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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034화 (1,03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34화

내정자.

내부에서 미리 정해둔 사람.

오디션 같은 곳에서 내정자가 있다면 안 좋은 소리를 듣겠지만,

“이 대본을 쓸 때부터 이 역할에는 걔를 캐스팅할 생각이었거든.”

감독이 대본을 쓸 때부터 생각한 배우라면 달랐다.

감독이나 작가가 이 캐릭터는 이 배우가 하면 좋겠다, 하고 섭외제안을 보내는 게 보통이니까.

“걔,요?”

아주 편한 호칭에 다들 고개를 갸웃하자, 김수한 감독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내 친구야. 배우거든.”

친구?

매니저 최태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런 소리는 못 들었는데?’

김수한 감독이 말하지 않았으니, 천하의 1팀이라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최태우의 표정이 제법 심각해졌다. 김수한 감독의 눈이라면 믿을 만했지만, 친분이 엮이면 판단력이 떨어져 잘될 일도 망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한다?’

최태우는 일단 배우의 이름부터 들어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친구라도 좋은 배우일 수도 있지.’

김수한 감독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믿음이 가서 서준은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서준의 친구들도 멋진 배우이기도 했고.

최태우와 같은 생각을 한 화 필름 사람들의 얼굴이 옅은 걱정으로 물들어있다가 이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밝아졌다. 그 친구가 누군지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 형 말하는 거예요?”

“그 오빠라면 괜찮죠.”

최태우는 황도윤과 황지윤, 박우진이 아는 배우라는 사실에 일단 마음을 놓았다.

서준은 기대로 더욱 눈을 반짝였다.

“연기 잘하는 녀석이야.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알걸?”

김수한 감독이 웃으며 말하자, 서준이 물었다.

“누구신데요?”

그에 김수한 감독이 배우인 친구의 이름을 알려줬고, 궁금함으로 가득하던 서준의 눈이 감탄으로 반짝였다. 최태우도 그 이름에 안심했다.

“어때, 괜찮지?”

“네.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서준의 말에 김수한 감독이 씩- 웃었다. 그리고 배우라는 친구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다.

“아, 걔가 서준이 너 만나고 싶어 하던데, 한번 만나볼래?”

그에 서준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를 만날 수 있다는데, 서준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

* * *

-4일!!

-3일!

-2일!

-뭐야? 뭔 카운트 다운이야?

=이서준 생일 카운트 다운이랰ㅋㅋ

=아하.

=그럼 이제 2일 남은 거네.

=ㄴㄴ지금 막 자정 지나서 1일 남았음!!

-1일!!

=24시간 후면 서준이 생일이다!!!

3월 9일 토요일.

딱 24시간 남은 서준의 생일에 전야제를 즐기듯 [새싹부터]가 떠들썩했다.

-그래도 잠은 자야죠.

=22 밤새는 건 내일 해야 함.

=33 잔다!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잠드는 깊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일이 없다면 언제나 함께 식사를 하는 서준의 가족이 아침을 먹기 위해 모였다.

평소에는 각자의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늘만큼은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내일로 다가온 서준의 생일이었다.

“그럼 내일 오후에는 돌아오는 거지?”

서은혜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아침 먹고 출발하면 오후쯤 되지 않을까 싶어. 많이 늦진 않을 거야.”

“그럼 저녁은 같이 먹을 수 있겠네.”

이민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미역국 기대해. 이번엔 아빠가 요리할 거니까.”

“……음. 기대할게.”

“뭐야, 아들. 반응이 좀 늦는데?”

이민준의 말에 서준과 서은혜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엄마아빠와 거실에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 서준은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약속이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와.”

엄마아빠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서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향했다. 최태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코코아엔터에 도착한 서준은 연습실로 향했다.

약속시간은 2시였지만 그보다 일찍 와서 김수한 감독의 대본을 읽고 분석할 생각이었다.

“서준아, 점심은 뭐 먹을래?”

“식당에서 먹을게요. 오늘 메뉴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과 연습하러 온 연습생들을 위해 사내식당은 오늘도 운영 중이었다. 주말이라 한산하긴 했지만.

>안다호: 그럼 같이 먹을까?

<좋아요!

메시지를 보낸 안다호와 같이 먹기로 했다.

그렇게 사내식당에 모여 점심을 먹게 된 안다호 이사님과 슈퍼스타와 그 매니저.

직원들은 가끔 보는 풍경이었지만 새로 들어온 연습생들에게는 신기하기만 한 모습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안다호 이사와 서준은 10층에 있는 이사실로 향했고, 최태우는 1층에서 2시에 올 배우를 기다리기로 했다.

서준은 변함없이 깔끔한 안다호 이사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자주 드나들어서 그런지 제 사무실인 것마냥 편했다.

안다호의 책상으로 향한 서준이 그 위에 장식된 은색의 나침반을 살펴보았다. 저번에 들렀을 때 가득 채워놓았던 선기가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중요한 일이 많았나?’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길을 알려주는 능력, [(선)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이 많이 발동된 것 같았다.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으니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능력도 있으니 잘 해결됐을 것 같았다.

작게 웃은 서준이 은색의 나침반에 선기를 가득 불어넣으며 물었다.

“근데 다호 형, 다른 소속사 배우를 회사 이사실에서 만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이번 약속장소는 특이하게도 코코아엔터 안다호 이사 사무실이었다.

서준의 물음에 안다호가 서준이 마실 오렌지주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조사하다 보니까 어떤 배우인지 궁금해서.”

아하.

서준이 푹신한 소파에 앉으며 웃었다.

“데려오긴 힘들지 않을까요? 종호 삼촌이랑 같은 회사잖아요.”

“살펴보기만 한다니까.”

어깨를 으쓱이는 안다호 이사에 서준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안다호도 이내 따라 웃으며 서준의 맞은편에 앉았다. 앞에는 커피가 놓여있었다.

“생일에 할 건 정했어, 서준아?”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젯밤에 생각났는데, 부산에 가려고요.”

“부산?”

안다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라이브 방송으로 새싹분들하고 다 같이 해돋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처음에는 동해를 갈까 했는데 유명한 곳은 사람들이 몰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최대한 조용하고 덜 알려진 곳으로 정했다며 서준이 신나게 설명했다.

“새싹분들 새벽에 일어나려면 많이 힘들 텐데?”

“음. 그럼 노을을 볼까요?”

“아니. 생일이란 의미에서는 해돋이가 나을 것 같아. 공지는 언제 올릴 거야?”

“부산 도착하면 올리려고요. 저녁쯤이면 다들 보시겠죠?”

“그래.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다행이네.”

내일이 일요일이니 새벽에 일어나도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괜찮을 것 같았다. 주말에도 일하는 분들은 아쉽겠지만 말이다.

“20주년 팬미팅에 대한 것도 이제 공지해야겠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20주년 팬미팅은 해외에서도 할 예정이라, 많은 새싹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그렇게 생일과 20주년 이벤트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안다호 이사는 서류 하나를 서준에게 내밀었다.

“이건 1팀에서 조사한 한 배우님 필모그래피.”

이제 곧 만날 배우는 유명해서 서준도 제법 잘 알고 있는 배우였지만, 모르는 작품도 있을까 싶어 그 서류를 받아 들었다.

간단하게 적혀 있는 프로필을 훑어본 서준이 종이를 넘겼다.

연극과 영화, 드라마가 뒤섞여 있는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가장 최근에 출연한 천만 영화 [운명]이었다.

“연기를 정말 잘하셨죠.”

저절로 떠오르는 장면들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시영이랑 지석이 형도 엄청 칭찬하셨는데. 주인공 역에 정말 잘 어울리시더라고요.”

“그랬지.”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천만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를 곧 만날 거라는 생각에 눈을 반짝이는 서준을 보며 안다호가 웃었다.

‘저렇게 좋을까.’

서준 본인이야말로 찍으면 천만 영화를 달성하는 슈퍼스타인데 말이다.

“운명 전에 출연한 작품이…… 새벽이네요.”

[운명]보다 과거에 출연한 작품의 이름은 [새벽].

거기서 주인공 역을 맡았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서준도 알고 있었다. 시청률이 20%를 넘었던 드라마였던 데다가,

“승원이 형이 대신 들어간 작품이었죠.”

“맞아. 조승환이 음주운전 때문에 빠지고 승원 씨가 들어갔지.”

안다호는 당시 서준이 배승원을 데굴데굴 굴렸던 걸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서준도 그때가 떠올랐는지 하하 웃었다.

“그때 승원이 형이 주연배우분이 편하게 느껴졌다고 했던 게 기억나요.”

옛날부터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서준의 기대가 한층 쌓였다.

[새벽] 전에 찍은 작품도 제법 유명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서준의 눈에 들어온 작품이 있었다.

“민들레도 재미있게 봤는데. 단역이었는데도 정말 인상 깊더라고요.”

앞서 출연한 작품들이 주인공이었던 것에 비해, 여기서는 잠깐 나오는 배역이었지만 이 영화가 [민들레]라는 걸 생각해 보면 결코 무시할 게 아니었다.

[민들레]

4년 전, 김종호가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게 해주었던,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할리우드 영화.

“원래도 제법 인지도가 있었지만, 민들레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안다호에 서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름 하니까 생각난 건데, 이름도 재미있지 않아요? 제…….”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에 안다호가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딱 2시였다.

“오셨나 보네.”

“그러게요!”

반가운 마음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서준이 얼른 문쪽으로 향했다.

배우만 보면 좋아라하는 서준에 안다호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칵-

서준이 문을 열자, 스크린과 TV에서는 봤으나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인 남자와 최태우가 서 있었다.

최태우에게 눈인사한 서준이 시선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준입니다. 회사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아, 아닙니다. 반갑습니다.”

그에 남자도 왠지 모를 반가움과 벅참이 가득한 표정으로 얼른 손을 내밀어 서준의 손을 마주 잡았다.

“배우 한준서입니다.”

편안한 인상처럼 마주 잡은 손에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던 서준이 순간 움찔 몸을 떨었다.

!!

발끝부터 몸이 차가워지며 숨이 턱 막혔다. 시야도 흐릿하게 변했고 귀도 먹먹해졌다. 팔과 다리의 힘도 쭉 빠져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게…….’

무슨…….

생각도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몸속에 있던 에너지가 악수를 하고 있는 손을 통해 한준서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만이 느껴졌다.

손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끝내.

에너지를 빼앗겨 버린 몸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준아!”

다급하게 붙잡는 손길과 흐릿하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부름을 마지막으로.

‘아…….’

서준의 눈앞은 새까맣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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