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17화
WTV영화제 당일.
LA가 들썩거렸다.
한자리에 모일 스타들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은 이른 시간부터 레드카펫 근처에 모여들었다. 또 티켓을 구해 관객으로 영화제를 볼 수 있는 이들은 들뜬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수상까지 팬들의 투표로 이루어지는 가장 대중적인 영화제다 보니, 각 영화의 팬들이 모여 마치 축제의 현장 같았다.
“누가 받을까?”
“당연히 이레귤러스지!”
“뉴 이클립스!”
여기서도 의견이 갈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밖이 시끌벅적할 때.
영화제에 참가하는 배우들과 영화계 관계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빼입을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WTV 영화제가 세계 3대 영화제나 오스카 시상식만큼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레드카펫 위에서 찍히는 사진은 대중들에게 보여지고 오래도록 남는다.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의상을 협찬해 준 브랜드들도 사람을 보내 옷이 뜯어지거나 망가진 곳은 없는지, 몸에 잘 맞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수선해 주었다.
레드카펫 위에 선 스타가 화제가 되면, 당연히 스타가 입은 옷 또한 화제가 된다.
스타의 선택을 받았다는 기사가 와르르 쏟아지며, 어느 브랜드의 것인지 어느 디자이너의 것인지 궁금해할 터였다. 그렇게 브랜드의 이름을 알리고 명성을 높인다.
그러니 스타가 차량에 올라 떠날 때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디자이너가 직접 영화제까지 찾아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특히 수석 디자이너라면 더더욱 그랬다.
“오랜만입니다, 준.”
“오랜만이에요, 다니엘. 잘 지내셨어요?”
그래서 아레시스의 수석 디자이너, 다니엘 티베가 여기까지 올 줄은 서준도 몰랐다.
“잘 지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죠.”
반갑게 맞이하는 서준을 보며 다니엘 티베가 환하게 웃었다. 확실히 작년 [패션위크] 방송 때보다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위기도 아주 좋았다.
“안녕하세요! 서준이 형!”
다니엘 티베의 뒤로, 아레시스의 인턴으로 들어가 공부 중인 박민형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 같은 인턴인 유제빈과 권도혁도 있었다. 이서준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라서 그런지 둘 다 상기된 얼굴이었다.
“권, 권도혁입니다.”
“유제빈입니다. 팬이에요!”
“저도 팬입니다! 이서준 배우님!”
서준이 웃으며 두 사람과 인사했다.
“저도 패션위크 재미있게 봤어요. 옷들이 정말 멋지더라고요. 앞으로 나올 옷들도 기대하고 있어요.”
그에 두 사람이 활짝 웃었다. 정말 기뻐 보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서준의 물음에 다니엘 티베가 웃으며 말했다.
“1년 만에 나온 옷이니까요. 직접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또 준이 입은 모습도 두 눈으로 보고 싶었고요.”
사진으로 서준이 입은 모습을 보긴 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다니엘 티베는 프랑스에서 미국까지 날아왔다.
혼자보다는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보조로 박민형을 데리고 왔고, 간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두 인턴도 함께 데려왔다.
“제가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준?”
정중히 묻는 다니엘 티베에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마침 준비하려던 참이었어요. 다니엘이 도와주신다면 제가 더 감사하죠.”
그렇게 조금 이르지만 서준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이건 옷을 보낸 후에 만든 셔츠입니다. 더 어울릴 것 같아서 가져왔죠.”
“이건 예비용이에요, 형.”
“구두도 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눈을 반짝이며 소중히 가져온 캐리어들을 풀어헤쳤다. 전부 서준을 위해 가져온 것 같았다. 그에 최태우가 얼른 가지고 왔던 아레시스의 의상과 코코아엔터에서 준비한 것들을 가져왔다.
“그럼 먼저 갈아입고 나올게요.”
서준이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권도혁과 유제빈이 와! 하고 짝짝 박수를 쳤다.
헤어도,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채 옷만 걸쳤을 뿐이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이대로 바로 레드카펫 위에 서도 될 정도로 멋졌다.
‘역시 우리 수석디자이너님! 어떻게 이런 옷을 만드셨을까!’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특별한 것을 느낄 수 있는 다니엘 티베와 박민형의 반응은 더 컸다.
충격을 받은 듯, 감격한 듯 눈동자와 손이 가볍게 떨리는 게 보였다.
사진으로 봐도 느껴졌지만, 실제로 보니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반쯤 완성되어 있던 퍼즐의 나머지가 모두 맞춰지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 나타난 것 같았다.
“상상…… 이상이네요.”
“……그러게요.”
물론 서준 리에게 어울리는 옷이 되길 바라면서 만들었지만, 정말로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다.
다니엘 티베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 자신은 이런 옷을 만들고 싶었다.
입는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그 사람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옷을 만들고 싶었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 준?”
보여지는 것만큼 입는 사람도 편하게 입을 수 있어야 했다.
서준의 주위를 돌며 자세히 살피는 다니엘 티베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편해요.”
“다행입니다. 치수도 변한 건 없는 것 같네요. 딱 좋습니다. 그럼 나머지도 얼른 정할까요.”
어울리는 액자가 있다면 그림은 더 빛나는 법.
정장 안에 입을 셔츠와 구두, 벨트, 시계 같은 것들도 서준과 옷에 가장 어울리는 것으로 정해야 했다.
다니엘 티베와 디자이너들은 신중히 서준과 그것들을 번갈아 보며 고민했다.
“벨트는 코코아엔터에서 가지고 온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 난 이게 더 나은 것 같은데…….”
박민형과 유제빈이 의견을 말했다.
결정하는 건 서준과 다니엘 티베지만, 이런 것도 다 공부가 되는 거였다.
그런 디자이너들을 안다호 이사와 최태우 매니저가 웃으며 바라보았다.
코코아엔터에서도 열심히 고르긴 했지만, 옷을 만든 디자이너가 고르는 게 더욱 좋을 것 같았다. 1팀도 서준이 더 멋지게 나오면 좋아할 거다.
그래도 벨트와 헤어 스타일은 코코아엔터에서 준비한 것으로 결정되었다.
“좋네요. 잘 어울립니다.”
“그렇죠?”
다니엘 티베의 말에 안다호 이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둘 다 서준을 꾸미는 데 진심이었다.
그렇게 서준이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를 제대로 정돈하는 사이.
다니엘 티베와 디자이너들은 구석에서 종이와 펜을 들어 올렸다. 영감이 마구마구 솟아올라, 다른 것은 신경 쓰이지 않는 듯했다.
서준 때문에 그런 예술가적인 모습에 익숙한 안다호와 최태우는 조용히 종이나 펜같이 필요한 것들을 보충해 주었다. 매니저들다웠다.
그래도 서준의 준비가 다 끝났을 때는 모두 정신을 차렸다.
“정말, 멋집니다. 준.”
다니엘 티베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옷만 입고 있을 때도 멋졌지만, 제대로 준비한 모습은 더욱 눈이 부셨다.
“다른 분들한테도 꼭 보여주고 싶네요.”
인턴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후광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 진짜 보이는 것 같은데?’
진법의 효과를 가장 잘 느끼는 박민형이 눈을 비볐다.
물론, 착각이었지만.
그런 착각을 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
서준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건 물론이고, 서준이라는 배우가 어떤 배우인지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부드럽고 친근하지만, 열정이 있고 눈부신.
다양하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만들 수 있는 드레스와 달리, 상·하의밖에 없는 정장일 뿐이지만, 그런 게 느껴졌다. 그게 참 신기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시상식에서 뵙겠습니다, 준.”
관계자로 참여하는 다니엘 티베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서준이 상을 받는 그 모습까지 직접 눈으로 볼 생각이었다.
“형! 나중에 봐요!”
“나중에 봬요, 이서준 배우님!”
그렇게 아레시스의 디자이너들이 떠나고, 팀별로 등장하기 위해 서준은 [뉴 이클립스] 쪽으로 향했다. 어제도 봤던 배우들이 서준을 반겼다.
“와! 멋진데!”
감탄하는 배우들에 서준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멋들어지게 웃어 보이자, 웃음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우리 뒤로 이레귤러스팀이 오는 거지?”
“네. 맞아요.”
헤일리 로지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서준 리가 [뉴 이클립스]와 [이레귤러스]에 출연한 터라 등장순서나 자리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뉴 이클립스] 팀이 먼저 등장하고, 서준이 레드카펫에 남아 있다 [이레귤러스] 팀과 함께 입장하기로 했다. 자리도 바로 옆이었다.
“어디 브랜드 옷이야?”
“아레시스예요.”
어쩌다 보니, 홍보도 하게 되었다.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준이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이레귤러스] 팀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어제 이야기했던 거 다들 기억하시죠?
>루카스: 물론이죠.
>테사: 나 엄청 기대돼!
서준이 웃으며 휴대폰을 두드렸다.
* * *
LA 시각으로 일요일 오후 7시.
한국 시각으로 월요일 오전 11시.
WTV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길게 깔린 레드카펫, 시끌벅적한 사람들, 벌써부터 터지는 플래시가 현장감을 전달해 주었다.
곧 레드카펫 끝에 차가 서고 스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플래시와 사람들을 환호성을 받으며 멋지게 웃고 있는 배우에게 리포터가 마이크를 들고 다가가 말을 건넸다. 카메라가 그 모습을 담아 전 세계에서 보고 있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몇 팀이 지나가고.
또 다른 차량이 나타났다.
차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내렸다.
-으아아아!!!
-서준이!
-뉴 이클립스다!!!
서준 리와 헤일리 로지, 댄 켄드릭과 브라이언 구델이 등장하자 지금까지 보다도 더 많은 환호성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뒤에 도착한 차량에서 윌마 에반스 감독과 다른 [뉴 이클립스]의 배우들이 내렸다.
환하게 웃는 배우들의 얼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ㅅㅂ! 아니! 서준이 옷!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 왜 저렇게 찰떡인 건데!!
-월급루팡 중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비명지름.
=22 앍!으악?! 하고 질러서 다 쳐다봄.
=33 이건 안 지를 수가 없었음. 그냥 자동적으로 나온 거임.
-이건 진짜 길이길이 보전해야 한다.
=나노단위로 캡처하고 있음.
-직접 보고 싶다. 두 눈으로 보고 싶다아아!!
-진짜 어디 브랜드인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에 답하듯 서준의 사진과 함께, 아레시스에서 만든 옷이라는 것이 기사로 알려졌다.
-아레시스? 서준이 후배가 인턴으로 간 거기? 수석 디자이너가 슬럼프라서 1년 동안 활동 안 했던 거기??
=슬럼프 끝났나 보다.
=이거 만들려고 1년간 봉문한 듯.
=봉문ㅋㅋㅋ
-1년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것 같다.
=22 다음 패션쇼는 참가한다는데, 어떤 디자인들이 나올지 궁금함.
앞으로 어떨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모두 아레시스의 부활을 직감했다.
-그 시작이 또 서준이라는 게 웃김ㅋㅋㅋ
=진짜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ㅋㅋ
-패션위크도 한몫했을까?
=그랬을 것 같음.
-이제 인턴들 옷 기대해도 되는 건가!!
[뉴 이클립스] 팀이 간단히 인터뷰를 나누고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서준이는 안 가?
=이레귤러스팀 기다리는 듯!
그 댓글대로.
서준 리가 레드카펫을 걸어 입구 쪽으로 되돌아가는 모습과 함께 차량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서준이 웃으며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반겼다.
[이레귤러스] 팀이었다.
-최초로 레드카펫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배우ㅋㅋ
=앜ㅋㅋ출연한 작품이 두 개니까 이렇게 되네ㅋㅋㅋ
-둘 다 같이 있어서 너무 좋음!
“나이트 진!!”
“팬텀!!”
하고 히어로들을 부르는 목소리에 서준과 배우들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반짝반짝 플래시가 터졌다.
리포터가 다가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팀 이레귤러스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준, 레드카펫을 반대로 걸어가 본 기분은 어땠어요?”
“재미있었어요. 이런 경험을 해본 건 제가 처음이겠죠?”
“아마 그럴걸.”
“누가 레드카펫에서 그렇게 기다리는 건 저희도 처음이었어요.”
서준의 말에 말릭 스펜서와 테사 해리슨이 웃으며 말했다.
간단한 인터뷰가 이어졌다.
“정말 보내드리긴 싫지만, 보내드려야 하는 시간이군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나요, 이레귤러스?”
리포터의 말에 팀 이레귤러스가 씩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모두 이레귤러스2 기대해 주세요!”
……! 와아아아!!
짧은 놀람 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재작년 쉐앤나 때 ‘나이트 진 기대해 주세요’도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좋았는데ㅠㅠ
=22 그땐 진짜 쉐3 이후로는 못 듣는 줄 알았지.
-이제 우리한텐 나이트 진도 있고, 이레귤러스도 있다!
=22 앞으로 10년은 행복하겠다.
=10년? 20년은 해야지!
-배우들이 홍보해 주잖아! 빨리 개봉해!! 마린!!
=아직 촬영도 안 했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