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27화
“반갑습니다, 이서준 배우님! 예전부터 꼭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제일 감탄하면서 본 게 연극 봄이었거든요.”
음향감독이 들뜬 얼굴로 말했다.
“1회차부터 8회차까지 청룡님의 목소리나 성격이 전부 달라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소리 하나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것도요. 그런데 그 목소리를 낸 게 8살 아역배우였다니!”
목소리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기사로 보니까, 그 청룡님들의 캐릭터를 만든 것도 당시 출연했던 아역배우들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네. 맞아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다 같이 의논해서 만들었었죠.”
음향감독의 감탄이 더욱 커졌다.
그때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종합해 8개의 청룡님을 완벽하게 만들어낸 것이 바로 여덟 살의 이서준이었다.
“정말이지……!”
“자자,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다들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또 한바탕 감탄을 쏟아내려던 음향감독을 감독이 말렸다. 아차 한 음향감독이 민망한 듯 하하 웃더니 앞장서 걸어갔다.
“저희가 늦게 온 건가요?”
서준과 함께 그 뒤를 따라가던 최태우가 물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온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오전에도 녹음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쉬는 시간입니다.”
감독의 말에 음향감독이 덧붙였다.
“다들 이서준 배우님을 보려고 점심 먹고 바로 오신 거죠.”
아하.
서준과 최태우가 작게 웃었다.
똑똑-
감독은 노크 후 녹음실의 문을 열었다.
녹음실 안에서 곧 도착할 서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스튜디오 꿈 직원들과 녹음실 직원들, 그리고 성우들이 서준의 등장에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웃으며 인사하는 서준은 평범한 차림인데도 반짝반짝 빛나는 게 스타 그 자체였다.
“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직원들과 성우들도 얼른 인사했다.
“이쪽은 주인공 봄 역을 맡은 성우, 김윤지 씨예요.”
감독이 성우들과 직원들을 소개해 주었다.
서준은 봄 역의 김윤지 성우 말고도 다른 캐릭터 성우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애니메이션 [봄]은 ‘봄’이 혼자 청룡님을 만나는 연극 [봄]과 달리, 여의주를 모으며 만난 친구들과 함께 청룡님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오늘 함께 녹음할 성우도 세 명 더 있었다.
“그럼 이제 잠깐 이야기 좀 나눠볼까요?”
본격적인 녹음에 앞서 짧은 디렉팅이 있을 예정이었다.
녹음실 한쪽에 있는 소파에 성우들과 감독, 음향감독이 자리를 잡았다. 손에 오늘 녹음할 대본이 들려 있었고, 탁자에는 각자 마시던 음료가 놓여있었다.
“마실 것 드릴까요? 오렌지주스도 있어요!”
서준의 앞만 비어 있어, 직원 중 하나가 서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미니 냉장고에서 시원해 보이는 오렌지주스를 꺼냈다. 서준을 위해 특별히 사 온 것이었다.
그에 서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주스는 녹음이 끝나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은 물이면 충분해요.”
……아.
그 말을 이해한 사람들이 탄성을 흘렸다.
물과 주스의 차이가 목소리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좀 더 좋은 목소리로 녹음하고 싶은 것이리라.
“네! 여기 물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으며 감사 인사를 하는 서준에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직원 하나가 조용히 자리를 잡은 최태우에게도 음료를 권하는 사이.
감독들과 성우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성우들이 앞서 많은 녹음을 하면서 캐릭터가 완벽하게 잡혀 있는 터라, 주로 서준에게 향하는 디렉팅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기 위해 파인패드로 다른 성우들이 녹음한 앞장면들을 살펴보기도 했고, 지금부터 서준이 녹음할 장면들을 보기도 했다.
“여기서 서준 씨가 말씀하시면 됩니다.”
“윤지 씨가 먼저 대사를 할 거니까 타이밍 맞추는 게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아직 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화려한 영상이 서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습을 위해 전달받았던 영상보다 확실히 완성되어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서준은 감독과 함께 영상을 돌려보며 타이밍을 체크했다. 연습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두 번 보는 걸로도 충분했다. 또 성우들과 함께 연습해 보기도 했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연습에 만족스럽게 웃고 있던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씀드렸던 대로 두 가지 버전으로 녹음할 예정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연극처럼 여덟 가지 버전으로 녹음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이게 영화라서요.”
굿즈라면 몰라도 청룡님 버전을 여덟 가지나 낸다면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힘들어할 수도 있었다.
“8개를 상영관에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도 문제죠.”
영화관별로 나눈다면 다른 버전의 [봄]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다른 영화관까지 이동해야 했고, 상영관별로 나눈다면 다른 스크린까지 차지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날짜별로 나눈다면 이미 지나간 버전은 못 본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면 큰일이죠. 애들은 자기가 꽂힌 버전만 보고 싶어할 수도 있거든요.”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래서 적당히 타협한 것이 두 가지 버전의 청룡님이었다.
첫 번째 버전은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청년 느낌의 청룡님이었고, 두 번째 버전은 중후하고 묵직한 중년 느낌의 청룡님이었다.
‘잘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음향감독이 들뜬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짧고 가벼운 연습이었음에도 서준은 그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청룡님 특유의 신비로움이 담겨 있는 것은 당연했다.
‘발성도 발음도 정말 좋았지.’
원래도 걱정은 전혀 안 했지만, 더더욱 믿음이 갔다.
본격적인 녹음에서는 어떤 목소리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제 녹음 시작할까요?”
그렇게 짧은 디렉팅이 끝나고, 본격적인 녹음이 시작되었다.
녹음실 직원들이 기계 앞에 앉고, 서준과 성우들은 방음벽이 세워진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녹음실 안쪽에는 마이크가 세 대가 있었고 성우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있었다. 또 영상을 볼 수 있는 모니터도 있었다.
모니터를 보며 각자의 순서에 맞춰 마이크 앞에서 목소리를 내면 되는 거였다.
일견 쉬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반 박자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도 더 좋은 느낌이라면 영상 쪽을 수정할 테니까, 최대한 캐릭터들의 느낌을 살려주세요.
투명한 창 너머.
자리에 앉은 감독이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완성된 작품을 더빙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 중인 작품을 더빙하는 것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편집에 따라서 삽입되거나 삭제되는 장면들도 있을지 모른다.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과 성우들에 감독은 녹음의 시작을 알렸다.
“그럼 녹음 시작하겠습니다.”
스튜디오 꿈 직원들과 최태우가 카메라를 들어 녹음 현장을 촬영했다. 나중에 홍보용으로 쓸 생각이었다.
녹음실 안이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해지고, 모니터로 영상이 흘러나왔다.
서준과 김윤지가 대본을 들고 마이크 앞에 섰다.
서준은 대본을 들고 연기를 한다는 게 재미있었다. 표정이나 동작 대신 목소리로만 표현하는 것도.
‘연극할 때도 이랬지.’
아무도 보지 않는 무대 뒤에서 마이크를 들고 청룡님을 연기했었다.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 옛 추억을 떠올린 서준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능력을 발동했다.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가 발동됩니다.]
당시 마지막 연극을 하면서 변형되었던 능력.
덕분에 드래곤으로 변하는 단점이 사라져, 이렇게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팬미팅에서도 썼었지.’
그땐 청룡님의 인간 버전이었다.
즐거워하던 새싹들을 떠올린 서준이 영상의 타이밍에 맞춰 입을 열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아이들이 기뻐하길 바라면서.
블루드래곤 해츨링이 한 번 더 수호용으로서의 꿈을 이루길 바라면서.
신성함과 경외감, 단호함과 인자함이 섞인 용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와……”
녹음실 밖.
서준이 입을 열지 않았을 때도 순식간에 변한 그 분위기에 놀랐던 감독과 음향감독, 직원들은 서준이 대사를 뱉자마자 입을 쩍 벌렸다. 녹음실 안 성우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진짜…… 청룡님이네…….”
아니, 분명 사람인데 분위기가 미쳤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이런 느낌일까.
조금 두려우면서도 어쩐지 우러러보게 되는 경외감과 묘한 것을 보는 듯한 신비함, 그리고 나와 다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질감.
하지만 기분 나쁜 이질감은 아니었다.
어쩐지 따듯하면서도 든든한, 마음 편하게 의지하게 될 것 같은 초월적인 어떤가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생전 처음 겪어보는 느낌은 아니라 완전히 넋을 놓지는 않았다.
애니메이션 [봄]을 제작하기 위해 몇 번이고 봤던 어린이 연극 [봄]의 청룡님도 이런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박력이 다르네.’
연극 [봄]은 영상으로 한 번 걸러져서 그런가.
두 눈으로 직접 보는 서준의 연기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문득, 감독은 아쉬워졌다.
서준이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도 한 번 필터링 되어 대중들에게 보여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8번이나 직접 본 사람도 있다고 했지.’
다른 연극들도 굉장했을 거다.
다음에 꼭 서준의 연극을 보러 가자고 결심한(자리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감독이 곧 마이크 버튼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서준의 연기에 놀라 타이밍을 놓친 성우들이 서준을 보며 감탄하며 엄지를 척 들어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진짜 순식간에 바뀌네요!”
“뒤에서 보는데 뒷모습까지 연기하는 것 같았어요.”
진심 가득한 감탄에 서준이 하하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자자, 다시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감독에 네! 하고 대답이 들려왔다.
다시 녹음을 시작한 성우들은 어쩐지 평소보다, 연습했을 때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여긴 어떻게 왔지?”
정말 청룡님을 만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 *
하루만에 녹음이 끝난 녹음본이 스튜디오 꿈으로 전달되었다.
대표와 팀장들이 들뜬 얼굴로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대사도 영상도 질릴 정도로 봐서 잘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목소리가 들어갔다고 하니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청룡님 목소리가 제일 궁금했다.
그렇게 모두 기대가 가득한 표정으로 스크린에 나타난 녹음본을 시청했다.
와!
저도 모르게 나오는 감탄이 서준과 성우들의 목소리를 가릴까 싶어 모두 입을 틀어막았다.
아직 효과음이나 음악은 안 들어가고 목소리만 들어갔는데도 영상은 마치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상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모두 하나둘 입을 열었다.
“진짜 너무 좋네요……!”
“더빙이랑 캐릭터도 전혀 이질감이 없고, 아니, 이질감이 들기는커녕 진짜 영상 속 청룡님이 말하는 것 같습니다.”
“빨리 음악이랑 효과음이 들어간 영상도 보고 싶네요!”
“한 번 더 볼까요?”
그렇게 세 번을 더 본 팀장들이 만족스럽게 웃다가 눈을 데굴 굴렸다.
다 좋은데.
정말 다 좋은데.
“……지금 와서 수정하는 건 안 되겠죠?”
청룡님과 성우들의 열연에 비해 영상이 조금 부족해 보였다.
“저도 그 생각했습니다. 청룡님의 움직임이 조금 어색한 것 같지 않았습니까?”
“아뇨. 애니메이팅은 괜찮던데요! 그것보다 라이팅이 별로지 않아요?”
“모델링. 모델링을 수정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모델링팀 팀장의 말에 모두 사색이 된 얼굴로 얼른 고개를 저었다.
건물의 기초공사에 해당하는 모델링팀이 수정한다면 다른 팀들도 다 바꿔야 했다.
“수정하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개봉이 다음 달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시무룩해진 팀장들의 모습에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꼭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데, 필요하다면 수정해야죠.”
그에 반색한 팀장들은 단번에 사무실로 달려가 녹음본을 직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유라도 알고 야근을 하면 욕은 덜 먹을 테니까 말이다.
“여기도 고치죠.”
“여기엔 좀 더 효과를 주는 거 어때요?”
“청룡님 목소리의 강약에 따라서 주변이 변하는 것도 멋질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직원들이 더 열정적이었다.
야근 수당도 잘 챙겨주는 데다가 모두가 감탄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 건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길 몇 주.
[연극에서 3D애니메이션으로! ‘봄’ 오늘 대개봉!]
2월.
극장판 [봄]의 개봉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