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30화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의 등급이 중하급에서 중급으로 상승합니다.]
그 알림이 나타난 건 극장판 [봄]이 한국과 해외(영어판의 청룡님도 서준이 더빙했다.)에서 개봉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수빈아, 졸업 축하해.”
“수빈이 오빠, 축하해!”
수빈이의 중학교 졸업식이 끝난 다음 날이기도 했다.
“고마워, 서준이 형! 은수도 고마워!”
여울예중 졸업식 날에는 수빈이네 가족들이 모여 축하했고, 오늘은 서준과 은수의 가족이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으며 졸업을 축하했다. 피로 이어진 가족만큼이나 단란한 가족들이었다.
“이거 수빈이가 졸업 공연한 거야!”
김희상이 들뜬 얼굴로 거실 TV로 졸업식 때 찍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수빈이 또한 서준이 그랬던 것처럼 졸업식에서 졸업공연을 한 것이었다.
“오케스트라에서 솔로를 맡다니 대단하네!”
서준에게도 익숙한 무대 위.
아마도 음악과일 학생들이 자신의 악기를 들고 연주하고 있었고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수빈이가 홀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영상을 통해서도 이 정도의 선율이 들려오는데, 직접 연주를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밥 먹는 것도 잠시 멈추고 모두 연주에 빠져들었다.
영상 속 교복을 입은 수빈이가 연주를 끝내고 오케스트라와 같이 인사를 하자, 짝짝짝!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서준과 가족들도 짝짝! 박수를 쳤다. 수빈이가 뿌듯한 얼굴로 에헤헤 웃었다.
“다른 애들도 잘하는 것 같더라.”
“맞아. 다들 너튜브에 올라간다고 엄청 열심히 했어.”
서준의 말에 수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무대에 올린 연극 [거울]이 너튜브에 올라갔던 것처럼 수빈이의 공연도, 다른 공연들도 여울예중의 너튜브 채널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서준의 유명세에 연극 [거울]이 유명해졌듯 수빈이의 유명세에 오케스트라 영상도 유명해질 터였다.
김수빈.
벤자민 모튼 교수와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의 제자이자, 참가하는 세계적인 콩쿠르마다 우승을 차지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음악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었고,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 또한 수빈의 연주 영상을 찾아보고는 했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본 음악계 관계자 중 하나가 오케스트라를 보고 ‘쟤 좀 잘하네.’ 하고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열심히 안 할 수가 있나.
때문에 모두 열심히 했고, 멋진 연주를 들려줄 수 있었다.
“그래도 자작곡이 아닌 건 조금 아쉬워. 서준이 형은 직접 대본까지 만들어서 공연했었잖아.”
“나도 원작소설이 따로 있었잖아.”
수빈이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고등학교 때는 꼭 자작곡으로 연주해야지! 그리고 나도 친구들이랑 은하수센터에서 유료 연주회를 할 거야!”
하고 다짐하는 김수빈에 모두 웃으며 꼭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이야기 나누고 있을 때,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의 등급이 중하급에서 중급으로 상승합니다.]
알림이 울렸다.
서준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어쩐지 이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조금 늦은 편이지.’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가 사용됐던 건 17년 전.
어린이 연극 [봄]으로 ‘능력 변형’이 있었던 이후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전 세계 수많은 아이들이 수백, 수천 번을 봤을 텐데 말이다.
‘그건 뭐 다른 능력도 그러니까.’
특히, [아기 먹방]의 [(선)요정의 반짝이].
이 능력은 서준의 나이(만 24세/아직 생일 안 지났다.)만큼이나 오래,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봤음에도 최하급 등급에서 등급이 상승하지 않고 있었다.
‘시간만 따지자면 그건 이미 상급이 됐어야 해.’
아니, 최상급도 가능할지도 몰랐다.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올라가는 [아기 먹방]의 조회수를 떠올린 서준이 작게 웃었다.
등급이 상승하는 데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다.
‘조건이 따로 있지.’
능력의, 삶의 책의 주인이 생전 바라던 소원.
그 소원을 이루어주면 경험치가 쌓이고 등급이 상승한다.
물론 그 소원이 아주아주 상세해서 ‘아, 1점이 모자라. 불합격!’ 하고 까다롭게 채점하는 능력이 있을 수도 있고, ‘뭐, 이 정도는 괜찮지. 합격!’ 하고 비슷하기만 하면 등급을 상승시켜 주는 능력이 있을 수도 있었다.
후자는 당연히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었다.
그만큼 마음에 들면 대충대충 등급을 상승시키는 능력도 없을 터였다.
물론 원래 등급이 ‘최상급’이었던 것도 있겠지만.
‘블루드래곤 해츨링은…….’
아마도 전자가 아닐까.
수호용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단순한 소원들(과자나 장난감)에는 반응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한 소원(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든가 무사했으면 좋겠다든가)을 빌 때야 비로소 경험치가 쌓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애들 중 몇 명이 그런 소원을 빌까 싶지만.’
그래서 17년이나 걸린 것일지도 몰랐다.
‘섬섬생활도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
태풍을 멈춰달라는 어마어마한 소원도 들어준 청룡님이니, 다른 큰 소원들도 들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비는 이들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뭐라도 믿고 싶고, 누구에게라도 기대고 싶은 마음이니까 말이다.
하여튼.
나쁜 일은 아니었다.
‘블루드래곤 해츨링도 기뻐하고 있을 것 같고.’
빙그레 웃은 서준은 다시 수빈이의 졸업축하 파티에 집중했다.
* * *
며칠 후에는 한예대 졸업식이 있었다.
강재한, 한지호, 전성민과 동기들이 대부분 졸업한 날이었다.
졸업식은 가족들과 보낸 세 사람은 다음 날 서준과 먼저 졸업한 양주희, 김주경, 박시영을 만나러 나왔다.
“졸업 축하한다!”
“축하해!”
떠들썩했다.
“대학까지 졸업하니까, 정말로 ‘학교’를 졸업한 느낌이라 조금 이상하네.”
“그러게. 뭔가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그렇게 정해져 있던 길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에 먼저 졸업한 양주희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사회인이 된 거지.”
“사회인…… 좀 멋진 듯?”
한지호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서준이 혼자 학생이네.”
“그러게. 학생이니까 수업 때문에 바쁘겠다.”
“학생이니까 과제도 해야 하고.”
“유난히 학생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것 같은데?”
가늘어진 서준(대학생)의 눈길에 친구들(사회인)이 얼른 손을 저었다.
“우리가?”
“그럴 리가!”
하고 말하면서도 키득거리는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서준도 웃고 말았다.
“서준이 너도 얼른 졸업해.”
“맞아. 다 같이 놀아야 재미있잖아.”
“황금세대가 이렇게 떨어질 수는 없지!”
김주경의 말에 다들 빵 터졌다.
시끌벅적 떠들던 서준과 친구들은 금세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파리 패션위크라. F/W시즌이면 가을옷, 겨울옷 보여주는 거지?”
“응. 맞아.”
2월 중순.
프랑스에서 일주일 동안 패션쇼가 열린다.
세계 4대 패션위크(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중 하나로 가장 규모와 영향력이 큰 파리 패션위크였다.
그곳에 1년간 봉문했던 패션브랜드 아레시스가 참가할 예정이었고, 서준은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민형이가 디자인한 옷도 올라온다며. 엄청 좋아하던데.”
[거울]과 [MOEB-436] 단톡방에서 환호성을 지르던 박민형을 떠올린 서준과 친구들이 웃고 말았다.
“권도혁 디자이너랑 유제빈 디자이너가 만든 옷도 런웨이에 선다고 했지?”
“오. 떠들썩하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패션위크]라는 방송으로 인기를 끌고 아레시스의 인턴으로 들어가 1년간 감감무소식이다가 파리 패션위크에서 등장하는 거니, 떠들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 서준이까지 있잖아.”
패션쇼 참가는 처음인 만큼 시끌벅적할 터였다.
“그럼 파리 갔다가 바로 LA로 가는 거야?”
박시영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시간이 좀 남긴 하지만 한국 왔다가 가는 것보다는 LA에서 지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확실히 그게 낫긴 하지.”
패션위크가 끝나고 바로 스케줄이 하나 더 있었다.
겨울 내 서준이 했던 투표의 결과가 나오는 날.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이레귤러스가 받았으면 좋겠다!”
“그러게! 아, 이번에는 뭐 입고 가?”
“WTV 영화제에서 입었던 거 잘 어울렸었는데.”
친구들의 물음에 서준이 이틀 전 도착한 의상을 떠올리며 웃었다.
“이번에도 아레시스에서 보내줬어. 볼래?”
“오! 볼래!”
서준이 내민 휴대폰에 뜬 서준의 시착 사진을 본 친구들이,
“이번에도 레전드 추가되겠구나.”
하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 * *
프랑스 파리.
일주일간 열리는 패션쇼로 도시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패션쇼를 열어야 하는 브랜드들도 패션쇼를 보고 F/W시즌을 판단해야 하는 패션관계자들도 이번 패션쇼로 매력을 뽐내야 하는 모델들도 모두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아레시스가 바빴다.
안 그래도 아무 활동도 없었던 1년 동안 도대체 뭘 했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데다가, WTV 영화제에서 배우 서준 리가 입고 나왔던 의상이 엄청난 화제가 되면서 사람들의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의 아니게 예고편이 되어버렸군.”
“그러게요.”
비서에게 웃으며 말하는 다니엘 티베. 그러나 눈은 날카롭게 패션쇼장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다.
세계 4대 패션쇼 중 가장 영향력 있는 파리 패션위크.
자유롭고 화려하며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세계의 트렌드를 이끄는 이곳.
특히 패션쇼는 그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무대라서 더더욱 중요했다.
그래서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는 없었고 일분일초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다니엘 티베는 시간을 냈다.
“어서 오십시오, 준!”
자신의 뮤즈를 맞이하기 위해.
“아레시스에 정말 잘 오셨습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패션쇼장을 나와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 다니엘 티베는 서준 리를 기쁘게 맞이했다.
“잘 지내셨어요, 다니엘?”
“물론 잘 지냈지요.”
매니저 최태우가 밖에서 패션쇼 일정에 대해 묻는 사이, 서준과 다니엘 티베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을 예정인 의상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번에도 정말 멋지더라고요.”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제 역작이죠.”
다니엘 티베 수석 디자이너의 얼굴에 가득하던 웃음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때도 직접 가고 싶지만, 스케줄이 있어서 말이죠.”
1년 만의 복귀라 뺄 시간이 없었다.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다니엘 티베에 서준이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원래 수석 디자이너가 오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도 저희 디자이너와 민형이 갈 겁니다. 아, 민형의 옷들이 패션쇼에 오른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까, 준?”
“네. 민형이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다니엘 티베도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디자이너들에게 파리 패션위크는 꿈이니까요. 민형의 옷들도 정말 좋습니다.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오. 정말요?”
“네. 그리고 이번 패션쇼장도 민형과 함께 디자인한 겁니다.”
“민형이랑요?”
“정식 디자이너를 제안하니, 민형은 옷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무대미술을 하고 싶다고 거절하더라고요.”
그 말에 깜짝 놀란 다니엘 티베 수석 디자이너가 박민형에게 너는 옷을 더 잘 만든다고 이야기해도 박민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만 했다. 박민형과 친한 두 인턴도 다른 디자이너들도 설득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끝내 ‘패션쇼장을 디자인해 봐라.’라고 했더니,
“옷만큼이나 멋진 패션쇼장을 디자인하더군요.”
그 눈부신 재능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아레시스였다.
“그리고 그 디자인을 수정해서 이번 파리 패션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민형은 정말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쉬움이 가득한 다니엘 티베의 말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어쩌면 언젠가 영화와 연극에서 함께할지도 모를 박민형 미술감독의 모습이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