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49화
안다호와 최태우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서준을 붙잡고 있는 한준서에게로 달려갔다.
“서준아!”
가까이 다가온 안다호가 다시 한 번 더 불렀음에도 쓰러진 서준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서준아……?”
최태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서준을 부르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순간 겁이 나 손을 대지 못했다. 힘없이 축 늘어진 서준은,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서준을 만진다면 따뜻한 체온 대신 싸늘한 기운이 느껴질 것 같…….
퍽!
최태우가 주먹으로 자신의 얼굴을 쳤다. 엉망진창으로 뻗어 나가는 생각을 막기 위해서였다.
‘죽었다니!’
그럴 리가 없다. 그저, 그저…….
패닉 상태인 최태우의 생각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불안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서준이, 바닥에 눕혀주세요.”
그사이 안다호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아, 네!”
그 말에 반쯤 정신을 차린 한준서가 붙잡고 있던 서준을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사무실 바닥에 눕혀진 서준은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
어딘가 아픈 표정도 아니었고 숨도 제대로 쉬고 있었다. 혈색도 나쁘지 않았다.
하나, 둘…….
안다호는 손목시계를 보며 서준의 호흡과 맥박을 확인했다. 몸이 조금 차가운 것 같긴 하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안다호의 침착한 모습에 물들 듯 한준서도 조금 침착해졌다.
냉철하게 대처하는 매니저의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서준의 맥박을 확인하는 안다호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겉은 차분해 보여도 속까지 그런 것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서준아…….’
안다호는 걱정과 초조함에 금방이라도 아득해질 것 같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이를 악물며 서준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
그 손길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고 머뭇거림도 없었다.
오래전부터 받아왔던 응급처치 교육 덕분이었지만, 이걸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다.
“태우 씨.”
서준의 상태를 확인한 안다호가 최태우를 불렀다.
“네.”
꽉 조여든 심장과 달리 겉은 차분했던 안다호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최태우가 얼른 대답했다. 배우가 쓰러졌는데 매니저가 당황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서준이를 병원으로 옮겨야겠습니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는 이쪽에서 옮기는 게 더 빨랐다.
쓰러질 때 한준서가 붙잡아준 덕분에 외부 충격을 받지는 않았으니, 이대로 옮겨도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터였다.
마치 생명줄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려는 듯 서준의 손목을 놓지 않으며 안다호가 말을 이었다.
“한준서 배우도 같이 가주셔서 쓰러질 때의 상황에 대해서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준은 한준서와 악수를 하고 난 후 쓰러졌다.
한준서에게 있는 어떠한 것(바이러스라든가)이 서준에게 작용한 걸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안다호가 표정을 흐렸다.
악수했다고 이렇게 곧바로 쓰러지게 만드는 위험한 바이러스가 알려지지 않았을 리가 없고 안다호와 최태우는 멀쩡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서준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네. 알겠습니다.”
한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은 안 되겠지만 돕고 싶었다.
“태우 씨. 서준이 좀 업어주세요.”
“네.”
안다호와 한준서가 최태우의 등으로 서준을 옮겼다.
그때, 최태우의 어깨에 올라갔다가 힘없이 털썩, 떨어지는 서준의 팔에 안다호가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내장이 타는 것처럼 아파왔다.
그걸 보지 못한 최태우도 마른침을 삼키기 바빴다.
힘이 빠진 서준의 몸은 무거웠지만 어쩐지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등으로 느껴지는 맥박이, 숨소리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아서 정말로 무서웠다.
“가죠.”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안다호는 옷걸이에 걸려 있던 자신의 옷으로 서준의 얼굴을 가려주었다.
이번 일이 알려지지 않아야, 서준이 일어났을 때 서준이 평소처럼 웃으며 활동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행히도 미팅 장소가 안다호의 이사실이었던 만큼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10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잡는 직원들도 없어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길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어, 문해야.”
한준서는 매니저 권문해에게 전화해 먼저 돌아가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서준이 쓰러진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적은 게 좋으니까 말이다.
의아해하면서도 알겠다고 대답하는 권문해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준서는 최태우의 등에 업혀 있는 서준이 뒤로 넘어가지 않게 등을 받쳐주었다. 심장이 뛰고 있는 게 느껴져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타닥!
안다호가 빠르게 뛰어가 차의 뒷문을 열었다.
비상시 쓰는 차량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서준의 차나 눈에 띄는 차를 탄다면 순식간에 기사가 나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조심히.”
서준이 편하게 누울 수 있도록 넓은 차량을 선택한 안다호가 의자를 움직여 서준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는 중에도 서준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최태우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정신줄을 붙잡고 대처하고 있었지만 운전까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상태로 운전을 했다가는…….’
오히려 큰 사고를 일으킬 것만 같았다.
잘게 떨리는 손을 꽉 쥔 안다호가 뒷좌석에 누워 있는 서준에게로 가 서준의 상태를 살폈다. 서준은 사무실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잠든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언제 상태가 악화할지 모르니 한순간도 서준의 옆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출발 전, 운전석에 앉은 최태우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불안과 초조로 마음이 급했지만 그렇게 운전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힘드시면 제가 운전할까요?”
조수석에 앉은 한준서가 물었다.
새싹인 한준서 또한 서준이 쓰러진 일에 패닉 상태가 되긴 했지만, 몇 년 동안이나 함께 지내왔던 안다호나 최태우보다는 그 여파가 덜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최태우가 시동을 걸며 말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서준이 쓰러졌을 때 매니저로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데, 이것마저 남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나중에,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도 고집은 부리지 않았다.
최태우는 자신이 제대로 운전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비켜줄 생각이었다. 서준을 병원으로 옮기는 일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말이다.
곧 정신을 잃은 서준을 태운 차가 조용히 코코아엔터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 * *
다행히 차는 교대 없이 빠르고 안전하게 병원에 도착했다.
“이쪽입니다.”
뒷좌석에서 서준의 상태를 살피며 ATR병원과 연락하고 있었던 안다호 덕분에, 서준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빠르게 입원실로 옮겨졌다.
“갑자기 쓰러졌다고요?”
2년마다 한 번씩 건강검진을 하면서 서준의 주치의가 된 의사가 서준의 상태를 살피며 어떤 검사를 진행할지 지시를 내렸다.
의료진들은 그 지시에 따라 바쁘게 손과 발을 움직였다. 하지만 능숙한 움직임과 달리 흔들리는 눈동자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배우 이서준이 쓰러졌다.
VIP 병실을 관리하는 만큼 표정 관리에는 자신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이 놀람을 전부 숨길 수가 없었다.
일부 서준의 팬으로 보이는 의료진들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내 눈물을 삼키고 빠르게 검사를 진행했다.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한준서 배우도 한번 검사를 받아보시죠.”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한준서의 어떤 것이 서준에게만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었다.
“어디 여행 다녀오신 적 있으신가요?”
하는 의료진의 물음에 한준서가 대답하는 사이.
안다호는 입원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는 물론 온몸의 힘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안다호보다 먼저 앉아 있던 최태우는 벌써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안다호가 조금 넋이 나간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서준이 누워 있던 병원 침대가 보였다. 텅 빈 병원 침대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저 검사받으러 간 것이라는 걸 아는데도, 저도 모르게 최악의 경우가 떠올라 눈앞이 아찔해졌다.
‘서준아…….’
안다호는 시선을 내려 덜덜 떨리는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초조와 불안으로 긴장하고 있던 몸이 병원에 오면서 풀어진 탓인지, 손뿐만 아니라 온몸이 떨리는 것 같았다.
물론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서준은 어떠한 전조도 없이 쓰러졌다. 병원에서도 병명을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건강검진은 괜찮았는데…….”
바짝 마른 목을 긁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 아픈 곳이 있기는커녕 사무실에서 대화를 할 때까지도 서준은 건강했다.
‘……건강, 했나?’
안다호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모든 장면들이 의심스러워졌다.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게 아닐까.
사실 몸 상태가 안 좋았던 걸까.
‘만약 그랬다면…….’
안다호는 상체를 숙여 떨리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눈치채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가슴이 답답했다. 서준이 쓰러지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떻게 병원에 도착했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힘없이 쓰러지는 서준의 모습과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서준의 얼굴만이 떠올랐다.
‘이럴 때가 아닌데…….’
서준의 부모님께도 연락해야 했고 사장님과 회사에도 연락해야 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따라와 준 한준서 배우에게도 감사해야 했고, 내일 있을 서준의 생일을 위해서도 움직여야 했다.
어쩌면 서준은 갑자기 쓰러졌던 것처럼 금방 일어날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때를 대비해야…… 하는데…….
하지만 안다호는 오직 하나밖에 하지 못했다.
‘제발…….’
마른세수를 하던 안다호가 두 손을 꽉 마주 잡았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좋았다. 외국의 신이든 안다호가 모르는 신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서준이 무사히 깨어나기를, 그래서 서준이 바라는 대로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배우 활동을 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러자,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이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 기도에 신이 응답했다.
* * *
“서준이는 저녁 먹고 들어오려나?”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 서은혜의 말에 이민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한준서 배우랑 친해지면 저녁까지 먹고 들어오지 않을까?”
“역시 그렇지?”
즐겁게 한준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서준을 떠올리며 부부가 웃었다. 김수한 감독이라는 공통 지인도 있으니, 이야기가 길어질지도 몰랐다.
그렇게 늦을 때는 늦는다고 연락하는 서준이니, 그 연락을 받고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듯 이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서준이야?”
“아니, 다호 씨.”
“이야기하느라 연락할 틈이 없나 보네.”
신나게 떠들고 있을 서준이 떠올라 부부가 웃고 말았다.
이민준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다호 씨.”
그리고 휴대폰 건너에서 들려오는 안다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서은혜는 웃으며 남편과 먹을 저녁 메뉴를 생각했다. 아들은 아무래도 늦게 올 모양인 것 같았다.
그때,
“그게…… 무슨…….”
이민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살처럼 꽂힌 불길한 느낌에 서은혜가 휙!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보았다. 이민준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두근. 그 모습에 서은혜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남편이 저렇게 반응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서준이가…… 쓰러져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