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68화
똑똑-
하고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막내 스태프가 보낸 메시지(>막내: 오셨어요!)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주예진 피디와 제작진이 벌떡 일어났다.
“네, 네. 들어오세요.”
조연출로 제법 많은 연예인들을 만나봤지만, 피디로서는 처음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상대가 상대라서 그런지 잠깐 목소리가 떨린 주예진 피디였다.
달칵-
하고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상기된 얼굴의 막내 스태프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막내 스태프의 뒤로 오늘의 손님 또한 얼굴을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이서준 배우!”
그에 슈퍼스타, 이서준이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멀리서 봐도 빛이 나는 존재감과 외모에 와! 하고 저절로 감탄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한 프로그램의 책임자로서 그런 얼빵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촬영도 하고 있고.’
회의실 여기저기 설치된 카메라(서준과 최태우도 알고 있었다.)를 의식한 주예진 피디는 얼른 정신줄을 잡고 자기소개를 했다.
물론 만약 자신의 모습이 재미있다면 예능답게 편집할 예정이었다.
“섬섬생활 피디, 주예진이라고 합니다.”
“배우 이서준입니다.”
주예진 피디는 메인작가와 조연출 등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제작진도 서준에게 소개했다. 이미 만난 적이 있는 최태우 매니저와 제작진도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나눈 서준과 제작진은 자리에 앉았다.
“더우실 텐데 마실 것 드릴까요? 커피도 있고 차도 있고 오렌지주스도 있습니다. 1층에 카페가 있는데 맛있어요.”
주예진 피디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렌지주스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막내야!”
그에 막내 스태프가 얼른 밖으로 뛰어나갔다가 얼른 들어왔다. 손에는 이야기를 나눌 동안 먹을 음료들과 간식들이 올려져 있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오렌지주스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자신의 앞에 놓인 시원한 오렌지주스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1층 카페까지 갔던 건 아닌 것 같고.’
아마 서준이 좋아하는 걸 조사해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매니저 최태우도 제작진의 배려에 만족스러운 마음을 숨긴 채 음료를 받았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맛남 식당에 출연하셨다면서요?”
“네. 강태영 씨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그 소식 듣고 예능국이 얼마나 난리였는지 몰라요.”
“폭탄 터진 줄 알았다니까요.”
본 미팅에 들어가기 전 간단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준과 제작진은 분위기를 풀었다. 앞으로 계속 함께 지낼 사이인데 친해지는 쪽이 좋았다. [섬섬생활] 1편에 쓰일 장면도 뽑고.
“제주도 여행 사진도 올라왔던데, 서준 씨는 SNS는 안 하나요?”
주예진 피디의 물음에 서준이 음, 하고 생각에 잠겼다.
SNS라.
하긴 이렇게 짧은 영상이나 개인적인 사진들 같은 경우는 팬카페나 너튜브보다 SNS에 올리는 편이 더 적당해 보이기는 했다.
별 내용 없이 팬들과 소통하기에도 SNS가 편하기도 했고.
“어렸을 때, 이지석 씨가 SNS는 만악의 근원이라고 해서 하지 않았던 게 지금까지 이어졌던 것 같아요.”
“하긴, 이지석 배우가 서준 씨를 처음 봤을 때 완전 어렸을 때였죠?”
“네. 다섯 살 때였죠.”
다섯 살!
생각보다도 더, 어마어마하게 어린 나이에 주예진 피디와 제작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연예계가 얼마나 사건사고가 많은 곳인가.
본인의 잘못일 때도 있지만, 불행히도 타인의 잘못으로 인해 엮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거기에 활동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촬영할 작품이 대박일지 쪽박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배우는 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어떤 사건사고도 없이 좋은 작품들을 찍어온 것이었다.
새삼 이 이십 대 스타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두 깨닫게 되었다.
‘이것도 꼭 넣어야지!’
이런 스타와 함께 일하게 된 주예진 피디가 속으로 실실 웃었다.
“물론 SNS에 대해 이야기한 건 재수사 때쯤이니까 7살 때지만요.”
지금은 본인이 조절하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긴 한데, 그냥 하지 않고 있었다. 딱히 꼭 필요한 것도 아닌 것 같았고 말이다.
“혹시 촬영에 필요한 건가요?”
“아, 아뇨. 그냥 친구분들은 SNS가 있으신데, 서준 씨는 왜 안 만드셨는지 궁금해서요.”
서준의 물음에 주예진 피디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있으면 좋긴 했다. [섬섬생활]을 촬영할 때, 가끔 사진을 올리면 홍보도 되고.
‘그냥 홍보도 아니지.’
보통의 인플루언서도 어마어마한 광고효과를 보여주는데, 그게 전 세계적으로 슈퍼스타인 이서준이라면 어떻겠는가. 사진 하나에 억 소리가 나올 터였다.
‘SNS라.’
서준이 데굴 눈을 굴렸다.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럼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적당히 분위기가 풀어진 것 같자, 주예진 피디가 입을 열었다.
“장소는 전라남도에 있는 섬, 죽묘도입니다. 이름 그대로 대나무와 고양이가 많은 섬이죠.”
주예진 피디가 파인패드로 지도를 보여주었다.
전라남도에서도 제법 아래쪽에 있는 섬이 보였다. 주변에도 자잘한 섬들이 많았다.
“서울에서 완도읍까지는 대략 5시간에서 6시간 정도 걸리고, 배를 타고 한 30분쯤 더 가야 합니다.”
주예진 피디의 말에, 최태우는 어떻게 가면 제일 편할지 생각해 보았다. 이른 새벽에 만난다면 근처에서 하루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촬영은 2주에 한 번씩 총 세 번으로 2박 3일씩 진행할 계획이고, 서울로 돌아와서 식사 겸 마무리 촬영을 할 예정입니다.”
“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들었던 대로였다.
“출연자는 서준 씨를 포함해서 총 세 명인데, 어떤 분들인지는 촬영 날에 소개해 드릴게요.”
서로를 보며 놀라는 모습을 찍을 예정인 주예진 피디가 씩 웃으며 말한 후, 편집 점을 잡기 위해 잠깐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물론 매니저님과는 미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예능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출연자들의 사이였다.
친한 사이면 아주 좋고 처음 본 사이라도 괜찮았지만, 사이가 나쁜 건 안 된다.
아무리 편집을 잘해도, 출연자들 사이의 싸함을 시청자들이 느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번 방송의 메인은 배우 이서준.
그와 사이가 나쁜 출연자를 출연시킬 마음은 주예진 피디도 없었다.
‘뭐,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인기에 따라서 위치가 달라지는 연예계.
누가 슈퍼스타를 대놓고 싫어하겠나.
최태우 매니저도 딱히 출연자들에 대해서는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았다. 주예진 피디가 말했던 두 명의 출연자들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었고.
“어떤 섬인지, 어떤 집에서 지내게 될지도 섬에 가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주예진 피디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야기해 주신 게 하나도 없는 건데요, 피디님.”
“그러는 편이 재미있잖아요.”
주예진 피디도 따라 웃었다.
‘편한데?’
슈퍼스타라고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편했다.
하긴, 코코아엔터와의 미팅도 나쁘진 않았다. 좀 많이 까다로웠을 뿐이지 이해 못 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만약 촬영 때도 이런 모습이라면, 편하게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분이 배우인 것만 알려 드릴게요.”
“오! 배우요?”
웃으며 말하는 주예진 피디에 서준의 눈이 반짝 빛났다.
* * *
“진짜 이서준이랑 친해요?”
“이서준이 뭐야. 이서준이. 형이라고 불러야지.”
재잘대는 초등학생들에 박지오가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서준과 소꿉친구들이 졸업한 매실초등학교.
제주도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박지오는 졸업한 학교부터 다녔던 축구클럽, 그리고 가까운 축구부를 돌아다니며 어린 꿈나무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어때, 괜찮아?”
이건 박지오의 에이전트인 김태주가 제안한 일이었다.
“네. 재밌어요. 옛날 생각도 나고요.”
서준과 친구들과 같이 놀았던 넓은 운동장이 무척이나 작아 보였다. 새롭게 단장한 놀이기구는 처음 보는 것도 많았다. 그래도 건물과 분위기만큼은 옛날과 똑같았다.
“좋네요.”
선수의 멘탈 케어에도 신경 쓰는 에이전트 김태주가 웃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어디 좋은 선수는 안 보이고?”
“그게 목적이었죠, 형?”
“겸사겸사?”
씩 웃는 김태주를 노려보던 박지오가 이내 웃고 말았다.
“다들 열심히 하는데, 음, 형이 바라는 좋은 선수는 안 보이네요. 제가 못 본 걸 수도 있어요.”
“나도 알아. 그냥 선수가 보는 유망주는 어떤가 하는 거지.”
에이전트와 선수가 보는 눈은 비슷하면서도 다를 터였다.
‘뭐, 아직 지오한테는 힘드려나.’
누군가의 상태를 살펴보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도 하고, 본인의 성장에만 집중할 때니까 말이다.
그때,
“아.”
하고 박지오가 입을 열었다.
김태주가 박지오를 바라보았다.
“걔가 좀 잘하던데. 서준이도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누구?”
김태주의 눈동자가 빛났다.
박지오는 물론이고, 서준까지 잘한다고 이야기했다니. 누군진 몰라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제주도에서 만난 앤데요. 축구부래요. 초등학생.”
“오. 이름은?”
“몰라요.”
“응?”
눈을 끔벅이는 김태주에 박지오가 낄낄 웃었다.
“지나가다가 바닷가에서 만난 애들이었거든요. 축구하길래 같이 했죠. 그리고 아이스크림 사주고 헤어졌어요.”
“……학교는?”
“그것도 모르죠.”
어깨를 으쓱이며 얄밉게 웃는 박지오에, 이제부터 그 넓은 제주도에서 초등학생 하나를 찾아야 하는 김태주가 이마를 짚었다.
* * *
“태주 형 분명 나 스페인 보내고 바로 제주도로 갈걸.”
박지오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몇 년 전 유럽 여행 때 제법 친해진 김태주의 얼굴을 떠올린 서준과 아이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어디 바닷가인지는 알려줬으니까 금방 찾을 거야.”
“걔도 여행 온 거면 어떡해?”
“그건 태주 형이 알아서 하지 않을까?”
오늘은 박지오와 미나 오웬이 스페인과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모인 자리였다. 어쩌면 몇 달 후에나 볼지도 모르는 친구들을 보며 다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섬섬생활이랬지? 촬영은 언제야?”
미나 오웬의 물음에 서준이 답했다.
“7월 중순부터 촬영한대.”
그로부터 6주 동안 촬영하면 딱 개강날인 9월 전에 끝난다.
“그럼 촬영 중에 맛남 식당 볼 수도 있겠네? 우리가 나온 편 말이야.”
김지윤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겠지.”
자신이 피디라도 그 장면을 놓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서준이 직접 이야기하는 ‘이서준의 깜짝 등장’을 촬영할 수 있는 기회니까 말이다. 비하인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서준의 리액션을 찍을 수도 있었다.
“방송은 언제 한대? 스페인에서도 볼 수 있으려나?”
“방송은 8월 말쯤에 한대. 맛남 식당 끝나고 바로 이어서. OTT에도 바로 업로드된다니까 볼 수 있을 거야.”
“꼭 챙겨봐야겠다.”
하고 웃던 김지윤이 무언가 떠오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서준아. 보통 2달쯤 방송할 텐데, 9월쯤에 이레귤러스 개봉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에 다른 아이들도 ! 하고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웠다.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9월 중순에 개봉할 예정이라서 8월부터 홍보한대.”
지금 한창 열심히 편집 중일 마크 웨버 감독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떻게 완성되어 나올지 서준도 궁금했다.
“맛남 식당 끝나면 섬섬생활. 섬섬생활 방송 도중에는 이레귤러스 개봉,이라.”
“그러고 보니 10월에는 WTV시상식도 있지 않았어?”
박지후의 말에 미나 오웬이 덧붙였다.
친구가 배우라, 어떤 달에 무슨 시상식이 있는지 어떤 영화제가 있는지 기억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와. 진짜 시끌벅적하겠다.”
“서준이 이야기만 들리는 거 아니야?”
아이들의 말대로 서준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한 하반기가 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