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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71화 (97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71화

“배 타고 간다는데, 형들은 멀미하세요?”

“아니, 난 안 해.”

“나도 멀미는 없어.”

“저도요! 우리 완전 잘 맞는가 봐요!”

이것저것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주예진 피디가 다가와 말했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선착장으로 이동하죠.”

서준과 백건하, 민재원은 배를 타기 위해 제작진과 함께 카페에서 멀지 않은 선착장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잘 다녀와, 서준아.”

“몸조심하고.”

“네. 걱정 마세요.”

최태우와 안다호의 말에 캐리어를 끌고 가던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백건하와 민재원도 매니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매니저들은 섬까지 따라가지 않을 예정이었다.

“너 너무 떠들지 말고. 지금처럼만 해.”

“근데 너무 힘들어.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산처럼 쌓였는데! 내가 서준 선배님을 형이라고 부르다니……!”

다다다다-

백건하가 매니저에게 달라붙어 작은 목소리로 평소처럼 재잘댔다.

하지만 백건하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게 있었다. 바로 촬영 때는 쓰지 않는 예능용 마이크.

도착하자마자 서준을 봐서 나름 얌전해진 백건하만 본 오디오 감독은 헤드폰으로 들려오는 백건하의 목소리의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밥 잘 챙겨 먹어요, 재원이 형. 또 너무 긴장해서 숨 쉬는 거 까먹지 말고요.”

“음. 최선을 다해볼게.”

“연기할 땐 안 그러면서.”

“연기할 때 긴장했으면 지금까지 연기 못 했지.”

“형이라면 극복하려고 노력했을 것 같은데요.”

연기에 진심인 민재원을 바라보며 매니저가 웃었다.

연기 사랑으로 유명한 이서준 배우와의 만남이 민재원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했다. 백건하 배우도 좋은 사람인 것 같았고.

“이 배에 타시면 됩니다.”

매니저들과 인사를 한 서준과 두 배우는 주예진 피디의 안내에 따라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고 캐리어를 들고 낚싯배로 사용되는 작은 배에 올랐다.

먼저 배에 올라 찍고 있는 카메라들이 있었다. 이제 2박 3일 동안 계속 저 카메라들이 서준을 따라다닐 터였다. 연기를 하지 않는 서준을. 영화나 드라마 촬영과는 다른 느낌에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모두 배 위에 자리를 잡자, 주예진 피디가 그렇게 말했다. 배의 선장님이 시동을 걸자 배가 우르릉 커다란 엔진 소리를 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 움직인다! 저 이런 배 처음 타봐요!”

“나도. 서준이…… 넌 타봤어?”

“이런 배는 아니지만, 이만한 크기의 고속보트는 타본 적 있어요.”

“저 알아요! 고래 구할 때 탔던 거 말하는 거죠?”

“맞아.”

“와!”

영상으로 봤던 이야기를 이렇게 본인에게서 듣게 될 줄은 몰랐던 백건하가 반짝이는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민재원과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서준이 무슨 이야기만 해도 관련 자료가 촤르르 떠오를 것 같았다.

---!

항구에서 조금 벗어나자, 배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파도가 이리저리 치는 거대한 바다에 작은 배가 새하얀 물결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모습이 하늘에 떠 있는 드론 카메라에 담겼다. 백건하가 드론을 향해 신나게 두 팔을 흔들었다.

들썩!

위아래로 움직이는 배에 민재원이 얼른 배의 난간을 붙잡았다.

“이, 이거 방금 뜨지 않았어?”

“맞아요! 떴어요! 바이킹 타는 것 같지 않아요?”

야호! 하고 외치는 백건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멀미는 없지만,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 같은 배의 움직임은 좀 무서웠다.

“좀 천천히 가달라고 할까요, 형?”

“아니, 괜찮아. 괜찮은 것 같아.”

괜찮다고 말하는 민재원은 어느새 숨은 멈추고 있었다. 서준은 선기를 흘려보내며 말했다.

“숨 쉬세요. 재원이 형.”

“후우-”

민재원이 서준의 말에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어쩐지 다른 때보다 금방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재원 씨?”

“네. 괜찮습니다. 익숙해진 것 같아요.”

웃으며 말하는 민재원의 안색을 살핀 주예진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20분만 더 가면 도착할 거예요.”

주예진 피디의 말대로, 어느새 배의 움직임에 익숙해진 상태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탁 트이는 바다를 구경하고 있으려니, 멀리서부터 목적지로 보이는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섬이에요. 죽묘도.”

주예진 피디의 말에 서준과 두 배우가 푸른 색의 섬을 바라보았다.

“옛날에 대나무와 고양이가 많아서 죽묘도라는 이름이 붙었대요. 지금도 고양이들과 대나무 숲이 있죠. 옛날처럼 많지는 않지만요.”

섬주민들이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이, 멀리 있던 섬이 점점 가까워졌고 이내 섬의 선착장에 멈춰 섰다.

“이제 내리시면 됩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죽묘도에 있던 제작진이 배에서 내리는 세 배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땅에 발을 디딘 서준은 섬을 바라보았다.

듬성듬성 집들이 보였는데,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섬도 걸어서 몇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여러분이 지내실 집은 저기 저 집입니다.”

서준과 두 배우는 주예진 피디가 가리키는 주황색 지붕의 집을 바라보았다. 바다와 가까운 다른 집들과 달리 조금 위쪽에 있었다.

“그럼 이제 가 보실까요?”

* * *

“여기가 우리 집! 완전 좋아요!”

백건하에게는 벌써 우리 집이 됐나 보다. 백건하는 캐리어를 문 앞에 두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텃밭도 있네요. 상추랑 고추랑 대파랑 깻잎…….”

서준도 이 주황색 지붕의 집이 마음에 들었다.

제작진이 수리를 한 것 같긴 했지만 옛날 집이라는 게 잘 느껴졌다. 넓은 마당에,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 있는 텃밭에, 도란도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루도 있었다.

“물도 잘 나와. 청소는 한번 해야 할 것 같지만.”

이곳저곳 많이 이사를 다녔던 민재원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당 한쪽의 수돗가는 물론이고 어느새 화장실까지 들어갔다 나오며 집 안을 살펴보았다.

깜짝 놀랄 때마다 굳어버리던 병약한 모습은 사라진 것 같았다.

“근데 가스레인지는 없네요.”

“여기 가마솥 있어요, 서준이 형!”

요리 담당이 될 서준의 말에, 설명하려던 주예진 피디와 제작진은 집 뒤에서 가마솥을 번쩍 들고 나타난 백건하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저게…… 저렇게 가볍게 들릴 무게가 아닐 텐데?

“여기 벽돌도 있어, 서준아.”

“아, 네. 벽돌로 아궁이를 만드셔서 요리를 하시면 됩니다.”

민재원의 말에 주예진 피디가 얼른 설명했다.

“서준이 형. 가마솥으로 요리해 본 적 있어요? 가마솥밥 엄청 맛있다고 하던데!”

“음. 1인용 가마솥은 써본 적이 있긴 해.”

서준이 가마솥을 살펴보며 말했다.

“몇 번 써봐야 하겠지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진 않아.”

프라이팬과 냄비가 따로 있기도 했다.

“오! 그럼 얼른 밥 먹어요, 우리. 형들도 점심 아직 안 먹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우리 청소하는 사이에 서준이가 요리하면 되겠다.”

백건하와 민재원의 말에 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점심은 국수로 할까요? 찬장에 국수면이 있더라고요.”

자급자족이라서 국수나 면 요리를 먹으려면 면까지 만들어야 할 줄 알았는데 국수 면이 있었다. 뭐, 밀가루도 있는 걸 보면 면이 다 떨어지면 진짜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았지만.

“국수! 좋아요! 계란지단도 해주세요, 형. 많이요!”

“좋지. 국수.”

바닷바람을 맞은 탓에 차가워진 체온을 올릴 뜨끈한 국물이 떠올라 민재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불을…… 아니, 아궁이부터 만들어야 하는구나.”

텅 비어있는 마당을 보며 서준이 허허 웃었다.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같이 만들어요! 근데 아궁이는 어떻게 만들어요?”

그에 제작진이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었다.

“가마솥 크기에 맞춰서, 바람이 통하게…….”

“프라이팬을 쓰려면 하나는 작게 만들어야겠죠, 서준이 형?”

국수보다 계란지단이 더 먹고 싶은 백건하가 히히 웃으며 물었다.

“그건 석쇠 같은 받침대를 올려놓고 쓰면 될 것 같아. 근데 없을 수도 있으니까 가마솥 뚜껑 뒤집어서 써보자. 괜찮죠, 형?”

“그래. 그렇게 하자.”

그렇게 세 배우는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저 벽돌 쌓는 거 처음이에요! 생각보다 무거운 것 같아요.”

스물한살의 백건하는 모든 게 다 처음이었고 신기했다. 거기에 서준이 형과 재원이 형까지 있으니 그저 꿈만 같았다.

“나도 벽돌로 뭘 만드는 건 처음이야.”

서준도 그랬다.

집이나 담을 손수 짓지 않는 이상 보통 사람들이 벽돌을 쌓을 일은 드물 터였다.

“재원이 형은 어때…… 오…….”

백건하의 감탄에 서준도 고개를 돌렸다.

서준과 백건하가 아궁이 하나를 반쯤 쌓아 올린 것과 달리, 민재원은 벌써 완성하고 가마솥을 올려두고 체크하고 있는 중이었다.

“되게 빨리 만들었네요, 형. 모양도 잘 만든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린 아직 반밖에 못 만들었는데! 모양도 좀 이상한 것 같구요.”

그에 민재원이 볼을 긁적였다.

“내가 옛날에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거든.”

무명시절 때의 일이다.

그게 이렇게 쓰일지는 몰랐지만.

“그럼 형이 지은 아파트도 있어요?”

“응, 있지. 주택도 있고 상가도 있고. 아, 학교 공사도 했었어.”

백건하의 물음에 대답해 준 민재원은 오! 학교! 하고 감탄하는 서준과 백건하의 모습에 작게 웃었다.

“건하야, 그건 살짝 옆으로 옮겨. 바람 잘 통하게.”

“넵!”

그렇게 아궁이 두 개를 다 만들고, 불을 피워야 할 때.

또 한 번 민재원이 실력을 발휘했다.

화르륵-

불씨를 집어넣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순식간에 피어오르는 불길에 서준과 백건하가 짝짝짝 박수를 쳤다. 연습 삼아 해봤던(꽤 시간이 걸렸다.) 제작진도 그랬다.

“이것도 어디서 해보셨어요?”

“응, 엑스트라 할 때. 겨울에 야외촬영 있을 때는 추워서 이렇게 불을 피워놓거든.”

민재원이 조금 신기했다.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연기할 때는 몰라도, 나머지 시간은 그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세월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예능에서만 쓸모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배우 활동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민재원의 생각과 달리, 도움이 되고 있었다.

“재원 씨는 이미지랑 조금 다른 것 같네.”

“그러게요. 병약해 보이는데, 생활력도 강하시고. 이런저런 경험도 많으신 것 같고요.”

지금까지 민재원은 엑스트라로 출연한 작품들에서도, 영화 [업 앤 다운]에서도 환자 역이나 시한부 역 등, 병약해 보이는 겉모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역만 맡았었다.

그래서 제작진도 ‘연약한 큰형’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하고 민재원을 섭외했다.

이전에 출연한 예능에서도 그동안의 이미지와 다름없이 점잖고 조용한 모습(패닉 상태였다.)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여주는 모습들은 제작진이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그리고 앞으로 보여줄 모습도 생각과는 많이 다를 것 같았다.

‘오히려 좋아!’

반전은 곧 시청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섬섬생활]을 시청할 터였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제작진처럼 [섬섬생활]을 볼 시청자들과 영화, 드라마 관계자들의 생각들도 변화할 것이고, 그건 분명 앞으로 민재원이 배우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 * *

아궁이와 불이 준비되자 서준은 요리를 시작했다.

빨리 먹을 수 있게 적당히 물을 넣고 육수를 끓였다. 다행히도 찬장에 마법의 가루가 있어, 캐리어에서 슬쩍 꺼낼 필요는 없었다.

육수가 끓는 사이, 서준은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프라이팬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 지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사이, 백건하와 민재원은 집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문과 창문을 활짝 열고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았다. 캐리어의 바퀴도 잘 닦아서 방에 넣어두었다.

“서준이 형, 저희 청소 다 했어요! 여기 완전 깔끔……!”

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이야기하려던 백건하는 참아냈다. 장하다, 백건하!

“나도 다 했어.”

서준이 웃으며 국수가 익는 중에 찾아놓았던 밥상을 마루에 펼치고 수저와 직접 만든 양념장을 올려놓았다. 그릇도 세 개 가져와 면을 담고 뜨끈한 국물을 국자로 퍼담았다.

“와! 냄새 엄청 좋아요!”

“간을 봤는데, 가마솥으로 하니까 더 맛있는 것 같더라.”

서준의 말에 백건하가 환하게 웃으며 얼른 밥상 앞에 앉았다. 서준이 형이 직접 만든 국수다!

“이건 건하 거.”

“와! 고마워요, 서준이 형!”

희고 노란 계란지단이 유난히 많이 올라간 국수 그릇을 자신의 앞으로 밀어주는 서준에 백건하의 눈이 감격으로 물들 때, 민재원은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에 김치가 있으려나?”

“아까 양념장 만들면서 보니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

“저 김치 가져왔어요! 캐리어에!”

아쉬워하는 민재원에 백건하가 번쩍 손을 들었다가 흠칫, 하고는 천천히 제작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준과 민재원도 고개를 돌려 주예진 피디를 바라보았다.

[섬섬생활]은 자급자족.

주예진 피디가 안 된다고 하기 전에 세 배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할머니가 담근 김친데…….”

“미국에서도 먹는데…….”

“김치볶음밥에 배추김치를 먹는 게 한국인인데…….”

도저히 방어할 수 없는 공격들에 주예진 피디가 말했다.

“……통과.”

그에 서준과 백건하, 민재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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