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73화
저녁은 예정대로 닭볶음탕을 먹었다.
목표보다 더 많은 작업을 해서 당면이나 떡 같은 다른 재료들도 제작진에게서 사서 넣을 수 있었다.
“진짜 맛있어요!”
저절로 나오는 감탄과 함께 매콤한 닭볶음탕과 고슬고슬 잘 익은 가마솥 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에 제작진의 눈동자 또한 빠르게 촉촉해졌다. 물론 출연자들이 만든 거니 꼭 나눠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런 눈빛이 나와버렸다.
그에 넉넉하게 요리한 서준이 웃으며 닭볶음탕과 가마솥 밥을 조금 덜어내 제작진에게 주었다.
“드세요. 많이 만들었어요.”
감사! 압도적 감사!
제작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양념만 먹어도 맛있어……!”
“밥 모자랄 것 같은데, 즉섭밥 있지?”
“우리 주문표 좀 고칠까? 재료를 싸게 많이 줘야 음식도 더 많이 만드실 테니까.”
그럴까!
혹한 제작진이었다.
물론 주예진 피디에게 제재당했지만 말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설거지를 하고 통발을 설치하러 바닷가로 향했다.
해가 져서 그런지, 바다는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별도 잘 보이네.”
“그러게요.”
민재원의 말에 서준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가 던지겠습니다! 던져보고 싶어요! 던지게 해주세요!”
그물로 만들어진 둥그런 통이 백건하의 손에서 던져져 바닷속으로 풍덩- 빠졌다.
“제발 물고기! 제발 게!”
누구에게 기도하는지 모르겠지만, 백건하는 열심히 기도했다.
“건하야. 문어도 있대.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겠지?”
“! 제발 문어!”
서준의 말에 백건하의 기도가 더욱 간절해졌다. 서준과 민재원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통발 세 개를 바다에 던져놓고, 집으로 돌아온 길.
세 배우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진짜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서준이 형이랑 재원이 형도 만나고, 배도 타고, 서준이 형 요리도 먹고, 씨도 뿌리고요!”
“그러게. 설마 출연자로 서준이가 나타날 줄이야. 상상도 못했어.”
“저도요!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촬영장 잘못 온 줄 알았어요!”
시간이 조금 흐른 덕분인지 서준이 해준 맛있는 요리에 마음이 편해진 덕분인지, 백건하는 내숭을 던지고 편하게 재잘댔다. 매니저가 알았다면 너무 짧지 않냐고 탄식했을 터였다.
내일은 낚시를 해보자고 이야기하며 집에 온 세 배우는 깨끗하게 씻고 이부자리를 폈다. 그사이 한 명씩 인터뷰도 했다.
넓은 방에 세 배우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좀 일찍 자는 것 같긴 한데…….”
민재원의 말에 시계를 확인하려고 옆을 본 서준이 작게 웃었다.
“형. 건하 기절했어요.”
“응?”
민재원이 서준의 말에 중앙에 자리를 잡은 민재원을 바라보았다. 서준의 말대로 조금 전까지 ‘내일은 회! 물회! 회덮밥!’ 하고 외치던 백건하가 거의 기절한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조용하네.”
“그러게요.”
오디오를 꽉꽉 채우던 백건하가 잠이 들자, 집이 고요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그 차이가 너무나도 확연해 서준과 민재원은 웃고 말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긴장한 상태로 돌아다녔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서준이야 괜찮았지만, 민재원도 제법 피곤한 상태였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재원이 형.”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서준이 네가 요리하느라 고생했지.”
자신이 정말 한 게 없다고 생각한 민재원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내일 아침은 뭐 할 거야? 도와줄게. 아니면 내가 만들어도 되고.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럼 형이 해주실래요?”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간장계란밥 하려고 했거든요.”
“……응?”
간장계란밥.
예상과 다른, 쉬운 요리에 민재원이 작게 웃고 말았다.
“밥은 어느 정도로 하면 돼? 물은?”
그에 서준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가르쳐 주었지만.
다음 날 민재원보다 일찍 일어난 서준 덕분에 혼자서 요리할 일은 없었다.
아침으로 간장계란밥에 계란국을 먹은 세 배우는 요리 재료 파밍에 나섰다.
같이 낚시도 가고 시금치 씨앗도 마저 뿌리고, 어제 못 가 봤던 대나무숲에도 갔다.
“와!”
하늘 높게 자라 있는 대나무들이 주민들이 오다니며 만든 오솔길을 따라 쭉 늘어서 있었다.
대나무들이 만들어낸 그림자에, 바닷바람에 대나무 잎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여기 엄청 시원해요! 근데 밤 되면 귀신 나올 것 같아요!”
“나중에 손님 오면 여기서 담력시험 할까?”
“그럴까?”
서준의 말에 백건하와 민재원이 키득키득 웃었다. 게스트로 누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는 TV가 있는 방에 둘러앉았다.
“맛남 식당 첫 방송 하나 봐요! 저 이거 엄청 재미있게 봤는데! 요리도 먹어보고 싶어서 만들어봤는데 실패했어요!”
TVM 채널에 나오는 [맛남 식당3] 오프닝을 보던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중에 만들어줄까?”
“정말요?!”
“방송에 레시피 나오면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볼게.”
“근데 이번 시즌 양식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빵 종류는 화덕이 없어서 못 만들지만, 파스타 같은 건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서준의 민재원이 흠, 하고 생각에 잠겼다.
“화덕……이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정말요?!”
서준과 백건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민재원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고민을 더 해봐야겠지만, 벽돌이랑 다른 재료가 있으면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알면 알수록 능력자인 민재원에 서준과 백건하가 와, 감탄했다.
그렇게 다음 촬영 때는 화덕부터 만들기로 결정하고, 세 배우는 TV를 보았다.
[맛남 식당3]의 출연자들이 요리사들에게 요리를 배우고 연습한 후, 제주도행 비행기 타고 있는 모습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중에는 서준의 지인이자 팬으로 잘 알려진 강태영도 있었다.
“강태영 배우님이랑 아는 사이죠, 서준이 형? 서준이 형 팬이라고 엄청 유명하던데! 물론 저도 서준이 형 팬입니다! 새싹부터도 가입했어요!”
백건하의 이야기를 듣던 서준은 문득 강태영과 백건하가 만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져 웃고 말았다.
출연자들이 비지니스석에 앉아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분위기가 바뀌었다.
비행기 뒤쪽에 소란스러워지고, 스튜어디스들이 뒤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출연자들의 카메라에 담겼다. 잘 들리지 않는 안내방송도 나오고 있었다. 출연자들과 제작진들 또한 혼란한 모습이 그대로 방송으로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지?”
“큰일 난 거 아니에요? 엔진에 새가 들어갔다든가, 연료가 샌다든가.”
“그럼 뉴스에 났겠지.”
민재원과 백건하의 대화를 들으며 서준이 작게 웃었다. 뉴스에 난 일인 건 맞았다.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유상백 피디의 물음에 스튜어디스가 응급환자가 발생했다고 이야기했다. 그제서야 잘 들리지 않던 안내방송이 들리고 자막도 깔렸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습니다. 혹시 승객분들 중에 의사나 간호사분 계신가요?]
닥터콜이었다.
“이거…….”
“저 이거 뉴스에서 봤어요! 와!”
민재원과 백건하가 방송에서 눈을 못 떼는 것처럼, [맛남 식당3]의 시청자들도 상상도 못 했던 상황이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나 이거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나도;;;
-그거 맞지? 의대생들이 비행기에서 사람 구했던 거?
=맞는 것 같은데…… 그게 왜 여기서 나와??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강태영이 일어났다가 ‘의대생들이 도와주고 계신다.’라는 스튜어디스의 이야기에 다시 자리에 앉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는 휴대폰 영상으로 찍은 듯한 화면이 나타났다.
이코노미석에 타고 있던 제작진이 찍었다는 설명도 붙어 있었다.
[선배님!]
하고 스튜어디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스튜어디스의 뒤를 따라 두 남자가 나타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의대생들이었다. 그리고 그 의대생들이 침착하게 응급처치를 하는 모습까지 화면에 나왔다.
가끔 영상 출처 표시가 나왔는데, 아무래도 중요하고 선명한 부분만을 골라 편집한 것 같았다.
“와, 진짜 영화 같다…….”
“그러게.”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마지막으로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고(의대생들이 응급환자를 충격에서 최대한 보호하는 모습이 보였다.) 구급대원들이 나타나 응급환자를 옮기자, 짝짝짝! 하고 탑승객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까지.
그 박수소리에 의대생들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이내 꼬리 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와. 여기까진 못 봤는데.
=난 아예 처음 봄;; 이런 일이 있었어?
=뉴스도 짧게 나와서 모르는 사람도 많음.
-내가 다 고맙다ㅠㅠ
=22 착륙할 때 충격 안 가도록 하는 거ㅠ
=스튜어디스 분들도 멋짐ㅠㅠ의대생들 계속 보고 있음ㅠ
=의대생이지만 탑승객이니까.
그리고 다시 [맛남 식당3] 출연자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들도 구급대원의 손에 옮겨지는 환자를 보며 안도한 얼굴이었다.
-앜ㅋㅋㅋ이거 맛남 식당이었지ㅋㅋ
=영화 보는 줄ㅋㅋ
-와. 그러면 맛남 식당이랑 같은 비행기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거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식당에 초대해서 인터뷰했으면 좋겠다!
=글쎄. 다른 인터뷰도 안 한 거 보면 거절한 듯.
시청자들의 기대를 예상한 듯, 출연자들과 유상백 피디가 대화하면 장면이 담겼다.
[식당에 초대하려고 했는데, 이미 떠나셨더라고요.]
[아, 아쉽게 됐네요.]
출연자들이 아쉬운 만큼 시청자들도 아쉬워했다.
-그러면 이 장면은 왜 넣은 거임? 인터뷰도 못 땄으면서?
=지금 다 맛남 식당 이야기하고 있는 거 보면 나라도 넣었을 듯.
=22 인터뷰 없어도 시청률은 확실히 나올 듯.
=33 벌써 기사도 뜨고 있다ㅋㅋㅋ
물론 뒷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되게 신기하다. 뉴스에서 봤을 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앞에 맛남 식당 촬영팀이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더 신기한 것 같아요!”
눈을 반짝이면서 말하는 백건하에, 서준과 민재원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묘한 서준의 말이었지만, 백건하와 민재원은 눈치채지 못했다.
“강태영 배우님도 멋지네. 나라면 패닉 상태였을 텐데.”
“저도요! 응급처치를 할 수 있어도 침착하게는 못 했을 것 같은데! 의대생분들도 대단했어요. 덕분에 환자분도 잘 치료받고 있으시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관련된 내용이 [맛남 식당3]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 같이 뉴스를 보고 있는 장면이었는데, 안도하고 기뻐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훈훈했다.
그 이후로는 다시 시즌1, 2의 [맛남 식당]처럼 장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첫날 장사하는 모습도 조금 나왔다.
“맛있겠다……! 서준이 형, 저것도 만들 수 있어요?”
“음. 재료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제가 일해서 다 가져오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눈을 반짝이는 백건하의 모습에 서준과 민재원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맛남 식당3]를 다 본 세 배우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기 위해 이불을 펴 누웠다.
어제 기절했던 것과 달리, 백건하는 들뜬 얼굴로 재잘댔다.
오늘 낚시한 것도 재미있었고, 점심도 맛있었고, 통발이 비어 있던 것도 웃겼고, 대나무숲도 참 좋았고, 저녁도 맛있었고, [맛남 식당3]도 재미있었고, 의대생들하고 강태영 배우님이 너무 멋지고…….
“내일 섬을 떠나기 전에 시금치 씨앗도 더 심을 거예요!”
서준과 민재원이 빙그레 웃었다.
“건하야.”
“네?”
“이제 자야지.”
“……넵!”
부드러운 압박에 입을 꾹 다문 백건하가 곧 친구들과 같이 자게 된 어린아이처럼 히히 웃자, 서준과 민재원도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