ
=나도 가고 싶은데ㅠㅠ한국에는 없어?
=나라별로 있음! 여기! (주소)
=감사!! 당장 간다!
-성녕대군이나 단종은 사극이라서 못하겠네. 아쉽다.
=ㄴㄴ시간대가 섞이긴 했는데,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사절단이 왔다는 설정으로 진행되고 있음.
=새싹1: 와! 이게 조선에서 온 악기야?
=새싹2: 응. 단종이라는 임금님이 오시면서 가지고 오셨대!
=ㅋㅋ세계관 괜찮은 거냐고ㅋㅋ
=NPC도 있는데 한복 입은 새싹들이 ‘우리 마마는 말이죠……!’ 하고 이야기하기도 함. 새싹부터에서 지원해줌. 물론 자원봉사자임.
=진짜 과몰입에 진심인ㅋㅋㅋ
=그 배우에 그 팬들이네ㅋㅋㅋㅋ
앞으로 일주일간은 이렇게 시끌벅적할 터였다.
“좋아. 그럼 출발하자!”
그 시끌벅적함에 송유정과 임예나도 흔쾌히 뛰어들었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세상은 서준으로 가득했다.
작게는 버스 광고부터 크게는 초대형 건물 벽면까지.
데뷔 20주년 기념 생일이라서 그런지 눈이 닿는 곳마다 서준이 있었고 스케일도 크고 화려했다. 사진도 고르고 고른 레전드만 뽑아놓은 것 같았다.
“서준이는 어떻게 찍어도 멋지지만!”
셔터를 누르는 송유정과 임예나의 손이 빨라졌다.
하늘도 서준의 생일을 축하하는지 날씨도 맑았고 기온도 봄의 그것처럼 딱 좋았다.
송유정과 임예나는 먼저 근처 영화관에서 송유정을 입덕시킨 [봄이 돌아왔다]를 한 편 보았다.
그리고 [섬섬생활]에서 서준이 만들었던 메뉴를 점심으로 먹고, 서준이 작곡한 곡들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러 갔다.
그다음에는 [새싹부터]에서 만든 ‘세계(과몰입 구역)’로 향했다.
“성녕대군 마마님이 오늘 처음으로 말을 타셨대요!”
“여기 사진도 있습니다!”
시간대가 뒤섞인 [내의원] 세계관이었다.
사이사이, W쿠키도 사 먹고 건물들에 설치된 서준의 현수막들도 구경하고 거기서 만난 새싹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선물도 교환했다.
그러고서는 저녁을 먹고, 드론쇼와 불꽃놀이까지 본 후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둘이서 같이 남은 3월 10일을 보낼 예정이었다.
“이러다 밤도 새고 그러는 거지, 뭐.”
야식으로 사 온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으며 말하는 임예나에 송유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들어 [새싹부터]에 들어갔다.
“아직 안 올라왔어?”
“응. 이번엔 좀 늦나 봐. 뭐 준비하고 있나?”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서준의 글이었다.
보통 때는 예고도 없이 정해진 날짜도 없이 올라왔지만, 서준의 생일에는 글이든 영상이든 꼭 올라왔다.
그건 서준과 새싹의 무언의 약속으로 [새싹부터]가 생긴 후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았다.
그러니 곧 올라올 것이다.
감사와 기쁨이 가득 담긴 내 배우님의 글이.
송유정과 임예나는 즐겁게 그때를 기다렸다.
전 세계의 새싹들도 들뜬 마음으로 오늘 있었던 이벤트들과 내일 할 이벤트들에 대해 다른 새싹들과 이야기하며 기다렸다.
시간이 흘렀다.
시침과 분침, 초침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10일이 지나 11일이 될 때까지도.
-……어?
서준만이 쓸 수 있는 게시판에는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