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22화
다음은 서준과 한지호의 차례였다.
TV 화면으로 아까와는 다른 코스가 그림으로 나타났다.
이런저런 장치를 만드느라 첫 번째 코스에 익숙해진 백건하와 민재원이 색다른 경험을 하길 바라는 제작진의 배려였다.
-배려?ㅋㅋㅋ
=다 알고 있어도 무서울 것 같은데ㅋㅋ
=제작진도 놀릴 생각 가득ㅋㅋㅋ
서준과 한지호가 담력시험 준비를 위해 떠나고, 제작진은 백건하, 민재원과 인터뷰를 했다.
“완전 무서워요! 이스케이프 때도 모습이 안 보였는데도 엄청 무서웠잖아요! 물론 그건 좀비고 이건 귀신이지만! 귀신이라서 더 무서울 것 같아요! 와! 오늘 잠 못 자는 거 아니에요?”
“전 조금 기대됩니다.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서준이 연기를 조금씩 보긴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잖아요.”
[약하게 한다고 했는데?]
민재원이 웃으며 말했다.
“약하게 한다고 해서 연기를 대충한다는 건 아니니까요. 강약을 조절한다는 거겠죠.”
“제발 10%만 해주셨으면……!”
-???: 연기력 여덟 스푼, 긴장감 세 스푼, 공포 한 스푸ㄴ(와르르) 음.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게 아닌데요!?
=그냥 공포만 있는 거 아니냐고ㅋㅋ
화면이 바뀌고, 환한 조명 아래 대나무숲으로 들어가는 서준과 한지호가 보였다. 이쪽은 에코백 하나씩밖에 들고 오지 않았다.
“저희는 감각을 이용할 겁니다.”
서준이 웃으며 에코백에서 담력시험의 기본 중의 기본인 분장용 흰색 가발, 흰 천 등과 블루투스 스피커 여러 개를 꺼냈다.
“공포영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소리죠.”
한지호가 휴대폰을 꺼내며 웃었다.
제작진은 그 안에 녹음 파일이 잔뜩 있는 걸 보여주고, 아직 날이 밝을 때 서준과 한지호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소리를 녹음하는 장면도 보여주었다.
-이쪽도 진심인데ㅋㅋ
=담력시험 안 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ㅋㅋㅋ
휴대폰에 녹음된 파일의 이름이 [고양이 소리5_최종_최최종]으로 되어 있는 걸 보고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열심히 고르고 고른 소리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촉각도요.”
서준은 가방에서 미니선풍기도 여럿 꺼냈다.
“이건 멀어서 될지 모르겠지만요.”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면 오싹하겠죠?”
두 친구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둘 다 도망쳐! 서준이랑 지호가 너무 진심이야!
-별거 안 들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준비가 철저함ㅋㅋ
-근데 진짜 소리+바람+이서준/한지호면 무섭겠다ㅠㅠ
=22 고양이 울음소리라니. 치트키 아니냐고ㅠㅠㅠ
서준과 한지호는 길을 따라 미니선풍기와 블루투스 스피커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길 여기저기에 함정처럼 보이도록 대나무 잎들을 모아두기도 했다.
물론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게 긴장감을 더해주죠.”
-민재원팀도 그렇고 이서준팀도 그렇고, 부업이 귀신의집 제작이신가??
=진짜 두 코스 합쳐놓으면 어지간한 귀신의집 저리 가라 일듯.
=이제 거기에 이서준+한지호 추가.
=무서워요ㅠㅠ
서준과 한지호가 꼼지락대며 분장을 하는 사이.
화면이 바뀌어 인터뷰 중인 백건하와 민재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직 준비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에 조금 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준비 끝났다고 하네요.”
“! 벌써요?! 이렇게 빨리요!?”
백건하가 경악했다.
-이쪽은 땅 파고 설치하고 바빴지만, 서준이 팀은 선풍기랑 스피커만 잘 놓아두면 됐으니까ㅋㅋ
=준비가 너무 빨리 끝남ㅋㅋㅋ
“그럼 저희, 출발하겠습니다.”
당황하던 민재원과 백건하가 이내 운명을 받아들였다.
카메라가 달린 모자를 쓰고, 개인캠을 들고, 도장을 찍을 종이와 손전등도 들었다. 이 손전등 역시 불빛이 약했다.
“손전등 가다가 고장 나는 건 아니겠죠, 재원이 형.”
“음. 영화 보면 말이 씨가 되고는 하던데…….”
“앗! 취소! 취소!”
허허허 웃으며 걸어가는 민재원의 뒤를 백건하가 얼른 따라붙었다.
밝은 조명이 사라지고.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대나무숲을 둘러보는 백건하의 고개가 바쁘게 움직였다.
-민재원에게서 떨어지면 죽는 병에 걸림.
=앜ㅋㅋㅋ
기익-
“?!”
“뭐, 뭐예요? 뭐 있어요?”
민재원이 몸을 흠칫 떨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백건하도 화들짝 놀랐다.
“소, 소리가 들리던데…….”
“소리요? 무슨 소리요? 전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백건하가 민재원의 말에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타이밍 좋게 기익- 기익-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
백건하와 민재원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게 만드는 소리였다.
-이게 황금세대가 엄선해 만들어낸 소리군.(소리 0)
=소리 0이면 안 들리는 거잖아ㅋㅋㅋ
-둘 다 연극을 해서 그런지 이런 것도 잘하는구나.
-민재원 서서 기절하는 거 아니냐ㅋㅋ
=백건하도 같이 기절할 듯.
“서, 서준이 형이랑 지호 형이 한 거겠죠?”
“그렇겠지?”
-서준: 응? 우리 이런 소리 넣은 적 없는데?
=지호: 그러게. 처음 듣는 효과음임.
=???: 꺄아아아악!
=그러면 나 진짜 운다ㅠㅠ
백건하와 민재원은 소리에 주의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안 듣고 싶어도 한 번 귀가 뜨이면 계속 들리는 법이었다.
야옭-
“……누렁이? 누렁이야?”
“녹음인 것 같은데…….”
서준과 한지호가 만든 소리인지 아니면 대나무숲에서 나는 소리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 저거!”
‘서준이 형이 만든 거야. 지호 형이 만든 거야……!’ 하고 중얼거리던 백건하가 눈을 반짝였다. 대나무 잎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게 딱 봐도 함정처럼 생겼다.
“이 정도에는 안 속죠!”
백건하가 으헤헤 웃었다.
“음. 서준이랑 지호가 이렇게 대놓고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고 민재원이 말하는 사이, 백건하가 나뭇잎 더미 옆으로 지나갔다.
슉-
하고 발목에 차고 소름 끼치는 것이 닿았다.
“으아아악!!”
백건하가 진심으로 놀라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뒤로 물러나 발목을 움켜쥐었다. 서늘한 감각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건하야, 왜 그래?”
“발목에 차가운 게 닿아서…… 갑자기 바람이 느껴졌어요!”
으아아, 하고 몸을 떠는 백건하 대신 민재원이 백건하가 서 있던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바람이 느껴졌다. 안쪽을 살펴보니, 미니 선풍기가 쌩쌩 돌아가고 있었다. 촬영 당시는 여름. 제작진이 쓰던 미니선풍기였다.
“딱 발목 쪽에 오도록 놔뒀네.”
“우와…… 진짜 진심인가 봐요. 형들.”
-너희도 진심이었잖아ㅋㅋ
=ㄹㅇ네 명 다 이렇게 담력시험에 진심일 줄이야ㅋㅋ
-와. 진짜 피할 거 계산까지 하고 설치한 거 대단하다ㅋㅋㅋ
“짐이 많지 않았으니까 스피커랑 선풍기만 조심하면 될 것 같네.”
“서준이 형이랑 지호 형도요.”
하고 각오를 다진 민재원과 백건하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귀를 세우고 손전등으로 여기저기 비추었다.
바닥도 확인했다. 슬며시 발을 뻗어 나뭇잎 더미를 헤집자, 평평한 바닥이 나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고, 간간이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으, 하고 어깨를 움츠리기도 했다. 또 대나무에 묶여 있는 미니선풍기에서 나온 바람이 맨살을 스쳐 지나가면 저도 모르게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부르르 떨기도 했다.
별로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진이 빠진다고 생각하던 찰나.
몇 번 비명을 지른 민재원이 문득 고개를 들어 대나무숲을 둘러보았다.
“…….”
“왜, 왜 그래요, 형? 무섭잖아요…….”
열심히 소리를 지른 백건하가 민재원에게 바짝 달라붙으며 말했다. 고개는 손전등과 함께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소리가, 안 들려.”
“어, 어?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아무것도 안 들리는 것 같은…….”
정말로.
단 하나의 소리도 없이 적막했다.
바람 소리도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백건하와 민재원의 소리만 들려왔다.
-무서워요ㅠ무서워요ㅠㅠ
-진짜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네.
=여기서 손전등까지 꺼지면 ㄹㅇ
하고 시청자들과 당시 백건하, 민재원이 생각하자마자 안 그래도 약한 빛만 내고 있던 손전등이 깜빡깜빡하더니 꺼졌다.
-꺄아아아악!!
-진짜 꺼졌어ㅠㅠ
빛 한 점 없이 어두운 화면에 시청자들이 놀랄 때.
빛이 켜졌다.
“하나 더 챙겨왔어.”
“혀엉!!”
민재원이 새 손전등을 꺼낸 것이었다.
이전의 손전등보다 작고 불빛도 약했지만, 있는 게 어딘가 싶었다.
-민재원ㅋㅋㅋ
=믿고 있었다고!ㅋㅋ
-역시 영화와 현실은 다르구나ㅋㅋㅋ
-ㅋㅋ아쉽. 손전등 없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ㅋㅋ
새 손전등을 들고 백건하와 민재원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제 태풍이 불어 잔뜩 떨어진 대나무 잎들이 밟힐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냈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형…… 어쩐지 좀 서늘하지 않아요?”
“그러게.”
-?나만 갈수록 어두워지는 것처럼 보임?
=22 나도 그렇게 보여. 이상하게 어두운데??
=33 왜, 왜 오싹하지??
서준이 살짝 풀어놓은 마기가 어둠과 함께 대나무숲에 내려앉아 있었다. 오싹함과 서늘함, 섬뜩함이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다.
-잠깐만저기있는거뭐냐나만보이는거냐?
그래.
가까워지고 있었다.
약한 손전등 빛이 닿은 그곳에서 새하얀 머리칼의 새하얀 두루마기를 두른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에 백건하와 민재원은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서준이나 한지호가 분장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눈도 깜빡하지 못하고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게 걸어가는 것만 바라보게만 되었다.
어쩐지 시선을 마주칠까 싶어 심장이 쿵덕쿵 뛰었다.
하지만 턱과 입술의 일부분만이 보이는 ‘그것’은 누군가를 놀래키지도 않고 백건하와 민재원을 지나쳐 걸어갈 뿐이었다.
그래. 걸어가고 있……걸어? 걷는다고?
민재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저거 서준이 맞지?”
그게 사라지고 나서야, 민재원이 입을 열었다.
“그, 그렇지 않을까요?”
백건하도 정신을 차렸다.
“근데 왜…… 걷는 게 걷는 것 같지 않았지? 꼭…… 미끄러지는 것 같았는데…….”
“……소리…….”
민재원의 말에 백건하가 무언가 깨달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뭇잎 밟는 소리도 안 났어요. 이렇게나 많은데…….”
아무리 가볍게 밟아도 작은 소리가 났는데, 조금 전에는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발이 없는 무언가가 지나친 것처럼.
-ㅅㅂ?
‘그것’이 나타남과 동시에 숨도 멈추고 손도 멈추고 있었던 인터넷 반응들도 그걸 깨달았다.
깜짝 놀래키지 않아도 심장이 멈춘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백건하가 울먹이며 외쳤다.
“서준이 혀엉! 약하게 한다면서요오오!!”
-약하게 한다면서어어어ㅓ!!!
시청자들도 외쳤다.
* * *
도장을 찍고 돌아오는 민재원과 백건하의 앞에는 분장한 한지호가 나타났다.
정석대로 왁! 하고 놀래키는 거였는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두 배우는 물론이고 시청자들까지도 아주 깜짝 놀랐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으아아아아앆!!!
-오늘 잠은 다 잤다(기절)
=엄마ㅠㅠㅠ
-오늘 준비한 건데 둘 다 너무 잘하는 거 아니냐고ㅠ
=두 코스 합치면 진짜 지리는 거 아니냐ㅠㅠㅠ
“재원이 형. 저 이제 놀랄 기운도 없어요.”
“나도…….”
백건하와 민재원은 허허 웃으며, 그래도 긴장한 상태로 길을 걸어갔다. 갈 때처럼 소리도 들리고 바람도 불었다.
야옹-
하는 소리에 또 스피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 누렁이다.”
노란 덩어리가 대나무 사이에 앉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야행성이라서 지금 활동하나 보네.”
“그러게요. 서준이 형 보러 왔나?”
심신이 지친 백건하가 치유 받으려고 우쭈쭈- 하고 누렁이를 불렀다. 이렇게 하면 가끔 오고는 했는데, 오늘은 올 생각이 없나 보다.
“안 오려나 봐요.”
“우리도 이제 돌아가자.”
다행히 그 이후로는 놀랄 만한 일은 없었다.
“오. 왔네.”
“어서 와요.”
“서준아…… 지호야……!”
“혀어엉!! 진짜……!”
밝은 조명 아래.
북적북적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백건하와 민재원이 안도한 얼굴로 다가왔다. 눈이 그렁그렁했다.
“약하게 한다면서요, 서준이 형……!”
“약하지 않았어? 놀래킨 것도 아니고.”
서준이 웃으며 말하자, 한지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서준이 얼굴도 거의 가렸잖아. 움직임도 단순했고.”
-얼굴 안 가리면 얼마나 무서운건데ㅠㅠㅠ
=놀래키면 얼마나 무서운건데ㅠㅠ
-이게 황금세대인가. 무시무시하군.
“걷는 건 어떻게 한 거야?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이던데?”
“상체는 안 움직이고 하체만 움직였어요. 옷에 가려져서 그렇게 보인 거예요.”
“소리는요?! 발소리가 하나도 안 나던데!”
“그거야 최대한 조용히 걸었으니까 그렇지.”
“그게 돼요?”
“서준인 되더라.”
한지호의 말에 모두 감탄하는 그때.
서준의 발밑에서 야옹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백건하와 민재원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서준은 웃으며 노란 치즈고양이를 들어 올려 안았다. 누렁이였다.
“어! 누렁이다!”
“역시 서준이 보러 왔구나.”
“그러게요! 아깐 안 오더니! 이럴 거면 같이 오지!”
?
제작진과 서준, 한지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백건하가 웃으며 말했다.
“아까 오는 길에 누렁이 만났거든요! 근데 불러도 안 오는 거 있죠!”
“……아까?”
한지호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누렁이는 계속 우리랑 있었는데?”
“……예?”
“……뭐?”
-……네?
-머ㄹ라고요?
“지호가 형이랑 건하 놀래키고 나서 우린 바로 여기로 왔거든요. 그때부터 계속 누렁이랑 같이 있었어요. 그쵸?”
서준의 말에 제작진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으로 흰색 가발을 벗고 으하하 웃는 한지호와 그런 한지호를 반기는 서준과 누렁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럼 그건 뭐야?
“그럼…… 저희가 본 건 뭐예요?”
“그걸 우리한테 물어보면 안 되지.”
한지호의 말에 백건하와 민재원의 눈이 크게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