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94화
“핵 위치부터 파악하죠! 내부에서 파괴할 수 있으면 더 좋고요!”
그 기쁜 소식에 매드해터가 외쳤다. 모두 팬텀이 스켈루스에게 다가갈 수 있게 엄호했다.
쾅! 콰아앙!
팬텀은 최대한 힘을 아끼면서 괴생물체들과 나무뿌리들을 피해 스켈루스의 고정된 거대뿌리 안으로 들어갔다.
훅!
하고 에너지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내부에 집중했다.
스켈루스의 내부는 검붉은 물로 가득한 수영장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옅은 흐름이 느껴졌지만 움직임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이 거대한 몸속에서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모를 핵을 찾는다는 게 막막했다.
‘위쪽에 있을 것 같은데.’
하체인 나무뿌리는 공격과 방어를 해야 하므로, 핵같이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아마도 인간형인 상체에 있을 것 같았다. 사람처럼 심장이나 뇌 부분에 있을지도 몰랐다.
나무뿌리에 있던 팬텀은 상체로 이동했다.
콰아앙! 쾅! 소리와 함께 밖에서 이레귤러스가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 오래 있으면 안 되겠는데.’
검붉은 물이 내부로 들어온 이물질인 팬텀을 마치 흡수하듯 달라붙었다. 악신이라는 명칭이 걸맞게 진득한 악의가 팬텀에게 영향을 끼쳤다. 어느 정도까지는 괜찮겠지만,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전에 핵을 파괴하면 문제는 없었다.
검붉은 물속.
팬텀은 폐 부분에서 검붉게 빛나는 구슬처럼 생긴 핵을 발견했다. 핵은 고정되지 않고 마치 혈액처럼 느릿하게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위치를 파악해서 밖에 알린다고 해도 금방 위치가 바뀔 게 분명했다.
‘파괴하자.’
팬텀이 염력을 써서 핵을 압박했다. 제법 많은 힘을 쏟아부었는데도, 핵은 염력의 힘에 이리저리 움직이기만 할 뿐 파괴되지는 않았다.
팬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팬텀은 빠르게 스켈루스의 내부에서 빠져나와, 투명화를 풀고 통신기로 연락했다.
“핵을 찾았어.”
-와! 벌써요? 어디 있어요?
이레귤러스는 팬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스켈루스 쪽으로 무기를 겨눴다. 핵의 위치만 말한다면 집중 타격할 생각이었다.
-근데 이게 계속 움직이는 것 같아. 피처럼.
“……그거 큰일이군요.”
화이트 블러드가 침음성을 삼켰다.
팬텀이 그냥 나온 걸 보면 내부에서 파괴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방법은 있어. 내가 내부에서 염력으로 핵의 위치를 고정하면 외부에서 그 부분을 공격하는 거야.
“스켈루스가 방어하지 않을까요?”
스켈루스 근처에서 나무뿌리를 피하며 말하는 팬텀을 바라보며 나이트 진이 물었다.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핵이 움직임과 동시에 스켈루스가 변화를 보일 수도 있었다.
“핵을 움직여봤는데, 내부에서 움직이는 건 모르는 것 같더라고.”
하긴.
팬텀이 스켈루스의 내부에 들어가고 나서도 스켈루스의 움직임에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위치,파악,은?”
반쯤 정신줄을 놓은 버서커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때그때 공격하기 쉬운 곳을 말해주면 내가 바로 핵을 옮길게. 이게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스켈루스를 바라보며 팬텀이 말했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공격은 나이트 진이 하는 편이 좋겠군요.
-네, 알겠습니다. 제 쪽에서 오른쪽 부분만 노리죠.
후우-
팬텀은 호흡을 고르며 다시 스켈루스의 내부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체력적으로…… 두세 번 정도가 한계일 거야.”
-네.
조금 떨어진 곳.
나이트 진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내쫓으려던 자신이 이렇게 생각하기엔 뭣하지만.
믿음직했다.
“그럼, 시작하자.”
♬---!
이레귤러스의 OST가 흘러나왔다.
불협화음인 것처럼 튀지만 어우러지는 그 선율을 따라,
팬텀이 스켈루스의 내부로 들어가고, 나이트 진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화이트 블러드와 매드해터, 체셔 캣의 드론이 엄호했고, 거대뿌리를 하나 파괴해 버린 버서커는 남아 있던 정신줄마저 놓으며 날뛰었다.
♩--! ♪---!
그림자 검을 쥔 나이트 진이 나무뿌리를 베어내고 피하며 스켈루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적당히 떨어진 위치에서 빠르게 스켈루스의 상체 오른쪽을 살펴본 후 가장 공격하기 쉬운 곳을 파악했다.
“어깨!”
스켈루스의 내부.
핵과 함께 있던 팬텀이 그 외침을 듣고 염력을 발동했다.
나이트 진의 시야에서 오른쪽 어깨.
팬텀의 염력에 의해 핵은 빠르게 움직이다가 어깨에서 멈췄다.
--!
타이밍 좋게 나이트 진이 그림자검을 빠르게 내지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가온 스켈루스의 뿌리가 나이트 진을 후려치는 것도.
!!
음악이 멈추고.
후려쳐진 나이트 진이 날아가 처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먼지가 일어났다.
-나이트 진!
매드해터의 비명에 화아악- 떠올랐던 먼지가 가라앉고,
“괜찮아.”
그림자로 만들어진 검은 구체 속에서 나이트 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방패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움직임이 읽혔나 봐.”
그래도 충격을 받지 않은 건 아닌 듯, 나이트 진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듯한 오른쪽 통신기 대신 왼쪽 통신기를 사용해야 했다.
“한 번 더 가죠.”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
다시 한번 OST가 흘러나왔다.
매드해터와 화이트 블러드가 다시 레이저와 마법을 날리며 엄호했고, 이성을 잃은 버서커 또한 열심히 날뛰며 괴생물체들을 물리쳤다.
나이트 진이 다시금 스켈루스를 향해 달려나갔다.
스켈루스의 내부에서 상황을 살펴보던 팬텀은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달려오는 나이트 진의 지시를 기다렸다. 검붉은 악의가 팬텀의 다리에 진득하게 달라붙고 있었다.
“팔꿈치!”
그 외침에 팬텀은 곧바로 핵을 이동시켰다.
외부.
나이트 진은 신중을 기했다.
조금 전에는 움직임을 읽힌 것 같으니, 움직임에 페이크를 주었다. 옆구리를 노리는 듯했다가, 팔꿈치 쪽으로 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림자 이동을 쓰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내부에 있는 팬텀이 자신을 보지 못할 터였다.
외부와 내부의 타이밍이 맞아야 했다.
나이트 진이 팔꿈치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
다시 한번 스켈루스의 공격에 맞아 날아가야 했다.
-나이트 진!
“괜찮, 괜찮아요.”
방패가 되었던 그림자 구체가 사라지고 한쪽 무릎을 굽히고 있는 나이트 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제복을 입고 있어 찢어지거나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몸 안의 상태는 모르는 일이었다.
왜지?
어째서 읽혔지?
몇 번 없는 기회라 나이트 진은 신중하게 움직였다. 누가 봐도 옆구리를 노리는 듯했을 텐데. 팔꿈치로 향하는 움직임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빨랐을 텐데.
왜. 어째서.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든 나이트 진은 스켈루스와 눈이 마주쳤다.
검고 새하얀 눈만 가끔 깜빡이던 스켈루스가,
입꼬리를 귀 끝까지 끌어 올렸다.
!!
나이트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왜 그래요, 나이트 진?
공중에 떠 있는 상태라 스켈루스의 얼굴을 미처 보지 못한 화이트 블러드의 물음에 나이트 진이 침음성을 삼키며 말했다.
“……스켈루스가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런!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나이트 진은 빠르게 생각했다.
‘팬텀을 밖으로 불러내 위치를 지정한 후 움직일까?’
아니, 안 그래도 팬텀이나 자신이나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런 움직임마저 부담이 될 터였다.
지금 한 번 더 움직이는 게 가장 좋았지만, 또 이전과 같은 식으로 움직였다가는 말을 알아듣는 스켈루스가 막아낼 게 분명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팬텀에게 위치를 알릴 수 있을까.
나이트 진은 입을 꾹 다물고 방법을 떠올렸다. 이렇게 생각하는 중에도 팬텀의 체력을 빠르게 닳고 있을 터였다. 초조함에 저절로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스켈루스 내부.
잠시 움직임을 멈춘 나이트 진의 모습에 팬텀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밖으로 나가야 할까. 하지만 남아 있는 체력을 보건대, 나갔다 다시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몸 상태도 나빠지고 있었다.
‘빨리…….’
팬텀이 이를 악물 때.
……!
막막함에 아래를 바라보고 있던 나이트 진이 무언가를 보고는 번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외쳤다.
“제이!”
그 외침이 이레귤러스에게 전해졌다.
제이?
갑자기 제이는 왜…….
!!
막막함과 걱정으로 어두워지던 이레귤러스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동시에, 이레귤러스의 OST가 들려왔다.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랗게.
그 선율에 맞춰, 나이트 진이 다시금 스켈루스를 향해 달려나가고, 화이트 블러드가 허공에 마법진을 그려내고, 매드해터와 체셔 캣이 레이저를 쏘아댔다. 이성을 잃은 버서커는 지금까지 그랬듯 날뛰었다.
스켈루스의 내부에 있던 팬텀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염력을 발동했다.
목표는,
‘손목!’
나이트 진의 의도대로, 모두 제이가 팬텀의 손목을 잡아 던지던 그때를 떠올린 것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이레귤러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온 힘을 쏟아부었다.
화려한 마법과 쾅! 쾅! 터지는 폭발 사이로 나이트 진이 달려 나갔다.
마지막 기회인 만큼, 어쩌면 힘이 부족해 핵을 부수지 못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이트 진은 방어를 최소한으로 하고 공격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검은색 구두를 뒤덮고 있던 그림자가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이트 진이, 아니, 윌리엄이 오늘 오전 신고 왔던 운동화가 보였다.
검은색 정장 바지를 뒤덮고 있던 그림자 또한 위쪽으로 올라갔다. 윌리엄이 입고 왔던 바지가 보였다. 검은색 상의와 망토를 이루고 있던 그림자도 모두 한쪽으로 흡수되고, 셔츠와 재킷이 드러났다.
기사의 제복 같았던 슈트 대신 방어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평상복 차림이 된 것이었다.
촤악!
날카로운 뿌리가 옷을 베고 상처를 남겼지만,
괜찮았다.
나이트 진은 그렇게 거둔 그림자를, 힘을 모두 그림자 검에 담았다.
한층 더 단단하고 날카로워진 검의 힘이 느껴졌다.
검을 꽉 쥔 나이트 진은 어느새 스켈루스와 가까워진 상태였다. ‘제이!’라는 외침을 알아듣지 못한 스켈루스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이트 진은 방심하지 않았다.
팔뚝으로 페이크를 주어 스켈루스의 시선을 돌렸다가,
빠르게 몸을 돌려 손목을 향해 있는 힘껏 그림자 검을 휘둘렀다.
스켈루스의 내부에서 기다리고 있던 팬텀이 염력을 발동해 핵을 움직였다.
나이트 진의 검이 닿을 곳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나이트 진과 훈련에서 치고받고 싸우면서 나이트 진의 공격 루트를 파악하게 된 팬텀이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픽- 하고 웃은 팬텀이 이내 표정을 굳혔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
집중해야 했다.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음악과 함께,
나이트 진의 검이 빛처럼 손목을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스켈루스의 나무껍질에 검날이 닿았다.
닿았다! 하고 기뻐할 틈도 없이 나이트 진은 있는 힘껏 검을 쑤셔 넣었다. 내부에 있던 팬텀 또한 온 힘을 다해 핵을 나이트 진의 검 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악! 그아아악!
위기감을 느낀 스켈루스가 처음으로 소리를 냈고 곧이어 나무뿌리들을 나이트 진에게로 쏘아 보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쨍강-!
핵이 부서졌다.
그와 동시에 핵 안에서 터져 나온 힘이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나이트 진과 팬텀이 동시에 튕겨 나왔다.
화이트 블러드가 빠르게 날아가 나이트 진을 낚아챘다. 제이가 빠르게 방어해준 덕분에 옷이 좀 해지긴 했지만 큰 상처는 없었다.
-잡았어요!
매드해터도 긴장이 풀리면서 투명화가 풀린 팬텀을 무사히 잡을 수 있었다.
타악.
화이트 블러드와 매드해터가 버서커의 근처로 내려왔다.
퍼스트와 함께 괴생물체들을 모두 해치운 버서커는 체셔 캣(드론)과 함께 정신줄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으…… 그으으…….
상체 오른쪽이 날아간 스켈루스가 보였다. 핵이 사라지자 몸을 유지하고 있던 마법도 사라진 모양인지 마치 바람에 날아가는 재처럼 몸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이거 못 쓸 것 같은데.”
퍼스트 요원들이 전달해 준 에너지바를 먹으며 체력을 조금 회복한 팬텀의 말에 매드해터가 답했다.
“아니에요! 조금만 부서진 거라서 아직 작동할 거예요!”
웜홀 제어 장치 앞.
퍼스트로 이동하기 전, 센트럴파크에 생긴 웜홀들을 모두 닫고 가기로 했다.
“조금?”
간단히 치료를 받은 이레귤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전투의 여파로 부서진 웜홀 제어장치는 켜지기나 할까 싶었지만, 매드해터의 말대로 작동이 되긴 했다.
“닫을 수 있을 것 같아, 매드해터?”
나이트 진의 물음에 매드해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지에 있던 것과 같은 거예요. 이렇게 하면!”
하고 기계를 조작하자,
서 있던 나이트 진의 뒤에, 앉아 있던 팬텀의 아래에 새까만 웜홀이 생겨났다.
!?
그리고 놀랄 틈도 없이 웜홀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