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78화
“안녕하세요! 이서준 선배님!”
현실을 인식한 김경우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이제는 머리 위로 올라가려는 노란 고양이를 잡아 내리던 서준에게 바짝 긴장해 인사했다.
서준이 웃으며 마주 인사했다.
“얼른 들어와! 경우 형!”
으하하하! 웃던 백건하가 김경우의 캐리어를 대신 들어 집 안으로 옮겨주었다. 민재원도 웃으며 부엌에서 김경우가 오기 전에 만들어둔 수박화채를 꺼내왔다. 좀 있다 점심을 먹을 예정이긴 했지만, 조금은 괜찮을 것 같았다.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둔 서준이 평상으로 안내했다.
“여기 앉으세요. 경우 씨.”
“넵! 선배님!”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나도 형이라고 부른다? 와! 다시 생각해도 감동이야! 이서준 선배님을 형이라고 부른다니!”
캐리어를 두고 온 백건하가 평상에 앉으며 떠들어댔다. 친한 지인이 오니 즐거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저도 편하게 불러줘요.”
수박 화채를 들고온 민재원이 말했다.
그에 쭈뼛쭈뼛대던 김경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오늘은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내일부터 형이라도 불러도 될까요?”
그에 서준과 민재원, 제작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성적인 성격인가?
백건하도 의아한 얼굴이었다. 저런 형이 아닌데?
“그게…… 제가 여울 예중, 미리내 예고 나왔거든요.”
오.
김경우의 말에 서준과 민재원의 눈이 커졌다.
백건하야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제작진도 논란거리가 있나 없나, 하고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아역배우로 데뷔해 올해로 4년 차 배우인 22살의 김경우가 들뜬 얼굴로 설명했다.
“근데 제가 서준 선배님이랑 3살 차이가 나서, 같이 학교에 다닌 적은 없어요. 제가 입학하면 서준 선배님은 졸업한 상태였거든요.”
일 년만 더 일찍 태어날걸!
김경우와 함께 입학한 여울예중 1학년들과, 미리내 예고 1학년들이 항상 하던 생각이었다.
2학년, 3학년들에 [거울]과 [MOEB-436]을 함께 만들었던 학생들이 있었고, 선생님들도 서준을 잘 알고 있어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었다. 또 학교 여기저기에 ‘여기서 이서준 선배님이 연습하셨대!’, ‘여기서 이서준 선배님이 밥을……!’ 같은 흔적들이 남아 있으니, 정말 일 년 늦게 태어난 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신전 프로젝트 때 같이 한 애들이랑도 아는 사이겠네요?”
한예대 축제 때 했던 [신전 프로젝트]에도 중, 고등학교 후배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 서준이 물었다.
“네. 그때 저희 단톡방 완전 뒤집어졌어요.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한예대생이 아닌 게 진짜 아쉽더라고요.”
저번 게스트 강명헌도 그렇고, 세상은 정말 넓으면서도 좁은 것 같았다.
‘아니, 연예계가 좁은 건가.’
예상치 못한 만남들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진짜 같이 학교 다니면서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김경우가 배우답게 표정으로 아쉬움을 표현하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그런데, 오늘은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도 돼요. 선배님이든, 형이든.”
“와! 아, 선배님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재원 선배님도요!”
“그래, 알았어.”
하고 말하는 선배 서준에 후배 김경우가 활짝 웃었다.
* * *
점심(‘선배님이 만드신 요리!’)을 먹고 난 후, 네 배우는 바다낚시를 하기로 했다.
서준과 민재원, 김경우는 창고에 있던 낚싯대를, 백건하는 촬영 때마다 몰래 가져오는 아버지의 낚싯대를 챙겼다. 아버지도 포기했다.
“낚시해 봤어, 경우야?”
서준의 물음에 김경우가 얼른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그래?”
“선배님은 낚시해 보셨어요?”
“나도 몇 번 안 해봤어. 죽묘도에서는 오늘이 처음이고. 음. 많이 잡을 수 있으려나?”
“지금까지 낚시는 나랑 건하가 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거든.”
민재원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바다가 바로 옆에 있는 섬인데도 통발에 잡히는 것들만 먹었다.
“건하 너 아버지 따라서 낚시 자주 갔던 거 아니었어? 그거 아버지 낚싯대라며?”
하고 묻는 김경우에 백건하가 대답했다.
“어릴 때 몇 번 같이 갔는데, 그 이후로는 안 데리고 가시더라고! 바다에서 노는 거 재미있었는데! 회랑 매운탕도 맛있었고!”
어째서 안 데려갔는지 알 것 같아, 서준과 두 배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네 사람은 구명조끼를 입고 낚싯배에 올랐다.
백건하가 ‘회~ 물회~ 회덮밥~ 매운탕~’ 노래를 불렀고, 백건하와 친한 김경우도 어느새 따라 부르고 있었다.
“진짜 잡아야겠는데요, 재원이 형.”
“그러게 말이야.”
그 모습에 서준과 민재원이 웃으며 각오를 다졌다. 작은 거라도 하나 잡아서 먹여야겠다. 이게 가장의 무게인가 싶었다.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가 멈췄다.
바다만큼 하늘도 파랬다. 날씨는 좋았다.
“우리 오늘은 꼭 잡아요! 형들!”
“제가 돔 잡아 오겠습니다! 선배님들!”
눈을 빛낸 백건하와 김경우가 얼른 자리를 잡았다. 그 옆에는 우산이 있었는데, 낚시가 길어질 경우 뜨거운 햇볕을 가릴 때 쓸 예정이었다.
“전 여기서 잡을게요.”
“그럼 난 여기.”
서준과 민재원은 배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
곧 네 개의 낚싯대에서 뻗어나온 낚싯줄이 바다에 퐁당! 빠졌다.
“언제쯤 잡히려나? 제작진이 파는 목록에 생선은 없었지?”
벌써부터 살 생각을 하는 민재원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뭐, 진짜 한 마리도 안 잡히면 사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아쉽게도 제작진이 파는 것들 중에 생선은 없었다.
“네. 없었어요.”
“제작진도 우리가 잡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네.”
이렇게 못 잡을 줄은 몰랐을 터였다.
“정 안 되면…… 이 배 타고 육지 가서 사 올까요?”
“……그럴까?”
서준과 민재원이 속닥거렸다.
“배 운전할 수 있어?”
“아뇨, 근데 선장님이 브라운블랙 형들 팬이시래요.”
“오.”
“그래서 다음에 올 때 형들 사인이랑 앨범…….”
그때였다.
낚싯대를 잡고 있던 민재원의 몸이 훅- 앞으로 당겨졌다.
“억!?”
하는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형!”
서준이 얼른 균형을 잃은 민재원과 민재원의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낚싯대를 붙잡았다.
“으악?!”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비명이 들려왔다. 백건하의 목소리였다.
“괜찮아? 무슨 일이야?”
서준의 외침에 김경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건하 낚싯대가 갑자기 잡아당겨 져서! 건하랑 낚싯대는 괜찮아요!”
“우와아아! 물고기가 물었나 봐요! 형! 힘 엄청 세!”
흥분이 가득한 김경우와 백건하의 목소리에, 얼른 낚싯대를 고쳐잡은 민재원과 한숨 돌린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선배님들은요?”
“우리도 그래.”
낚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물고기가 낚싯대를 물었다. 출연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엔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섬섬생활] 제작진들이 갑작스러운 소식에 바쁘게 움직였다.
“어!”
민재원이 릴을 풀었다가 감으며 낚인 물고기와 실랑이를 하고 있는 사이, 민재원을 구경하고 있던 서준의 눈이 커졌다.
잡고 있던 낚싯대가 툭툭- 움직이다가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입질이었다.
서준이 얼른 낚싯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저도 잡은 것 같아요, 재원이 형.”
“정말? 이렇게 빨리?”
민재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이전 낚시에서도 입질은 몇 번 있긴 했지만, 이렇게 바로 오는 경우는 없었다.
“형! 경우 형! 낚싯대!”
“어! 어!?”
김경우의 낚싯대에도 반응이 있나 보다.
바다에 자리를 잡고 낚시를 시작한 지 20분도 안 돼 일어난 일에 민재원이 눈을 끔벅였다. 1시간이 지나서야 입질이 있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래…….”
물론, 릴은 계속 감고 있는 상태였다.
* * *
네 배우가 잡은 네 마리의 물고기가 물이 담긴 아이스박스 안에서 펄떡였다. 보리멸 세 마리와 전갱이 한 마리였다.
“보리멸 회! 전갱이 회!”
“매운탕! 물회! 회덥밥!”
[섬섬생활] 촬영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낚은 물고기들에 신이 난 사람들을 보며 웃던 서준이 아이스박스 안을 바라보았다. 이 네 마리로 과연 모두 배를 채울 수 있을지 생각했다.
‘제작진분들도 좀 드리려면…….’
부족했다.
“우리 몇 마리 더 잡을까? 내일 아침으로 구이나 숙성회를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숙성회! 구이!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 백건하와 김경우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왠지 느낌이 좋아요! 열 마리도 더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장 잡아 오겠습니다! 선배님!”
민재원도 웃으며 낚싯대를 들었다.
“몇 마리 더 잡으면 돼, 서준아?”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운이 좋았다.
아이스박스를 가득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확인한 통발에 문어가 잡혀 있었다.
덕분에 배우들은 촬영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해산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진짜, 진짜 맛있었어요, 선배님. 정말 장사하셔도 될 것 같아요.”
“하하, 고마워.”
“서준이가 장사하면 맨날 먹으러 갈 것 같네.”
“저도 단골 될 것 같아요!”
얻어먹은 제작진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맛집이 있으면 정말 일주일에 몇 번씩 갈 것 같았다.
남은 건 잘 숙성시켜뒀다가 내일 아침으로 먹기로 하고, 네 배우는 잠시 평상에 앉아서 소화도 할 겸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기 시험 기간만 되면 기 받으려고 서준 선배님이 사용하신 연습실이 북적북적했다니까요. 물론 저도 갔습니다.”
“근데 다 같이 기 받으면 상향 평준화되는 거 아니야?”
“네, 맞아요. 그래서 실력은 좋아진 것 같은데 석차는 그대로였어요.”
웃음과 함께 모기향이 피어올랐다.
“이제 뭐할까요, 형들?”
김경우가 가져오는 그릇 등을 설거지하던 백건하의 물음에 민재원이 웃으며 말했다.
“맛남 식당 봐야지. 서준이 나오잖아.”
“아!”
그에 백건하와 김경우가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웠다.
“까먹고 있었다!”
“나도! 지금 몇 시지?”
“괜찮아. 아직 시간 좀 남았어.”
서준의 말에 백건하와 김경우가 와, 하고 입을 열었다.
“진짜 방송 보다가 깜짝 놀랐다니까요! 거기서 서준이 형이 나올 줄이야! 게다가 박지오 선수도 같이 나오다니!”
“전 방송은 못 보고 뉴스로 먼저 알았는데 아쉽더라고요. 예고편으로 봤어야 했는데!”
민재원도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명헌이 형이랑 밥 먹다 봤는데 깜짝 놀랐어. 식당에서 봤는데, 다른 손님들도 엄청 놀랐다가 재미있어하시더라.”
“하하하.”
어땠을지 상상이 가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맛남 식당3]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날보다 빨리 뒷정리를 끝낸 네 배우는 옹기종기 TV 앞에 모였다. 타이밍 좋게 막 앞서 방송하던 프로그램이 끝나고 광고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광고 언제 끝나지?”
“빨리 끝났으면!”
기다리는 배우들처럼 시청자들도 얼른 방송이 시작하기만을 목을 쭉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광고 왜 안 끝남?
=빨리 끝나라!
-오! 시작한다!
[맛남 식당3]가 시작되었다.
방송은 저번주 편과 이어져, 점심 장사를 하는 모습이 나왔다.
다른 때보다도 많은 주문들이 들어왔지만, 주방에서 요리하던 권사형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는 이제 문제없지. 여기 5번 테이블 나왔습니다!”
“네!”
다른 멤버들도 능숙하게 제 할 일을 했다.
그런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던 화면이 잠시 멈추고, [맛남 식당1] 때 우왕좌왕하던 멤버들의 모습을 빠르게 보여주었다.
시즌 1, 시즌 2, 그리고 시즌 3까지.
요리사에게 배우는 멤버들의 모습, 비행기에서도 레시피를 읽는 모습, 재료를 사는 모습, 장사를 시작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 사이로 응급환자가 발생했던 상황도 잠깐 스쳐 지나갔다.
마치 시청자들의 기억을 상기시키듯. 또 무슨 일이 터질 것을 예고하듯.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언니! 재료가 다 떨어져 가요!”
사고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