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76화
꼬끼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어두웠던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잠이 들어 어둠만 보이던 거치 카메라들에도 빛이 스며들었다. 그 화면으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가 보였다.
서준이었다.
같은 방에서 자고 있던 백건하가 깰까 싶어 서준은 조용히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러고는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살짝 뒤집어진 머리카락을 물로 가라앉히려고 해봤는데 잘 되지 않았다. 뭐,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아 그대로 뒀다.
“안녕, 잘 잤어?”
물을 마시고 마루에 걸터앉은 서준이 마당에 있던 치즈 고양이, 누렁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 고양이는 야행성이지. 그럼 이제 자는 거야?”
그에 대답하듯 누렁이가 하암- 길게 하품을 했다.
서준이 킥킥 웃었다.
이른 새벽의 시원한 공기를 느끼며 서준은 마루 한구석에 있던 것을 집어들었다.
어제 너튜브를 보며 만들던 대나무 피리였다.
“음.”
서준은 대나무 피리를 살펴보았다.
저녁 식사 준비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많이 손대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피리 안쪽의 대나무 마디 사이사이의 통로는 전동드릴을 사용해서 미리 뚫어두었다.
이제 겉부분을 매끈하게 다듬고, 소리를 낼 피리의 구멍들과 바람을 불어넣을 입구를 위치를 잘 잡아 만들면 된다.
“그게 어려운 일이지만.”
미묘한 차이로 내고 싶은 음과는 다른 음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밤.
생의 도서관에서 삶의 책 하나를 읽은 서준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선)비세온 드워프의 눈-하급]
악기를 보는 안목이 일부 상승합니다.
악기를 제작할 시 가이드라인을 보여줍니다.
어떤 세계.
무기와 장신구를 만드는 것이 전부인 드워프들 사이에, 별종이 태어났다.
비세온.
악기를 만들겠다고 외친 드워프였다.
모든 걸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지도 않고 모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 정도로 반짝이지도 않는 평범한 악기를 만들겠다는 말에 모든 드워프들이 비웃거나 고개를 저었지만, 비세온은 해냈다.
비세온이 만든 악기는 날카롭지는 않았으나 고풍스러웠고, 반짝이지는 않았으나 모두를 매혹시킬 만큼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었다.
그런 비세온의 악기에 매료된 드워프들이 나타나 비세온에게 배움을 청했다.
비세온은 기쁘게 동료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비세온을 중심으로 드워프들이 모인 마을을 비세온이라 불렀고, 마을 ‘비세온’은 어느새 예술의 도시 ‘비세온’이 되어, 그 세계를 예술의 시대로 이끌었다.
서준의 전생이 바로 그 비세온……이 아니라 그 도시에 살던 어린 드워프였다.
아직 어렸지만 실력이 눈에 띄어 스승의 추천으로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던 중,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아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아쉬움이 많은 삶이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악기를 만져보고,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듣고, 그 비세온도 만들지 못한 새로운 악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대나무 피리를 보는 서준의 눈이 금색으로 반짝였다.
수많은 생을 보내고 난 지금에서야 다른 나라도 아니고, 다른 세계의 악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선)비세온 드워프의 눈이 발동됩니다.]
마치 영화 속 홀로그램처럼 대나무 피리 위로 서준이 만들어야 하는 구멍들의 위치와 크기가 보였다.
“좋아.”
서준이 검은색 펜을 들어 대나무 피리에 표시하고 칼과 송곳 등의 도구로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전동드릴을 사용하면 편하겠지만 분명 시끄러울 테니 사용하지 않았다.
서준의 손 아래, 대나무의 모양이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대나무가 깎이는 소리와 새소리만이 들리는 가운데, 덜컹- 하고 대문이 열렸다.
서준이 고개를 들어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 주예진 피디와 제작진들이었다.
“다들 잘 주무셨어요?”
“벌써 일어나셨어요, 서준 씨? 일찍 온다고 왔는데…….”
앞선 촬영으로 서준의 기상 시간을 알고 그보다 일찍 왔는데, 서준은 그것보다 일찍 일어나 있었다.
“피리 만들려고 일찍 일어났어요.”
서준이 웃으며 손에 잡고 있던 대나무를 들어 보였다.
아하.
주예진 피디와 제작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얼른 자리를 잡았다. 촬영을 하기 위해서였다.
서준도 익숙하게 다시 대나무 피리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관촬 예능은 제작진이 있는 듯 없는 듯 행동하는 거니까 말이다.
삭- 사악-
끊어졌던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ASMR을 듣는 것 같아, 스태프들 중 몇몇은 조용히 하품을 했다.
해가 점점 올라왔다.
서준은 대나무 피리를 들어 그 햇빛에 비춰보았다. 햇빛 때문인지 서준의 검은 눈동자가 금빛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좋아.”
마치 어딘가의 장인처럼 진중하던 서준의 얼굴이 미소가 피어났다.
[(선)비세온 드워프의 눈]은 소리를 낼 구멍들도 중요시했지만 피리의 외양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삭-
만족스럽게 웃던 서준이 다시 고개를 숙여 대나무 피리의 구멍을 뚫어 넓히는 사이, 민재원과 강명헌, 백건하도 일어났다.
“잘 잤어요, 형들? 건하도 일찍 일어났네.”
서준이 웃으며 문을 열고 나오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뭐하고 있어?”
“피리 만들고 있어요.”
어제 봤던 대나무 피리가 서준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근데 모양이 조금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뭐랄까, 좀 더 깔끔하고 단정해졌달까.
“구경해도 돼요, 서준이 형?”
“그럼.”
서준의 말에 세 사람은 씻지도 않고 마루에 옹기종기 모였다. 물론 촬영에는 방해가 되지 않게.
신기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과 대나무 피리를 바라보는 세 사람에 작게 웃은 서준이 다시 제작에 집중했다.
진지한 표정의 서준이 신중히 손을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내는 구멍들이 하나씩 늘어갔다.
백건하는 반짝이는 눈으로 서준을 한 번 대나무 피리를 한 번 번갈아보았다.
서준이 어째서 연기를 잘하는지 조금을 알 것 같았다.
재미삼아 대나무 피리를 만드는 것에도 이렇게 진지한 모습으로 임하는데, 정말로 좋아하는 연기를 대할 때 어떤 모습일지 예상이 갔다.
‘형이랑 꼭 같이 촬영해 봐야지!’
그런 서준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몇 분 후.
서준이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았다.
“완성했어, 서준아?”
“네.”
민재원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가 잘 날지는 불어봐야 알겠지만요.”
“소리가 안 나도 멋진데. 장식품으로 써도 되겠다.”
강명헌의 말대로 서준이 들고 있는 대나무 피리는 바뀐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얼른 불어봐요, 형!”
백건하의 재촉에 서준은 대나무 피리를 들어 입구에 입술을 댔다.
서준이 만든 대나무 피리는 소금으로, 마치 서양의 플루트처럼 옆으로 부는 피리였다.
바람을 불어넣는 취구와 손가락을 막고 여는 구멍이 6개, 그리고 막지 않는 구멍이 1개가 있었다.
서준이 취구로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배우들과 제작진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깨끗한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
소리가 나더라도 어제의 호루라기 같은 소리나 바람이 뒤섞인 소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 마치 국악 연주 영상에서나 듣던 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준도 직접 만든 소금의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구멍들을 열고 막으며 연주를 시작했다.
가야금을 배울 때 함께 배웠던 소금이라, 제법 잘 연주할 수 있었다.
---.
아침의 새 소리와 함께 소금의 선율이 어우러졌다.
[오버 더 레인보우2]에 나왔던, 알람 소리로 들어도 짜증 나지 않고 오히려 상쾌하게 일어나게 하는, 국악 버전의 [굿모닝]이었다.
‘와…… 좋다…….’
아침부터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연주에 배우들은 물론 제작진도 어느새 관객이 되어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끝나지 않았으면 했던 연주가 끝났다. 잠깐의 여운 후 여기저기서 아쉬움이 담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진짜 좋았어요, 서준이 형! 와! 가야금만이 아니라 소금도 연주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국악 버전 굿모닝도 정말 좋았어요! 이거 음원 내주시는 거죠? 꼭 내주세요. 꼭!”
백건하가 방방 뛰며 감상을 이야기했고, 민재원과 강명헌도 눈을 반짝이며 거들었다.
“굿 애프터눈이랑 굿 이브닝도.”
“굿 나잇이랑 자장가도 빠질 수는 없지.”
카메라 뒤 제작진도 동의하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하하 웃었다.
“근데 악기 만드는 거 처음 아니야?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대?”
“그러게요. 소리도 정말 좋았는데.”
연주도 연주였지만, 소금의 소리도 정말 좋았다. 서준이 직접 만드는 걸 보지 못했다면 어디서 사 온 줄 알았을 것 같았다.
‘너튜브에 편집 안 한 걸 올려야겠다.’
주예진 피디는 어쩌면 생길 논란에 대비해 그렇게 계획했다.
“형. 저도 한번 불어봐도 돼요?”
“그래.”
눈을 반짝이는 백건하에 서준이 웃으며 소금을 넘겨주었다.
소금을 받아 들고 신이난 백건하가 얼른 조금 전의 서준처럼 취구에 입을 대고 바람을 불어넣었다.
쉭- 픽- 쉬익-
그러자 모두가 예상했던 바람이 섞인 소리가 들려와,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바이올린도 직접 만드는 거 아니야?”
유쾌하게 웃던 강명헌이 말하자 서준이 오, 하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선)비세온 드워프의 눈]만으로는 조금 힘들겠지만, 비슷한 능력을 찾아 사용한다면 꽤나 만족스러운 바이올린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벤자민 교수님이랑 제이슨이랑 수빈이한테 선물로 줘도 괜찮겠네.’
기뻐할 얼굴들이 떠올라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서준이 진짜 바이올린 만들 생각인가 봐요, 명헌이 형.”
“……농담이었는데.”
그런 서준의 표정에, 알고 지낸 건 2주 정도밖에 안됐지만 서준을 제법 파악한 민재원이 하하 웃으며 말했고, 강명헌은 눈을 끔벅이다 웃음을 터뜨렸다.
* * *
아침을 먹고 난 후, 짧은 연주회가 열렸다.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동안 노동요로 서준이 소금을 연주한 것이었다.
“앗!”
하지만 어느새 넋을 놓고 감상하다보니 노동요가 오히려 노동을 방해하고 있어, 연주회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꼭 음원 내줘요, 서준이 형.”
“알았어.”
시무룩한 표정으로 설거지를 하는 백건하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뒷정리를 다 끝내고, 죽묘도를 떠날 때가 왔다.
배우들은 각자의 짐을 담은 캐리어를 끌고 선착장으로 향해, 배에 올랐다.
육지 선착장.
기다리고 있던 매니저들과 눈인사를 한 배우들은 서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서준아. 또 날 기억해 줘서 고마웠고.”
“저도 명헌이 형이랑 만나서 정말 좋았어요.”
강명헌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촬영장에서 보자.”
“서울에서는 저랑 안 만나시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당황하는 강명헌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알아요, 무슨 말인지. 다음에 꼭 같이 촬영해요, 형.”
“그래.”
강명헌도 이내 서준을 따라 시원하게 웃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어제 처음 봤을 게스트, 강명헌과 묘하게 친해 보이는 서준의 모습에 의아해하던 최태우는 서준의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했다.
‘다호 형한테도 말해줘야지!’
자신처럼 강명헌을 기억하지는 못해도, 그날 촬영에 함께 있었으니 신기해할 터였다.
* * *
[섬섬생활] 촬영날로부터 일주일 후.
한예대 4학년 2학기 강의계획서가 나왔다.
“음.”
이제 곧 수강신청 날이라 시간표를 짜야 했다.
서준은 신중하게 강의들을 살펴보았다. 내년에 코스모스 졸업을 할 계획이라, 필수학점이나 필수강의 등을 잘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꼭 들어야지.”
물론 듣고 싶은 강의가 있을 때는 다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서준은 재밌어 보이는 강의들을 골랐다.
“서준아. 맛남 식당 시작한대.”
“응.”
뭐, 천천히 할까.
컴퓨터를 끈 서준은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 아빠의 앞에 앉았다. 여느 한국인들처럼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댄 것이었다.
“아들. 오늘은 나올 것 같아?”
언제쯤 서준과 아이들이 나올까 궁금해하는 이민준의 물음에 서준이 대답했다.
“피디님이 어떻게 편집했냐에 따라 다르지만, 아마 예고편에는 나오지 않을까?”
강태영과 서준이 같은 비행기를 탔던 그날부터 방송으로 나온 날들을 계산해 보면 그랬다.
오늘 조금 나오거나 예고편만 나와서 다음 주에 방송하든가.
‘그럼 섬섬생활 촬영 때 보겠네.’
같은 방송국이니, 아마 [섬섬생활] 촬영 중에 리액션 촬영을 할 것 같았다.
“다들 엄청 놀라겠다.”
서은혜가 웃으며 말했다. 자신들도 친구 부부들도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서은혜의 말에 서준과 이민준도 웃었다.
잠시 후.
방송을 시작한 [맛남 식당3]는 서준의 ‘ㅅ’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의 방송처럼 열심히 일하는 출연자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예고편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