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83화
서준과 세 배우는 먼저 집부터 살펴보았다.
벽돌들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벽돌을 쌓아 만든 아궁이를 해체해서 창고로 옮기고 천막도 걷어서 잘 묶어두고 평상도 옮기고 창문들도 박스와 테이프로 제대로 막아두었다.
마당의 물건들을 모두 치우니 마당이 텅 비어 보였다.
“처음 온 날 같아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다 우리가 만들었는데…….”
백건하의 말에 서준과 민재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마당에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밖으로 가 볼까?”
감상에 빠져 있기엔 아직 할 일이 많았다.
네 배우는 집을 나서 먼저 바다로 향했다. 아직 물결이 잠잠할 때 통발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그사이 제작진 또한 집 외부에 설치된 거치 카메라들이 태풍에 날아가지 않게 떼어내거나 일부는 더 강하게 고정해 두었다. 그리고 태풍을 피해 내부에서 생활할 출연자들을 촬영하기 위해 집 안 카메라들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개인 카메라를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
그렇게 좁은 집은 아니지만 제작진까지 들어올 수는 없어, 주예진 피디는 그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섬섬생활]의 촬영을 위해 집에서 짐을 쌀 때 찍었던 개인 영상들을 이미 살펴본 덕분에 세 배우의 촬영 스타일도 잘 알고 있었다.
백건하는 폴폴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 잘 찍어줄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촬영한 영상은 이리저리 흔들려 제대로 쓸 수 있는 영상은 반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오디오만큼은 확실하게 쓸모가 있을 터였다.
민재원은 정말 카메라맨이 된 양 조용히 찍고 있을 거다. 독립영화를 많이 찍으면서 촬영을 도운 적이 있었는지 영상이 제법 괜찮았다.
이서준은 무슨 영화를 촬영하는 것처럼 찍을 거다. 영상미도 좋고 오디오도 적당히 들어가 있어서 편집하기에도 제일 좋을 테지만, 아무래도 요리 담당이다 보니 촬영만 할 수는 없을 터였다.
“한지호 배우는…… 모르겠네.”
그래도 예중, 예고를 졸업하고 예대를 다니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주예진 피디가 스태프들에게 개인 카메라를 준비하라고 말할 때, 배우들을 따라간 스태프에게서 연락이 왔다.
>피디님! 좀 늦을 것 같습니다!
* * *
“통발 안에 아무것도 없었네.”
통발을 처음 보는 한지호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이래. 안 잡히는 날이 더 많아.”
“맞아요! 저희도 해산물 배부르게 먹어본 건 저번 촬영뿐이었어요!”
“섬인데?”
“……저희도 그게 의문이에요. 저번엔 잘 잡혔는데, 왜 또 안 잡힐까요?”
의아해하는 한지호에 어제도 낚시를 나갔다가 아무것도 낚지 못하고 돌아온 백건하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마 이제 곧 태풍이 올라오니까 다들 어디 숨어 있는 게 아닐까?”
민재원이 태풍이 불어올 남쪽을 바라보았다. 기분 탓인지 어쩐지 바람이 좀 강해진 것 같기도 했다. 아직 태풍의 영역에 들어가려면 멀었는데 말이다.
“선착장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선착장이 보였다.
그런데, 익숙한 배가 하나 있었고 그 배와 선착장을 오가는 사람이 보였다. 서준과 배우들이 타고 온 배와 그 배의 주인인 선장이었다.
“태풍 때문에 묶어놓으시나 보네.”
“그러게.”
배가 뒤집히거나 떠내려가지 않게 배들끼리, 그리고 선착장에 묶어놓는 건 뉴스에서만 봤던 모습이라 조금 신기했다.
“근데, 이런 건 다른 배도 많이 있는 곳에서 해야 하지 않아?”
그러게?
민재원의 말에 서준과 한지호, 백건하도 눈을 끔벅였다.
배들끼리 서로서로 고정되어 있어야 한결 태풍을 피하기 쉬울 텐데, 왜 혼자 여기 계시는 걸까?
“선장니임!”
백건하가 손을 흔들자,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밧줄을 들고 있던 선장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태풍 온다는데, 대비는 했어?”
“네. 지금 통발 가지고 가는 길이에요.”
“창문도 다 막아뒀고요! 평상도 치워놨어요!”
“잘했어.”
선장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육지 선착장으로 안 가시고 여기 계세요? 여긴 다른 배도 없어서 위험할 것 같은데.”
서준의 물음에 선장이 밧줄을 당기며 대답했다. 민재원과 한지호가 얼른 그걸 도왔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다친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육지에서 오는 것보다는 여기서 출발하는 게 빠르잖아.”
물론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없겠지만, 사고는 집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법이었다.
죽묘도 주민 중 유일하게 배를 가지고 있는 선장은 이렇게 주민들의 발이 되고는 했다.
“완전 멋있어요! 선장님!”
백건하의 말에 선장이 하하 웃었다.
“저희도 도와드릴게요.”
“그럼 고맙지. 아까 오는 길에 잡은 게 있는데 좀 나눠줄까?”
“감사합니다!”
사양도 하지 않고 단번에 대답하는 백건하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선장을 돕고 선착장을 나와 밭으로 향하는 길, 네 배우의 눈에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는 집들이 보였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죽묘도 주민들은 그 수가 적기도 했지만 평균 연령도 높았다. 이번 태풍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고 하지만,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고 가며 인사도 하고, 간식도 제작진 몰래 하나씩 주시고, 낚시나 밭일에 대해 조언도 가끔 해주셨던 분들이었다.
“다들 대비는 해놓으셨겠지만, 저희가 좀 도와드리는 건 어떨까요?”
“좋아요!”
“나도.”
서준의 말에 세 배우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생선은 제가 집에 놔두고 올게요! 금방 올게요, 형들!”
하고 검은 비닐봉지를 든 백건하가 달려나가고, 서준과 민재원, 한지호는 웃으며 가장 가까운 집으로 향했다.
* * *
몇 시간 후.
두 손 가득 먹을 것을 든 네 배우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 죽묘도 주민들이 준 것들이었다.
“다들 대비를 잘해놓으셨더라.”
민재원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보다 오랜 시간을 죽묘도에서 태풍을 겪었을 비어 보였다 네 사람이 걱정했던 것보다 준비를 잘해놓은 상태였다.
물론 이번 태풍은 경로가 갑자기 바뀐 터라 부족한 부분도 좀 있었지만, 그건 건장한 청년 넷이 잘 해결해 드렸다.
“아까 보니까 고양이들도 알아서 잘 피한 것 같더라고.”
서준의 말에 배우들이 어느 집은 창고에서, 어느 집은 마루 밑에서 봤던 고양이들을 떠올렸다. 누가 왔나, 하고 경계하더니, 서준을 보고는 신나게 달려오던 모습에 다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상치 않은 날씨를 가장 먼저 느낀 동물들이 대피했다. 고양이들도 그랬다. 주민들은 익숙하게 피난 온 고양이들을 맞이했다.
“진짜 다 자기 집이 있던 것 같았어요! 아까 저 보고는 ‘네가 왜 우리 집에 있어?’ 그런 표정을 짓더라니까요!”
백건하의 말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던 한지호가 물었다.
“근데 이 집은 고양이가 안 와? 못 본 것 같은데?”
서준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원래 빈집이었대. 그래서 자주 오던 고양이가 안 오게 됐다고 하더라고.”
“우리 집만 고양이 없어요……!”
백건하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 * *
받아온 요리 재료와 음식들을 냉장고에 잘 정리해 넣어둔 배우들은 밭을 살펴보러 갔다가 돌아왔다.
“바람이 점점 심해지네.”
“그러게요. 확실히 태풍이 오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민재원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들! 비 와요!”
타이밍이 좋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비 맞을 뻔했네.”
밝은 불빛 아래, 한지호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깥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박스로 막지 않은 창문이었다. 물론 비바람이 더 심해지면 이것도 막을 예정이었다.
“그럼 이제 밥 먹을까?”
“좋아요!”
한지호와 나란히 앉아 밖을 보며 ‘바람 많이 안 불었으면 좋겠다. 배 뒤집어지면 안 되는데.’ 하고 걱정하고 있던 백건하가 ‘밥’이란 소리에 단번에 밝아졌다. 그러고는 스태프에게서 받은 개인 카메라로 요리할 준비를 하는 서준을 찍었다.
잠시 후.
언제나처럼 서준의 손에서 맛있는 요리들이 만들어졌다.
“확실히 아궁이보다 요리하기 편하네. 불조절도 잘되고.”
서준의 말에 세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궁이로 요리할 때 불 조절을 하려면 장작을 넣었다 뺐다 해야 했다.
“그래도 아궁이도 괜찮지 않아요, 형? 고구마도 구워 먹을 수 있고!”
“고구마 맛있었지.”
백건하와 민재원의 말에 입맛을 다신 한지호가 말했다.
“나도 먹고 싶어.”
“태풍 지나가면 고구마 구워 먹자.”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서준의 요리는 맛있어서, 비바람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한 바깥 상황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나도 도울게.”
설거지를 하는 백건하와 민재원, 조금 있다가 시작할 [맛남 식당3]를 보며 먹을 간식을 준비하는 서준을 한지호가 카메라로 찍었다.
“오늘 예고편 나오니까 꼭 봐야죠!”
“어떻게 나오려나?”
“확실히 난리가 나긴 할 거예요. 서준이가 나온 건 항상 그랬거든요.”
한지호의 말에 민재원이 아, 하고 무언가 떠오른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서준이가 정체를 숨겼을 때도 그랬다고 들었어. 청룡님 말이야.”
“저도 그 이야기 알아요! 완전 어릴 때라서 직접 연극을 보진 못했지만, 저도 청룡님 인형이랑 여의주 있었어요! 지금도 있구요! 그때 진짜 청룡님이 계신 줄 알았다니까요!”
“아마 그때 그 연극 본 애들은 다 그렇게 믿었을걸.”
당시 8살이었던 터라 DVD로 [봄]을 본 후 청룡님께 열심히 기도했던 한지호의 말에, 민재원이 덧붙였다.
“어른들 중에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대. 그 정도로 포스가 있었다고 하더라.”
“봄은 지금 봐도 굉장해요!”
옛날이야기에 서준이 하하 웃었다.
“음.”
하고 무언가를 생각하던 한지호가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청룡님께 소원 빌어보는 건 어때요?”
“청룡님께?”
“소원요?”
민재원과 백건하의 고개가 저절로 서준에게로 향한 건 이상한 게 아닐 터였다.
서준은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나, 하는 표정으로 한지호를 바라보았다.
“옛날 사람들은 용왕님이 바다를 다스린다고 생각했잖아. 지금도 해신제 같은 제사를 지내고. 그러니까 태풍 좀 멈춰주세요, 하고 청룡님께 기도하자는 거지. 그럼 여기 청룡님이 친척일지도 모르는 용왕님께 전달해 주지 않겠어?”
하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서준을 가리키는 한지호에, 서준과 민재원, 백건하가 눈을 깜빡였다.
“그거…….”
서준이 입을 열었다.
“재미있을 것 같네.”
“그러게. 재밌겠다.”
“저도 해보고 싶어요! 청룡님도 날씨를 다스리는 능력이 있으니까! 어쩌면 용왕님 대신 청룡님이 들어주실지도 몰라요!”
다들 흥미로운 얼굴이었다.
태풍이 불어서 밖에도 못 나가고 [맛남 식당3] 방송 때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할 일도 없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았다.
“제사 음식은 뭐로 해야 할까?”
“정식으로 하는 제사는 아니니까, 청룡님이 좋아하는 음식이면 되지 않을까요?”
민재원과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백건하가 얼른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이 형! 뭐 좋아하…… 아니, 청룡님은 뭐 좋아하세요? 오렌지주스?”
푸핫!
한지호와 민재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도 따라 웃다가 입을 열었다.
“아마 고기가 아닐까?”
“고기!”
“아, 그러면 아까 저녁 먹기 전에 할 걸 그랬네. 다시 요리할 수는 없잖아.”
“과자나 간식도 좋아할 거예요, 형.”
어린이 연극 [봄] 당시 사용했던 능력 [(선)블루드래곤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약한 피어]의 ‘블루드래곤’은 아직 어린 녀석이니까 말이다.
“과자! 간식! ……츄르는 안 되겠죠?”
“되겠냐고.”
백건하와 한지호의 대화에 다들 빵 터졌다.
“아, 제일 중요한 걸 빠뜨렸다!”
“제일 중요한 거?”
말을 꺼낸 한지호보다 더 신나 보이는 창문들도 말에, 세 배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의주요! 여의주가 있어야 청룡님이 소원을 들어주시죠!”
아마도 이 넷 중 가장 연극 [봄]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막내가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여의주 집에 있는데! 가지고 올걸!”
절망하는 백건하를 보며 웃던 민재원이 청룡님 서준에게 물었다.
“여의주, 나무로 만들어도 돼, 서준아?”
“네. 괜찮아요.”
“나무가 있으려나…….”
당사자에게 허락을 받은 민재원이 여의주를 만들 나무를 찾으려던 그때.(백건하는 아쉬워했다.)
“여의주 대신 이건 어때?”
한지호가 씩 웃으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만파식적.”
그건 서준이 만든 대나무 피리, 소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