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26화
-아, 연예인이 더빙하는 거 싫은데.
=나도. 성우도 있는데 왜 배우나 가수나 개그맨이 더빙하냐고.
=22 다 마케팅 때문이지.
=마케팅도 안 되는 것 같은데.
=ㄹㅇ다들 싫어하는 거 봐.
=우리의 시간도 작품은 좋았는데 더빙 때문에 난리였고.
그동안의 기억 때문에 연예인 더빙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있었다.
좋아하는 작품이 연예인 더빙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올랐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거나(자막판이 있어 망하지는 않았다.) 또는 ‘연예인들 최악의 더빙들’ 같은 게시물을 본 사람들일 터였다.
하지만 이번 극장판 [봄]은 조금 달랐다.
-? 원래 청룡님을 맡았던 게 이서준이잖아?
=22 이서준이 다시 맡는다는데 뭐가 문제야?
=33 오히려 좋아할 일 아니냐고.
애초에 원작이 되는 어린이 연극 [봄]에서부터 청룡님을 맡았던 서준이 다시 맡게 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연예인 더빙 싫어하는 것도 이해는 하는데, 솔직히 잘하시는 분들도 많아.
=캐슬에 나오는 엄마도 배우가 한 거고, 드루이안의 앵무새도 개그맨이 한 거임.
=헐. 그랬음?
=ㅇㅇ못한 것만 계속 언급되고 글이 올라와서 그렇지 잘한 사람도 많음.
-근데 우리의 시간이 유난히…… 못하긴 했어.
=그건 인정ㅋㅋ
그러면서 그동안 더빙을 너무 잘해서 전문 성우가 맡았을 줄 알았던 연예인들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는 배우들도 애니메이션 더빙 많이 하잖아.
=22 시즌 스튜디오 작품도 그렇고.
마린 소속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시즌 스튜디오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에 대한 정보들도 올라왔다. 유명한 배우들도 있었고 얼굴만 아는 배우들도 있었다.
-와. 너무 잘 어울려서 배우가 한 건지는 몰랐는데.
=22 전문성우인 줄.
-한국만 오면 이상해지는 건가.
=ㄴㄴ그것도 작품마다 다름.
=감독, 관계자가 알아서 조정해줘야 하는데 1도 신경 안 쓰는 듯.
=연예인들도 대충하는 것 같고.
=ㄹㅇ보는 사람만 괴롭지.
다시 서준과 청룡님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대충이라는 말이 나와서 그런데, 서준이가 대충할 것 같냐고ㅋㅋ
=ㄹㅇ초딩 때 그레이 연기하려고 바이올린도 배웠잖아ㅋㅋ
=이것도 연기라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 것 같다ㅋㅋㅋ
-그리고 연극 청룡님도 생각해 보면 더빙 아니야? 얼굴은 1도 안 보여주고 목소리만 나오잖아.
=그건 그러네ㅋㅋㅋ
=물론 연극이랑 애니메이션이랑은 느낌이 다르긴 하겠지만ㅋㅋ
음.
배우 이서준이 지금 5주째 연습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할까(물론 코코아엔터와 이야기하고 난 후.), 고민하던 강사는 알아서 사그라지는 상황에 이내 관두기로 했다.
극장판 [봄]이 개봉하면 기억도 안 날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코코아엔터가 알아서 하겠지.’
서준을 가르친다고 다섯 번 정도밖에 가 보지 못한 코코아엔터였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소속 연예인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이서준 배우가 그랬다.
복도에서 직원들과 마주칠 때마다 한두 마디씩 인사를 나누는 모습들이 굉장히 익숙하고 편해 보였다. 그리고 표정에서 서로에 대한 친근함과 신뢰, 믿음이 느껴졌다.
‘좋은 회사야.’
이력서를 내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사라졌다.
강사가 웃으며 버스 밖을 내다보았다.
“엄마! 눈!”
“그러네. 눈이 오네.”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마도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 * *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반짝이는 트리 보러 오세요!]
[ㅁㅁ백화점에 산타할아버지와 루돌프 등장!]
[블루문, 크리스마스 캐럴 음원 순위 3주째 1위]
[SBC 연예대상 수상자, 워킹맨 박영진!]
[KBC 연기대상, 드라마 ‘위시리스트’ 싹쓸이!]
[MBS 가요대제전 음향사고? 버밀리온의 특별무대!]
-백화점 앞에 크리스마스트리 있던데 예쁘더라!
=사진 찍으러 가니까 사람 진짜 많았음.
-블루문 크리스마스 캐럴 좋더라. 듣자마자 크리스마스 이브 된 것 같고.
=왜 이브임?
=이브가 제일 좋지 않음? 여행가기 전날이 제일 설레는 것처럼!
-근데 블루문 크리스마스 캐럴은 왜 냈대? 요즘 내는 곳 별로 없지 않나?
=걔네 이제 슬슬 군대 가야 할 때라서.
=……어?
=리더가 26살임. 28살까지는 가야 하니까 내년이나 내후년에 입대해야함ㅋㅋ
=팬들 이야기로는 동반 입대할지 따로 갈지 이야기 중일 것 같다고 하더라.
=오. 아직 안 갔구나. 난 이서준 친구들이라서 갔다 온 줄.
=서준이가 좀 빨리 가긴 했엌ㅋㅋ
-박영진 이걸로 연예대상 몇 번째지?
=이젠 아무도 안 셀 듯ㅋㅋㅋ
=그냥 한 해 특별한 인물이 없으면 박영진이 받는 거잖아ㅋㅋ
-섬섬생활을 지상파에서 했으면 분명히 상 받았겠지?
=22 안 받았을 리가 없음. 특별상 만들어서라도 이서준, 백건하, 민재원 다 준다.
=ㄹㅇㅋㅋ
-버밀리온 무대 좋더라. 라이브였지?
=ㅇㅇ코코아엔터 소속 가수들은 다 노래 잘해서 너무 좋음.
-근데 라이브 인증이 웃김. 음향사고 때문이었잖아ㅋㅋ
=?음향사고가 있었음?
=이것 봐.(링크)
링크를 타고 넘어간 너튜브 채널의 영상은 이미 조회수 200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재생버튼을 누르자, 올해 5주간 1위를 한 버밀리온의 노래가 첫 시작부터 안정적이고 화려하게 들려왔다.
-역시 콬아 소속.
-이제 데뷔 2년 차라는 게 안 믿긴다.
노래, 댄스, 랩.
모든 게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하나로 어우러져 멋진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표정과 눈빛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이제 나온다.
유명한 노래이니만큼 모두 이제 곧 고음을 지르는 클라이맥스 부분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문제가 생긴 건 그때였다.
목소리와 함께 터져줘야 하는 선율이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모든 소리들이 잡아먹힌 듯한 침묵 속.
정말 잠깐 사이 상황을 파악한 메인보컬은 당황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멤버들도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무대를 이어나갔다. 보컬 몇 명은 화음을 깔아주기도 했다.
그게 꼭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 같아서, 당시에는 대부분 계획된 무대라고 생각했다. 클라이맥스가 끝나자 타이밍 좋게 돌아온 음향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되었다.
물론, 금세 음향사고 때문이라는 게 밝혀졌지만 말이다.
-카메라 무빙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더니, 음향사고ㅋㅋㅋ(안웃김)
-그래도 진짜 레전드 무대였다.
=진짜 전혀 당황 안 해서 연출인 줄 알았음.
=이게 데뷔 2년 차 아이돌 무대입니다!
=재데뷔한 애들 생각하면 더 경력이 길지 않음?
=경력이 길어도 이렇게 대처하기는 쉽지 않지.
-하여튼 버밀리온 대단하다는 건 알겠다.
=22 라이브도 엄청나다는 거.
=얘네도 콘서트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언제 한대?
=곧 할 듯.
사람들이 감탄했듯, 서준도 당시 버밀리온의 완벽한 대처로 마무리된 무대를 생방송으로 보며 감탄했었다.
‘또 등급이 상승하는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버밀리온에게 새겨진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지금보다 더 환경이 열악했던 브라운블랙 때 여러 가지 일을 겪은 게 아닌가 싶었다.
‘다행인가?’
능력이 좋아진다는 건 좋은 일이긴 했지만 묘하게 이 능력만큼은 반발심이 드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서준은 웃으며 무대를 마치고 내려가는 버밀리온에게 ‘무대 정말 잘했어.’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배우팀, 가수팀 할 것 없이 도착한 선배님들의 칭찬에 버밀리온이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새해가 밝았다.
누군가는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랐고 누군가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랐으며 누군가는 아픈 곳이 얼른 낫길 바랐다. 또 누군가는 ‘20주년!!’을 외치며 눈을 반짝였고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 다짐했다.
서로 각자 바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물론 작심삼일도 많았다.
“겨울방학인데! 그럴 수도 있지!”
삼 일 만에 미라클모닝을 실패한 서은수의 말에 서준과 김수빈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은 동생들과 함께 노는 날이었다.
딱히 나갈 생각은 없었고 김수빈의 집에서 뜨끈뜨끈한 바닥을 뒹굴며 놀기로 했다. 맛있는 음식들과 보드게임들도 가득 있었고, 김희상의 집인 만큼 몬스터 인형도 많았다.
판매되지 않는 디자인의 몬스터 인형도 있어,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인형놀이를 할 나이는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몬스터 인형은 좋아했다. 종종 희상이 삼촌에게 선물로 받기도 하고.
은수와 수빈이도 그랬다.
은수는 세상이 무섭지 않을 때인 중2였고, 수빈이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할 나이라, 몬스터 인형을 갖고 놀지는 않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했다.
“수빈이 오빠는 또 서준이 오빠랑 같은 학교 가서 좋겠다…….”
그리고 서준이 졸업한 미리내 예고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서준이 형이 지금 예고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아쉽다는 거지!”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들쭉날쭉했다.
그래도 오빠들이랑 잘 노는 거 보면 별로 변한 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붕어빵 먹고 싶다. 수빈이 오빠, 근처에 붕어빵 파는 곳 없어?”
“없어. 옛날엔 있었는데, 없어졌더라.”
어찌 됐든 서준에게는 귀여운 동생들이었다.
아쉬워하는 동생들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만들어 먹을까?”
“만들어?”
“붕어빵을?”
은수와 수빈이의 눈이 반짝였다.
“희상이 삼촌이 옛날에 붕어빵틀을 샀었거든. 너희도 같이 만들어 먹었는데, 기억 안 나?”
“그랬나?”
“으으으. 기억 안 나.”
커가면서 점점 사라지는 동생들의 기억들이 아쉬웠다.
그래도 자신이 기억하고 있으니 괜찮았다. 사진이나 영상도 많이 남아 있었고.
“청룡님 목소리 내면서 놀아줬던 건 기억하는데!”
“나도.”
또 평생 기억할 추억들도 있으니까.
서준과 동생들은 붕어빵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김희상에게 연락해 붕어빵틀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마트에서 붕어빵을 만들 재료들도 사 왔다.
“오빠! 우리 초콜릿도 넣어보자!”
“형! 김치랑 치즈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이것저것 다 넣어보려는 실험정신이 강한 동생들에, 서준은 요리 솜씨를 발휘하여 어떤 재료든지 붕어빵에 어울리도록 비율을 조절했다.
“이게…… 맛있네?”
“그러게.”
그리고 그날 저녁.
부모들은 아이들이 가져온 붕어빵을 맛있게 먹었다.
* * *
오늘은 애니메이션 [봄]을 더빙하는 날.
서준과 최태우는 녹음을 하기 위해 스튜디오 꿈으로 향했다.
“더빙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대처 안 하기로 했어.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야. 98%에 2%쯤?”
“그 정도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서준의 말에 최태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더빙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극 초반에는 조금 언급이 됐었지만, 지금은 거의 지하에서 끌어올려야 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나와도 사람들은 서준이 널 더 믿거든.”
그 어떤 작품이든 소홀히 하지 않을 거라는, 배우 이서준에 대한 믿음이었다.
“열심히 해야겠네요.”
서준도 그걸 잘 알고 있어, 오늘 녹음 때 더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잠시 후.
서준을 태운 차가 전문 녹음실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서준 씨.”
“잘 지내셨어요, 감독님?”
애니메이션 [봄]의 제작을 총괄하는 감독과 서준이 인사를 나누었다.
일전에 잠깐 미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감독은 세 아이의 엄마로 육아에 많은 도움을 준 서준을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이번 애니메이션 [봄]이 연극 [봄]처럼 사랑받기를 원해, 열정적인 자세로 제작하고 있었다.
“이쪽은 저희 음향감독님이십니다. 오늘 녹음에 도움을 주실 거예요.”
미팅 때는 보지 못했던 음향감독이 어쩐지 굉장히 반짝이는 눈으로 서준에게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