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1040화 (1,04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40화

“또 보러 오셨었네.”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재관람이야말로 배우를 향한, 작품을 향한 최고의 칭찬이었으니까.

【P.71】

『연극이 끝났다. 무거운 커튼이 무대를 가리며 내려왔다.

관객석이 밝아졌지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청룡의 충격이 어마어마했는지 관객석에는 묵직한 침묵만이 남았다.

‘와…….’

한준서 또한 그랬다.

지금까지의 연극도 정말 대단했지만, 마지막 8회차인 오늘은 감탄조차도 내뱉기 힘들 정도로 어마무시했다.

‘이 목소리가 8살이라고…….’

연기에 대해서는 정말 쥐뿔도 모르지만, 보통 아역배우들보다 훨씬 잘한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아니, 어른들과 비교해 봐도 잘하는 거겠지.

‘그 애만큼 잘하는 것 같은데?’

한준서는 [쉐도우맨1]과 [악령], 그리고 올해 개봉했던 [쉐도우맨2]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었던 아역배우 이서준을 떠올렸다. 연예계에 관심 없어도 그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나 진과 이서준.

같은 나이니까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한준서는 인사를 하기 위해 무대 위에 나타난 아이들을 보며 손바닥이 뜨거워져라 박수를 쳐댔다.

짝짝짝!!!

와아아아아!!

관객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보냈다.

“최고였어!”

“이다진!!”

누군가 이름을 부르자, 사냥꾼 복장의 이다진이 앞으로 나와 꾸벅 인사를 하고 두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관객들이 팸플릿에 적혀있던 아역배우들의 이름을 차례로 외쳤다. 이름을 불린 아이가 어쩔 줄 몰라 하니, 이다진이 씨익 웃으면서 등을 밀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았다.

무대 위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신성하고 묵직한 목소리를 들려준 배우.

“나 진!!”

옆자리에서 들려온 김수한의 우렁찬 외침에 한준서가 웃음을 터뜨렸다. 모자를 쓴 나 진이 그 이름에 한 발짝, 앞으로 나서는 것이 보였다.

나 진은 관객석을 한 번 훑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두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다음 작품에선 얼굴 좀 보자!!”

그 말에 열심히 손뼉을 치던 한준서가 빵 터졌다. 관객들의 웃음소리도 들렸고, 무대 위 배우들이 웃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친구 김수한처럼 저렇게 외칠 용기는 없었지만, 한준서 또한 다음 작품에서는 나 진의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대 위, 아역배우들이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하나, 둘.

“감사합니다!”

한준서와 김수한, 관객들의 힘찬 박수와 함께 마지막 연극이 끝났다.

은하수센터 로비.

김수한이 가방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스케치북보다 조금 큰 종이에는 연극 [봄]의 1회차부터 7회차까지의 티켓이 붙여져 있었는데, 김수한이 집에서 붙여온 것이었다.

“진짜 들고 왔네.”

“그러게. 역시 김수한.”

거기다가 오늘 본 8회차 티켓까지 붙이는 김수한을 보며 한준서와 친구들이 감탄했다. 연극 [봄]에 대한 감상까지 가득 적혀 있는 게,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였다.

“진짜 나 진한테 주려고?”

“어!”

희희낙락하며 티켓이 안 떨어지게 꾹 누른 김수한이 얼른 직원에게 종이를 보여주며 나 진에게 건네줄 수 있냐고 물었다. 직원은 웃으며 친절히 받아주었다.

으음.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준서가 뒷목을 매만졌다.

한준서도 김수한과 함께 8회차를 모두 본 만큼 티켓이 전부 있었고, 연극 [봄]에 대한 감상도 가득 적어 나 진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성격상 어려운 일이기도 했고, 이맘때의 학생들이 그러하듯 영 솔직하질 못했다.

뭐, 김수한이 유난히 솔직하고 대범한 거긴 했다.

“으아아아! 나 진 사인이라니!!”

하지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도 주는 건데!

잠깐 기다리라고 말한 직원이 돌아와서 건네준 나 진의 사인.

[좋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나 진]

짧은 편지까지 적혀 있는 사인 종이를 번쩍 들고 기뻐하는 김수한과 그 모습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좌절하는 한준서.

그 완벽한 희비에 세 친구가 빵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 번 더.

나도 주는 건데에에! 하고 외치고 싶은 상황이 발생했다.

게임을 하러 간 피시방에서 나 진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었다.

“내가 8번이나 본 연극에 나왔던 게! 내가 사인받았던 나진이 이서준이래! 이것 봐!”

김수한이 보여준 것은 분명 그들이 보았던 연극 ‘봄’의 주인공, 최소영과 사냥꾼 역의 이다진, 그리고 이서준이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근데 너 나 진 이름으로 사인받았잖아.”

“아…….”

“아냐! 오히려 그게 더 희소성 있지! 누가 이서준 사인을 나진으로 받겠어!”

“그건 그러네.”

그때, 김수한의 휴대폰이 울렸다.

김수한은 얼떨떨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그사이 친구들은 나진의 사인이 좋냐, 이서준의 사인이 좋냐 토론하고 있었는데,

‘나 진이 이서준이었다고……?’

한준서는 아직도 놀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 진이 이서준? 인지 부조화가 오는 상황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김수한에게 말을 거는 친구가 보였다.

“뭐야? 왜 그래?”

“……코코아엔터래.”

“거기가 어딘데?”

“이서준 소속사…….”

“뭐?”

한준서와 친구들, 그리고 피시방 손님들이 김수한을 바라보았다.

“8번이나 연극 봐주셔서 고맙다고. 주소 알려주면 이서준 사인 보내준대. 진짜 나 진이 이서준인 거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도 주는 건데!!

“진짜, 진짜 부럽다…….”

사회부 기자와 인터뷰를 끝낸 김수한을 보며 한준서가 그렇게 말했다. 그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에 김수한과 친구들이 낄낄 웃었다.

“그러니까 준서 너도 나랑 같이 줬으면 좋았잖아.”

“그러게…… 왜 안 줬을까……!”

진심으로 좌절하는 한준서에 김수한과 친구들의 낄낄거림이 더욱 커졌다.』

“음…….”

【P.71】를 읽던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좋으면서도 조금 민망하고 미안해졌다.

한준서 배우가 이때 자신의 팬이었다는 것도 몰랐는데(지금은 모르겠지만), 본의 아니게 팬으로서의 모습을 몰래 본 기분이었다.

‘뭐, 새싹부터에도 많이 올라오는 모습이긴 하지만.’

그건 인터넷이라는 공개된 공간이니까.

현실로 돌아가면 사과해야겠다. 생의 도서관이나 삶의 책에 대해서는 설명 못 하겠지만 말이다.

“미밍!”

미밍이 다음 페이지를 내밀었다.

이건 좀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였다.

【P.87】

『“아니, 하필 왜 우리가 고3 때 내의원이 방송하는 거야?!”

어제 열심히 [내의원 5화]를 시청하고 온 친구의 말에 같은 반 아이들이 동의했다. 고등학교 3년째 같은 반인 김수한과 한준서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때는 청소도 재미있는 법인데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가 방송을 시작했으니, 공부가 될 리가 있나. 올해 수능을 쳐야 하는 고3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제 성녕대군 등장씬 후광 보이는 것 같지 않았어?”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냥 미래의 자신에게 맡기기로 한 고3들이었다.

한준서와 김수한도 그랬다.

아니, 김수한은 상황이 좀 나았다.

“내의원 1화부터 연출법 살펴보고 있는데 진짜 좋더라. 예고편도 그렇고.”

친구 김수한은 고1 때 연극 [봄]을 본 이후로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진로를 감독으로 잡았다.

영화를 할지 드라마를 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긴 하지만, 고3이 된 지금까지도 꾸준히 감독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었다. [내의원] 시청도 연출법 공부라는 핑계를 댈 수 있을 정도로.

“근데 잠깐 있으면 넋 놓고 보게 된다니까.”

내의원, 너무 재밌어……!

하고 말하는 김수한을 보며 한준서가 작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조금 부럽게 김수한을 쳐다보았다.

김수한은 고1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계속 노력하고 있는데, 자신은 진로도 결정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서준이 진짜 연기 잘하더라! 사극은 처음인데 사극 연기도 잘하고!”

“그러니까! 그리고 한복도 되게 잘 어울렸지! 서준이 맞춤 옷 같던데, 그냥 딱 봐도 성녕대군 마마였고.”

좋아하는 아역배우에 대한 이야기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었다. 또 아직 학생인 한준서에게 미래의 이야기는 조금 먼 이야기인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하략)』

아직 꿈을 갖지 못한 첫 생의 모습은 서준에게 묘하게 다가왔다.

서준에게 첫 생은 언제나 연기에 대한 진심으로 가득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연기에는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첫 생도 평범한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첫 생이 더 좋아졌다.

평범한 인간이, ‘그’가 배우가 되고 싶게 할 정도로 연기를 사랑했다는 거니까.

‘이제 곧 연기를 하자고 결심하겠지.’

제법 운명적이었던 서준의 계기와 달리, 첫 생의 책에서 읽었던 첫 생의 계기는 평범했다.

학생 때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천천히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배우가 되자고 생각했다고 적혀있었다.

‘근데 그게 고등학생 때인지 대학생 때인지는 모르겠네.’

■학생이라고 적혀 있었으니까.

그래도 앞뒤 내용을 살펴보면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았다.

“미밍!”

미밍이 서준에게 다음 페이지를 내밀었다.

“고마워.”

하고 웃으며 말한 서준이 다음 페이지를 읽어나갔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P.92】

『약 3달 동안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내의원]이 오늘로서 끝나게 된다. 사람들은 아쉬워하면서도 TV 앞에 모여 앉았다.

한준서도 그랬다.

고3이지만 어제 편에서 마지막 부분에서 성녕대군을 닮은 약초꾼 아이가 등장하는 바람에 안 볼 수가 없었다.

>김수한: 보고 싶은데! 안 보고 싶다!!

한준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어떤 내용으로 전개될지 궁금해서 보고 싶으면서도, 마지막 화를 보면 정말로 끝나는 느낌이라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봐야지.”

서준이도 나오고, 성녕대군을 닮은 아이는 어떻게 될지, 허의관과 세종은 어떨지 궁금했으니까.

곧 많은 광고가 지나가고 [내의원] 마지막 화가 시작되었다.

허 의관은 약초꾼 아이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성녕대군 때만큼이나 열심히 치료했다. 그러나 아이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마마. 마마.

성녕대군 때는 차마 울 수 없었지만 여기는 달랐다. 허유선은 모든 걸 다 털어놓듯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처럼 엉엉 우는 허유선.

그때, 따뜻한 무언가가 허유선의 손에 닿았다. 아이의 손이었다. 아이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고맙습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아이의 입 모양에 허유선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고마워요. 허 의관’. 성녕대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준서는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분명 똑같은 배우인데도 병에 걸려있는 똑같은 상황인데도, ‘성녕대군’과 ‘약초꾼 아이’가 확실히 구분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성녕대군이 떠올랐다.

연기에 ㅇ도 모르는 한준서가 봐도 대단한 연기였다. 아니, 그래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연기할 수 있지?’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던 드라마인데도,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역배우 이서준의 연기와 그와 어우러지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두근두근.

심장이 너무 뛰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허 의관이 성녕대군의 묘 앞에 엎드려 상위복을 외치며 울 때까지 눈도 깜빡이지 않고 TV를 보던 한준서는 [내의원]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서준이 나왔던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쉐도우맨1], [악령], [쉐도우맨2], [재수사], 연극 [봄], [봄]의 메이킹 필름 그리고 [내의원]의 편집 영상까지.

내일 학교에 가야 하지만 밤을 새워서 찾아본 한준서는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을 참지 않았다.

“와…… 진짜…… 미쳤네…….”

알고는 있었지만, 잘 알고 있었지만.

이서준은 정말 연기를 잘했다. 진짜, 너무, 정말 잘했다.

저 어린 몸에 어떻게 이런 연기력과 재능이 담겨 있는지 모를 정도로, 정말 대단했다.

아니, 재능만이 아니었다.

[봄]의 메이킹 필름 속.

아역배우 이서준이 다른 아역배우와 연습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도 노력하는 모습이 눈이 부셨다. 거기에 정말로 즐기는 듯한 태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연기가 저렇게 재미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좋아할 수 있지?

“나도…… 연기…… 해볼까?”

저도 모르게 나온 말에 한준서가 깜짝 놀라 자신의 입을 막았다.

수능이 네 달 남은 고3이면서 연기를 하고 싶다니.

현실을 모르는 치기 어린 말에 민망해졌지만, 머리보다 솔직한 심장은 이미 빠르게 뛰고 있었다.』

거기까지 읽은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나?

한준서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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