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81화
달그락- 달그락-
작은 소리가 자고 있던 김경우의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엄마? 아니, 아빤가?’
방에서 자고 있을 때, 부엌이나 거실에서 들려오던 소리와 비슷했다.
‘언제 집에 왔지?’
어제 조금 늦게 잔 데다가 8월 중순답지 않게 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날씨에 아주 푹 잔 김경우는 아직 비몽사몽인 상태로 생각했다.
‘분명히 예능 게스트로 건하를 만나러 갔다가 재원 선배님이랑…….’
“서준이 형!”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백건하의 작은 목소리에 머리 위로 느낌표를 수십 개 띄운 김경우가 눈을 번쩍 떴다. 곧이어 지체 없이 상체도 벌떡 일으켜 앉았다.
등골이 서늘하다.
김경우는 잠기운이라고는 1도 없는, 요동치는 눈동자로 낯설고도 조금 익숙한 방 안을 살펴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백건하의 이불과 방안에 설치된 카메라가 보였다.
으아아아!
아직 촬영 중이었다!
김경우는 얼른 문을 열었다.
“저! 저 일어났습니다!”
그 소리에 마당에 있던 배우들과 제작진이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머리가 까치집이 된 김경우를 발견하고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일어났어? 좀 더 자도 되는데.”
“맞아! 아침 준비하려면 아직 멀었어!”
평상에 앉아 오늘 육지로 가기 전까지 무얼 할까, 이야기하던 민재원과 백건하가 말했다.
“경우야, 물 마실래?”
2주간 오지 않을 예정이라 냉장고를 살펴보기 위해 부엌에 있었던 서준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잠, 잠시만요. 제가 나갈게요!”
마치 명절날 자고 일어나니 온 친척들이 모여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았던 김경우는 얼른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후다닥 씻은 후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슬쩍 시계를 봤는데 다행히도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좀 일찍 일어난 것 같았다.
“원래 이렇게 일찍 일어나?”
김경우의 속닥거림에 백건하가 대답해 주었다.
“아니. 집에서는 늦게 일어나는데, 여기만 오면 일찍 일어나지더라. 근데 나도 늦게 일어난 편이야. 재원이 형이랑 서준이 형은 벌써 산책도 갔다 왔어.”
아니, 그럼 도대체 언제 일어나셨다는 건가.
“그럼 나도 좀 깨우지……!”
“너무 푹 자서. 진짜 죽은 듯이 자던데, 형.”
이를 악물고 말하는 김경우에 백건하가 킬킬 웃었다. 그에 약이 오른 김경우가 백건하의 등을 가볍게 찰싹 쳤다.
“그래도 깨웠어야지! 네가 나였음 어땠겠어!”
“나였으면 아예 늦잠을 안 잤지!”
작았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김경우와 백건하가 투닥거리고 있는 모습에 서준과 민재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서준과 세 배우는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죽묘도를 한번 둘러본 다음 배에 올랐다.
바다 위를 통통 튀던 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육지 선착장에 도착했다.
“경우야 조심해서 가.”
“다음에 보자.”
“네!”
웃으며 손을 흔드는 서준과 민재원의 모습에 김경우가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백건하가 옆에서 깐죽거렸지만, 괜찮았다.
“내 덕분인 줄 알아! 경우 형!”
“제작진분들 덕분이지.”
백건하와 투닥거리던 김경우도 차에 올랐다.
“어땠어? 이서준 배우랑은 이야기 많이 했어?”
운전석에 앉아 있던 매니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서준이 출연한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지만,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맛남 식당도 같이 봤어, 경우야?”
어제 방송한 [맛남 식당3]를 매니저도 보았다.
같은 TVM방송국인 [섬섬생활] 제작진을 통해서 들었는데, 시청률도 엄청 잘 나왔다고 했다. [맛남 식당] 전 시즌은 물론이고 다른 간판 예능이나 드라마와 비교해도 엄청 잘 나왔다고.
‘역시 이서준.’
거기에 박지오 선수와 비행기 의인까지 나왔으니 시청률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바로 어제 저녁에 방송한 회차임에도 다시보기나 너튜브 클립도 조회수가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
단일 회차로 나온 방송의 시청률이 그 정도니, 고정 출연자인 [섬섬생활]은 얼마만큼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됐다.
그 시청률과 화제성이 게스트로 출연한 자신의 배우, 김경우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회사에서도 한껏 기대하고 있었다.
“네, 다 같이 봤어요. 이야기도 많이 했고요. 서준이 형이 만들어준 음식들도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어요.”
“세상에…… 이서준 배우를 형이라고 불러?”
“연락처도 교환했어요.”
잘했다! 경우야!
슈퍼스타와 인연을 맺은 배우에, 매니저가 활짝 웃었다. 이렇게 조금씩 친해지다가 이서준 사단에 들어가는 거다.
‘그리고 할리우드 진출!’
꾸준히 할리우드에서 대본이 들어온다는 김종호와 이지석의 소문을 떠올리며 매니저가 흐뭇하게 웃었다.
거기에 이서준이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서준 사단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김경우의 연기력은 인정받을 수 있을 터였다.
또 서준 리를 알고 있는 관계자들도 ‘이 배우가 리와 친하다고?’ 하며 관심을 둘지도 몰랐다.
김칫국을 후루룩 마시는 매니저를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이야기한 김경우는 [섬섬생활]을 촬영하는 동안 보지 않았던 휴대폰을 보았다.
연락이 많이 와 있었는데,
> 어제 맛남 식당 봤어?
대부분 [맛남 식당3]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에 김경우가 히죽히죽 웃었다.
보기만 했을까. 당사자와 같이 TV도 보고 그때 이야기도 들었다.
‘말하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형, 섬섬생활 방송 언제 한다고 했었죠?”
“다음 촬영이 마지막 촬영이고, 그다음 주에 방송 시작한다고 했으니까, 9월이네. 근데 네가 2번째 게스트니까 네가 나오는 편은 10월쯤에 방송하지 않을까?”
10월.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그때까지만 참자.’
김경우가 히히 웃었다.
* * *
“벌써 마지막 촬영이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최태우의 말에, 바깥을 구경하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9월에 서울에서 마무리 촬영 겸 식사 자리가 있긴 하지만, 죽묘도에서의 촬영은 이번 2박 3일로 마지막이었다.
“시간이 되게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요.”
게스트 김경우와 함께했던 촬영 날로부터 벌써 2주가 흘렀다.
“그치? 여름도 벌써 다 끝나가고. 섬섬생활도 곧 방송하겠네.”
“네. 예고편이 이번 주 맛남 식당 마지막회 끝나고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들었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 아, 지후는 어때?”
서준과 친구들이 나왔던 [맛남 식당3]의 방송이 나온 것도 2주가 지난 상태였다.
방송이 나온 직후의 일주일보다는 화력이 좀 사그라지긴 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어했다.
시청률에 눈을 번뜩이는 방송국들이 [맛남 식당3] 멤버들을 섭외해 당시 이야기를 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1시간밖에 촬영하지 못한 터라 이야기할 건 많이 없어, 그저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직접 본 감상은 어땠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도만 이야기했지만, 그것만 해도 재미있었다.
진짜 축구를 못했는지 묻는 말에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권사형과 ‘막내’ 이야기에 으아아아! 하고 괴로워하는 윤효원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드물게 서준의 ‘일반인 친구들’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었지만, [맛남 식당3]의 멤버들이나 코코아엔터, 그리고 방송국 자체에서 막아버렸다.
‘이서준 배우가 출연 안 한다고 하면 어쩌려고!’
또 박지오 선수도.
드라마국과 예능국, 다큐멘터리를 노리고 있는 교양국이 눈을 번뜩였다.
덩달아 박지후의 이야기도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박지후의 주변 상황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괜찮대요. 시험이 얼마 안 남아서 다들 정신없다고 하더라고요.”
의사가 되는, 앞으로의 인생이 달린 시험이니, 다들 오래 정신을 팔고 있을 수는 없을 터였다.
“지후도 별로 신경 안 쓰인대요.”
“지후가 쿨한 데가 있지.”
웃으며 말하는 최태우에 서준도 따라 웃었다. 박지후라면 알아서 잘할 터였다.
“그래도 필요한 일 있으면 저나 태우 형한테 연락하라고 했어요.”
“잘했어.”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항상 기다리던 카페에 도착했다.
오며 가며 얼굴이 익숙해진 [섬섬생활]의 제작진들에게 인사한 서준이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일찍 온 민재원과 백건하가 앞치마를 입고 카페 직원인 척 연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어떤 걸로 드릴까요, 손님!”
서준은 작품이 아니라 예능에서 인연을 맺게 된 두 배우를 바라보다 웃음을 삼키며 태평하게 말했다.
“항상 먹던 걸로 주세요. 그게 제일 맛있더라고요.”
으하하하!
생각지도 못한 서준의 대답에 백건하와 민재원, 제작진은 빵 터지고 말았다.
* * *
“죽묘도! 우리 집!”
세 배우는 죽묘도에 도착했다.
이번 촬영이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풍경이 새롭게 보였다.
민재원과 백건하도 서준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모양인지, 섬을 둘러보는 눈빛이 아련했다.
“서준이 형! 우리 대나무 삼겹살 구이 해먹으면 안 돼요? 너튜브에서 봤는데 엄청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아, 시금치도 몇 개 캐서 먹고요! 작아도 맛은 있지 않을까요?”
아닌가 보다.
서준과 민재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점심 식사 준비를 시작으로 [섬섬생활]의 마지막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지막 촬영이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서울에서 사온 고양이 장난감으로 고양이들과 놀고, 미끼를 넣은 통발을 설치하고,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고, 음식 재료를 얻기 위해 밭일을 열심히 하고, 저녁을 먹고 잘 준비를 했다.
“오늘 내일만 자면 여기서 자는 것도 끝이네요.”
“그러게. 여기 생각보다 되게 아늑하고 좋았는데 말이야.”
“저도요! 형들이랑 이야기하면서 자는 거 되게 좋았어요! 할머니 집에서 친척 형들이랑 같이 자는 기분이었어요!”
마지막이 다가와서 그런가.
잠자는 시간도 아쉬워져, 서준과 민재원, 백건하는 피어놓은 모기향이 한 움큼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밤하늘의 별을 보기도 하고 야식도 먹으며 꽤 오래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늦게 잤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어난 서준과 민재원은 산책을 하러 갈 준비를 했다.
“저도 갈래요……!”
잠기운에 반쯤 잠겨 있으면서도 일어난 백건하가 흐느적거리며 말했다. 마지막 촬영인 만큼 같이 산책하고 싶었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은 서준과 민재원은 백건하를 기다려 주었다. 아침 산책 친구인 노란 치즈 고양이 누렁이가 야옹, 하고 울었다.
아침 산책을 하고 난 후에는 아침밥을 준비했다.
“오늘 아침 메뉴는 김치볶음밥입니다!”
요리 담당 백건하가 말했다.
죽묘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혼자 요리하는 거였다.
촤악! 착!
뜨거운 아궁이 위에서 올려진 솥뚜껑 안에서 김치와 밥알이 뒤섞였다.
“오, 잘하네.”
“그러게. 맛있어 보인다.”
“제가 김치볶음밥 하나는 잘해요! 형들, 계란도 구울까요?”
“좋지.”
솥뚜껑 한쪽에 계란 네 개가 올려졌다. 두 개는 백건하 거였다.
적당히 눌어붙어 더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주걱으로 퍼 그릇으로 옮기고 그 위에 계란후라이를 올렸다. 김 가루와 참기름도 넣었고, 저번 촬영 때 담근 시원한 동치미도 꺼내왔다.
“잘 먹을게, 건하야.”
백건하의 장담대로 김치볶음밥은 맛있었다. 넉넉하게 한 덕분에 조금씩이나마 얻어먹은 제작진들도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김치가 맛있어서 더 맛있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아냐. 건하 네가 요리를 잘했어.”
서준의 칭찬에 백건하가 헤헤 웃었다.
아침을 먹은 세 배우는 조금 쉬다가 선착장으로 향했다. 오늘 [섬섬생활]의 마지막 게스트가 올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서준이 지인이 게스트로 오지?”
선착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며 민재원이 말했다.
“누가 오는지 알아요, 서준이 형?”
“아니, 나도 몰라. 안 가르쳐 주더라고.”
같이 걸어가던 백건하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섬섬생활]을 촬영한다는 걸 알고 있는 친구들이나 모르고 있는 지인들에게선 따로 연락이 없었다.
‘누굴까?’
하고 궁금해하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배를 살펴보는데, 두 팔을 번쩍 들고 흔들고 있는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그와 눈이 마주친 서준이 하하 웃었다.
“서준아!”
한지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