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85화 (98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85화

[맛남 식당3]가 끝났다.

‘다음 이 시간에……’라는 자막도 보이지 않고 완전히.

7월 중순부터 8월 말인 오늘까지, 일주일의 낙이 되어주었던 프로그램이 끝나자 모두 아쉬워했다.

[맛남 식당3]는 엔딩 크레딧을 보여주며 촬영 때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당연히 깜짝 출연한 이서준 배우와 박지오 선수의 모습도 있었다. 채널을 돌리려던 새싹들은 그걸 보고 리모컨을 누르려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편집된 거!

=피디님 편집된 영상 풀어주세요ㅠㅠ

=편집할 게 뭐 있어ㅠ촬영 한 시간만 했으면서ㅜ

그다음으로 멤버들끼리의 단체 사진, 그리고 제작진들과 함께 찍은 사진까지 나오고 제작에 참여해 준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지나가자, [맛남 식당3]는 정말로 끝났음을 알리듯 화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다시 화면이 밝아졌다.

바다.

여름의 푸른 바다가 보였다.

바다를 따라 어디론가 날아가던 드론 카메라가 한 섬을 비추었다.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는 갯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다음 예능은 바다? 섬에서 하는 건가?

남자가 고개를 들어 드론 카메라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두 팔을 막 휘저었다. 그에 손에 잡힌 낚싯대도 마구 흔들렸다.

-누군진 몰라도 목소리 1도 안 나왔는데 시끄럽네ㅋㅋ

-낚싯대! 낚싯대 부러지겠다!!

=백퍼 한 마리도 못 잡았을 것 같은데ㅋㅋ

-근데 누구야?

드론 카메라가 갯바위와 가까워졌다. 그러자 팔을 흔들고 있던 남자의 모습이 좀 더 명확하게 보였다.

“와! 안녕하세요! 저 보여요!?”

드라마 [위시리스트]의 백건하였다.

-태원아!

-김태원 예능 하나 봄.

=위시리스트가 엄청 잘 됐으니 할 만도 하지.

신인 배우가 흥행작에 출연하게 되면 으레 그렇듯, 백건하는 본인의 이름보다는 드라마 속 배역의 이름인 김태원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럼 다른 출연자들도 위시리스트 배우이려나?

=그럴지도.

다른 출연자들을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안 듯, 화면이 바뀌었다.

이곳은 밭.

뜨거운 여름빛을 피하기 위해 밀짚모자를 쓴 남자가 일하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호미질 한 번에 고구마가 우르르 나오는 모양새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누구지?

=되게 잘하넼ㅋㅋ

남자가 일어나 밀짚모자를 벗고 물을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이쪽도 제법 익숙한 얼굴이었다.

-오. 박이도.

=박이도도 나옴?

-근데 좀 건강해보인다?

=그러게ㅋㅋㅋ업 앤 다운에서는 엄청 아파보이더니ㅋㅋ

=여름이라 탔나봄ㅋㅋ

배역 이름으로 불리는 건 민재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배역 이름으로 불리는 것만 해도 어디냐, 하고 10년 무명 배우는 생각했다. 예전에는 어느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했고, 아무도 부르지 않았으니까.

-업 앤 다운이면, 다음은 운명인가?

=위시리스트, 업 앤 다운, 운명. 올해 히트작들은 다 모였네.

=시청률은 보장인 듯.

=근데 왜 홍보를 안 했지?

흥행작의 배우들이 출연한다고 해도 홍보를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가 없을 텐데 말이다.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탁탁탁-

일정한 크기로 양파를 자르는 누군가의 손이 보였다.

영화 [운명]에 나온 배우 중 누가 나올까 추리하던 시청자들은 묘하게 기시감이 든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양파를 다 썬 남자는 도마 채로 들어 새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마솥 쪽으로 향했다.

-방금 그거…….

그 망할 일코만 아니라면, 손가락 끝만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슈퍼스타의 팬들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서준이지……?

-서준이 맞지???

의문을 풀어주듯 카메라가 위쪽으로 움직였다.

연기 너머로 가마솥 안에서 퍼 올린 국물을 작은 접시로 옮겨 맛보는 얼굴이 보였다.

새하얀 연기가 마치 연극의 효과처럼,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의 외모를 더욱 빛냈다.

배우 이서준이었다.

-?

-???

-?미친?

-진짜 서준이네???

갑작스러운 슈퍼스타의 등장에 채널을 돌리지 않고 있던 시청자들이 고장 났다.

물음표와 서준의 이름이 댓글창에 가득 차다가 흘러넘쳐, 다른 사이트들까지 전해졌다.

-지금 이서준 나옴!

-이서준 떴다!!

-서준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갑자기 서준이 이름은 왜 나와??

그런 시청자들의 혼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고편은 계속 이어졌다.

서준이 마지막으로 퍼낸 국그릇을 가지고 평상 위 밥상으로 향했다. 민재원과 백건하가 서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준이 자리에 앉자, 백건하가 목소리를 높였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

다들 웃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발랄한 음악이 흘러나오며, 그 옆으로 [섬섬생활]이라는 제목이 나타났다.

즐거운 분위기였다.

혼돈에 휩싸인 시청자들만 빼고.

-뭔데. 뭐냐고.

-이서준? 이서준이 왜 여기 나와?

-예고편 다시 보여줘. 마지막 1초만 봤어……!

-서준아!!!

-이거 영화야? 아님 드라마???

=tvm이니까 드라마 아님?

-이서준이 드라마를 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럼 설마…… 예능이라는 거야?

=오!

-나 하나도 못 봤어! 서준이 이름은 갑자기 왜 나와?

=이서준이 양파 썰고 요리하는 모습 보여줌.

=양파? 요리? 맛남 식당 이야기야?

=22 맛남 식당이 무편집본 보여줬어??

=아, 어쩐지 어디서 봤다고 했더니. 맛남 식당에서도 양파 썰었었지.

=그러니까ㅠ 무슨 이야기냐고ㅠㅠㅠ

-정리: 배우 이서준 예능 ‘정식’ 출연. 메인 출연자인 듯.

=???네???

=그게무슨소리야.서준이가예능에또나온다고?이번에는메인출연자로?

=오늘이 만우절이었던가?

-예고편 또 언제 나오나요?

-제목 섬섬생활이었지? 재밌겠네.

=섬섬생활? 제목이 섬섬생활이라고요?

=너튜브에 왜 없는 건데ㅠㅠ

예고편을 본 사람들과 못 본 사람들의 댓글들이 뒤섞였다.

별생각 없이 보고 있었던 터라, 누구도 찍을 생각조차 못했다. 홍보자료도 없었다.

-tvm 빨리 풀어라.

-왜 홍보 1도 안했는지 알겠다ㅋㅋ 지금 어촌생활? 그 이야기밖에 없음ㅋㅋ

=섬섬생활이라고ㅋㅋㅋ

-애초에 홍보 안 했을 때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어야 했는데.

=22 앞으로 홍보 안함 = 이서준일듯.

=3333

-예고편 또 보여달라고ㅠㅠ

=왜! 왜! 나는 그때 다른 채널을 봤을까!

=채널을 돌린 시청자들에게 복수한 tvmㅋㅋㅋㅋ

=앜ㅋㅋㅋㅋ

-내가 예고편 보려고 광고를 보고 있다니.

=22 공익광고 보려고 기다린 적은 있었는데.

=아, 그랫었지ㅋㅋㅋ

=한걸음ㅋㅋ

=그것도 서준이 꺼ㅋㅋㅋ

-오늘 예고편 나올 때까지 tvm 채널 고정이다.

-기사 뜸!

=기자는 예고편 봤대?

-예고편 떴다!!

몇 개의 광고가 지나간 후에 또다시 [섬섬생활] 예고편이 나왔다.

아까 보지 못했던 새싹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틀림없다.

서준의 예능이었다!

-ㅅㅂ진짜 서준이가 예능 하네?

=(너무 좋아서 험한 말)

=(너무 좋아서 폭풍눈물)

-tvm 잘했다. 서준이를! 서준이를 섭외하다니!

=222 광고 더 붙여도 된다.

=33 ppl 잔뜩 넣어. 사줄게.

-와. 근데 어떻게 만남 식당에도 나오고 섬섬생활에도 나오냐?

=tvm 진짜 운 좋네.

=다른 방송국들 기겁할 듯ㅋㅋ

=+원망 +질투 +분노 +후회

=ㅋㅋㅋㅋ

-너무 좋다. 한 달 전부터 홍보했으면 진짜 숨 참고 한 달 기다렸을 텐데, 다음 주가 첫방이래.

=그러네?? 그러네에?!

=사랑해요 tvmㅠㅠ

예상한 대로 [섬섬생활]의 예고편이 나오자마자 세상이 시끌벅적해졌다.

[배우 이서준, TVM 예능 메인출연자로 출연!]

[TVM 예능 ‘섬섬생활’은 어떤 방송?]

[배우 이서준, 메인 출연자로 첫 출연!]

[이서준×민재원×백건하! 어떤 케미를 보여줄까!]

[섬섬생활 예고편, 너튜브 TVM 채널에 업로드!]

-이서준이? 예능을?

=다들 물음표 달고 있는 거 웃김ㅋㅋㅋ

=생각해보면 그렇게 예능에 안 나온 건 아닌데ㅋㅋ

=근데 나온 것도 아니지 않을까……?

=그건 그럼. 깜짝 등장! or 앗, 들켰다! 니까.

=앗ㅋㅋ들켰다ㅋㅋㅋ

=그래서 더 재미있긴 함ㅋㅋ

연예란을 도배하듯 기사가 우르르 올라왔고, TVM의 너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섬섬생활-예고편]의 조회수와 댓글들도 새로고침할 때마다 앞자리의 숫자가 바뀌었다.

조금 전 태풍이 불었다는 사실도 이제 곧 잠을 청할 시간이라는 것도 잊은 듯, SNS도 커뮤니티도 모두 예고편밖에 뜨지 않은 [섬섬생활] 이야기밖에 없었다.

그 들썩임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아니, 날이 밝으면서 미처 소식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까지 [섬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욱 커졌다.

다음 주 첫방 때까지, 아니, [섬섬생활]의 마지막 방송을 할 때까지 이 화제성은 계속 이어질 거라고 예상한 TVM 예능국이 활짝 웃었다.

또 조용히 기뻐하는 곳이 있었다.

-묻혀버린 오보청ㅋㅋ

갑자기 소멸한 태풍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로 나왔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피해가 없었던 덕분도 있었다.

그렇게 바깥이 시끌벅적할 때, 정작 태풍의 눈인 [섬섬생활]은 즐겁게 촬영하고 있었다.

“이걸…… 다?”

“이걸 다.”

밀짚모자를 쓴 한지호가 넓은 시금치밭을 바라보았다. 즐거운가?

그 옆에 고구마밭도 있었다. 정말 즐거운 촬영인가?

조금 넋이 나간 듯한 한지호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 * *

시간이 훌쩍 흘렀다.

태풍 때문에 늘어났던 촬영도 오늘로 끝.

“그동안 태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선장님.”

“나도 재미있었어. 젊은 사람들이 오니까 좋더라.”

어쩌면 오늘로 마지막일 선장님과 인사한 배우들이 육지선착장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제작진과도 인사를 나눴다.

“고생하셨어요. 덕분에 편하게 촬영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배우들의 인사에 제작진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처음 준비할 때나 카메라촬영 빼고는 열심히 일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담기만 했었다.

“고생은요. 저흰 얻어먹기만 했는데요, 뭘.”

“이서준 배우님 음식 진짜 맛있었어요!”

동의하는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배우들끼리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서울에서도 계속 봐요, 우리! 지호 형도요! 그리고 명헌이 형이랑 경우 형도요!”

“당연히 그래야지.”

백건하의 말에 한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명헌과 김경우에 대한 이야기는 죽묘도에서 들어 알고 있었다.

“다음에도 같이 촬영할 수 있겠지?”

민재원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능도 괜찮지만, 다음에는 같은 작품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같이 연기할 수 있잖아요.”

그에 백건하와 민재원의 눈이 커졌다.

서준과의 연기.

“저도요! 저도, 저도 꼭 서준이 형이랑 재원이 형이랑 촬영하고 싶어요!”

“나도. 다음에는 꼭, 촬영장에서 만나자.”

눈을 반짝이는 배우들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이래서 배우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심해서 가세요, 형들!”

“잘 가, 얘들아.”

그렇게 아쉬움 가득한 인사를 나누고 서준이 차에 올랐다.

“아픈 데는 없지, 서준아? 비를 맞았다거나?”

“네. 괜찮아요.”

“다행이네. 바로 집으로 갈게.”

“네.”

하고 최태우와 이야기하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서준이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친구 한지호였다.

“무슨 일 있어?”

“너도 서울 가지?”

“응.”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지호가 히히 웃었다.

“나도 이 차 타고 가도 돼?”

그말에 눈을 끔벅이던 서준이 이내 웃고 말았다. 상관은 없었다. 혼자 가는 것도 심심하긴 했고.

“괜찮아요, 태우 형?”

“네가 괜찮다면야 괜찮지. 매니저분한테는 말했어?”

“넵!”

서준이 문을 열자 한지호가 희희낙락하며 차에 올랐다.

“여기까지 5시간 넘게 걸려서 오는 길에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니까. 휴게소에서 맛있는 거 사 먹자.”

마지 제 차인 양 편하게 앉는 한지호를 보며 웃던 서준이 차문을 닫으려는데, 뜨거운 눈빛이 느껴졌다.

그 눈빛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마치 간식을 눈앞에 둔 강아지 마냥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백건하가 거기에 있었다. 아주, 아주 간절해 보였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건하 너도 우리랑 같이 타고 갈래?”

“! 그래도 돼요?!”

“그럼.”

서준의 말에 백건하가 활짝 웃었다.

[섬섬생활]을 촬영하면서 서준과 민재원과 친해지긴 했지만, 어느 정도 친해졌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갈 때 같이 가고 싶었지만, 서준의 오랜 친구인 한지호가 편하게 묻는 것처럼 물어보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서준이 형이 같이 가자고 하다니!

우리 진짜, 완전 친한가 봐!

“재원이 형도 괜찮으면 저희랑 같이 타고 가요.”

“그럼 실례할게.”

민재원도 백건하와 비슷한 마음이었던 터라 서준의 제안을 사양하지 않았다.

“잠시만요! 형들! 제가 간식 가지고 갈게요! 우와! 우리 꼭 소풍 가는 것 같지 않아요?”

“휴게소 들를 거니까 적당히 가져와, 건하야.”

마지막까지도 시끌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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