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72화
“! 맛있어요! 형!”
“그러게. 진짜 맛있다.”
백건하가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먹느라 말을 길게 할 틈도 없어 보였다.
민재원도 한 입 먹어보고는 놀란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요리를 잘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별 재료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맛있는 국수를 만들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아는 맛을 가장 이상적으로 만들어낸 것 같았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두 배우의 감탄에 서준이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저 너무 행복해요! 앞으로 서준이 형 요리를 계속 먹을 수 있다니!”
“앞으로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서준아. 최대한 구해볼게.”
“저도요! 섬을 탈출하는 한이 있어도 구해올게요!”
“탈출은 하지 말고.”
연신 감탄하며 서준이 필요한 재료가 있다고 말하면 죽묘도를 탈출할 생각까지 하는 백건하와 민재원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제작진은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점심을 먹었는데, 분명 저 국수보다 든든한 음식들을 먹었는데 입에 침이 고이는 것 같았다.
도착 첫날이라 어느 요리에나 쓸 법한 기본 재료는 준비해 둔 상태이긴 했지만(텃밭도 있고),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서준이 요리하는 것도 줄곧 촬영했지만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근데 저렇게 맛있게 먹는다고?'
백건하와 민재원이 배우이긴 하지만 저건 연기로 보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진심이라는 게 잘 느껴졌다.
“……주 피디님. 남을까요?”
종종 연예인이나 출연자가 요리한 음식이 남으면 제작진의 몫이 되기도 했다.
저 국수도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겠지만, 맛을 볼 정도는 남지 않을까?
“안 남을 것 같은데…….”
하지만, 활짝 웃는 얼굴로 거의 황금빛처럼 보이는 국물을 국자로 듬뿍 퍼서 그릇으로 옮기는 백건하와 ‘형들도 더 드실래요?’라는 질문에 그릇을 건네는 서준과 민재원을 보니 남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고 있던 제작진은 배우들이 식사를 끝낸 것처럼 보이자, 간절한 눈빛으로 배우들을 바라보았다.
“국물밖에 안 남긴 했는데, 괜찮으시면 드릴까요?”
그걸 본 서준이 웃으며 묻자 다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얼른 가마솥 쪽으로 향해, 아예 가마솥을 기울여 국물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그릇에 담았다.
양을 보니 두 모금 정도는 여기 있는 제작진들에게 돌아갈 것 같았다.
“와!”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세 배우가 먹는 모습을 보며 한껏 기대한 상태라서 조금 실망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미지근한 국물을 먹어보니 뜨끈뜨끈했을 때는 더 맛있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진짜 맛있다!’
다들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감탄을 내리누르며 서준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사라져가는 국물에 아쉬워하며 병아리 눈물만큼 나눠 먹는 제작진도 있었다. 주예진 피디도 그랬다.
“음. 얼마나 먹을지 몰라서 적당히 만들었는데, 다음엔 좀 더 많이 만들까요?”
백건하와 민재원에게 묻는 것 같기도 했고, 제작진에게 묻는 것 같기도 했다.
“제가 그렇게 많이 먹는 타입은 아닌데요, 형.”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끝내고 배부른 강아지처럼 히히 웃고 있던 백건하가 입을 열자 서준과 민재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가장 많이 먹은 게 백건하였다.
“앞으로는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이 만들어주세요!”
“나도 그래.”
두 배우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죽묘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설거지를 깔끔하게 끝낸 서준과 두 배우가 집을 나섰다. 제작진도 그 뒤를 쫓았다.
“이제 여름이라서 엄청 더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덥지는 않죠, 형들?”
“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봐.”
“그늘도 있고.”
해가 높이 떠 있긴 했지만, 소금기가 살짝 어린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 그렇게 덥지는 않았다. 길가에 서 있는 나무들이 만든 그늘도 있었고.
“어! 고양이다!”
담벼락 위에 앉아 크게 하품하는 고양이들도 보였다.
“근데 안 도망가네요.”
서준의 말에 제작진이 웃으며 말했다.
“마을에 있는 고양이들은 사람들한테 익숙하다고 합니다. 가끔 밥을 얻어먹으러 올 때도 있대요.”
“우리 집에도 왔으면 좋겠어요! 다음에 올 땐 츄르랑 캔이랑 사료 사 와야지! 제일 좋은 걸로! 아, 고양이 장난감도!”
백건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 모습에도 고양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고양이 좋아해?”
“네! 옛날에 고양이 키웠었거든요. 지금은…… 고양이별에 있지만요. 가족들이 너무 슬퍼해서 이제는 안 키우지만, 엄청 좋아해요!”
백건하의 말에 서준과 민재원이 살짝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백건하를 토닥여주었다.
그에 백건하가 씩 웃으며 ‘저희 데이지 사진 보실래요?’ 하고 휴대폰을 꺼내, 여전히 가득 남아 있는 고양이 데이지 사진을 보여주었다. 노란색 치즈고양이는 정말 꽃(데이지)처럼 귀여웠다.
“형들은 고양이나 강아지 키운 적 없어요?”
백건하의 물음에 민재원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키운 적은 없는데, 할머니 댁에 강아지가 있었어. 음, 강아지라기엔 좀 컸지.”
“진돗개였어요?”
“아니, 래브라도 리트리버.”
오…….
생각지도 못한 대형견의 등장에 서준과 백건하가 조금 놀랐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덩치는 커도 되게 순하고 착한 애였어. 서준이 너는?”
“전 없어요. 주변에도 키우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서준이 형은 동물들이 엄청 좋아하잖아요! 고래랑 늑대랑도 친하고! 그리고 얼마 전엔 제주도에서 돌고래랑도 만나셨잖아요! 역시 백…… 어! 봐요! 고양이!”
스케일이 다른 이야기에 웃던 사람들이 백건하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턱시도를 입은 검은 고양이가 다가와 서준의 다리에 몸을 비비는 것이 보였다.
그에 백건하가 미처 완성하지 못했던 단어를 내뱉었다.
“오. 역시, 백설공주.”
그에 서준과 민재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낚시는 여기서 하시면 됩니다. 낚싯대하고 미끼는 집 창고에 있어요. 아, 그리고 통발도 몇 개 있는데 이 근처에 설치하시면 됩니다.”
음식 재료 채집 담당인 백건하와 민재원이 아주 주의 깊게 제작진의 이야기를 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풍족한 재료가 필요했다.
“낚싯배도 탈 수 있나요?”
냥!
턱시도 고양이를 안고 있던 서준이 물었다. 자꾸 따라오고 해서 그냥 품에 안고 바닷가까지 함께 온 것이었다.
서준의 품에 늘어져 있는 고양이를 보며 웃던 제작진이 답했다.
“네. 하루 전에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선장님이 낚시 포인트로 데려다주실 거예요.”
제작진은 낚시에 대한 것 말고도 바닷가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여름에 채취하는 홍합은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되고요. 이렇게 생긴 거북손은 채취하셔도 됩니다.”
바다를 돌아다닐 민재원과 백건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건하는 낚시 잘해?”
“아뇨!”
대답 한번 시원하다.
“아버지가 낚시 좋아하신다고 하지 않았어?”
“어렸을 땐 가끔 데려가셨는데, 몇 번 같이 간 이후에는 안 데려가시더라고요! 재미있었는데! 회랑 매운탕도 맛있었고!”
백건하의 매니저가 들었다면 왜 안 데려갔는지 알아챘을 터였다.
“음. 나도 낚시는 해본 적이 없는데. 한 마리도 못 잡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는 민재원에,
“그래서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제작진이 활짝 웃으며 세 배우를 새로운 장소로 안내했다.
잠시 후.
세 배우는 밭 앞에 서 있었다.
“여기는?”
“시금치밭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시금치는커녕 풀도 하나 없는 흙밭이었다.
파도처럼 위아래로 움푹 파여 있는 고랑이 일렬로 나란히 있었던 게 아니었다면 그냥 공터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옆 밭에 심긴 작물의 잎이 풍성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주예진 피디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세 분이 씨앗을 심으시면 됩니다. 시금치 씨앗도 저희가 다 준비했습니다!”
신이난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세 배우는 다시 시금치가 없는 시금치밭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일반적인 밭보다는 작았지만,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시금치라…….”
“무슨 생각 하세요, 서준이 형?”
백건하가 생각에 잠긴 서준에게 물었다.
어느새 서준의 품 안에 있는 고양이가 턱시도 고양이에서 고등어무늬 고양이로 바뀌어 있었다.
“시금치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생각 중이었어. 바닷가에서 자란 시금치는 해풍을 맞아서 맛있거든.”
!
백건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걱정에 바닥을 치던 의욕이 샘솟았다.
“시금치! 나물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비빔밥은 좋아해요! 바닷가 시금치는 먹어본 적이 없는데, 저 먹어보고 싶어요!”
어쩐지 제작진 쪽에서도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금치 수확은 10월입니다.”
주예진 피디도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못 먹는다는 이야기에 백건하의 의욕이 바닥을 쳤다.
“내 시금치…….”
아무 것도 없는 시금치밭을 바라보며 좌절하는 백건하의 모습에 서준과 민재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대신, 여기 고구마가 있습니다.”
주예진 피디가 시금치밭 옆에 있던 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밭인가 했더니 고구마밭이었나 보다.
“여기 고구마는 8월에 수확하실 수 있습니다.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그말에 백건하가 눈을 반짝였다.
“저 고구마 은박지에 싸서 구워 먹어 보고 싶었어요! 진짜 로망이었는데!”
“고구마순도 맛있지.”
“고구마 맛탕이랑 튀김도 할 수 있겠네요. 닭볶음탕에 감자 대신 넣어도 맛있구요.”
“고구마 닭볶음탕! 아, 근데 닭이 없구나…… 서준이 형. 닭 없는 닭볶음탕 만들 수 있어요?”
아쉬워하는 백건하에 주예진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시금치 파종 면적과 고구마 수확 면적에 따라서 저희가 돈을 드릴 겁니다. 그 돈으로 저희에게서 고기나 다른 재료들을 사실 수 있습니다.”
“와! 고기 못 먹을 줄 알았어요! 자급자족이라서 진짜 닭 잡아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서준과 민재원도 그 소식에 기뻐했다.
“몰래 안 가져와도 되겠어요, 형.”
“그러게.”
“……몰래 가져오려고 하셨어요?”
“하하하.”
* * *
“우리 오늘 저녁은 고기 먹어요!”
눈을 반짝이는 백건하의 말에 서준과 민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같이 일어나 가볍게 먹고 점심도 국수로 때워 고기가 먹고 싶었다.
대나무숲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일부터 하기로 했다.
“닭고기는 어디까지 하면 돼요?”
메뉴는 닭볶음탕.
고구마는 없지만 닭볶음탕 이야기를 했더니 먹고 싶다고 하더라.
쉬엄쉬엄하라는 말에도 일을 하겠다고 눈을 번뜩이는 세 배우를 보며 허허 웃은 주예진 피디가 ‘여기까지에요.’ 하고 설명해 주었다.
세 배우는 얼른 집에서 시금치 씨앗을 가져와 심기 시작했다.
이랑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씨앗 네다섯 개를 넣었다. 처음에는 좀 안 맞았는데, 어느새 두 명이 구멍을 파고 한 명이 씨앗을 뿌리면서 빠르게 씨앗을 심고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올 속도였다.
“그럼 전 먼저 가 볼게요.”
서준은 시간을 보고는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밭을 나왔다.
가마솥 밥은 해봤지만, 큰 가마솥으로 하는 밥이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또 불도 피워야 하고, 다른 재료들도 준비해야 했다.
“조심해서 가.”
“저희도 얼른 끝내고 갈게요, 서준이 형!”
손을 흔들며 인사한 후 다시 작업 모드로 돌입한 민재원과 백건하를 보던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다 저희 오늘 저녁으로 소고기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럴 만한 집중력과 속도라서, 서준을 따라가던 제작진도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