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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036화 (1,03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36화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끊겼다니? 뭐가?”

“네 기억을 말하는 거야.”

기록석이 대답했다.

“현실에서 어마어마한 일이 있었거든. 그 영향 때문이지.”

자신의 기억에 영향을 줄 정도로 어마어마한 일?

서준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많은 전생을 기억하고 생의 도서관의 능력을 쓸 수 있는 자신이? 게다가 사무실은 사고를 당할 만한 곳도 아니었다.

“설마…… 건물이 무너졌어?”

“아니야. 다른 인간들은 괜찮아.”

파르비타의 대답에 서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괜찮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현실에 사고가 생겼다면 더 빨리 가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일단 현실로 돌아가 상황을 파악하고 능력을 사용해서 해결하면 될 것 같은데.

그에 파르비타가 고개를 저었다.

“못 가. 네 몸하고 영혼이 거의 끊어져 있는 상태거든.”

“……뭐?”

서준이 눈을 크게 뜨고 파르비타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몸과 영혼이 끊어져? 그렇다면 그건……

“그게, 무슨 소리야?”

파르비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한 서준이지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그렇게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잘못 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도 있었다.

“서준 네가 죽어가고 있다는 거지.”

그 단호한 대답에 서준은 잠시 숨 쉬는 것도 잊고 말았다.

죽어? 내가?

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그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서준은 눈을 감았다. 생의 도서관을 나가 현실로 돌아가려고 한 것이었다.

파르비타의 말이 틀렸다면 평소처럼 현실에서 깨어날 터였고, 파르비타의 말이 맞다면…….

“……”

서준이 눈을 떴다.

변하지 않는 풍경에 검은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어떻게 하지?’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저절로 남아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조심해서 다녀오라던 엄마 아빠, (서준의 끊긴 기억상으로는) 사무실에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던 다호 형, 곧 도착할 태우 형, 은수, 수빈이, 삼촌들, 숙모들,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들, 지인들, 그리고 새싹들.

“후우…….”

서준이 눈을 감았다 뜨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패닉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서준, 아니, 그는 많은 죽음을 겪고 많은 탄생을 겪은 환생자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지금 ‘그’는 ‘이서준’.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그리고 팬들과도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었다. 연기도 계속하고 싶었다.

“죽어가고 있다는 건, 죽은 건 아니라는 거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상황인 만큼 당황은 조금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파르비타의 말에 숨겨진 뜻을 파악할 정도의 정신은 있었다.

“맞아. 아직 죽지는 않았어.”

걱정스럽게 서준을 바라보고 있던 파르비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밍……!”

어느새 서준의 머리 위에서 내려와 걱정하던 미밍도 어깨에 올라 고양이처럼 서준의 볼에 몸을 비비며 위로 한 스푼을 더했다.

나무상자라서 딱딱한데 묘하게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서준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서준이 눈앞에 떠 있는 존재들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갑작스러운 죽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슬라임이나 개미 등 작고 약한 생물로 태어나면 먹이를 먹다 죽기도 하고 자다가 죽기도 하고 태어나자마자 죽기도 했다. 물론 강한 존재로 태어났어도 더 강한 존재에게 죽은 적도 많았다.

미련이 많던 삶도 많았다.

남겨진 이들을 걱정하고 조금만 더 살기를, 이대로 죽지 않기를 바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죽음을 겪었어도 이렇게 전생들이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마 이번 ‘죽음’이 아주 특별할 경우라는 거겠지.’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면,

“너희는 나를 도와주려고 나타난 거구나.”

“그래.”

전생의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날 도와주는 건지 물어봐도 돼?”

서준의 물음에 파르비타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설명 먼저하고 말해줄게.”

그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도 지금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서준. 삶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어?”

파르비타가 걸음을 옮겼다.

정확히는 헤엄치듯 허공을 날아갔다.

그에 다른 전생들도 파르비타를 따라 움직였고 서준도 그 뒤를 따라갔다. 어느새 다시 서준의 머리 위에 오른 미밍이 미밍! 하고 울었다.

“삶의 책?”

파르비타의 말에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어디서부터 설명하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파르비타의 진지한 표정이나 별말 없는 다른 전생들을 보니 상관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서준이 복도를 뚜벅뚜벅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삶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냐니.

그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생의 도서관과 삶의 책은 서준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순간부터 존재했었으니까.

공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특별히 궁금해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죽으면 생기는 거 아니야?”

전생이 죽고 다시 환생했을 때, 생의 도서관 어딘가에 있는 빈 책꽂이에서 뿅!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에 파르비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게 생기지. 하지만 내가 물어본 건 ‘만들어지는지’야.”

“……그게 그 말 아니야?”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파르비타가 웃으며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알아?”

“당연히 알지. 종이에 글을 쓰고, 그 글이 쓰인 종이들을 하나로 모아서 만드는 거잖아.”

“맞아.”

파르비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될 때까지 끊임없이 글을 써 내려가는 게 바로 책이지.”

어느새 허공을 유영하던 파르비타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여긴?’

파르비타를 따라 걸음을 멈춘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

생의 도서관은 직사각형의 모양이었는데, 왼쪽에는 선의 도서관이, 오른쪽에는 악의 도서관이 있었고 두 도서관을 잇는 기다란 복도가 있었다.

서준과 전생들은 그 복도 한가운데, 마주 보는 벽 두 곳 중 한 벽의 앞에 서 있었다. 거긴 아무것도 없는, 그냥 벽이었다.

“삶의 책도 그렇게 만들어져.”

하지만 벽 앞에 떠 있는 파르비타는 태평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의아해하던 서준도 일단 설명에 집중했다. 흥미로운 이야기기도 했고.

“삶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서 ‘내’가 태어날 때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계속 글을 써 내려가지.”

서준의 눈이 커졌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그렇다면…… 지금도 적히고 있다는 건가?’

서준이 놀라는 사이, 파르비타가 씩 웃으며 아무것도 없는 벽에 손을 댔다.

“그리고 삶의 책을 집필하는 곳이 바로 여기,”

그러자 환한 빛과 함께 천천히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건 서준이 매일같이 봤으면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문이었다.

“집필실이야.”

지금까지(전생의 기억까지도 합쳐서) 몰랐던 생의 도서관의 숨겨진 방의 등장에 서준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 * *

고동색 문을 보고 깜짝 놀라는 서준의 모습에, 파르비타와 미밍, 전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표정 변화가 없는 천마도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그러니까…….”

곧 진정한 서준이 집필실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서 삶의 책을 집필하고 있는 거라고?”

“맞아. 모든 삶의 책들이 모두 여기서 만들어졌어.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 삶의 책’ 또한 여기서 함께 적히고 있었던 거지.”

파르비타가 웃으며 말했다.

“서준, 네 책도 말이야.”

그에 서준이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네.”

서준이 굳게 닫혀 있는 집필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 책도 있겠구나.”

예전에 ‘이서준의 삶의 책’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긴 했는데, 그게 여기서 적히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근데 왜 난 몰랐지?”

서준의 말에 기록석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우리도 죽음이 가까워져서야 알게 된 사실이야. 원래 알 수 없게 되어 있거든.”

서준은 문득 조선시대 사관과 조선왕조실록 같은 기록물들이 떠올랐다.

왕족이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하루하루를 살피며 모두 글자로 남겼던 사관과 기록의 주체인 왕도 볼 수 없는 기록물.

‘비슷한 것 같긴 해.’

하고 서준이 생각할 때, 파르비타가 집필실의 문에 손을 댔다.

“그럼 들어가자. 나머지는 안에서 설명해 줄게.”

한 뼘만 한 파르비타가 문을 밀자, 커다란 고동색의 문이 부드럽게 열리기 시작했다.

서준은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면서도 조금 신기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삶의 책을 집필하는 곳은 어떤 모습일까.

컴퓨터나 키보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펜과 종이가 있을까. 아니면 마법으로 프린터기처럼 한 줄 한 줄 찍어내는 걸까.

책이 만들어지는 방법도 궁금했다.

종이들을 모아 책을 만드는 걸까, 아니면 빈 책에 글자를 적어넣는 형태일까.

나름 이것저것 상상해 봤지만,

“이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서준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팔랑-

종이가,

팔랑-팔랑-

수십 장의 종이가,

팔랑- 팔랑- 팔랑- 팔랑-!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 * *

집필실 중앙.

종이로 만들어진 소용돌이 아래에 나무로 된 무언가가 하나 있었다.

서준의 가슴까지 오는 그것은,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나무기둥에 그 윗부분은 마치 악보대나 독서대처럼 ▲ 모양으로 되어 있어 양쪽 면에 책을 올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건 뭐야, 파르비타?”

“집필대야.”

종이 소용돌이를 보고 놀란 서준에게 파르비타가 집필실 안쪽으로 들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전생들도 서준도 그 뒤를 따라갔다.

“먼저 이쪽에서 깃털 펜이 마법으로 생겨난 종이에 현실의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고 내용을 적어.”

파르비타의 설명대로 집필대 위, ▲의 한쪽 면에서 깃털 펜이 혼자 바쁘게 종이에 글자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종이 소용돌이 때문에 가까이 가지는 못해 내용은 미처 보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앞뒤가 꽉 채워진 종이가 반대쪽으로 날아와서, 책 안쪽에 순서대로 붙는 거지.”

깃털펜의 반대쪽 면에는 달랑 표지만 있는 책이 펼쳐져 있었는데, 허공을 날아온 종이가 마치 용접되듯 빛을 내며 책에 딱 붙고 있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천천히 책의 페이지가 늘어났다.

“페이지가 다 채워지면 책 한 권이 완성되는 거야.”

삶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던 서준이 고개를 들어 종이 소용돌이를 바라보았다.

“근데 원래 이렇게 양이 많은 거야?”

깃털펜이 마구잡이로 적고 있는 중이었는데, 느릿한 책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바람에, 책 안쪽에 붙어야 하는 종이들이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그게 마치 소용돌이처럼 보인 것이었다.

“아니. 이건 새로 적느라 바쁜 거야. 원래는 여유로워.”

“새로 적는다고?”

파르비타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서준이 얼굴을 굳혔다.

“그게 문제가 된 거야? 내 삶의 책을 다시 적고 있어서?”

그에 파르비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고는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제루엘과 기록석이 책 하나를 들고 허공에 떠 있었다.

파릇파릇한 잎의 색은 닮은 초록색 표지의 책.

!

완성되지 못해 제목도 없었지만, 서준은 단번에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서준 네 삶의 책은 이거야.”

파르비타의 확인사살에 서준은 얼른 고개를 돌려 종이의 소용돌이 아래, 집필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삶의 책’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책이 여기 있다면,

“……그럼 저 책은 누구 거야?”

파르비타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첫 생의 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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