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32화
파리 패션위크가 성황리에 마무리되고.
프랑스 파리에서 곧바로 LA로 온 서준은 며칠 후에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을 기다리며 지인들을 만나러 다녔다.
“서준아!”
“이모!”
언제나 서준을 반갑게 맞아주는 나라 킴과 지인들도 만나고,
“봄 보러 가자. 프랑스에서도 봤는데, 그건 프랑스어 버전이었거든. 영어 버전도 보고 싶어.”
“그러지 뭐.”
여전히 열심히 운동 중인 잭 스미스도 만나, 함께 [봄]을 보기도 했다.
“준이랑 잭이다!”
“아빠! 저기 준이랑 잭이 있어!”
조그마한 아이들 사이에 껴 있는 커다랗고 유명한 운동선수는 눈에 띌 수밖에 없어 서준도 굳이 정체를 숨기지는 않았다. 영화가 시작하면 금세 모두 영화에 집중할 테고 말이다.
“근데 왜 준이 여기 있지?”
“청룡님한테 소원 빌러 왔나 봐!”
아직 청룡님의 정체가 서준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서준은 웃으며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었다.
[서준 리와 잭 스미스가 보러 간 영화는?!]
[LA에서 친구 잭 스미스 선수와 만난 배우 서준 리!]
당연히 기사도 났다.
-여기서 준의 목격담이!!
=LA에 갔어야 했나!
=난 LA인데도 못 봤어:((
그다음으로는 연주회를 준비 중인 제이슨 무어와 벤자민 모튼 교수님과 만났다.
전화나 메시지로 하지 못한 일상 이야기를 하다가 이내 바이올린과 연주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이 음악가들답다며 생각하며, 반쯤 바이올리니스트인 서준이 웃었다.
“이건 이번에 작곡한 건데, 한번 들어봐.”
제이슨 무어의 바이올린 연주도 들었다.
♩-♬-
아직 오지 않은 봄이 이곳에 내려온 듯 생명력이 가득한 자작곡이었다. 제이슨 무어의 선율에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크고 작은 봄꽃들이 피고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그 제이슨 무어가 연주하기엔 조금 낯간지러운 곡인 것 같다는 평을 들을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좋지 않나 싶었다
예술가는 변화하면서 성장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벤자민 모튼 교수와 함께 제이슨 무어의 바이올린 연주를 즐겁게 감상하던 서준은 이내 제이슨 무어에게서 바이올린을 건네받아 연주했다.
♬-♪-
제이슨 무어도 입가에 미소를 띠며 서준의 연주를 감상했다.
그렇게 지인들을 만나고 LA의 집으로 돌아와서는 차기작을 찾기 위해 코코아엔터에서 검토해 준 대본들을 살펴보았다.
“음.”
연기하고 촬영할 때를 빼면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대본들을 읽어 내려갔다.
다양한 장르, 다양한 캐릭터가 대본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을 연기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렇게 연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았고 저렇게 연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니면 아예 독특하게 연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함께 연기할 배우들은 어떤 사람들일지도 궁금했다.
어떤 식으로 캐릭터를 분석하고 어떤 멋진 연기를 보여줄지, 자신과 함께 연기할 때는 어떤 케미를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또 함께 촬영할 감독과 스태프들도 궁금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장면과 같은 장면을 떠올릴지, 아니면 색다른 연출을 보여줄지. 또 조명이나 음악, 후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져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기대가 됐다.
이제 막 대본을 받아 읽고 있는 것뿐인데도 설렘으로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 서준은 숨을 가볍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그래도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실실 나와 버렸다.
그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작품들을 살피고 있던 서준은 이내 아쉬운 얼굴로 다 읽은 대본을 덮었다.
“마음에 드는 건 없네.”
제법 재미있어 보이는 작품도 있었고 흥행할 것 같은 작품도 있었지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은 아쉽게도 없었다.
“뭐, 아직 검토 안 한 작품들도 있으니까.”
코코아엔터 1팀이 열심히 검토하고 있을 대본들 중에 좋은 작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서준은 내일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해 대본들을 정리했다.
* * *
[아카데미 시상식,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된 배우 이서준!]
[아레시스의 뮤즈, 배우 서준 리!]
[이레귤러스, 음악상, 시각 효과상 수상!]
[레드카펫 위의 서준 리(포토)]
-이번 옷도 정말 너무 좋았다.
=아레시스 뮤즈라고 할만함. 너무 잘 어울림ㅠㅠ(감격)
=22 수석 디자이너님께 큰절.
-이레귤러스 2관왕!!
=축하합니다! 이레귤러스!!!
-음악상 받을 만함. 히어로들 솔로 OST랑 이레귤러스 OST랑 다른 음악들도 다 잘 사용함.
=22 음악만 봐도 이레귤러스 영화 내용 다 떠오름.
-마린의 CG는 전설임.
=특히 그림자.
=제이는 진짜 살아있는 것 같음.
=22 같이 촬영한 거 아니냐고ㅋㅋㅋ
-레드카펫 영상 지금 4312번째 보고 있는 중.
=이제 막 시상식 끝났는데요ㅋㅋㅋ
“서준인 여전하네.”
“그러게.”
여전히 움직였다 하면 한국과 세상을 들썩이게 만드는 후배에 황도윤과 [화]로 이름을 알린 후에도 좋은 영화들을 만들고 있는 감독 황지윤, 박우진 감독과 미술팀 등, 변함없는 [화] 팀 팀원들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곳은 영화제작사, 화 필름.
독립영화 [화] 팀의 팀원들이 모여 만든 영화 제작사로, 만드는 작품 전부가 흥행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괜찮은 성적을 내며 순조롭게 운영 중인 회사였다.
한예대생들이 주요 멤버라서 그런지, 설립 5년 차인 지금까지도 대학 동아리처럼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는데, 배우인 황도윤이 소속사보다 화 필름을 더 자주 드나드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서준도 지난달 놀러 왔었고.
그리고 지금은 제2시사실에서 다 같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끝났지만.
“우리도 이제 점심 먹으러 갈까?”
“그냥 배달시키는 건 어때?”
영화관처럼 꾸며진 제1시사실과 달리, 제2시사실은 마치 동아리방처럼 한쪽 벽에 스크린을 걸어두고 테이블과 소파에 옹기종기 모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가끔 여기서 게임을 하거나 예능을 보는 직원들도 있을 정도로 편안한 공간이었다.
“뭐 먹을래?”
“우리 짜장면 먹어요.”
“짜장면 좋지!”
주문을 하고 얼마 후 짜장면과 음식들이 도착했다.
모두 테이블 가득 차려진 중국음식들을 맛나게 먹기 시작했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우리 또 뭐 시켰어요?”
“빠진 음식이 있나?”
가장 문과 가까이에 있던 황도윤이 얼른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낯선 배달원 대신 반가운 얼굴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나 왔어. 여기 있다고 들어서.”
“어서 오세요, 수한이 형!”
김수한이었다.
김수한 감독.
나 진의 첫 팬으로 서준의 사인을 받았던 고등학생.
그 이후 진로를 영화감독으로 정해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하고, 공익영상 [한 걸음]과 칸 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조선좀비물 [수려]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화] 팀과 김수한 감독이 만난 것은 5년 전으로, 독립영화 [화]를 처음 상영했던 한국독립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던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영화 제작도 같이 했는데, 독립영화 하나, 상업영화 하나로 두 작품 모두 성공해 꽤 많은 수익을 얻고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다.
“점심 안 드셨으면 같이 먹어요. 저희 많이 시켰거든요.”
“오스카 시상식 본다고 아직 못 먹긴 했어.”
“그럼 얼른 드세요!”
“밥이 제일 중요한데 밥을 안 먹었다니!”
젓가락을 건네는 팀원들에 김수한이 하하 웃었다.
“오늘은 어쩐 일이세요? 아, 대본 완성하셨어요?”
김수한 감독의 차기작도 화 필름과 함께할 예정이었다.
황지윤과 황도윤 남매, 그리고 팀원들의 반짝이는 눈빛에 김수한 감독이 웃으며 가방에서 대본과 USB를 꺼냈다.
“어. 완성했어. 뭐, 촬영 전까지 수정할지도 모르겠지만, 큰 틀은 안 바뀔 것 같아.”
“오!”
하고 감탄한 감독 황지윤과 박우진이 얼른 하나밖에 없는 대본으로 손을 뻗었다. 배우 황도윤도 얼른 쟁탈전에 끼어들었다.
“나도 좀 보자.”
“아, 같이 봐!”
그 복작복작한 모습에 다른 팀원들은 빠르게 USB를 챙겨 태블릿으로 파일을 옮겼다.
김수한은 변함없이 시끌벅적한 곳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짜장면 불겠다.”
“아!”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다들 젓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김수한의 차기작에 대해 물었다. 김수한도 배를 채우며 자세히 대답해 주었다.
“생각해둔 배우들은 있어요, 형?”
박우진의 물음에 김수한 감독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코코아엔터에 보냈으면 하는데. 1팀에.”
“……오!”
여기에 코코아엔터 1팀이 배우 이서준 전담팀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 * *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서준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음 주에 개강하긴 하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1팀이 검토해 준 대본들을 읽기 위해 코코아엔터로 출근했다.
서준이 프랑스와 미국에 있는 사이, 대본이 제법 많이 들어왔는지 서준의 연습실 한쪽에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 보면 질릴 만한 양이었겠지만,
“좋은데?”
서준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얼른 의자에 앉은 서준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대본을 집어 들었다.
팔랑- 팔랑-
페이지가 넘어갔다.
서준의 검은 눈동자가 때로는 흥미롭게 때로는 날카롭게 문장과 단어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서준의 손이 멈추었다.
“음.”
페이지를 얼마 넘기지도 않았는데, 만족스러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서준은 좀 더 천천히 그 대본을 계속 읽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읽은 후 다시 앞장으로 돌아와 다시 한 번 더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재밌네.”
이걸로 하자!
이제 첫 대본으로 아직 남아있는 대본들이 많았지만, 서준은 활짝 웃으며 다른 때와 변함없이 빠른 결정을 내렸다.
서준은 다시 페이지를 넘겨 대본의 맨 앞장을 살펴보았다. 미처 보지 못했던 정보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어떤 감독이고 어떤 작가인지, 그리고 제작사가 정해졌는지, 정해졌다면 어떤 제작사인지 궁금했다.
“오!”
그리고 반가운 이름들을 발견했다.
[감독: 김수한]
[제작사: 화 필름]
어린이 연극 [봄] 이후, [한 걸음] 때 서준과 재회한 인연으로 가끔 안부를 주고받고 있는 김수한 감독과 가끔 놀러 가는 영화제작사 화 필름이 이 대본의 주인이었다.
김수한 감독과 화 필름이 친하게 지낸다는 것도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되네.”
수한이 형이 계속 감독을 하는 한, 화 필름이 계속 영화를 만드는 한.
언젠가 배우인 자신과 함께 영화를 만들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동시에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참 신기한 인연이야.”
영화계가 넓으면서도 좁다는 게 이런 때 쓰는 말인 듯했다.
“차기작은 이걸로 하고 싶어요, 태우 형.”
서준이 연습실에 들른 최태우에게 김수한 감독의 대본을 보여주며 말했다. 최태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할 것 같았어. 내가 봐도 재미있더라고. 안 이사님도 추천하셨고.”
“다호 형이요?”
“응. 그게 이틀 전에 들어온 대본인데 제일 먼저 검토하라고 하셨거든. 네 차기작은 이걸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밀린 대본들이 많은데도 김수한 감독의 대본부터 검토한 1팀이었다.
“뭐, 결정은 서준이 네가 하는 거니까 더 말씀은 안 하셨지만.”
그 대신 [뉴 이클립스] 때 그러했듯, 대본들 중 맨 위에 놓아두었다. 다른 작품들보다 먼저 서준의 마음에 들도록.
배우를 아주 잘 아는 베테랑 매니저의 약간의 꼼수였다.
“그럼 내가 화 필름에 전달할까? 아니면 서준이 네가 할래?”
“아뇨. 1팀에서 보내주세요.”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화 필름과도, 김수한과도 아는 사이긴 하지만,
“감독과 배우로서 만나는 자리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