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84화 (98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84화

만파식적(萬波息笛)

신라 시대,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내려준 대나무로 만든 피리로, 나라에 근심이 생길 때 이 피리를 불면 태평성대가 될 거라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라는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그게 지금 나오다니.

“어때, 괜찮지 않아?”

한지호가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서준과 백건하, 민재원을 바라보았다.

곧 한지호의 손에 들린 소금을 바라보는 백건하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진짜 여의주를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완전 괜찮아요! 와! 만파식적! 해룡이라니!”

민재원과 서준도 이내 웃고 말았다.

마침, 이라기엔 좀 그렇지만 나라에 근심(태풍)도 생긴 상황에서 나타난 청룡님이 만든 대나무 피리.

“상황이 딱 이렇게 되네.”

“그러게요. 이러려고 만든 게 아닌데.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머릿속으로 적당한 능력을 떠올렸다. 예전에 썼던 [(선)대륙고래의 유영]은 오염된 환경을 바꾸는 거라 어울리지 않았다.

‘태풍이 자연재해긴 하지만 오염된 환경은 아니니까.’

딱 태풍만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좋을 것 같았다.

“나 잠시만 명상 좀 하고 올게.”

“그래.”

서준이 가끔 명상하는 걸 알고 있는 한지호가 대답했고, 처음 보는 백건하와 민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명상이요?”

“쟤가 가끔 집중하고 싶을 때 명상하거든.”

방으로 들어간 서준 대신 한지호가 설명해 주었다.

“연기할 때도 종종 명상하더라. 우리는 저게 서준이 연기력의 비밀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

“정말요!?”

명상!

백건하가 마음속 메모지에 잘 적어두었다.

벽에 뒷머리를 대고 곧장 잠이 든 서준이 생의 도서관에서 적당한 능력을 찾는 사이.

청룡제(?)를 위한 제사상이 준비되었다. 태풍이 불고 있는 문 쪽에 밥상을 두고 그 위에 간식이나 과일 등을 올려다 두었다.

“이거 보면 마음에 안 드신다고 그냥 돌아가시는 거 아니야?”

민재원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한지호와 백건하가 ‘그럴지도.’ 하고 중얼거렸다.

한지호의 제안으로 급하게 준비한 제사상은 진짜 제사상에 비해서 굉장히 빈약했다. 나름 그릇에 옮겨 담긴 했지만 간식과 과일뿐이었고, 그것도 규칙 없이 놓여 있었다.

그래도 중앙에 놓여 있는 나무 거치대 위에 올려진 소금만큼은 고풍스러워 보였다.

“서준이 나오면 물어보죠. 당사자잖아요.”

한지호의 말에 민재원과 백건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명상(?)을 하러 갔다가 금방 방에서 나온 서준은 준비된 제사상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것 같아.”

다행히도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세 배우는 안도하면서도 이 상황이 웃긴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근데 제사는 어떻게 지내요? 고사처럼 축문을 읽고 절을 해야 할까요?”

“절까지 하는 건 너무 과한 것 같고, 그냥 기도만 해도 될 것 같지 않아?”

한지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에 서준이가 연주하면 되겠네.”

“맞아요! 제사상이 빈약해도 서준이 형 연주를 들으면 청룡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근데 듣는 청룡님이 연주하시는 거잖아.”

청룡님 = 이서준.

그 뫼비우스의 띠 같은 상황에 다들 기도를 하려고 손을 모으면서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키득키득 웃던 네 배우는 제사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휘이잉-!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자, 바깥의 소리가 더욱더 잘 들려왔다. 덜그럭! 하고 창문들이 작게 흔들리는 소리도 들렸다. 아직 멀었겠지만, 코앞까지 태풍이 들이닥친 것 같았다.

‘강한 태풍은 아니라고 했지만.’

소리만 들으면 역대급 태풍 못지않았다.

게다가 강하지 않은 태풍이라고 해도 피해는 분명 생길 터였다.

“청룡님! 태풍이 사라지게 해주세요……!”

조용한 가운데 백건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민재원, 한지호가 작게 웃고 말았다.

서준도 웃었다.

그리고 [(선)블루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도.

‘청룡님’의 부분 중 하나인, 사람들을 수호하고 싶어 했던 ‘블루드래곤 해츨링’에게도 이 기도가 들렸으면 해서, 서준이 생의 도서관에서 가지고 나왔다.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여러 능력들의 등급이 상승했던 걸 보면 전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기도가 끝나고.

서준이 소금을 연주할 차례가 되었다.

제사상에 놓여 있던 소금을 가져온 서준이 바닥에 앉아 소금의 취구(바람 입구)에 입술을 댔다.

오늘 죽묘도에 와 태풍에 대비한다고 바쁘게 돌아다녔던 탓에 처음 듣는 한지호는 물론이고, 촬영 때마다 들었던 백건하와 민재원도 귀를 기울였다. 들어도 들어도 좋은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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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에서 흘러나온 맑은소리가 거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곡명은 [자장가].

[오버 더 레인보우2]에서 죽은 이가 편안하게 잠들기를 바라며 연주했던 곡이었다.

감미로운 선율과 함께 바람이 흘러나왔다.

[(선)투투로스의 휘파람이 발동됩니다.]

[(선)투투로스의 휘파람-중급]

바람의 마법을 사용하는 종족 투투로스입니다.

소리를 통해 바람을 생성, 조종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촬영할 때, 바람이 필요한 장면이 있으면 선풍기와 함께 사용하려고 했던 능력.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덕분에 금방 꺼내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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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과 비슷한 맑은 소금의 선율에서 바람 한 줄기가 만들어졌다.

주황색 지붕 위, 하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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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선율을 따라 사람들 눈에도, 기계에도 잡히지 않을 특별한 바람 줄기들이 한데 모였다. 그리고 점점 그 크기를 불려 나갔다.

[자장가]의 연주가 끝났다.

이걸로는 좀 부족하겠다고 판단한 서준이 다음 곡을 연주했다. 답가, [굿나잇]이었다.

남겨진 이가 편안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 줄기 선율이 되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선율은 바람이 되었다.

죽은 이도, 남겨진 이도 편하게 잠들 오늘 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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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의 연주가 끝나고, 오직 서준만이 볼 수 있는 선기의 바람은 천천히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와!”

짝짝짝!

한 박자 늦게, 여운에서 빠져나온 백건하가 상기된 얼굴로 박수를 쳤다. 민재원과 한지호도 그랬다.

“연주 진짜 좋았어요, 형! 여기 소름도 돋았다니까요!”

팔을 쭉 내미는 백건하에,

“맞아. 오늘 연주는 특히 더 좋았던 것 같아.”

“악기 진짜 어디서 산 거 아니지? 나도 불어봐도 됨?”

감탄하는 민재원과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소금을 살펴보는 한지호에 서준이 하하 웃었다.

“그럼 이제 맛남 식당 볼까?”

“우리 과자 먹으면서 봐요! 앗! 벌써 시작했어요!”

그대로 옮겨져 간식상이 된 제사상에 둘러앉은 네 배우가 TV를 켰다. 연주를 듣느라 앞부분은 조금 못 봤지만 괜찮았다.

오늘 편에서도 [맛남 식당3] 멤버들은 평범하고 시끌벅적하게 장사를 했다.

서준과 세 배우가 웃으며 방송을 보았다.

그러다 잠깐의 광고 시간.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났던 백건하가 별생각 없이 박스 틈 사이로 밖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어!?”

그 목소리에 이야기하고 있던 서준과 민재원, 한지호가 백건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유리 깨졌어?”

“아뇨!”

백건하가 흥분한 얼굴로 잘 막아두었던 박스를 유리창에서 떼어내며 외쳤다.

“비가 그쳤어요!”

깨진 유리를 치우기 위해 일어나던 민재원과 무슨 일인가 하던 한지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

비는커녕 바람도 불지 않는 듯한 바깥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소리도…… 안 들리네?”

민재원이 귀를 기울였다.

휘이잉-! 하고 무섭게 몰아치던 바람 소리도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저 여느 날의 밤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

“태풍의 눈에 들어온 거 아니야? 그때는 좀 잠잠하다고 하잖아.”

한지호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것도 아닌 것 같아. 태풍이 완전히 소멸했대.”

“……이렇게 갑자기?”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속보로 올라온 기상청의 정보에 따르면, 25분 전부터 태풍의 바람이 눈에 띄게 약해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소멸했다고 한다.

“근데 이 시간…… 저희가 기도했을 때쯤…… 아니에요?”

“……그러네?”

우연이겠지만.

분명 우연이겠지만.

서로 눈이 마주친 네 배우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한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청룡님이신가.”

“청룡님!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한지호가 짐짓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백건하도 목소리를 높여 청룡님을 불렀다.

그에 어쩐지 블루드래곤 해츨링이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이 떠올라, 서준이 작게 웃고 말았다.

사실 블루드래곤 해츨링이 한 건 없지만 말이다.

“그럼 박스 이제 떼도 되겠네.”

민재원이 그렇게 말하며 유리창에서 박스를 떼어냈고 서준도 그걸 도왔다.

투명한 창문들 너머.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한 밤하늘이 보였다.

네 배우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하늘과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준과 민재원이 얼른 개인 카메라를 챙겼다. 백건하는 별생각이 없었고, 한지호는 카메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서준을 믿고 있었다.

“와!”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반짝이는 별들도 있었다. 먹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는 태풍의 ㅌ도 볼 수 없었다.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거실에만 있다.)로 출연자들을 살펴보고 있던 제작진도 얼른 나와 그 모습을 촬영했다.

“……진짜 멈췄네. 태풍.”

‘청룡님’에 한 번, ‘제사상’에 두 번, ‘만파식적’에 세 번 빵 터졌던 제작진도 굉장히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우연이겠지만 신기한 건 신기한 거였다.

“어? 잠깐만요. 그럼 저희 내일 오전에 돌아가는 거예요?”

눈이 온 것도 아닌데, 눈 만난 강아지처럼 넓은 마당을 뛰어다니던 백건하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태풍 때문에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는데, 태풍이 소멸해 버렸다. 그럼 원래 계획대로 내일로 촬영은 끝인 건가?

“나 대나무 삼겹살 구이 먹고 싶어. 그리고 통발도 던져보고 싶고.”

한지호가 얼른 말했다. 먹어보기 힘든 별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도요! 마지막으로 낚시도 하고! 고양이들이랑도 놀고 싶어요!”

“나도. 하루 더 있다가도 좋을 것 같아.”

“이대로 가긴 아쉽긴 하죠.”

서준까지 그렇게 말하자, 주예진 피디가 활짝 웃었다.

“당연히 괜찮습니다!”

주예진 피디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이미 방송 분량은 넘치게 나왔지만, 편수야 더 늘리면 되는 거였다. 국장님도, 시청자들도 좋아할 터였다.

그말에 네 배우는 환하게 웃으며 내일 뭘 할까, 이야기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문에 또 [맛남 식당3]을 조금 놓쳐 버렸지만, 다행히도 가장 중요한 [섬섬생활]의 예고편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 * *

제주도에서의 촬영을 모두 끝낸 [맛남 식당3] 멤버들이 서울의 한 식당에 모였다.

장사하면서 힘들었던 것들이나 시즌1, 2와 달랐던 점들 등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건 역시 특별한 손님들이 왔을 때였다.

“서준이 왔을 때는 진짜 놀랐는데.”

“저도요.”

비행기 사고부터 깜짝 등장까지.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엮일 수 있었는지 참 신기했다.

‘막내’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가 없었다.

“저희 부모님도 그러시더라고요.”

어휴, 하고 한숨을 쉬며 말하는 윤효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윤효원 이제 체념한 듯ㅋㅋ

=언제까지 갈 것 같아?

=평-생.

=앜ㅋㅋㅋ

=그래도 덕분에 멤버들 중에서는 이서준이랑 제일 친해보임.

=강태영 빼고.

=강태영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ㅋㅋ

-태풍 없어졌네?

=?그거 한반도 관통한다고 하지 않았어?

=22 우리집 테이프 다 붙여놨는데.

=맛남 식당 보고 있는 사이에 소멸했다고 함.

=역시, 오보청ㅋㅋㅋ

=근데 다른 나라 기상청도 비슷한 경로 나왔던 거 보면 기상청이 잘못한 건 아닐 듯.

-맛남 식당 끝나면 이제 뭐해?

=몰라. 홍보를 안 하던데?

=22 제목도 없음. 출연자도 모름. 방송 내용도 모름.

=편성표는?

=텅 비어 있음.

=?TVM 이제 방송 안 한대??

=담당자가 실수한 거 아님?

=ㄴㄴ그렇다기엔 너무 오래 비워져 있었음.

-맛남 끝났네…… 이제 뭐 보냐. 내 일주일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나도. 이제부터 또 TV 봉인하겠네.

=22 위시리스트도 끝나고 맛남도 끝나고. 뭐가 나와도 이렇게 재밌지는 않을 듯ㅠ

=……어?? 방금 그거 서준이야???

=취소.

=빠르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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