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70화 (97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70화

어느 선착장 근처 카페.

관광객보다는 낚시꾼들이나 현지인 손님이 많았던 카페가 외지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오늘부터 촬영을 시작하게 된 [섬섬생활] 제작진이었다.

“큰일인데. 이거 안 나오는데?”

“예비용 있을 거야. 막내야!”

“넵!”

카페 안이 시끌벅적한데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카페를 통째로 빌린 상태인 데다가 카페 직원도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보안을 위해서였다.

“홍보도 필요 없지.”

준비 상황을 체크하던 주예진 피디가 흐흐흐 웃었다.

이서준 배우가 섭외된 후로는 이렇게 뜬금없이 웃음이 나올 때가 많았다.

“맞아요.”

옆에서 이야기를 하던 메인작가도 같은 상태였다.

“이서준 배우가 예능에 메인 출연자로 출연한다는 사실만 알려져도 다들 리모컨 들어서 TV 켤걸요. 하루 전에 SNS에 띡- 하고 올려도 말이죠.”

으흐흐흐, 웃는 게 둘 다 아주 즐거워 보였다.

물론 그렇게까지 홍보에 신경을 안 쓸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끝까지 숨기고 있을 생각이었다. [맛남 식당3]와 이어져 홍보하면 아주 떠들썩할 거다.

깜짝 놀랄 시청자들을 떠올리며 즐겁게 웃던 주예진 피디가 카페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도 카페 직원 한 명은 부를 걸 그랬나? 카페인데 커피를 못 먹네.”

종종 카페 카운터를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는 카페인 중독자들(스태프들)이 보였다.

“그러게요. 한 명쯤은 커피 기계 다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커피가루부터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까지 다 쓸 수 있게 빌렸는데,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캔커피와 음료수로 대신하고 있었다.

캔커피를 마시며 주예진 피디가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10시 20분. 아직 많이 멀었네.”

서울에서 촬영지까지는 대략 대여섯시간.

5시에 출발해도 11시쯤에 도착한다. 하지만 차가 막히면 시간이 더 걸렸다.

그래서 아예 카페를 빌렸다. 늦는다면 배를 타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말이다.

“죽묘도 쪽은 어떻대?”

“거긴 다 끝났대요.”

조연출의 말에 주예진 피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조연출로 뛰어다녔던 주예진 피디였다.

“우리도 빨리 끝냅시다!”

“예!”

카페는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잠시 후.

약속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한다는 연락이 조연출의 휴대폰으로 전해졌다.

“주 피디님! 곧 도착하신대요!”

촬영 준비를 모두 끝내고 의자에 앉아 편하게 기다리고 있던 주예진 피디와 제작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메라맨들도 빠르게 카메라를 챙겼다.

“누군데?”

“이서준 배우님이요!”

처음부터 어마어마한 분이 등장하셨다.

서준을 본 적 없는 스태프들이 웅성거리는 걸 뒤로 하고 주예진 피디와 메인작가 등 제작진들이 카페 밖으로 나갔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조연출에게서 설명을 들은 듯 카페 입구 앞으로 오는 검은색 밴이 보였다. 딱 봐도 뭔가 아우라가 보이는 것이, 배우 이서준의 차인 것 같았다.

“……차도 막 연예인 닮고 그런가?”

“그건 아니고, 저 차가 한국에 몇 대 없는 벤이라서 그럴걸요.”

뒤에서 들려오는 속닥거림에 주예진 피디가 작게 웃고 말았다.

그렇게 제작진 피셜, 주인을 닮은 차가 카페 입구 앞에 멈춰 섰다. 주차장이 카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서 출연자들은 여기서 내려야 했다.

카메라들이 일제히 문쪽으로 향했다. 앞으로 이서준을 담당하게 될 카메라맨도 조금 긴장한 얼굴로 카메라를 움직였다.

드르륵-

하고 차의 뒷문이 열리고.

“안녕하세요.”

영화계에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긴,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차 안에 조명이 있나?”

영상으로 봤을 때도 반짝반짝한 이서준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아주 빛이 났다.

후광도 보이는 것 같고, 하고 스태프들이 감탄을 내뱉는 사이 주예진 피디가 웃으며 서준을 반겼다.

“오는 데 힘들었죠?”

“저보다 매니저 형이 고생했죠.”

그에 얼른 주차장의 위치를 알려주려고 했던 주예진 피디는 조수석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이사님?”

계약서를 작성할 때 만났던 코코아엔터의 안다호 이사였다.

“안녕하세요. 주 피디님.”

“어, 어? 안 이사님이 여긴 왜……?”

“제가 예능에 메인 출연자로 출연하는 건 처음이라서 오셨어요. 시간이 날 때면 촬영장에도 종종 오시거든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 이사가 부드럽게 웃었다.

매니저에서 한 걸음 물러서긴 했지만, 가끔 서준의 촬영을 보러 가는 건 안다호의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난다기보다는, 열심히 일해서 서준의 촬영을 보러 갈 여유 시간을 만드는 거지만, 서준이 그걸 알 필요는 없었다.

“저희 배우님 잘 부탁드립니다.”

웃는 얼굴인데도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문득 계약하면서 줄곧 서준은 물론이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안전을 강조하던 안다호 이사의 모습이 떠올라, 입봉피디 주예진이 얼른 대답했다.

“다호 형, 뭐 드실래요? 여기 뭐 많이 파는 것 같아요. 태우 형 것도 미리 골라둘까.”

묘하게 긴장된 것 같은 분위기가 메뉴판을 보고 말하는 서준에 의해 풀렸다. 정확히는 긴장하고 있던 주예진 피디가 서준의 말에 당황한 것 때문이었다.

“그게요, 서준 씨. 보안 때문에 카페를 빌릴 때 직원은 안 불렀거든요.”

“그래서 아무도 못 마시고 있어요. 재료도 전부 다 쓸 수 있는데 말이에요.”

메인작가가 뒤이어 말했다.

정말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그에 서준이 눈을 깜빡이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만들어 드릴까요?”

네?

주 피디와 제작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형! 우리 안 늦었지? 첫 촬영부터 늦으면 안 돼! 물론 다른 촬영에서도 늦으면 안 되지만. 첫 촬영이 제일 중요해!”

백건하가 운전석 뒤에 달라붙어 재잘댔다.

어떻게 오는 내내 떠들 수가 있는지. 마취총이 있다면 기절시키고 싶은 매니저였다.

잘 때가 제일 예쁘다는 말이, 스물한 살에게도 통용되는 말인 줄은 몰랐다.

“……10분 일찍 도착할 것 같다.”

“오! 그럼 내가 연락할까? 곧 도착한다고? 주 피디님한테 연락해야 해? 아니면 메인작가님? 조연출님?”

“……조연출님.”

“오케이! 알았어!”

신난 백건하가 타깃을 조연출로 바꾸자, 매니저는 그제야 날아가려던 영혼을 붙잡을 수 있었다.

‘처음이라 이런 거지, 나중에는 좀 조용해지겠지.’

“네! 안녕하세요, 조연출님! 백건하입니다! 저희가 이제 곧 도착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여기가 어디냐면요……!”

……조용해지겠지?

매니저는 미래의 자신이 걱정됐다.

잠시 후.

조연출이 알려준 카페 앞에 백건하의 차가 멈춰 섰다.

주예진 피디와 메인작가, 그리고 카메라들이 뒷문으로 내리는 백건하를 반겨주었다.

“그럼 얼른 주차하고 와, 형!”

“……이대로 가버릴까?”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하고 매니저가 잠시 허허 웃는 사이, 백건하가 신나게 카페 문을 열었다.

딸랑!

하고 문에 달린 방울 소리가 들리고,

“어서 오세요.”

하고 말하며 웃고 있는 이서준 선배님이 보였다.

백건하는 저도 모르게 그대로 문을 닫았다.

어쩐지 여기 계시면 안 되는 분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잘못 봤나?’

그래. 잘못 봤겠지. 어떻게 이서준 선배님이 여기 계시겠어. 그것도 카페 직원처럼 카운터에 서서. 아마 카페 직원분을 잘못 본 거겠지. 와! 잘못 봐도 이서준 선배님의 모습이 보인 거면 엄청 잘생긴 분이신 건가! 나중에 연예인으로 데뷔하시겠지?

하고 생각을 이어가던 백건하가 다시 조심스럽게 카페 문을 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라기엔 그 분위기와 생김새가 너무, 너무,

“어서 들어오세요, 손님.”

이서준 선배님이잖아아악!!

이제는 후광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서준에 백건하는 빠르게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딸랑! 하고 방울이 격하게 울렸다.

불가항력이었다. 어마어마한 충격 때문에 뇌가 먼저 움직여 버렸다.

“뭐해, 안 들어가?”

아직 문 앞에 있던 매니저가 문을 열었다가 닫는(그것도 2번씩이나) 백건하를 보며 의아한 듯 말했다.

“……형…….”

“어?”

“안에…… 안에…….”

백건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서준 선배님이 계셔…….”

사전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던 대선배님과의 만남에, 온몸으로 ‘나 당황했어요.’를 표현하는 백건하를 보며 주예진 피디와 메인작가, 카메라맨은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 * *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 같아요, 형.”

“어쩔 수 없지. 사고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늦지 않게 노력해 볼게요.”

작은 추돌사고로 살짝 막혔던 도로가 이제야 뚫렸다. 도착시각은 11시였는데, 아무래도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았다.

민재원의 매니저는 걱정하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차를 몰았다.

“어서 오세요. 재원 씨.”

“안녕하십니까. 주 피디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사고가 있었다니 어쩔 수 없죠. 그렇게 많이 늦으시지도 않았고요.”

다행히도 민재원은 11시 5분쯤에 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은 도착하셨어요.”

주예진 피디의 말에 민재원은 기다리고 있었을 배우들과 만나기 위해 얼른 카페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카페 섬섬생활입니다!”

검은색 앞치마를 입은 서준과 백건하가 웃으며 민재원을 반겼기 때문이었다.

마치 정말로 카페 직원이라도 된 것처럼 서준은 카운터에서 커피를 내리고, 백건하는 열심히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제작진은 연기력 낭비라고 생각하며 웃음을 삼켰다.

“전 정말 놀랐는데, 선배님은 아니신가 봐요.”

가만히 서 있는 민재원을 보며 백건하가 아쉬운 듯 말했다.

테이블에 손님처럼 앉아 있던 백건하의 매니저는 더 길어지지 않는 백건하의 말에 놀랐다.

‘왜 저렇게 짧아?’

진짜 심장이 뚝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제가 진짜 이서준 선배님을……!

하고 말을 이어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설마 이서준 배우 앞이라고 긴장한 거야?’

아니면 내숭?

긴장이든 내숭이든 평소에도 좀 해줬으면 했다.

“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올 출연자를 어떻게 놀라게 할까 이야기를 하던 중 말을 놓게 된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 그대로.

“형! 숨 쉬어!”

늦게와서 혹시라도 무어라 말이라도 들을까 봐 초조해하며 살펴보고 있던 민재원의 매니저가 소리쳤다.

허억!

그제서야 민재원이 너무 놀라 멈춰 버렸던 숨을 들이마셨다. 새하얗게 질려가던 얼굴도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주예진 피디와 제작진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이쪽도 반응이 대단했다.

* * *

“제가 만든 건데 입맛에 맞으실까 모르겠어요.”

서준이 내미는 카페라테를 민재원은 멍한 표정으로 받아들었다.

“이걸…… 직접 하셨어요?”

월계수잎 모양의 라테아트에 저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제 건 고양이에요!”

완전 귀엽죠! 제가 고양이를 좋아한다니까 서준이 형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하고 나오려던 말을 백건하는 참아냈다.

‘이서준 선배님 앞이야, 백건하.’

차분하고 침착하게.

착하고 기특한 후배로 보이게!

‘근데 너무 힘들다!’

물론 서준의 눈에는 다 보였다.

‘비슷한 사람도 있고.’

바로 얼마 전에 만난 강태영.

지금은 서준과 보낸 시간이 길다 보니 얌전해졌지만, 가끔 새싹모드로 돌아가면 눈 만난 개처럼 날뛰고는 했다.

“네. 조금 배웠거든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앞으로 계속 같이 촬영할 예정이잖아요.”

“저도요! 건하라고 불러주세요!”

“아, 그럼…… 그럴게요. 아니, 그럴게.”

민재원은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서준……이 네가 예능에 출연할지는 몰랐어.”

세상에.

내가 이서준 배우를 서준이라고 부르게 되다니.

선배님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딴 세상 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또 한 번 숨이 멈출 것 같아, 민재원은 몰래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물론 카메라에는 다 담겼다.

“저도요! 아까 카페 문을 열었는데 서준이 형이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백건하는 연신 끄덕이려던 고개를 두 번 끄덕이는 것으로 멈췄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섬에서 자급자족으로 생활한다니, 하기 힘든 경험이잖아요.”

“저도…… 아니, 나도 그게 재미있을 것 같긴 했어.”

“저도요! 낚시도 하려고 아빠 낚싯대도 몰래 가져왔어요!”

백건하의 말에 서준과 민재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라진 낚싯대에 ‘이게 어디로 갔지?’ 하고 의아해할 백건하 아버지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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