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01화
다음 날 아침.
고양이들과 아침 산책을 한 서준은 민재원, 백건하와 같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비어 있던 방도 다시 깨끗하게 쓸고 닦고, 어떤 음식을 대접할지, 어떤 걸 같이 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여기서 딱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면 서준이 형이 있는 거죠! 아, 여기 카페가 있었으면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어서 오세요!’ 하는 건데! 아쉬워요!”
게스트를 깜짝 놀래켜 주는 거였다.
백건하는 눈 만난 강아지처럼 몇 번이고 대문을 열었다가 닫으며 시뮬레이션을 했고, 서준과 민재원도 웃으며 그걸 도와주었다.
“여기 있으면 될 것 같아요! 서준이 형!”
“여기?”
“잠시만요. 네! 완벽해요!”
대문을 열자 확실히 보이는 서준의 모습에 백건하가 엄지를 척 들어 올렸고, 서준과 민재원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잠시 후.
게스트가 육지선착장에 도착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화면이 바뀌었다.
육지선착장.
“재원이 녀석, 이거 촬영하고 있었구나.”
하고 말하며 차에서 내리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강명헌!
-강명헌이네?
조연 전문 배우 강명헌이었다.
강명헌의 모습이 잠깐 멈추고 그에 대한 설명 영상이 흘러나왔다. 유명한 작품들에 주로 ‘삼촌’ 역으로 많이 나오면서 얼굴을 아는 시청자들이 대부분이라 모두 반가워했다.
-강명헌 이서준 만난 적 없지?
=ㅇㅇㅇ같은 작품 한 적 없음. 건너건너 안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음.
=근데 연예인 인맥은 진짜 뜬금없어서ㅋㅋ모를 일ㅋㅋ
-엄청 놀라겠다ㅋㅋ강명헌 배우도 서준이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222 서준이 이야기 자주 하더라.
=민재원 지인 같은데, 서서 기절하는 거 아님?ㅋㅋㅋ
모두 잠시 후 서준을 보고 놀랄 강명헌의 모습을 기대했다.
강명헌이 탄 배가 죽묘도로 향했다.
“어? 명헌이 형?”
“우아아아! 강명헌 선배님이다!!”
게스트를 마중 나온 민재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백건하가 배에 타고 있는 강명헌을 보며 와아아! 두 팔을 흔들었다.
-아는 사람(민재원)이 있으니 활발한 똥강아지ㅋㅋㅋ
=진짜 우리 집 애 같넼ㅋㅋ
=22 엄마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는 우리 강아지 닮음.
“형이 여긴 어쩐 일이에요?”
“어쩐 일이긴, 너 보러 왔지. 안녕하세요, 백건하 배우. 강명헌입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백건하입니다!”
하고 인사를 나눈 세 배우가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했다.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주황색 대문이 보였다.
“먼저 들어가세요! 선배님!”
“건하도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옙!”
강명헌이 살짝 열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궁이 앞에서 쭈그려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남자를 발견했다.
“……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남자의 모습에 강명헌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남자도 살짝 눈을 크게 만들었다가 이내 웃으며 강명헌의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강명헌 배우님.”
백건하와 민재원, 제작진이 기대하는 것처럼 시청자들도 화들짝 놀랄 강명헌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명헌의 반응은 그것과 조금 달랐다.
“와! 서준이! 아, 죄송합니다. 이서준 배우님.”
놀라긴 했지만, 그렇게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서준을 굉장히 친근하게 불렀다.
“저도 모르게…… 처음 뵙겠습니다, 배우 강명헌입니다.”
그에 서준이 하하 웃었다.
“처음은 아니죠. 옛날에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오! 기억하세요?”
“기억하죠. 아,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럴까? 서준이 너도 편하게 말해. 와, 여기서 서준이 널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놀라기는커녕 활짝 웃으며 아주 반가워하는 강명헌에 시청자들이 눈을 끔벅였다.
-????
-뭐야? 둘이 아는 사이였어?
-같은 작품 나온 적 없다고 하지 않았음?
=22 같이 촬영했었다고??
하고 물음표가 가득한 댓글들을 쓰며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알려주기를 기다릴 때.
[다음 주 예고!]
예고편이 떴다.
-여기서 끊기냐아!!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는 알려줘야지!
-아니, 내가 서준이 작품을 몇 번 정주행했는데, 강명헌을 몰라볼 리가 없는데?
=22 강명헌을 못 봤을 리가 없는데??
익숙하게 내일 식사 목록에 [섬섬생활 3화]에서 서준이 만들었던 음식들을 적어둔 시청자들은 서준과 강명헌이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추리했다.
-연극……은 어린이 연극 아니면 학교 연극밖에 없고.
=ㄴㄴ강명헌은 연극 안 했음.
-김종호나 이지석이랑 아는 사이라서 소개받은 거 아님? 둘 다 오래 활동해서 아는 배우들 많잖아.
=22 서준이도 오래 활동하긴 했지만, 한국+미국이라ㅋㅋㅋ
=대신 미국 배우들을 소개해줌ㅋㅋ
-그럴 수도 있긴 한데, 같이 촬영했다고 했잖아.
=촬영은 했지만 통편집 당한 거 아님?
=22 본 적이 없는데요ㅠㅠㅋㅋ
=그럴지도?
=근데 편집 안 한 거 보면 자료 화면 남아있을 것 같다.
=22 방송이 되긴 했을 듯.
-강명헌도 민재원처럼 유명해지기 전에는 단역배우 꽤 오래 했었으니까, 그때 알게 된 것 같은데.
=22 단역배우들은 보통 이 작품 저 작품 많이 하니까 그때 만났을 수도.
=33 민재원이 수려에서 좀비로 나왔던 것도 몰랐으니까. 강명헌도 이스케이프에서 좀비로 나왔던 거 아닐까?
-ㅋㅋ그러면 이서준 진짜 대단한 거 아님? 그게 언제적 영화인데 그걸 기억함?ㅋㅋ
=10년 전 영화임.
=ㄷㄷㄷ10년.
=촬영은 11년 전.
=와우.
=게다가 좀비로 나왔으면 알아보기도 힘들었을 텐데.
=분장 전에 만났겠지.
=ㄴㄴ좀비 분장하는데 오래 걸려서 주연 배우들이랑 마주칠 확률은 거의 없었을걸.
=게다가 강명헌이 좀비 역 했다는 이야기도 못 들어봄.
제법 비슷하게 추측하긴 했지만 정답을 맞힌 이들은 없었다.
“이스케이프는 아니잖아. 그때 강명헌 배우랑 만났으면 나도 기억……은 못 했겠네.”
[이스케이프]에 함께 출연했었던 강재한의 말에 서준과 한지호가 하하 웃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4학년 2학기 전공필수 강의를 듣기 위해 서준과 강재한, 한지호, 전성민이 한 강의실에 모여 앉았다.
“중1 가을쯤에 촬영했었다고?”
“응. 그때 했었어.”
중학생 때는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전성민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울예중 1학년 2학기 때쯤 [이스케이프]를 촬영했었다. 벌써 11년이나 지났다.
“내가 촬영했던 건 기억 나는데, 단역배우분들까지는…….”
끙- 앓는 소리를 내는 강재한에 한지호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만났어도 좀비 분장 중이라서 알아보기 힘들었을걸.”
촬영할 장면들이 많아서 바쁜 주조연 배우들과 분장시간이 긴 엑스트라들은 대기 시간도 대기장소도 달랐다. 그래서 만나기가 힘들었다.
“좀비 분장한 상태로 식사도 하셔서 깜짝 놀랐었잖아, 그때.”
“맞아. 그랬지.”
서준의 말에 강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준이 그때 강명헌 배우 만난 거 아님.”
[섬섬생활] 촬영 때, 이야기를 들었던 한지호의 말에 강재한과 전성민이 다시금 추리를 시작했다.
“서준이가 나온 한국 작품이…….”
“화랑 바벨탑 카메오는 빼야겠네.”
“바벨탑은 왜 빼?”
한지호의 물음에 전성민이 웃으며 대답했다.
“외국인분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아하.
‘배우 이서준’ 역할을 맡았던 UN연설 장면을 떠올린 서준과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이레귤러스 몇 번 보니까 일주일 지나있음.
=몇 번 봤는데.
=9번.
=……계산이 안 맞는데? 일주일은 7일 아님?
=주말에 2번씩 봄. 원래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앜ㅋㅋㅋㅋ
사람들은 [이레귤러스]만이 아니라 시즌2 히어로영화들, [쉐도우맨 시리즈]와 시즌1 히어로영화들, 그리고 [섬섬생활]까지 시청했다.
-이걸 다 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22 너튜브 알고리즘 따라가는 느낌이었어.
=33 이제 서준이 작품 봐야지.
=?다들 그걸 볼 시간이 있어?
=……백수다.
=미안.
하여튼.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 4화가 방송하는 날이 되었다.
-그래서 강명헌이랑 이서준은 어디서 알게 된 거임?
의문을 푸는 날이었다.
[섬섬생활 4화]
저번 주 방송에 이어, 반갑게 인사하는 서준과 강명헌을 비추던 카메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백건하와 민재원을 비추었다. 화들짝 놀라는 제작진의 반응도 넣었다.
-놀래키려고 했는데 본인이 더 놀란ㅋㅋㅋ
=작전 실패ㅋㅋ
그 후, 세 배우는 방에 짐을 푼 게스트 강명헌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서준이 만든 요리를 먹고는 눈을 크게 뜨며 감탄하는 강명헌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의문도 잠시 잊은 채 입맛을 다셔야 했다.
-밀키트라도 내줘라.
=22 내가 만들게.
=그럼 그냥 만들면 되는 거 아님?
=소스랑 재료 양을 못 맞추겠음ㅜㅠ
=아……
그리고 기다렸던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옛날에는 단역배우였잖아.”
단역 배우 때 만났을 것 같다는 추측은 맞았다.
“편집돼서 얼굴이 나오진 않았거든.”
-아…… 그랬군.
-하긴 얼굴 안 보이는 역도 많지.
-그럼 이스케이프에 나왔을 수도 있겠다.
=다른 작품들도 가능성 있음.
“그래서 나 혼자 이서준 배우가 활동하는 거 보면서 ‘와, 서준이!’ 하고 내적 친밀감을 쌓았지.”
-나 같아도.
=22 내가 이서준이랑 같이 촬영했으면 진짜 평생 이야기했음.
=33 TV나 영화 나올 때마다 내적 친밀감 MAX였을 듯ㅋㅋㅋ
“어떤 작품이에요? 옛날이라고 하면, 악령? 내의원? 이스케이프?”
“역이야.”
강명헌의 말을 이어,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노산군, 그러니까 단종한테 사약을 주러 온 병사들 중에 한 명이셨어.”
하고 말하는 서준의 모습이 사라지고.
[출처: 역/영화제작사 단홍]
이라는 자막과 함께 관복을 입은 강명헌의 모습과 사약을 앞에 둔 어린 서준의 모습이 함께 나오는 장면이 짧게 방송되었다.
순식간에 [역]을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단종ㅠㅠㅠ
=우리 홍위ㅠㅠ
-내가 이 장면에서 얼마나 울었는데…… 여기 나오셨구나…… 그랬구나…….
=22 그랬구나…….
=‘……’에 살기가 있는 듯 하다.
-다시 봐도 연기가 진짜 대단함.
=저게 초등학생의 연기입니다, 여러분.
=게다가 1년 전에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받았음.
=와…… 어마어마하다.
“이거 방송 나가면 나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아시는구나? (농담)
=ㅋㅋㅋㅋㅋ
“그때가 아마 중학생 때였던가?”
“그땐 아직 중학교 입학하기 전이었어요.”
-와. 그때 봤으면 진짜 편하게 부를 만도 했음.
=22 초등학생 서준이라니.
“내가 상상한 만남은 서준이랑 같이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하면서 만나는 거였다고. 뭐, 운 좋으면 서준이가 기억해 줄 거라고 생각했지.”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마음속 말이 튀어나왔다고 말한 강명헌이 추억을 떠올리듯 말했다.
“그때의 단역배우가 이렇게 국민 삼촌이라고 불릴 정도의 배우가 됐다는 걸 알면 얼마나 신기해했겠어.”
-나도 신기함.
=222 이렇게 만날 수도 있네.
=되게, 되게 감동적임ㅠㅠ
-근데 이서준은 11년 전 하루 촬영했던 단역배우도 기억하고 있네.
=서준이라면 가능.
=22 서준오빠라면 가능하다.
=새싹들한테 이서준은 어떻게 인식되어 있는 거임?ㅋㅋㅋ
-왠지 강명헌 말고도 서준이가 만난 배우들 중에서 잘된 배우들 꽤 있을 것 같다.
=20년 정도 활동하셨으니까…… 없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ㅋㅋ하셨대ㅋㅋ
=그럴만한 경력이긴 하지ㅋㅋ
-다 같이 만나도 재미있을 듯.
=예능해줘라ㅋㅋㅋ
-헐! 그 사약 장면이면 강원도에서 찍은 거 아님?
=ㅇㅇ그런듯.
=+)그럼 워킹맨에 나온 거잖아!
=……?
=+)큰 버스! 단역배우들이랑 스태프들 타고 있던 큰 버스! 거기 강명헌이 있었다는 거잖아!!
=!!!
=……이렇게 워킹맨이 또……
=또킹맨ㅋㅋㅋㅋ
강명헌의 모습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충분히 즐거워했다.
그렇게 만남에 대한 의문이 풀리고.
점심 식사를 끝낸 네 배우는 뒷정리하고 만들던 화덕을 마무리했다.
-강명헌도 손재주 좋은 듯.
=단역배우들은 다 저럼?
=그럴리가ㅋㅋㅋ
=둘 다 성실해서 이것저것 많이 했던 거 아님?
=22 단역배우만으로는 생활하기 힘드니까.
그다음에는 대나무숲에 가기로 했다.
목표는 대통밥과 대통백숙.
-나도 먹고 싶다고ㅠㅠ
-진짜 밀키트 내줘라.
=대통백숙을 집에서 어떻게 만들어?ㅋㅋㅋ
-음식점 있을 것 같은데.
=예약 터질 듯.
-이런 건 방송 전에 알려줘ㅠ서준아ㅠㅠ
=어떻게 알려주냐고ㅋㅋ
“건하야! 연장 챙겨라!”
“옙! 형님!”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준 강명헌, 백건하와 함께, 서준과 민재원은 대나무숲으로 향했다.
바스락- 바스락-
네 배우들과 대나무숲을 찍던 카메라가 서준을 비추었다.
바람이 분다.
대나무 잎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며, 특이할 것 없는 평상복을 입고 있는 서준이 왠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서준이 아니라 다른 존재 같다.
평상복이 아니라 붉은 곤룡포를 입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숙부에게 배신당하고, 머나먼 유배지에서도 왕으로서 백성들을 돌보려고 했던, 그러나 결국 죽고 마는.
단종, 이홍위.
마치 그가 현대에 다시 태어난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서준아!”
“서준이 형!”
그 목소리들에 ‘그’는 상념에서 깨어나 ‘이서준’이 된다.
미소를 짓는다.
“네. 갈게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세 배우와 합류하는 모습이 보인다.
웃고 떠드는 모습이 평범하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세상에…….
[역]을 떠올리고 있을 시청자들을 위해 준비한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