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95화 (99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95화

어두운 하늘 아래.

깎아내린 듯한 절벽에 새까만 웜홀이 생겨나 무언가를 뱉어냈다.

!

발을 디딜 곳도 없다는 걸 파악한 나이트 진이 얼른 그림자를 이용해 절벽에 발을 박아넣어 추락하려던 몸을 멈추었다.

“여긴…….”

절벽에 매달린 나이트 진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떠 있던 해가 사라져 빛 한 점 없이 어둡고, 바람 또한 살갗을 벨 정도로 차가웠다.

나이트 진은 이런 풍경을, 이런 느낌을 어디선가 겪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에. 심장도 묘하게 크고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두려워하는 걸까. 반가워하는 걸까.

그때 나이트 진의 얼굴 옆으로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제이.”

나이트 진은 저도 모르게 무섭게 굳히고 있던 표정을 풀고 작게 웃었다.

구름이 흘러가고 달빛이 비쳤다.

그러자 주변이 더욱 확실하게 보였다.

“산……인 것 같은데?”

빽빽한 나무들과 절벽, 그리고 구불구불한 도로가 보였다. 아마도 어느 산의 도로인 것 같은데 어딘지는 모르겠다.

“아…….”

데리러 오라고 통신기를 통해 퍼스트에 연락하려던 나이트 진은 텅 빈 왼쪽 귀에 탄식했다.

“싸우다 빠졌나 봐. 어디 들러서 연락해야 할 것 같은데.”

하고 말하며 나이트 진은 절벽을 오르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자동차 한 대를.

아마도 위쪽의 도로에서 떨어져 저 절벽 끝에 걸려 버린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자동차는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른 건 아닌 듯 헤드라이트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가 보자. 제이.”

남은 체력을 계산하며 나이트 진이 자동차 쪽으로 움직였다.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며,

“흐윽…… 엄마…….”

작게 흐느끼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니, 꼬마야?”

그림자로 자동차를 고정시킨 나이트 진은 자동차 안을 살피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힉! 하고 놀랐던 아이는 어른의 모습에 안심한 듯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가…….”

나이트 진이 자동차 문을 열고 운전석을 살펴보았다.

기절한 듯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에어백 때문인지 다행히 생명에 큰 지장은 없는 것 같았다.

“괜찮아. 형이 도와줄게.”

나이트 진은 운전석에서 조심스럽게 여자를 꺼내 등에 업고,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이를 꺼내 앞으로 안았다. 그리고 그림자로 한 번, 벗어놓은 재킷으로 또 한 번 단단히 고정했다.

아무래도 전투로 힘을 많이 썼고, 밤이라 달빛만으로는 제대로 그림자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꽉 잡아.”

“네……!”

아이는 그 말에 손을 뻗어 나이트 진의 등에 업힌 엄마를 꽉 잡았다.

자신을 잡으란 이야기였는데.

그 조그마한 손이 간절히 엄마를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본 나이트 진은 이내 작게 웃으며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용한 가운데.

나이트 진이 절벽을 오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

가끔 달빛을 가린 구름 때문에 그림자를 약해져 움직임을 멈춰야 할 때도 있었고.

“후우…….”

전투로 인해 멀쩡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와 성인 여자를 업고 등반을 하는 터라 땀이 비처럼 흐를 정도로 힘들었으나, 나이트 진은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상태를 살피며 집중했다.

잘못 발을 헛디뎠다간 셋 모두 데구르르 굴러가는 돌멩이처럼 아래로 추락할 터였다.

‘그림자 이동을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쉬움을 느끼며 나이트 진은 계속 절벽을 올라갔다.

아이는 그런 나이트 진을 조용히 바라보다 물었다. 어느새 울먹임과 떨림은 사라져 있었다. 오히려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형은…… 히어로예요?”

그에 나이트 진이 환하게 웃었다.

“맞아. 히어로야. 사람들을 구하는 게 내 일이지.”

“……저도…….”

그때.

나이트 진의 눈앞에 새까만 웜홀이 생겨났다.

조금 전에도 그랬듯 대비하기도 전에 나이트 진과 아이, 여자는 웜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휙하고 어디론가 뱉어내졌다.

땅 위였다.

매드해터가 제대로 제어했다고 생각한 나이트 진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가 불이 켜져 있는 식당을 발견하고는 센트럴파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식당만 달랑 있는 걸 보니 주택가도 아닌 것 같았다.

“또 다른 곳으로 날아온 것 같은데…….”

그래도 땅 위라서 다행이었다.

나이트 진은 아이를 바닥에 내려 자신에게 의지하는 조그마한 손을 꽉 잡은 채 여자를 업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구급차 좀 불러주시겠어요?”

사고가 있었다는 말에 화들짝 놀란 직원이 얼른 연락하는 사이, 나이트 진은 의자에 여자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리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재킷을 덮어주었다. 스켈루스와의 전투로 여기저기 헤지고 찢어지긴 했지만, 괜찮을 터였다.

아이가 얼른 엄마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금방 일어나실 거야.”

히어로 형의 말대로 색- 색- 숨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이트 진을 올려다보았다.

“저도, 저도 형 같은 히어로가 될 거예요! 그래서 엄마도 구하고 다른 사람들도 구할 거예요!”

그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나이트 진이 이내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럼 나중에 같은 팀이 될지도 모르겠네. 기다릴게.”

“네!”

그때.

윽.

하고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도. 아마도 아이를 부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엄마!”

하고 외치며 아이가 다가간 사이, 또 소리도 없이 생겨난 웜홀이 나이트 진을 삼켜 버렸다.

“형! 엄마가 깨어났어요!”

정신을 차릴 것처럼 보이는 엄마에 아이가 활짝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형……?”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한편.

앉은 상태로 웜홀로 빨려 들어간 팬텀은 얼른 투명화를 써 혹시 모를 충격을 피했다.

그러다 주변이 조용한 것을 깨닫고 투명화를 푼 상태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조금 전까지 해가 떠있던 센트럴파크와 달리, 팬텀이 있는 곳은 어두운 밤이었고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나무도 풀도 없었고 낡고 커다란 창고들이 있었다.

“매드해터, 그 자식 도대체 뭘 한 거야?”

투명화를 하면 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스켈루스와의 전투로 그럴 기운은 없는 팬텀은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

젖어가는 머리칼을 쓸어 올린 팬텀이 퍼스트에 연락하기 위해 통신기를 눌렀다.

-…….

‘확인. 팬텀.’이라는 기계음이 들려야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장 났나?”

오른쪽 통신기도, 왼쪽 통신기도 영 작동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팬텀은 한숨을 내쉬며 직접 이곳이 어딘지 알아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근데 여기…….”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던 팬텀이 살짝 눈을 찌푸리고는 공장 같은 건물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묘하게 익숙한데?”

깨진 창문이며 금 간 벽이며 낙서 된 벽들 하며 지저분한 상태까지.

고향에 온 듯 익숙했다.

“……브루클린이잖아?”

제 집이 있는 브루클린이었다.

물론 눈앞에 나타난 강과 이어진 바다를 보니, 자신의 집에서는 좀 거리가 있는 항구 쪽인 것 같았지만 말이다.

오호.

팬텀이 턱을 매만졌다.

“이대로 퇴근해도 되겠는데.”

히어로지만 직장인인 팬텀 또한 퇴근이 좋았다.

“내가 더 할 일은 없을 것 같고.”

뒤처리는 퍼스트가, 웜홀에 관한 건 매드해터가 알아서 할 터였다.

이대로 집으로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한 뒤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고 싶었다.

끝내주는 퇴근 후 계획을 세운 팬텀이 활짝 웃으며 집이 있는 동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삐-

그 소리만 나지 않다면 말이다.

직장인이지만 히어로인 팬텀이 그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주륵주륵 내리는 빗소리 사이,

삐-

그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건…….”

통신기에서 나는 이 소리는 체셔 캣이 설치한 생명 반응 감지 프로그램이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조용한 낡은 항구를 살펴보며 팬텀은 걸음을 옮겼다.

삐- 삐-

심장 박동 같은 그 소리가 강해지는 곳으로.

그리고 마침내.

항구 끝에 서게 되었다.

“……뭐야?”

밤이라 어둡고 검은 바다만 보였다.

“이것도 고장 났나.”

비에 홀딱 젖은 팬텀이 이를 갈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러면서도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삐- 삐- 삐-

하아-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쉰 히어로는 머뭇거림 없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진짜 없기만 해봐라!’

팬텀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헤엄쳐갔다.

그리고 침몰한 배를 발견했다. 삐- 삐- 소리는 그 안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팬텀은 투명화를 한 상태로 배의 벽들을 통과했다. 점점 빨라지는 신호음은 배의 가장 아래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바닥.

구멍으로 들어온 바닷물에 상자나 나무통 같은 것들이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쉐도우맨?!’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쉐도우맨도.

투명화를 푼 팬텀의 입에서 보글 물방울이 생겨났다. 너무 놀란 것이었다.

팬텀은 얼른 쉐도우맨에게로 다가가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쉐도우맨이 임무가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어셈블과 이레귤러스.

팀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센트럴파크와 그리 멀지 않은 브루클린이었다. 짧게라도 언질을 해줬을 텐데 팬텀은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나이트 진 그 녀석도 모르던 눈치였고.’

자신의 영웅이 이런 곳에 이런 모습으로 있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

팬텀은 침음성을 삼켰다.

귀를 울리는 생명 반응 감지 프로그램을 끈 팬텀은 쉐도우맨을 데리고 탈출하기 위해 움직였다. 구멍이 있긴 했는데, 사람이 통과할 정도로 크진 않았다.

삐삐- 빠르게 울렸던 신호음과 달리 쉐도우맨의 심장 박동은 아주 느릿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멈춰 버릴 것 같았다.

‘방법이 있긴 한데…….’

투명화를 사용해서 나가는 거였다.

하지만 그건 팬텀만 사용할 수 있었다. 투명화를 써서 생명체(스켈루스)의 몸 안에 들어가는 것과 생명체(쉐도우맨)와 함께 투명화를 써서 벽을 통과하는 건 난이도가 달랐다.

바닷속이라 숨을 참고 있던 팬텀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젠장.’

창백한 쉐도우맨의 얼굴 위로, 쉐도우맨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던 나이트 진, 윌리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함께 싸웠던 조금 전의 일도.

점차 느려지는 쉐도우맨의 맥박을 느끼며 팬텀은 집중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쉐도우맨은 지금 의식도 없고 맥박도 약한 빈사상태. 거의 죽어가는 상태라 무생물체나 다름없었다.

‘무생물체. 무생물체다.’

팬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깨에 쉐도우맨의 팔을 걸친 채 벽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투명화를 사용했다.

‘……윽!’

안 그래도 부족하던 체력이 훅- 빠져나갔다.

그래도.

‘됐어!’

쉐도우맨까지 무사히 투명화가 되었다.

이를 악문 팬텀은 지체하지 않고 벽을 뚫고 나아갔다. 최대한 빨리 배에서 나가야 했다.

!

순식간에 팬텀과 쉐도우맨은 배 밖으로 나와, 넓고 어두운 바다에 도착했다.

그러나 투명화에 모든 힘을 다 써버린 탓에 그 바다를 빠져나올 체력이 없었다. 쉐도우맨을 잡고 있던 팬텀의 손에서 힘이 천천히 빠져나가 찰나.

웜홀이 생겨나 두 히어로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땅 위.

바닷물과 함께 팬텀과 쉐도우맨이 토해졌다.

“……진짜 죽을 뻔했다…….”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비가 닿지 않는 곳에 쉐도우맨을 똑바로 눕힌 팬텀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쿨럭쿨럭- 기침과 함께 바닷물을 토해내는 쉐도우맨이 보였다. 정신은 잃은 것 같았지만 다른 응급처치는 필요없는 것 같았다.

“아, 외계인이었지.”

후우.

하고 한숨을 돌린 팬텀이 이내 팔을 뻗어 쉐도우맨의 귀를 살펴보았다. 자신의 고장 난 통신기 대신 사용해 퍼스트에 연락하려고 했는데, 없었다.

“도대체 무슨 임무였던 거야?”

다시금 한숨을 내쉰 팬텀이 자신의 통신기를 꺼내 부쉈다. 고장 났을지도 모르니 양쪽 다.

그렇게 구조신호까지 보내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팬텀의 뒤로 새까만 웜홀이 생겨나 팬텀을 삼켜 버렸다.

뚝- 뚝-

떨어지는 빗소리와 쉐도우맨의 숨소리 사이로,

비젯의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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