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12화
“와!”
1팀 직원들과 최태우가 감탄했다.
포장된 상자에서 꺼낼 때부터 뭔가 다른 것 같더니, 마네킹에 입혀놓으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패션은 잘 모르지만, 이게 진짜 멋지다는 건 알겠어요.”
아무래도 다양하게 디자인할 수 있는 드레스와 달리, 재킷과 바지가 기본인 ‘정장’이기 때문에 큰 부분은 다른 옷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디테일이 뭔가 다른 것 같았다.
“서준이랑도 정말 잘 어울릴 것 같고요.”
“옆모습이랑 뒷모습도 괜찮네요!”
“자수가 작아서 자세히 안 보면 있는 줄도 모르겠는데, 그래서 더 좋은 것 같네.”
빙글빙글 돌면서 의상의 뒷모습과 옆모습도 확인했는데, 연신 탄성만 나왔다.
“다니엘 티베 수석 디자이너가 만든 거겠죠?”
“그렇겠지. 친필 메시지도 보냈는데.”
“안 이사님은 어떠세요? 이게 제일 괜찮지 않아요?”
1팀 부팀장이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안다호 이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일주일 동안 고민하며 만들었던 후보 의상들(+헤어/메이크업/액세서리)을 적어놓은 종이들을 깔끔하게 치워 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 이 의상에 맞춰서 다시 회의하면 되겠네요.”
“의상이 딱 정해져서 다른 것도 정하기 쉬울 것 같아요.”
“서준이 너도 마음에 들지?”
그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안 들 수가 있나.
무려 진법이 들어간 정장인데.
서준이 신기한 눈으로 아레시스의 수석 디자이너, 다니엘 티베가 만든 옷을 바라보았다.
정장의 옷감과 색, 자수와 깃 등의 위치가 어우러져 아주 기초적인 것이긴 하지만, 진법을 이루고 있었다.
‘아마 내가 입으면 좀 더 효과가 강해지겠지.’
서준이 입는다는 가정하에 만든 옷이니만큼, 서준과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말그대로 서준에게 딱 맞춘, 맞춤 정장.
서준이 저 옷을 입었을 때야말로 비로소 가장 빛날 터였다.
서준이 알기로 이런 진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박민형뿐이었다.
그리고 작년 [패션위크] 촬영 당시, 다니엘 티베는 박민형의 능력을 알아봤었다.
‘진법이라는 건 몰랐겠지만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건 알았겠지.’
그때 다니엘 티베의 표정을 보고 서준은 선기를 흘려보내 주었다. 다니엘 티베의 잠재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진짜 해냈네.’
이래서 1년 동안 패션쇼에 안 나갔나 보다.
아마도 그 시간 동안 수석 디자이너 다니엘 티베가 인턴 박민형에게 배운 게 아닌가 싶었다.
정확히는 박민형이 그려내는 디자인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을 거다.
‘아무래도 ‘배웠다’고 하기엔 배울 만한 이론이나 공식이 없으니까.’
박민형은 제대로 진법이라는 걸 알고 누군가한테 이론적으로 배운 게 아니고, 그저 감각적으로 ‘여기에는 이게 어울릴 것 같아서.’라고 생각하며 디자인할 뿐이었다.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게 제일 어렵지.’
그냥 하다 보니까 되는 사람에게 뭘 배우기란 참 어려운 일이니까 말이다.
근데 그걸 다니엘 티베는 해냈다.
물론 기본적으로 감각이 있는 것도 있겠지만 치열한 노력이 없었다면, 그저 박민형의 디자인을 따라 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정장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다니엘 티베의 것이었다.
‘진법이 민형이 것보다 기초적이기도 하고.’
중고등시절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진법이란 걸 감각적으로 사용해온 박민형과 달리, 다니엘 티베는 겨우 1년 전부터 진법에 대한 힌트를 얻었을 뿐이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어깨너머로 배운 것은 기초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니엘 티베는 그걸 오랫동안 쌓아온 디자인으로 커버했고 이런 멋진 옷이 나온 것 같았다.
‘인턴의 디자인을 보고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무려 수석 디자이너지 않나.
게다가 1년 장사를 날려 버렸다.
어지간한 각오가 없었다면 힘든 일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곧 아레시스의 제2의 전성기가 올 게 분명했다.
“서준이가 영화제에서 입으면 엄청 화제가 되겠는데!”
“그러게요!”
어쩌면 바로 며칠 후부터 말이다.
메이크업이며 헤어며 액세서리며.
만장일치로 통과한 아레시스의 정장을 보며 논의하던 1팀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우 형과 다호 형도 신중한 얼굴로 의견을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서준이 작게 웃으며 박민형에게 바나나톡을 보냈다.
<옷 정말 멋지더라!
<이거 입고 영화제에 참석할 것 같아.
<수석 디자이너님한테도 정말 마음에 든다고 전해줘, 민형아.
>박민형: 와! 정말요?
>박민형: 그쵸, 옷 진짜 멋있죠?
>박민형: 우리 디자이너님이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데요!
>박민형: 처음 디자인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박민형에게서 기쁨과 존경하는 수석 디자이너에 대한 자랑이 가득 담긴 답장이 왔다.
* * *
아레시스에서 의상이 도착하기 며칠 전.
새싹들은 고민의 나날을 맞이해야 했다.
-뉴 이클립스냐, 이레귤러스냐.
-좋아하는 거 투표하라고 해도, 둘 다 좋으면 어떻게 해요?
=22 어떤 작품이 상 받아도 좋은데, 아쉬워.
-투표 내일인데 아직도 결정 못함ㅠ
WTV 영화제의 투표가 시작된 건 어제부터였지만, 여전히 몰리는 트래픽에 [새싹부터]는 나라별로 투표 날을 정한 상황이었고, 바로 내일이 한국이 투표하는 날이었다.
-일단 고민은 내일 하고 섬섬생활 봅시다.
그리고 오늘은 [섬섬생활] 7화가 방송하는 날이었다.
-오늘도 청춘영화 찍어주라.
-비눗방울 총 품절ㅋㅋㅋ
=공원 가보면 비눗방울만 날아다님ㅋㅋ
-제자 영입 실패했었지?
=교수님: 오늘 휴강입니다.
=김경우: (손 번쩍)전 강의 듣고 싶습니다! 교수님!!
백건하의 SNS에 올라온 ‘깨웠어야지!’라는 김경우의 바나나톡 메시지는 이미 유명했다. 그리고 서준의 다음에 만나자는 답장과 ‘형 여기 아니야.’ 하는 백건하의 답장도.
물론 허락은 받았다.
-교수님 앞에서 교수님 강의 듣고 싶었다고 말하기.
=교수님: (흐뭇)
-근데 나도 강의 한번 듣고 싶다.
=22무편집본 올려달라고요ㅠ
그렇게 오늘도 많은 광고를 보며,
-오, 버밀리온 아님? 얘네 노래 좋던데.
=22 매일 듣고 있음.
=앰버! 얘들도 노래 진짜 잘하지.
=믿고 듣는 코코아엔터 가수들.
-박시영 피자 광고 찍었구나!
=운명 다른 배우들도 광고 많이 찍었더라.
-광고모델들ㅋㅋ이서준 인맥 아니냐고ㅋㅋ
[섬섬생활]이 방송하기를 기다렸다.
-시작한다!
곧 [섬섬생활] 7화가 시작되었다.
해가 뜨는 죽묘도의 모습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언제나 그렇듯 일찍 일어나 산책하러 나가는 서준을 비추었다. 그 옆에는 고양이들도 있었다.
-고양이: 패턴 입력 완료.
=이제 매일 아침 산책해줘야 함.
=개냐고ㅋㅋㅋ
-근데 서준이 안 올 때는 아쉽겠다ㅠㅠ
=벌써 헤어질 생각에 슬픔ㅠ
뒤를 이어 민재원도 산책하러 나가고, 곧 둘이 같이 돌아왔다.
백건하도 일어나 서준과 민재원에게 잘 잤냐고 인사했다.
-김경우는?
=아직 자는 것 같은데.
그리고 방안의 모습이 비쳤다. 편안한 얼굴로 꿀잠을 자고 있는 김경우가 보였다.
-기절한 거 아님?
=앜ㅋㅋㅋ
-뭔가 할머니집 갔을 때 자는 내 모습 같다.
=22 게다가 민재원이 햇빛에 말린 이불이라서 냄새도 좋을 듯.
=햇빛+이불은 못 이기지.
그러다 ‘서준이 형!’이라고 부르는 백건하의 목소리에 김경우가 눈을 번쩍 뜨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아니ㅋㅋ이정도면 백건하랑 쌍둥이 아니냐곸ㅋㅋ
=(6화에서 자다 벌떡 일어나는 백건하 짤.)
=22 놀라는 모습도 똑같더니ㅋㅋㅋ
=이래서 친한가 싶다ㅋㅋ
“저! 저 일어났습니다!”
까치집이 된 머리로 외치는 김경우에 배우들과 제작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나도 좀 깨우지……!”
“너무 푹 자서. 진짜 죽은 듯이 자던데, 형.”
-또 깨우지 않은 백건하ㅋㅋ
=김경우: 좋아. 좋은데 이럴 땐 좀 깨워줘……ㅎ
세 배우는 일어난 김경우와 함께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메뉴는 양식.
서준은 어제저녁에 만들어 발효시켜 놓은 빵 반죽을 꺼내 적당한 크기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오븐 판에 올린 후 민재원이 만든 화덕 안에 넣었다. 그 옆에 작은 쿠키 반죽들도 있었는데, W쿠키였다.
-빵 반죽 많아ㅋㅋㅋ
=백건하가 많이 먹음.
=김경우도 그만큼 먹더라ㅋㅋ
=진짜 영혼의 쌍둥이라고ㅋㅋㅋ
-W쿠키!! 서준이가 직접 만든 W쿠키라니!
=W쿠키 나온지 1년 조금 안 됐는데, 여전히 잘 팔리고 있더라.
=맛있잖아ㅠ 나 지금 먹으면서 보고 있음.
=22 나도 W쿠키 들고옴. 드디어 TV 보면서 같이 먹을 수 있겠구나.
=33 맨날 부럽게 보기만 했는데.
-근데 화덕에서 잘 구워질지 모르겠네.
=ㄴㄴ민재원 제작+이서준 요리 라서 믿음이 감.
=22 전문가들이 만드는 건데 맛있겠지!!
=둘 다 본업 배우라고ㅋㅋㅋ
빵이 구워지는 사이, 서준은 다른 재료들도 준비했다.
제작진에게서 산 소시지와 햄, 계란 프라이를 할지 스크램블을 할지 고민 중인 계란, 채소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까지.
물론 지금 구울 생각은 아니었다. 빵이 다 구워지려면 좀 기다려야 하니까.
‘식으면 맛없지.’
샐러드만 미리 만들어 놓으려는 서준에게 백건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서준이 형! 저 토스트도 먹고 싶어요! 계란에 양배추 썰어 넣어서 구운 거 있잖아요!”
“그것도 맛있지.”
그에 민재원와 김경우도 입맛을 다셨다.
“그럴까? 그럼 양배추는 건하 네가 썰어볼래?”
“좋아요!”
양배추를 받은 백건하가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식칼을 들었다. 그리고 서걱, 양배추를 잘랐다.
“이거 큼직하고 네모난 게 딱 닭갈비에 넣으면 되겠다.”
“좀, 좀 크긴 해도 그 정돈 아닌데!”
“그 정돈데! 더 얇게, 길쭉하게 썰어!”
김경우가 백건하의 옆에서 더 잔소리를 해댔다.
그에 케첩과 마요네즈, 설탕으로 토스트 소스를 만들던 서준과 화덕을 확인하던 민재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빵이 다 구워지기 조금 전, 서준은 프라이팬 대신으로 쓰는 뒤집힌 솥뚜껑에 소시지와 햄, 토스트 속을 올려 구웠다. 계란은 그냥 프라이와 스크램블 둘 다 하기로 했다.
“먹고 싶은 걸로 먹으면 돼.”
“와! 저 둘 다 먹고 싶었어요!”
“저도요!”
“……서준아, 더 해야겠는데?”
“그러게요.”
환호하는 백건하와 김경우에, 민재원과 서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곧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원래는 개인 접시에 따로따로 놓으려고 했는데, 먹기 편하게 뷔페식으로 차렸다.
-호텔 조식 뷔페 같다ㅋㅋㅋ
=담당요리사: 배우 이서준.
=……예?
-내일 아침은 이거다.
=22 다 집에 있는 거라서 만들어 먹으면 되겠다!
=식당 주인들: (아쉽)
=ㅋㅋㅋㅋㅋ
-인서트 찍는데 백건하 침 흐를 것 같다.
=백건하: (눈빛) 빨리 찍어주세요! 빨리!
=김경우도 똑같음ㅋㅋ
=우리집 초코 같네ㅋㅋ
=강아지! 귀엽겠다!
=고양이야.
=아하?
=ㅋㅋㅋㅋㅋ
인서트 촬영이 끝나고 네 배우는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빵 엄청 맛있어요, 서준이 형!”
“토스트도요!”
“그건 내가 썰었는데!”
“소스랑 구운 건 서준이 형이 한 거잖아.”
백건하와 김경우는 그렇게 투닥거리면서도 맛있게 아침밥을 먹었다.
“소시지 굽는 법도 따로 있는 거야? 아님 이 소시지가 원래 맛있는 거야?”
“저는 굽기만 한 거라서. 소시지가 원래 맛있는 거 같아요.”
민재원과 서준도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소시지 어디 건데.
=이거 PPL 아니야? 아니라서 안 가르쳐 주는 거야?
=왜 팔아주겠다는데 광고를 안 하는 거야!!
-포장지로 조사하면 나오지 않을까?
=ㄴㄴ제작진이 소시지만 줌.
=모양보고 알아내자.
=소시지 모양은 거기서 거기잖아ㅠㅠㅠ
-제가 내일 아침에 먹겠다고 했나요? 지금 먹겠습니다!
=22 이미 냉장고 여는 중.
-아는 맛이겠지만 그래서 더 먹고 싶은.
=근데 섬섬생활에 나오는 건 대부분 아는 맛이었어ㅋㅋㅠㅠ
=그래서 볼 때마다 더 먹고 싶어지지ㅠㅠㅠ
-와. 음식 1도 안 남았네.
=백건하 스크램블 1조각까지 다 먹음ㅋㅋㅋ
=마지막 빵은 김경우랑 가위바위보 해서 졌어ㅋㅋ
=이서준(요리사/본업 배우): (흐뭇)
=맛있게 먹어주면 진짜 좋지ㅋㅋ
아침 식사가 끝나고 백건하와 김경우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서준은 소금 연주를 들려주었다. 김경우는 처음 듣는 소금 연주였다.
“건하야.”
“응?”
“나랑 바꾸자. 나도 여기 고정 출연하고 싶어.”
“싫어! 안돼!”
설거지를 하던 김경우와 백건하의 대화에 2주 동안 오지 못할 집을 둘러보던 민재원과 연주하던 서준이 빵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