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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047화 (1,04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47화

“……다호 형, 덕분이라고?”

갑자기 나온 안다호의 이름에 서준이 눈을 크게 떴다.

집필대 쪽에 있던 파르비타가 헤엄치듯 허공을 날아와 서준의 앞에 멈추었다.

“내 능력을 어디에 새겨뒀는지 잊었어?”

그말에 눈을 깜빡이던 서준이 ‘아, 나침반.’ 하고 탄성을 뱉었다.

“내가 다호 형에게 줬지.”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은 서준이 유럽에서 산 겹작약꽃 나침반에 새겨져 있었는데, 서준은 그걸 안다호에게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매번 바닥난 마나를 자신이 채워주기도 했다.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그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

그건 소유자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능력이었다. 어떤 소원인지 정할 수는 없어서 아주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어야 했다.

현재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의 소유주는 안다호.

능력은 안다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작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안다호의 소원은 무엇일까.

‘아마 성공하는 거겠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하니까 말이다.

안다호의 ‘성공’에는 ‘이서준’의 존재도 들어 있을 터였다.

회사에 슈퍼스타가 있다면, 오래오래 활동한다면 성공은 더더욱 쉬워질 테니까. 그러니 ‘이서준’과 ‘첫 생’이 만나지 않도록 작동한 거겠지.

‘물론 다호 형은 그런 생각 안 하겠지만.’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의 판단이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서준이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행이네. 다호 형의 소원이 성공이라서.”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게 아니었다면, 서준은 좀 더 일찍 첫 생과 만났을지 몰랐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파르비타가 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안다호가 자신의 성공을 바랐다고?”

서준이 눈을 깜박였다.

“……아니야? 물론 다호 형이 성공만 바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가장 큰 소원이 성공이라는 거지.”

보통 다 그렇지 않나?

“이런. 안다호가 알면 슬퍼하겠는데. 미밍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미밍!”

서준의 머리 위에 있던 미밍이 폴짝폴짝 뛰었다.

다호 형이 슬퍼한다고? 서준이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자,

“안다호의 소원은 말이지.”

파르비타가 더욱 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로 서준 네가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배우 활동을 하는 거야.”

그말에 서준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다호 형의 소원이……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배우 활동을 하는 거라고?’

물론 서준은 안다호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안다호는 서준을 정말로 좋아했으니까. 열심히 도와주기도 했고.

하지만 인생의 소원이다.

소원을 지정할 수 없는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이 작동할 정도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런데 그 소원이 안다호 자신을 위한 소원이 아니라, 서준을 위한 소원이라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로?”

“그래. 나침반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소원이지.”

웃으며 말하는 파르비타의 대답은 진실만이 담겨 있었다.

“다호 형이…….”

서준은 멍한 얼굴로 이제 중년이 된 남자를 떠올렸다.

안다호.

서준이 어린이 연극 [봄] 때부터 함께 지내온 매니저. 지금은 이사님이라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그 자리에서도 서준을 계속 서포트하고 있는 남자.

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서준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본인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서준 네가 내 능력을 썼었잖아.”

파르비타의 말에 정신을 차린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꿉친구들과 유럽여행을 갔던 때.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을 겹작약꽃 나침반에 새겼던 날.

서준은 능력이 잘 발휘될까 싶어서 한 번 사용해 보았다. 하지만 그때 서준은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효과가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야. 그때 제대로 작동했어.”

파르비타가 인어 꼬리를 흔들며 설명했다.

“서준 네 소원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연기를 하는 거였거든.”

아기 때부터 변하지 않은 서준의 소원이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 내 능력이 나침반을 안다호에게 선물하도록 한 거야. 나침반은 안다호의 소원이 네 소원과 같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만약에 다호 형이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나침반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겠지. 널 도와줄 사람에게 말이야.”

파르비타의 말에 서준은 두 사람을 떠올렸다.

“부모님은?”

부모님도 서준이 행복하길 바랐을 텐데.

“그쪽은 조금 달랐던 게 아닐까. 연기를 하지 않아도 서준 네가 오래오래 살길 바랐던 거겠지.”

언제까지고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 서준의 소원과는 조금 다른 부모님의 소원이었다.

만약 나침반이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줬다면, 아주 극단적인 방법으로는 서준이 연기를 그만두지 않았을까. 배우인 ‘첫 생’과 만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들이 죽는 것보다는 슬퍼하는 게 낫잖아.”

슬퍼도 살아줬으면 하는 게 부모의 입장이라는 거다.

“게다가 서포트하기엔 안다호의 위치가 가장 좋았으니까.”

코코아엔터 배우팀 이사.

이만큼 연예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좋은 자리는 없었다.

“여러모로 적임자였던 거지.”

조용히 파르비타의 이야기를 듣던 서준은 앞서 읽었던 [한준서의 책]을 떠올렸다.

고등학생이었던 한준서가 친구 김수한과 함께 어린이 연극 [봄]을 보러 온 때부터 [이스케이프]의 좀비 엑스트라로 출연했을 때, 연극 [배심원]에 출연했던 때, 단막극 [내일]에 출연했을 때, 최소영, 김종호와 친해졌을 때, [민들레], [새벽], [운명]과 관련됐을 때 등등.

처음에는 몰랐지만, 서준과 한준서가 만날 만한 순간은 정말 많았다.

마치 운명처럼.

같은 영혼을 지니고 있으니, 언젠가는 꼭 만나야 한다는 듯이.

‘만약 그때 만났더라면…….’

지금의 ‘이서준’은 없었을 거다.

그런데 그걸 다호 형이, 자신이 즐겁게 오래오래 연기하길 바라는 다호 형이 막아주고 있었다.

“다호 형이 군대 이야기를 꺼낸 것도 첫 생과 만나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구나.”

[한준서의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이상한 점은 한준서가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서준은 군대와 미국 촬영으로 한국에 없었던 때가 많았다는 거였다.

‘거기에 대학교도 있지.’

넓지만 좁은 연예계.

서준과 한준서가 만나지 않게 하려면 아예 생활구역을 떨어뜨려 놓아야 했다.

“맞아. 그리고 그것 말고도 많이 있지. 기록석, 부탁할게.”

“알았어.”

파르비타의 말에 종이사냥을 끝내고 제루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기록석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바닥에 앉아 있던 서준의 옆에 놓여 있던 [이서준의 책] 페이지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이곳을 읽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안다호의 시점으로 적혀 있는 게 아니라서 자세하진 않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고마워.”

기록석에게 감사 인사를 한 서준이 자신의 책을 들어 올렸다.

삐져나온 맨 끝 페이지, 기억나지 않는 기억에 잠시 씁쓸해졌지만 서준은 이내 반짝이는 페이지 중 맨 앞에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P.530】

『“직원 다 뽑았어요, 다호 형?”

“아니, 이제 면접 봐야지. 지금은 서류 심사 중이고. 여기 있는 게 직원 이력서야.”

안다호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탑 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런 서류 탑이 3개나 있었다.

“이건 매니저 지원자 서류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배우들 서류. 이쪽은 탈락, 이쪽은 보류, 이쪽은 통과야. 나중에 면접도 볼 생각이거든.”

안다호가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를 제일 왼쪽, 탈락 자리에 놓아두었다. (하략)』

‘이때구나.’

나침반이 다호 형의 손에서 처음 발동했을 때가.

아마도 저기 있는 서류 중 배우 쪽에는 한준서 배우의 이력서가, 매니저 쪽에는 태우 형의 이력서가 있을 터였다.

‘능력이 발동해서, 다호 형은 한준서 배우를 불합격시켜야겠다고 느낀 거겠지.’

서준은 그 다음으로 빛난 페이지를 읽어보았다.

【P.538】

『“헐…… 진짜 되게 비슷하네요.”

안다호에게서 어제오늘 일어났던 일에 대해 들은 서준은 [사랑방 화가]와 [무명 화가]를 번갈아 보며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략)』

거기엔 매니저 최태우가 [화]의 표절을 잡아냈다는 이야기를 서준이 듣는 장면이 적혀 있었다.

“역시 이때도…… 근데 이건 한준서 배우랑 상관없는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는 서준에게 파르비타가 말했다.

“안다호의 소원은 한준서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네가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배우 활동을 하는 거니까.”

그래서 표절 문제를 해결할 태우 형을 합격시킨 것 같았다.

【P.547】

『“서준아.”

“네?”

케이크를 다 먹은 서준이 포크를 내려놓자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할 이야기가 있는데…….”

“? 네.”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신사옥 이전도 끝났고 아직 어수선하지만 새 배우들과 새 직원들이 들어와서 배우팀도 천천히 적응 중이고, 자신의 차기작도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잘 끝나서 촬영만 남은 상황이었다.

‘뭐가 더 있나?’

서준이 눈을 데굴 굴리며 생각하고 있는데, 안다호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심각한 것 같기도 했다.

“너 군대 언제 갈래?”

……오.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때 서준이 군대를 가지 않았더라면 [화]를 상영하는 한국독립영화제에서 김수한과 함께 한준서를 마주쳤을 거다. 분명 화 필름 사람들과 함께 영화제에 갔었을 테니까.

‘아, 그러고 보니…….’

다호 형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마린사에서 [오버 더 레인보우2]의 버스킹 장면을 [민들레] 촬영장 근처에서 찍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한국 배우들(김종호, 이지석)이 [오버 더 레인보우2]에 나오면 화제가 되지 않겠냐면서 말이다.

‘거기에 한준서 배우가 있었겠지.’

만약 서준이 입대하지 않았다면 [오버 더 레인보우2]를 찍었을 거고 [민들레]를 촬영 중이었던 한준서를 만났을 것이다.

‘그때 만나지 않았더라도 오스카상을 받은 민들레 때문에 활발히 활동 중인 한준서 배우를 어디선가 마주쳤겠지.’

서준이 침음성을 흘렸다.

군대라는 공간에 분리되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렇게 됐을 터였다.

【P.786】

『“소영이처럼 네가 아는 배우들도 있을 거고 아마 처음 만나는 배우들도 있을 거야. 전부터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시간이 됐네.”

김종호의 말에 신이 난 서준이 막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서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1팀이었다.

“어?”

1팀에서 먼저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터라 서준은 조금 놀란 얼굴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뉴스 때문 아니야?”

“아, 그런가 봐요. 여보세요?”

이지석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태우 형이 쓰러져요?!”』

“역시 이것도 나침반이 한 거였구나.”

서준의 말에 고개를 저은 파르비타가 말했다.

“나침반이 한 건 아니야. 그런 상황이 되도록 매니저를 선택하게 한 거지.”

서준이 모임에 참여하지 않게 하기 위한 적당한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을 일으킬 적당한 사람.

“아, 하긴. 다호 형이 과로로 쓰러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해. 1팀도 그렇고.”

다들 오랫동안 서준과 함께 일해와서 특별히 부담을 가지고 과로할 일은 없었다.

오직 처음부터 슈퍼스타를 담당하게 되어 ‘의욕’과 ‘부담’이 넘치는 ‘초짜’ 매니저만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게 태우 형이었구나.”

앞선 표절 문제도, 이 과로 사건도 최태우가 아니면 안 됐던 일들이었다.

그리고 최태우를 선택한 건 안다호였고.

【P.790】

『(상략)

“저 이거 할래요. 형.”

응. 그럴 줄 알았어.

단박에 튀어나온 서준의 말에 최태우는 예상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안 읽어봐도 되겠어?”

“다른 거요? 오. 운명? 이거 영화화하네요?”

[뉴 이클립스] 대본을 옆에 소중히 내려둔 서준이 최태우의 말에 그 아래 깔려 있던 [운명]의 대본을 발견했다.』

“대본의 위치를 정한 것도 다호 형이었겠네.”

서준이 [뉴 이클립스]를 먼저 읽게 해서, [운명]을 선택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서준의 책]에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어쩌면 독립영화 [화] 이후 서준이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고 미국 작품만 촬영한 것도 [섬섬생활]과 관련된 것도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이 안다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작동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쩐지 마나가 빨리 줄어든다고 생각했어.”

서준이 피식 웃었다.

이렇게 보이지 않은 곳에서 열심히 발동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말이지…….”

능력은 소유주가 바랄 때 발동된다.

따라서 안다호는 매번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볼 때마다 서준이 선물해 준 겹작약꽃 나침반을 볼 때마다 서준이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배우활동을 하기를 바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겹작약꽃.

그 옛날 영국에서 목걸이에 엮어 수호 부적으로 쓰였던 꽃.

“다호 형의 수호 부적이 됐으면 했는데…….”

미세하게 떨리는 서준의 목소리에 물기가 조금 스며들어 있었다.

“형이 날 지켜주고 있었던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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