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1015화 (1,01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15화

배우들은 먼저 집부터 정리했다.

아궁이와 평상, 천막을 치우니, 처음 온 날처럼 마당이 텅 비게 되었다.

-이사 가기 전날 같네.

=22 다 치우면 넓어 보이는 마법ㅋㅋ

“그럼 이제 밖으로 가 볼까?”

집 밖으로 나온 네 배우는 먼저 바다로 향해 어제 설치해 둔 통발을 수거했다. 그사이 제작진도 집의 안과 밖으로 돌아다니며 태풍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착장이다!”

“태풍 때문에 묶어놓으시나 보네.”

브라운블랙의 팬으로 본의 아니게 유명해진 선장님이 ‘선장니임!’ 하고 부르는 백건하의 목소리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근데 왜 육지 선착장으로 안 가시고 여기 계세요? 여긴 다른 배도 없어서 위험할 것 같은데.”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다친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육지에서 오는 것보다는 여기서 출발하는 게 빠르잖아.”

-섬 같이 고립되기 쉬운 곳은 이동수단이 중요하긴 하지.

-선장님 대단하시네!

“저희도 도와드릴게요.”

민재원의 말에 선장님이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선장님을 도와 배를 고정시킨 네 배우의 시야로 듬성듬성 자리를 잡은 집들이 보였다.

“다들 대비는 해놓으셨겠지만, 저희가 좀 도와드리는 건 어떨까요?”

“좋아요!”

“나도.”

서준의 말에 세 배우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죽묘도의 태풍 대비가 시작되었다.

가장 가까운 집부터 들른 네 배우는 필요한 게 없으시냐고 물은 후,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왔다. 민재원을 중심으로 손재주 좋은 서준이 보조하고 백건하와 한지호는 잔심부름을 주로 맡았다.

-촬영 중에 태풍 대비하는 거 보여주는 것도 여기밖에 없을 듯.

-음악도 제법 진지해짐.

-잘 편집하면 재난 대비 영화 같겠는데ㅋㅋㅋ

그런 시청자들의 생각을 예상했는지, 짧게 짧게 진지한 배우들의 표정에 맞춰 영화 같은 연출과 보정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간간이 나오는 특별 게스트(고양이)와 네 배우의 재잘거림에 곧 [섬섬생활]로 돌아오긴 했지만 말이다.

-이거 태풍 대비 영상으로 쓸 수 있을지도?

=한걸음2

=하긴 하나 더 찍을 때가 됐긴 했지.

-바다, 산, 장마, 폭설 등등 찍어줘라.

=22 웬만한 재난영화보다 나을 듯.

“여기 고양이 있네.”

짐을 옮기던 한지호가 우리 집 같은 남의 집으로 피신한 고양이를 발견했다.

오늘 처음 보는 한지호를 보고 놀라 도망가려다가 뒤에 보이는 서준을 보고 안전하다고 판단한 건지 다시 제자리에 앉아 식빵을 굽는 모습이 꽤 웃겼다.

-고양이: 누구냐! (멈칫!) 아하. 공주님 부하?

=친구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ㅋㅋ

=2사단이니 병사라고 하자.

=아니, 왜 아무도 ‘공주님’은 신경 안쓰냐고ㅋㅋㅋ

그렇게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태풍 준비를 도운 배우들에게 주민들은 감사의 표시로 먹을 것을 잔뜩 주었다.

-만족스러운 사냥을 끝낸 무리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특히, 막내가 아주 행복해 보이는군요.

=+)어떤 요리를 만들지 고민하는 둘째에게 달라붙은 셋째가 먹고 싶은 요리를 말합니다. 장난치는 모습이 아주 즐거워 보이네요.

=+)첫째는 그런 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이게 바로 내리사랑이죠.

=이게 뭐냐고ㅋㅋㅋ

-이서준이 둘째고, 한지호가 셋째야?

=22 서준이 생일이 3월이고 지호 생일이 5월임.

=2개월밖에 차이 안나잖아ㅋㅋㅋ

시간이 흐르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심해지는 게 보였다. 소리도 심상치 않았다.

“그럼 이제 밥 먹을까?”

“좋아요!”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는 법.

백건하는 활짝 웃으며 스태프에게서 받은 개인 카메라로 서준이 요리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불 조절이 어려운 아궁이에서도 뚝딱뚝딱 요리한 서준인데 불 조절이 쉬운 버너에서는 더욱 손쉽게 만드는 것 같았다.

-보이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22 버너 뒤에 이서준 있어요.

=ㅋㅋㅋㅋ

-나중에 조리시설 잘 되어있는 곳에서 요리하는 것도 보고 싶다.

=22 명절특집에 연예인들 요리하는 방송도 있지 않나?

=없어도 이서준 출연한다고 하면 만들 듯ㅋㅋ

주민들에게서 받은 재료들과 제작진에게서 싸게 산 재료들로 만들어진 요리가 밥상 위에 가득 차려졌다. 역시 맛있다는 감탄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우리 이제 이걸 태풍 정식이라고 부르자.

=내일은 태풍 정식이다.

“고구마 맛있었지.”

“나도 먹고 싶어.”

“태풍 지나가면 고구마 구워먹자.”

-밥 먹으면서도 고구마 생각하는 그대들은 찐한국인ㅋㅋ

=22 점심 먹으면서 저녁 메뉴 생각하는 거 국룰 아니냐고.

=? 배가 부른데 먹을 게 생각나?

=? 생각이 안 나?

=서로 전혀 이해 못 하는 중.

=ㅋㅋㅋㅋ

-고구마는 안 팔겠지?

=아직 10월인데…… 팔지도?

=22 며칠 후면 11월이니까!

=어쩌면 내일부터 장사 시작하실지도 모름ㅋㅋㅋ

=특히 남해 고구마가 잘 팔릴 것 같다ㅋㅋ

=사장님: 대목이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 다음에는 [섬섬생활] 예고편이 방송되기를 기다렸다.

“확실히 난리가 나긴 할 거예요. 서준이가 나온 건 항상 그랬거든요.”

“그러고 보니 옛날에, 서준이가 정체를 숨겼을 때도 그랬다고 들었어. 청룡님 말이야.”

-어마어마했었지.

=22 설마 쉐도우맨2에 나온 아역배우가 어린이 연극 중이었다는 걸 누가 알았겠냐고요

=33 그때 보러 간 사람들은 진짜 운 좋은 것 같음.

-보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어린이 연극이라고 해서 안 갔는데!!

=미래의 나: 후후후. 시간웜홀을 사용할 때가 왔군.

=앜ㅋㅋㅋ

-근데 봄을 8회차 전부 본 학생이 있다?

=ㅋㅋ나 진 첫 팬 감독님ㅋㅋ

=아무도 감독의 본명은 기억하지 못하는ㅋㅋㅋ

-잠깐, 뭐라고요?

“우리, 청룡님께 소원 빌어보는 건 어때요?”

“청룡님께?”

“소원요?”

한지호의 말에 서준과 민재원, 백건하가 고개를 갸웃한 것처럼 시청자들도 고개를 모로 꼬았다. 갑자기 왠 청룡님?

“옛날 사람들은 용왕님이 바다를 다스린다고 생각했잖아. 지금도 해신제 같은 제사를 지내고. 그러니까 태풍 좀 멈춰주세요, 하고 청룡님께 기도하자는 거지. 그럼 여기 청룡님이 친척일지도 모르는 용왕님께 전달해 주지 않겠어?”

한지호가 뻔뻔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이해한 시청자들이 빵 터졌다.

-청룡님 친척 용왕님ㅋㅋ

=맞는 말 아님?ㅋㅋㅋ

-청룡님이라면 진짜 들어주실 것 같다ㅋㅋ

“그거…… 재미있을 것 같네.”

서준이 흥미로운 얼굴로 말하자, 시청자들의 웃음이 더욱 커졌다.

-본인(?) 허락도 떨어짐ㅋㅋ

=청룡님이 허락하셨다!! 해신제를 열어라!!

-근데 해신제면 제사 아님? 제사상 차림?

=그냥 기도만 하는 거 아닐까……라고 쓰자마자 제사상에 올릴 음식 정하네ㅋㅋㅋ

“서준이 형! 뭐 좋아하…… 아니, 청룡님은 뭐 좋아하세요? 오렌지주스?”

-확실히 청룡님 마음에 쏙 드는 음식이긴 함ㅋㅋㅋ

=소원 잘 들어주실 듯ㅋㅋ

“과자나 간식도 좋아할 거예요, 형.”

-속보) 청룡님, 과자나 간식 좋아하셔.

=근데 당시 8살이었던 거 생각해 보면 좋아하실 듯.

“과자! 간식! ……츄르는 안 되겠죠?”

“되겠냐고.”

-고양이냐고.

=앜ㅋㅋㅋ

=속보) 청룡님께 츄르를 주자는 배우 등장!

“아, 제일 중요한 걸 빠뜨렸다!”

“제일 중요한 거?”

“여의주요! 여의주가 있어야 청룡님이 소원을 들어주시죠!”

-백건하가 제일 신남ㅋㅋㅋ

=한지호도 연극 봄 세대이긴 한데, 이서준이 친구라서ㅋㅋ

=청룡님이 내 친구였다!

=소설 제목이냐ㅋㅋ

“여의주, 나무로 만들어도 돼, 서준아?”

“네. 괜찮아요.”

-민재원도 이서준한테 물어봄ㅋㅋㅋ

=확실한 게 좋은 거니까ㅋㅋ

=바로 확인해줄 사람이 있으니까 너무 좋다.(프리랜서 만족)

=게다가 성격도 좋아! (직장인 만족)

-???: 아, 나무? 그건 좀 그런데…… 좀 더 모던하면서도 화려하고 개성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소재는 없나?

=있겠냐.

-속보)청룡님, 어여쁜 백성들을 위해 나무 여의주도 가납하셔!

“여의주 대신 이건 어때?”

그때, 해신제를 제안한 한지호가 씩 웃으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만파식적.”

대나무 피리의 등장에, 잠시 멈췄던 불판이 웃음소리와 함께 화르륵 타올랐다.

-만ㅋㅋ팤ㅋㅋ식ㅋㅋ적ㅋㅋㅋ

-만파식적이 갑자기 왜 나오냐고ㅋㅋ

=22 피리 보여줄 때까지만 해도 뭔가 싶었는데ㅋㅋㅋ

-근데 영 근거가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더 웃김ㅋㅋ해룡(문무왕)이 준 대나무로 만든 피리로 만든 거잖아ㅋㅋ

=게다가 피리를 불면 태평성대가 될 거라는 것도ㅋㅋㅋ

=해룡: 청룡님/제작: 이서준

=어떻게 이렇게 딱ㅋㅋ

그렇게 여의주 대신 만파식적을 올리기로 하고 서준은 잠시 명상을 하러 방에 들어갔다.

[청룡님 강림 중.]

-진짜 강림하실 것 같다ㅋㅋ

=따로 강림하실 필요가 있나? 본인이 여기 계신데ㅋㅋㅋ

잠시 후.

명상을 끝낸 서준이 나오고, 해신제가 시작되었다.

뭐, 해신제라고 할 것까진 아니었지만.

[기도 중]

-왜 진지한 건데ㅋㅋㅋ

=배우들 표정만 보면 진짜 해신제 같은데, 제사상에 과일하고 간식만 보면 웃음이 나옴ㅋㅋ

=괜찮아! 청룡님이 괜찮다고 했으니까!!ㅋㅋㅋ

-그래도 바람 소리는 진짜 심상치 않네.

=약한 태풍은 아니었으니까. 섬에서는 더 크게 들렸을 듯.

기도가 끝난 후에는 서준이 소금을 연주했다.

[자장가]였다.

-어쩐지. 이건 왜 음원으로 안 나오냐고 했더니, 여기서 나오는 거였네.

-좋다.

잠깐 감상의 시간이 이어졌다.

음원으로 듣는 것도 좋았지만, 연주하는 모습까지 보면서 듣는 건 더욱 좋았다.

[자장가]에 이어 [굿나잇]도 연주한 서준이 소금을 내려놓았다. 백건하와 한지호, 민재원이 짝짝짝 박수를 쳤다.

그렇게 나름의 해신제를 끝내고.

배우들은 [맛남 식당3]의 마지막 화를 보기 위해 TV 앞에 모였다. 제사상은 그대로 간식상이 되었다.

-냠냠.

=원래 제사 끝나면 다 먹어야지.

-맛남 식당 보는 건 편집하고 예고편만 보여줄 줄 알았는데, 좀 보여주네?

=그러게?

[맛남 식당3]를 보며 가볍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여주던 중.

광고가 시작되자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백건하가 일어났다. 그러고는 별생각 없이 창밖을 보았다.

“어!?”

그에 TV 속 배우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도 백건하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뭔데? 뭐야?

=뭐 날아감?

=물고기 날아옴??

=내일 아침 재료 GET!!

“비가 그쳤어요!”

백건하가 그렇게 말하며 창문을 가려놓았던 박스를 떼어냈다. 그러자 투명한 유리창 너머 비는커녕 바람도 불지 않는 바깥이 보였다.

“태풍의 눈에 들어온 거 아니야? 그때는 좀 잠잠하다고 하잖아.”

“그것도 아닌 것 같아. 태풍이 완전히 소멸했대.”

“……이렇게 갑자기?”

휴대폰을 보며 말하는 서준에 한지호가 눈을 끔벅였다. 민재원과 백건하도 휴대폰을 확인했다.

“근데 이 시간…… 저희가 기도했을 때쯤…… 아니에요?”

“……그러네?”

놀라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여준 화면이 2개로 나뉘었다.

배우들이 기도하는 모습과 태풍의 위성영상.

빠르게 재생되는 화면으로 소금 연주를 끝낸 서준과 세 배우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과 같은 시각, 태풍이 서서히 약해지는 모습이 보였다.

-??예??

=아니, 잠깐. 이게 무슨 소리야?

안 그래도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시청자들의 입이 더욱더 크게 벌어졌다. 눈도 그만큼 커졌다.

-저 태풍이 오는 길에 소멸됐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게 이렇게 엮인다고??

=22 기상청이 이유 없이 소멸했다고는 했는데?? 그게 해신제 때문이었다고?

=33 우연인 건 아닌데, 이 정도 우연이면 그냥 운명 아니냐고ㅋㅋㅋ

-와. 이제 날씨까지 도와주네.

=이건 도와준다는 개념을 넘어서는 것 같은데ㅋㅋ

=그저 청룡님……!

-근데 백건하랑 민재원이랑 한지호는 엄청 놀라는 것 같은데, 서준이만 여유롭지 않음?

=그거야 본인이 했으니까ㅋㅋㅋ

=이서준(청룡님): 태풍은 내가 처리했다.

=응답이 너무 빠른 거 아니냐고요ㅋㅋ

-이러니까 내가 청룡님을 믿지.(여의주 기도)

=22 여의주 사러 간다!

=소금을 사러 가야 하는 게 아닐까ㅋㅋ

=소금은…… 연주를 해야 할 것 같음.

=!여의주 산다!

깜짝 놀랐던 시청자들이 이내 빵 터졌다.

우연도 이런 재미나고 신기한 우연이 있을 수가 있나!

거기에 이서준과 청룡님까지 엮여 있으니 내일은 아침부터 떠들썩할 게 틀림없었다. 아니, 내일이 뭔가. 지금 기사가 올라오고 있었다.

으하하핳!

바닥을 치며 웃는 시청자들 속.

아주 환하게 웃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집 밖으로 나와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올려다보는 배우들도, 그 뒤를 이어 나오는 예고편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엄청 홍보되겠어요!

>그러게!!

바로 애니메이션 제작사 ‘꿈’의 직원들이었다.

처음 청룡님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섬섬생활]에서 청룡님이 언급될 줄 몰라서 그저 놀라기만 했었는데, 해신제 이야기가 나오고 만파식적 이야기가 나오고 끝내 태풍이 소멸했다는 것까지 알게 되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시끌벅적한 인터넷을 보던 직원은 활짝 웃으며 휴대폰을 두드렸다.

아직 기사도 내지 않았는데, 홍보가 너무 잘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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