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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033화 (1,03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33화

그리고 한 시간 후.

코코아엔터의 답장이 화 필름으로 전달되었고, 화 필름은 곧바로 김수한에게 알려주었다.

점심을 먹고 있던 김수한이 울리는 휴대폰에 스팸인가 했다가 얼른 들어 올렸다. 대본을 보낸 지 이틀밖에 안 됐지만, 어쩐지 느낌이 좋았다.

>황지윤: 서준이가 출연한대요!

>황지윤: 미팅은 다음 주 화요일이에요!

“드디어!!”

젓가락을 떨어뜨린 것도 모르고 김수한이 환호성을 질렀다.

“서준이가 내 영화에 나오는구나!”

뭣 모르는 고등학생 때부터 이날을 꿈꿔 왔는지 모른다.

낄낄거리며 친구들과 떠들었던 꿈은 감독지망생이 되고 조감독이 되고 감독이 되는 사이 점점 선명해졌고 확실해졌다.

그리고 김수한은 현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배우는 이미 세계적인 스타였다.

일개 영화감독이 캐스팅하기엔 너무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었다.

“서준이는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쓰지만.”

김수한으로는 많이 신경 쓰였다.

괜한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이대로 계속해도 될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저렇게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를 내 작품에 담고 싶다는 마음 하나와 친구들의 응원, 그리고 완성되는 작품들을 보며 위안을 얻은 김수한은 계속 코코아엔터로 대본들을 보냈다.

물론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했지만.

‘아쉬운 점이 많은 대본들이긴 했지.’

자신의 대본 대신 서준이 골랐던 작품들이 얼마나 멋졌는지를 떠올려보면 이불을 발로 차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드디어 그 길고 긴 어둠이 끝나고 빛이 보였다.

“서준이가 내 작품을 선택해 줬어!!”

벅차오르는 감정에 이젠 아예 벌떡 일어나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는 김수한이었다.

혼자 사는 집이라서 다행이지 부모님과 누나가 있었다면 아주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봤을 거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마음껏 벅참과 감격을 느끼던 김수한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대본을 펼치고 펜을 들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기회인 만큼 허술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고 어색한 부분을 수정하고 좀 더 철저하게 분석해 다음 주 화요일에 있을 미팅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가고 싶었다.

“물론 이건 서준이가 선택한 대본이지만……!”

멋진 작품이라고 인정받은 것 같아 문득문득 가슴이 벅차올랐다.

김수한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래도 자주 으흐흐흐 웃거나 주먹을 꽉 쥐고 흔들긴 했지만) 대본을 읽어 내려갔다.

* * *

추운 2월이 지나고.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3월.

-내 1지망! 드디어 간다!

-내가 한예대생이라니!!

새롭게 입학한 신입생들의 기쁨과,

-와. 학교 가기 싫다.

=22 개 같은 개강.

-반편성 망했어ㅠㅠㅠ

겨울방학이 끝난 재학생들이 슬픔과,

-뭐, 직장인은 2월이든 3월이든 같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삼일절이 금요일이라 금토일 다 쉴 수 있다는 게 좋음.

1년 12달 변함없이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소소한 행복이 뒤섞이는 달.

특히 열정적으로 3월을 맞이하는 이들이 있었다.

-!!드디어 서준이 생일달!!

내 배우의 생일만을 기다리는 새싹들이었다.

-아. 심장이 너무 뛰어서 죽을 것 같아.

=나도. 뭐 하는지 아는데도 기대 중.

=아는 거랑 직접 보는 거랑 다르니까!

-생일 되면 20주년 기념 이벤트나 팬미팅 같은 거 공지해주겠지?

=이번엔 제발 당첨됐으면!

주로 [새싹부터]나 SNS에 글을 남기긴 했지만, 그 양이 많다 보니 흘러넘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오늘이 3월 1일, 삼일절이라서 더 그랬다.

KBC가 특선영화로 보여주는 [화]와 함께 서준의 이야기가 언급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서준 생일 3월 10일 아니었어? 오늘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ㅇㅇ이서준 생일은 다음 주 일요일. 아직 9일 남음.

=9일이면 꽤 남은 것 같은데 떠들썩하네?

=얘네 올해 1월 1일부터 기다려서ㅋㅋㅋ

=ㄴㄴ작년부터 기다렸을걸.

-새싹들 3월 10일에 가까워질수록 흥분도가 높아지고 있음ㅋㅋ

=22 아마 3월 10일까지는 계속 이럴 것 같다ㅋㅋㅋ

=3월 10일 지나서도 이럴 것 같은데. 데뷔 20주년이라서ㅋㅋ

그렇게 떠들썩하고 설레는 3월의 하루하루가 지났다.

“음. 뭐 하지?”

생일 축하를 받고 기뻐하는 서준을 보고 싶은 새싹들처럼, 서준도 생일에 무얼 할까 고민 중이었다. 올해가 20주년이 되는 만큼 새싹들과 함께 생일을 보내고 싶었다.

‘라이브 방송이 좋을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는 서준의 귀로 앳된 목소리들이 들렸다.

“선배님. 선배님은 이서준 선배님 보신 적 있으세요?”

“이야기해 보신 적 있으세요?”

3월 4일. 화요일.

한예대에 새로운 신입생들이 오는 날이었다.

다음 강의실로 이동하던 서준이 신입생들을 안내해 주고 있는 후배의 모습을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있지! 같이 강의도 들었는데.”

“와아!”

그 이서준 선배님이랑 같이 강의를 듣다니!

신입생들의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저희도 이서준 선배님이랑 같은 강의 들을 수도 있을까요?”

“그건 힘들 것 같아요. 1학년 강의는 안 듣거든요.”

서준이 불쑥 끼어들었다.

“어! 서준 선배!”

“!!!”

갑자기 출몰하는 서준에 익숙해서 조금 놀란 후배와 달리, 슈퍼스타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인 신입생들은 입을 쩍 벌리고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후배가 하하 웃었다. 자신도 신입생 때 이런 반응을 보였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 엄청 놀랐지.

서준이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연기과 이서준입니다.”

“으아아아안녕하세요!”

비명과 뒤섞인 신입생들의 인사에 서준과 후배, 지나가던 연기과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다음 날.

화 필름 사무실.

“일찍 왔네! 서준아! 어서 오세요!”

김수한 감독과의 미팅을 위해 화 필름에 온 서준과 최태우를 황도윤과 황지윤 남매, 박우진이 반갑게 맞이했다. 다른 직원들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수강정정 기간이라서 일찍 끝났거든요. 어제는 시간 꽉 채워서 수업했지만요. 아,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어요.”

자리에 앉은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수강정정 기간. 오랜만에 듣는 것 같네.”

“그러게.”

졸업한 지 몇 년 된 졸업생들이 아련하게 추억을 떠올렸다.

몇 시간을 꽉꽉 채운 수업, 밀려오는 과제, 망할 놈의 팀플, C만 뿌리고 B만 내리는 성적표, 다시는 보기 싫은 시험지까지.

“졸업해서 너무 좋다.”

“서준이 너도 빨리 졸업해.”

딱히 그립지는 않았다.

질색하는 졸업생들에 서준이 하하 웃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뭔데?”

박우진이 물음에 서준이 입을 열었다.

“박민형이라고 한예대 미술과 학생인데 아세요? 제 졸업연극도 도와주고 축제 때는 신전 프로젝트도 같이 했었는데.”

“알지. 패션위크도 봤는데. 아레시스 패션쇼에도 나갔다며.”

[패션위크]도, 이번 아레시스의 패션쇼도 떠들썩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서준의 후배라 기사도 많이 났었고.

“민형이가 영화미술 쪽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화 필름에 알바 자리가 있으면 부탁드리려고요.”

“찬성!!”

번개처럼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준과 사람들이 놀라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술팀 직원들이 아주 번쩍 손을 들고 있었다.

“알바가 아니라 정직원도 돼!”

참고로 한예대 출신으로, 미술과 천재 박민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박민형이라니! 박민형이 온다니!”

“팀장 자리도 줄 수 있어!!”

그 격렬한 반응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팀장 자리는 안 주셔도 돼요.”

영화가 제작될 때마다 팀과 팀원이 새롭게 구성되는 화 필름 운영방식 상, 팀장도 드문드문 바뀌지만, 영화미술을 이제 시작하는 박민형이 맡기에는 너무 큰 자리였다.

“미술팀이 저렇게 말하니 괜찮겠지. 난 찬성.”

박우진의 말에 황도윤이 덧붙였다.

“마침 잘됐네. 수한이 형 작품에 들어가면 되겠다. 서준이도 있어서 죽이 잘 맞을 것 같은데.”

“그러네. 민형 씨는 언제 올 수 있대?”

황지윤의 물음에 서준이 대답했다.

“4월부터 올 수 있다던데, 패션쇼도 끝나서 이번 주에 휴가 차 한국에 오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하면 될 것 같아요. 전화번호 알려드릴게요.”

서준이 박민형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줄 때,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김수한이었다.

“수한이 형도 일찍 왔네?”

“어, 긴장이 돼서 일찍……”

왔다고 말하던 김수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서준을 보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니, 잠깐. 서준이가 왜 지금 여기에 있어? 헛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약속 시간을 잘못 알았나?”

눈을 크게 뜨고 시계와 서준을 번갈아 보는 김수한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이에요, 수한이 형. 전 수업이 일찍 끝나서 일찍 왔어요.”

“아, 안녕. 서준아. 그래. 수업이 일찍 끝났구나.”

그 어색한 어투에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둘 다 일찍 왔으니까 미팅도 일찍 시작하면 되겠네.”

박우진의 말에 서준과 최태우, 김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를 회의실로 옮겼다.

서준의 맞은편에 앉은 김수한이 서준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조금 웃음이 나왔다.

‘먼저 와서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서준이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에 놀라 긴장감도 다 사라진 것 같았다.

편안해 보이는 서준을 보니, 괜히 긴장한 것 같아 조금 민망해지기도 했다.

“크흠. 그럼 이제 미팅 시작할까?”

“잠시만요. 그전에…….”

“응?”

고개를 갸웃하는 김수한에 서준이 자세를 바로 하고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김수한 감독님.”

김수한 감독이 몸을 멈칫했다.

서준에게 여러 번 감독님이라고 불렸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느낌인 것 같았다.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1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어느 고등학생에 대한 찬사였다.

고등학생의 행보를 지켜봐 온 아역배우의 진심이기도 했다.

“우리 같이 멋진 작품을 만들어 봐요.”

이제는 어른이 된 배우가, 마찬가지로 어른이 된 감독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에 17년 전 모자를 쓰고 있던 아역배우가 떠올랐다.

잠시 멍하니 서준을 보고 있던 김수한 감독은 뜨거운 것이 목 안에 걸린 듯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서준처럼 자세를 바로 했다.

“……반갑습니다. 이서준 배우님.”

하지만 목소리에 물기가 서려 있어, 김수한 감독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잘 알려주고 있었다.

“저도 배우님이 제 작품에 출연하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도 많았고 좌절한 때도 많았지만,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던 아역배우가 자신의 작품에 출연하기를 꿈꾸며 노력해왔다.

그리고 오늘.

그 배우가 자신을 감독이라고 불러주었다.

“같이, 멋지게 만들어 보죠.”

첫 팬에서 감독이 된 고등학생이 아주 환하게 미소 지었다.

* * *

“……오.”

하고 들려오는 소리에 감동에 빠져있던 김수한 감독이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여기 화 필름 사람들도 있었다.

“분위기 다 깼잖아!”

“어차피 깨질 분위기였어.”

짝짝짝! 소리 없이 손뼉을 치던 황지윤이 소리를 낸 황도윤의 옆구리를 쑤셨다. 박우진과 최태우도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주변 상황에 당사자이자 이 자리에서 가장 연장자인 김수한 감독은 민망한 듯 앓는 소리를 냈지만,

“그럼 이제 미팅 시작할까요?”

또 다른 당사자인 서준은 아주 즐거워 보였다.

“……그래. 그러자.”

잠깐 기운이 빠졌다가 돌아온 감독의 말에 배우, 제작사는 본격적으로 작품과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하반기부터 촬영할 수 있을 거야.”

“잘됐네요. 졸업하고 촬영 들어가면 되겠어요.”

그렇게 회의를 이어나가던 중, 서준이 물었다.

“이 배역은 어떤 배우로 할지 생각해 보셨어요?”

서준이 맡은 역할과 비슷한 분량을 가진, 중요한 캐릭터였다.

그에 김수한 감독이 대답했다.

“아, 그건 내정자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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