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02화
-제가 이런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오예입니다. 너무 좋아ㅠ
=222 더 보여줘요. 더 보여줘.
-나 벌써 과몰입해버림.
=?과몰입할 게 뭐 있음? 그냥 사실을 보여준 건데.
=맞아. 서준이 전생이 단종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너흰 그만 몰입해도 될 것 같다.
=ㅋㅋㅋㅋㅋ
많은 사람들을 과몰입시켜 버린 짧은 영상이 지나가고, 적당한 크기의 대나무통을 찾는 네 배우의 모습이 보였다. 고양이가 쫑쫑쫑 서준을 따라다니는 것도 보였다.
민재원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서준이 도착했다. 뒤를 이어 강명헌도 왔다.
백건하만 오지 않고 있었다.
“건하야!”
큰 목소리로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잠깐만.”
강명헌이 주위를 살펴보더니, 대나무 2개를 이용해 피리를 만들었다.
삐이이--!
마치 호루라기 소리 같았다.
“그건 뭐예요, 명헌이 형?”
“대나무 피리. 어렸을 때 아는 형이 종종 만들어줬어.”
서준의 물음에 강명헌이 웃으며 대답하고는 다시 한번 대나무 피리에 숨을 불어넣었다.
삐이이--!
“아, 하긴 대금이나 소금 같은 악기도 대나무로 만들지.”
“그래도 이렇게 직접 만드는 건 처음 봐요.”
-나도 처음 봄.
=22 피리를 즉석에서 만들 줄이야.
-근데 이걸 듣고 오겠어?
“와! 형! 방금 전 그거 뭐예요!”
-……왔네.
=ㅋㅋㅋㅋㅋ
=아니, 진짜 개 아니야?ㅋㅋ
=백건하 댕댕이 확인 방송이냐고ㅋㅋ
“나중에 또 먹을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많이 모아왔어요!”
백건하가 모아온 대나무통들을 보며 민재원이 입을 열었다.
“……건하야. 너 혹시 전생에 나무꾼이었니?”
-나무꾼ㅋㅋㅋㅋ
=서준이는 왕인데ㅋㅋ 나무꾼ㅋㅋㅋ
-근데 사실은 단종 유배 때 영월에서 만난 나무꾼. 장작 주다가 친해짐. 단종 죽고 나서 땅에 묻어줌. 환생해서 다시 만남.
=!!!!
=ㅠㅠ울리지 말라고ㅠㅠ
-강명헌이랑 민재원 전생도 만들어주라.
=강명헌은…… 병사?
=그거 빼고.
=아냐. 이것도 생각해보면 좋은듯. 단종 모시던 무사였는데, 사약 소식 듣고 병사로 분장해서 유배지까지 가는 거임. 단종이랑 같이 도망치려고 했는데, 숙부가 계속 쫓아올 거라는 단종의 말에 포기한 거지. 그래서 눈물 참으면서 주군 마지막 가시는 길 봄.
=민재원은 문사 하자. 병약해 보이는 게 딱임.
=22 단종 스승이었는데, 단종 폐위 소식 듣고 반대+복위시키려다가 처형.
=……역 다시 봐야겠다ㅠㅠㅠ
=아니, 이런 내용은 없습니다ㅋㅋㅋ
=이런 날조 좋음ㅋㅋ
시청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네 배우들은 옹기종기 모여 대나무 피리를 만들고 있었다.
-평화로울 땐 이러고 놀았겠지. 단종이랑 무사랑 스승이랑.
=나무꾼도 넣어줘.
=ㅋㅋㅋㅋ
뭐든지 [역]과 관련되어 보이는 필터가 단단히 씌워진 것 같았다.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하는 사이, TV 속 서준이 피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 피리요?
=피리를 만든다고?
=단소 같은 걸 만든다는 거지?
단소만 한 대나무를 찾는 네 배우들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걸 평범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거야?
=모양만 그럴듯하게 만드는 거면 가능할 듯.
=22 소리가 문제지.
=33 조금 삐끗해도 이상한 소리 날 것 같다.
-근데 이서준은 바이올린 연주도 잘해서.
=초딩 때 그레이 NO.1 작곡했잖아.
=그래도 악기 만드는 거랑은 많이 다르지.
-그냥 장난삼아 만드는 거 아님?
=22 예능이잖아.
대나무숲에서 나온 네 배우는 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요리 재료를 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돌아왔다.
-다들 일머리가 있어서 보기 좋음.
=ㅇㅇ마음이 편하다.
-미국 가서 농사지으면 존잼일듯. 거기 밭 진짜 크다던데.
=22 ㅈㄴ큼. 농약 뿌릴 때 헬기를 띄움.
=헬기ㅋㅋㅋㅋ
=헬기 한 번 몰아주라ㅋㅋ
=그건 진짜 일하는 거 아니냐고ㅋㅋ
집으로 돌아온 네 배우는 저녁을 준비했다.
깨끗하게 씻은 대나무통에 밥과 백숙의 재료를 넣고 입구를 잘 막은 후 가마솥 안에 넣어 쪘다.
“으아아! 진짜 맛있겠다……!”
가마솥 뚜껑 틈 사이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만 봐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아는 맛인데, 모르는 맛일 듯.
=나도 먹고 싶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요리가 완성되었다.
평상 위에 놓인 밥상으로 대통밥과 대통백숙이 옮겨졌다.
카메라가 밥상으로 다가가 딱 알맞게 된 잡곡밥과 부들부들 잘 익은 백숙, 맛있어 보이는 겉절이와 양념장 등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와, 죽겠는데?”
다리를 덜덜 떨며 초조한 얼굴로 인서트 촬영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 배우들의 모습도.
그 모습이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내일은 백숙이다.
=대통백숙은 아니지만 닭백숙.
=백숙이 안되면 삼계탕이라도……!
아마 내일 백숙집과 삼계탕집은 밀려 들어오는 손님들로 환호성과 비명을 함께 지를 것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
카메라가 비키고.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쏟아지는 감탄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과 반짝거리는 표정이 정말 맛있다는 게 절절히 느껴졌다.
-부럽다…… 부러워!
-이서준 요리 먹는 법: 배우가 된다.
=알고는 있지만 절대 못하는 방법.
=내가 연기만 할 수 있었어도 벌써 서준이 사단 들어가서 서준이랑 같은 작품 찍고 쿠키도 얻어먹고 바이올린 연주도 듣고 연극도 직접 보고 요리도 얻어먹었을 텐데!
=ㅋㅋㅋㅋㅋ
-근데 배우가 된다고 해도 이서준을 직접 볼 수 있다고는 장담 못함.
=22 지금도 서준이 만나고 싶다는 배우들이 많음.
=33 의외로 좁으면서도 넓은 곳이라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끝낸 네 배우는 뒷정리를 끝내고 거실로 향했다.
방1은 민재원과 강명헌, 방2는 서준과 백건하가 쓸 예정이었는데, 잠잘 시간이 되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맛남식당 보나?
=저 주에 무슨 장면이 나오더라?
2화처럼 [맛남 식당]을 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강명헌을 오랜만에 만났던 만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건하는 아예 초면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직업이 직업인 만큼 연기에 관련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고,
[축! 새로운 교수님이 오셨습니다! 환영!]
백건하는 새로운 교수님을 맞이해야 했다.
-강 교수님이 오셨습니다!
=교수 3 제자 1이라니……
=없던 트라우마도 생길 것 같다.
-이 정도면 이거 섬섬생활 아니라 연기합숙 아니냐곸ㅋㅋ
=이럴 것 같더라니ㅋㅋ
-그래도 백건하 두 번째 강의라 좀 알아듣……나?
=열심히 듣고는 있음.
=듣고는ㅋㅋ꼭 물리강의 듣는 나 같네ㅋㅋ
=222 영어수업 듣는 나 같다.
-이러다 과제도 내주시는 거 아님?
=아, 과제. 나 과제 있었지.
=ㅎㅎㅎ나도ㅎㅎㅎ
=교수님. 전 교수님 강의만 듣는 게 아닌데요ㅠㅠㅠ
-그래도 이번에는 1시간 30분만 함.
=세상에! 교수님들이! 시간을 줄여주시다니!
모두 낄낄 웃으며 또 영혼이 가출해버린 백건하와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이서준, 민재원, 강명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뭐랄까. 저런 모습 보니까 진짜 연기 좋아하는 게 보이네.
=서준이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해왔고, 민재원이나 강명헌도 무명시절을 견뎌냈으니까. 안 좋아하면 못하지.
=왠지 나까지 저렇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거, 그걸 할 수 있다는 거. 참 좋은 일임.
한바탕 신나게 이야기를 한 배우들은 그만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잘 자요, 서준이 형.”
“건하 너도 잘자.”
이히히 웃은 백건하와 부드럽게 웃은 서준이 눈을 감았다.
방이 고요해졌다.
[10초 만에 잠듦.]
-불면증은 1도 없는.
=불면증이라는 단어는 알까 싶다.
=ㅋㅋㅋㅋ
-진짜 저렇게 자는 사람들 부러워.
=그래도 굿나잇 나온 후로는 잘 자고 있음.
=22 굿나잇 너무 좋음.
불이 켜져 있던 민재원과 강명헌의 방도 곧 어두워졌다.
주황색 지붕의 집을 비추던 카메라가 돌아, 어두운 바다와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을 비췄다. 빠르게 점점 더 어두워졌다가 수평선 끝에서부터 주홍빛 빛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해가 뜨고 있었다.
꼬끼오! 하고 수탉이 울었다.
방 안에 거치된 카메라에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가 담겼다. 서준이었다.
-깨는 것도 진짜 바로 깬다. 난 한 30분은 뭉그적거리는데.
-자고 일어나도 미모는 여전한ㅎㅎㅎ
=머리 뒤집어진 거 귀여워(입틀막)
-오늘도 산책 가나?
-전보다 일찍 일어난 것 같은데?
간단히 세수를 하고 나온 서준은 마루에 걸터앉았다.
“안녕, 잘 잤어?”
하고 고양이 누렁이와 인사를 한 후, 마루 구석에 있던 대나무 피리를 집어 들었다. 산책 대신 피리를 만들 생각이었다.
“좋아.”
신중히 대나무 피리를 살펴보던 서준이 검은색 펜을 들어 대나무 위에 표시를 하고는 칼과 송곳 등의 도구로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서준의 손에 의해 대나무의 모양이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해가 점점 뜨는데도 서준은 앉은 상태 그대로, 가끔 햇빛에 대나무 피리를 비춰보며 진지하게 손을 움직였다.
표정과 손동작, 눈빛이 꼭 장인의 그것 같았다.
-피리 모양도 좀 괜찮지 않아?
=22 피리는 잘 모르지만 예쁜 것 같다.
“잘 잤어요, 형들? 건하도 일찍 일어났네.”
그러는 사이 일어난 민재원과 강명헌, 백건하가 서준의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그 모습을 구경했다.
사각사각-
ASMR 같은 소리가 마당을 채웠다.
몇 분 후.
서준이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았다,
“완성했어, 서준아?”
“네. 소리가 잘 날지는 불어봐야 알겠지만요.”
“소리가 안 나도 멋진데. 장식품으로 써도 되겠다.”
강명헌의 말대로, 완성된 대나무 피리는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얼른 불어봐요, 형!”
백건하의 재촉과 흥미로워하는 민재원과 강명헌에, 서준이 웃으며 대나무 피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취구에 입술을 댔다.
후우- 하고 바람을 불어넣으려던 찰나.
[다음 주 예고!]
-안돼!!!
예고편이 흘러나왔다.
-인간적으로 연주하는 건 보여줘야지!!
-아니 시간 언제 이렇게 지났음?
=22 30분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4화가 끝났다고요??
=33 시간…… 이럴 때만 너무 빠른 거 아니냐고.
아무리 탄식해도 예고편까지 끝난 [섬섬생활]이 다시 이어져 나오진 않았다.
안타까워하던 시청자들은 곧 다시보기를 보거나 잘 준비를 하거나 예고편과 방송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피리 단소처럼 세로로 안 잡고 가로로 잡은 거 보면 소금처럼 만든 듯.
=소금? 먹는 거?
=악기임. 큰 건 대금, 작은 건 소금.
-어떤 소리 나올지 궁금하다. 한 번도 안 불러보고 완성한 것 같던데.
=편집한 거 아님?
-소리가 잘 나오든 못 나오든 재밌긴 할 듯.
=22 저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ㅋㅋ이상한 소리 나오면 웃기겠다ㅋㅋ
-누가 저것도 역 필터 끼워서 썰 써줘.
=단종 취미가 소금 연주인 건 어떰? 세종이랑 문종이 어렸을 때 가르쳐줘서, 왕이 되어서도, 유배 가서도 종종 연주한 거지. 돌아가신 가족들 그리워하면서.
=ㅠ안 울고 싶은데 눈물이 저절로 나옴ㅠ
=단종 이야기는 나오기만 하면 눈물ㅠㅠㅠ
=홍위야ㅠㅠ
-!악보도 만드신 세종대왕님이시라, 가능성 있음!
=그런 가능성 없어요.
=+)모르는 일임! 세조가 단종실록>노산군일기 수정하면서 삭제했을지도 모름!!
=……그런가?
=설득당하지 말라고ㅋㅋㅋ
* * *
“역시 이서준!”
스튜디오 ‘꿈’의 제작 1팀은 [플러스+]의 영화 카테고리 1위를 차지한 [역]과 그 뒤를 이은 배우 이서준의 작품들에 감탄했다.
“영화 홍보하러 예능 출연하는 경우 중에, 이렇게 홍보 효과가 엄청난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나도 그래. 이레귤러스 때문에 섬섬생활 보고, 섬섬생활 때문에 이레귤러스 보잖아.”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영화들도 보게 되잖아요.”
물론, 보통 1회성인 게스트 출연과 달리 [섬섬생활]은 약 두 달가량 방송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미없으면 안 보죠.”
“그러니까.”
방금 전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고 온 제작1팀 팀원들이 웃었다.
“우리 영화도 이렇게 떠들썩했으면 좋겠어요.”
“떠들썩하긴 하겠지. 좋은 쪽일지 나쁜 쪽일지는 모르겠지만.”
팀장의 말에,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꿈’ 소속 제작 1팀은 사무실 안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포스터와 인형들을 바라보았다.
푸른색 용과 두 소녀.
어린이 연극 [봄]에 나오는 청룡님과 주인공 봄과 동생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