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67화
“이서준? 이서준 배우가 왜 거기서 나와?”
TVM 예능국 국장이 CP가 전한 말에 잘못 들었나 싶어 손가락으로 귀를 파고는 다시 물었다.
“섬섬생활이 아니라 맛남 식당에 출연한다고 했었어?”
주예진 피디가 들었다면 하늘이 무너졌을 이야기였지만, 국장으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최대한 화제성을 키우기 위해 서준의 출연을 최대한 숨기고 있었지만, 광고주들에게는 이미 알렸기 때문이었다.
‘설마…… 내가 잘못 들었었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의심이 됐다.
“그건 아닙니다. 워킹맨처럼 우연히 만난 거랍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던 국장이 CP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돈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광고주들에게 이서준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라고 말해야 할 뻔했다.
‘워킹맨이라.’
[워킹맨!]의 이서준 레이더는 꽤 유명했다.
가끔 [워킹맨!]에서 멤버들끼리 이서준 레이더 언제 발동하냐고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국장도 저런 레이더가 하나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는 했다.
그런데 진짜 나타났다.
“그리고 박지오 선수까지 함께 왔답니다.”
거기에 성능까지 더 좋아져서.
박지오.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최시혁 선수와 함께 현재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
“지금 한국에서 휴가 중이라고 하더니…….”
이서준과 여행 중이었나 보다.
이서준에 박지오까지.
국장은 이게 꿈인가 생신가 싶었다.
문득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박지오 선수하고 이서준 배우하고 같이 나온 예능은 처음이지 않아?”
“네. 맞습니다.”
세상에.
CP의 대답에 국장은 무슨 복인가 싶었다.
이서준과 박지오가 소꿉친구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두 사람이 같이 나오는 방송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TVM에도 그런 피디들이 많이 있었다. 물론 섭외에서 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이서준, 박지오가 최초로 함께 나오는 [맛남 식당3]에 이서준이 출연자로 나오는 [섬섬생활]까지.
올해 3분기 시청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니, 걱정이 뭐냐. 매일 축배를 들어도 부러워하면 부러워했지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터였다.
물론 축배를 들기 전에 할 일은 해야 했다.
으흐흐흐 웃고 있던 국장이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려고 했다.
[맛남 식당3]에 대한 것이었다.
[섬섬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광고든 PPL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맛남 식당3]는 이미 모든 광고 계약이 끝난 상태였다. 앞뒤로 광고를 좀 넣어볼 수는 있겠지만, 좀 더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고 싶었다.
‘가령 PPL 같은 거.’
편집을 이렇게 저렇게 잘하면 [맛남 식당3]에 나오는 물건들을 사용하는 이서준, 박지오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줄 수 있을 터였다. 이서준이 탔던 차도 가능하지 않을까.
‘렌터카겠지만.’
그보다 먼저 CP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국장님. 며칠 전에 있었던 비행기 응급환자 일 기억하시죠?”
“기억하지.”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때라면 그냥 큰일이었겠네, 하고 잊어버렸겠지만 [맛남 식당3]의 출연자들이 타고 있었던 비행기에서 일어난 일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응급처치를 해줬던 의대생이 박지오 선수의 쌍둥이 형이라고 합니다.”
“……뭐?”
“그 형도 이서준 배우의 친구라서 같이 제주도 여행 중이었다고 하네요.”
“……뭐라고?”
CP는 유상백 피디의 전화를 받았을 때의 자신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국장을 보며 킬킬 웃었다.
* * *
며칠 후.
TVM 예능국 회의실.
[섬섬생활]의 주예진 피디가 조금 긴장한 얼굴로 다리를 덜덜덜 떨며 회의실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인작가와 스태프들도 주예진 피디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막내야!”
“막내 로비에 있어요, 주 피디님.”
30분 전부터 오늘 회의에 참여할 이서준 배우를 마중 나간 막내 스태프였다.
주예진 피디나 제작진은 5분 전쯤에 가라고 했지만, 본인이 안절부절못하다가 달려나간 거였다.
“막내한테 카페에서 뭐 먹으면서 기다리라고 해.”
“네.”
그리고는 또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지금 몇 시예요?”
“3시 30분.”
“와. 1분 지났어.”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 건지 모르겠다.
미팅 시간이 4시라서 다른 일을 해도 되긴 한데, 일이 손에 안 잡혔다.
“그거 들으셨어요? 맛남 식당이요.”
조연출이 전혀 흐르지 않는 시간을 보낼 겸 초조함과 떨림을 진정시킬 겸 입을 열었다.
“들었지.”
“그거 장난 아니던데.”
그에 모두의 신경이 쏠렸다.
같은 TVM 예능이지만 다른 피디의 프로그램인 데다가 어쩌다 보니 같은 출연자까지 나오게 되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어떻게 거기서 그렇게 만나냐, 진짜.”
“강태영 배우가 불렀다고 했죠?”
“다음에 예능 하면 이서준 사단 연예인은 꼭 섭외해야겠어요.”
주예진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아예 이번에 이서준 배우랑 친해져서 본인을 섭외하는 게 낫지 않아?”
“뭔가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그리고 이서준 배우가 예능에 나오는 게 드문 일이라서 우연히 나올 확률이 더 높을걸요. 또 박지오 선수 같은 분들이랑 함께 올지도 모르고요. 그럼 일석이조죠.”
그건 그렇다.
“스키장 때도 배우들이랑 같이 있었지?”
그땐 학생이라 덜 유명했었지만, 지금은 다들 꼭 섭외하고 싶은 유명한 배우들이 된 상태였다. 그들이 [워킹맨!]이나 다른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할 때 종종 그때 자료화면이 쓰이기도 했다.
“이서준 배우에 박지오 선수라니. 시청률 엄청 잘 나오겠죠?”
“그래도 이서준 배우가 메인으로 나오는 예능은 우리가 처음이잖아.”
주예진 피디의 말에 제작진이 활짝 웃었다.
배우 이서준의 첫 예능이라니. 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졌다.
“얼른 홍보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자랑하게?”
“네!”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서브 작가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떠들다 보니 슈퍼스타를 만난다는 긴장감이 조금 풀어진 것 같았다. 다들 휴대폰을 꺼내 보거나 프린트한 자료를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휴대폰을 보고 있던 메인작가가 외쳤다.
“어! 떴어요!”
“뭐가요?”
“뭐가 떠?”
메인작가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이서준 배우랑 박지오 선수 제주도 여행 간 거요!”
그 말 그대로.
휴대폰 화면에는 말들과 함께 서 있는 이서준과 박지오의 사진이 있었다.
* * *
[제목: 저희 제주승마장에 이서준 배우님과 박지오 선수님이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제주승마장입니다.
저번 주, 저희 승마장에 이서준 배우님과 박지오 선수님이 오셨습니다!
(이서준, 박지오 사진1)(사진2)
처음에는 그냥 친구끼리 놀러 온 분들인 줄 알았는데, 모자를 벗으시니 이서준 배우님과 박지오 선수님이었습니다!
이서준 배우님의 일코를 직접 두 눈으로 볼 줄이야! 진짜 소문과 똑같았습니다. 전혀 못 알아보겠더라고요.
(중략)
산길 코스를 한 바퀴 도시고는 장애물 코스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말을 타보신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사극 때문에 배웠다고 하시더라고요. 얼마나 배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잘 타셨습니다.
저희 사장님이 예전에 승마선수셨는데, 진짜 잘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릅니다. 이서준 배우가 운동을 배울 땐 항상 그렇듯 선수로 삼고 싶어 하셨습니다.
(중략)
그리고 이서준 배우님과 박지오 선수님과 함께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았습니다. 두 분 다 얼마나 친절하신지!
(중략)
저희 승마장 많이 찾아와 주세요!
-이게 홍보글이야ㅋㅋ자랑글이야ㅋㅋ
=사진이 이서준이랑 박지오 사진 뿐임ㅋㅋㅋ승마장은 1도 없음.
=배경으로 슬쩍 보이기는 함ㅋㅋ
=승마장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라서 그럼.
=??어떻게 찾았대??
=새싹이잖아ㅎㅎㅎ
-승마장 이야기는 몇 줄 안 되는 게 너무 웃김ㅋ
=본인 감상 쭉 적고 마지막에 ‘많이 찾아와 주세요!’ 한 줄ㅋㅋㅋ
=백 퍼 사장님한테 혼나겠다ㅋㅋ
-이서준 운동함>>선수 합시다!
-와. 이서준이랑 박지오가 같이 제주도 여행을 갔다고??
=언제 간 거야ㅋㅋ
=박지오도 일코 잘하는 듯.
=서준이한테 배웠나 봨ㅋㅋ아무도 몰라ㅋㅋㅋ
-앜ㅋㅋ새싹부터에 글 올라옴ㅋㅋㅋ
=이건 진짜 자랑글이네ㅋㅋ
=다른 커뮤에도 올라옴(링크)
[제목: 내가 성덕이라니! 성덕이라니!]
제주도에서 스쿠버다이빙 가게 하는 새싹임.
그날 아침은 정말 날씨가 좋았음.(아련)
날씨가 안 좋으면 스쿠버 다이빙하기 힘든데, 내 덕질을 위해서 하늘까지 도와주신 듯.
(중략)
설명 다 끝내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모자를 딱 벗으시는데, 서준이! 서준이인 거임!!
팬미팅 같은 게 아니면 서준이는 평생 못 보겠구나 했는데 이렇게 만날 줄이야ㅠㅠ
나도 모르게 ‘서준이!’하고 외쳐 버렸음. 그러니까 웃는 서준이.
그래, 서준아. 네가 웃으면 됐어ㅎㅎ
그냥 있을 때도 잘생겼는데 웃으니까 귀에서 상투스가 울리는 것 같았음. 진짜 실물이…… 영상도 영상인데 실물이 진짜임. 목소리도 진짜 좋고ㅠㅠ
친구분들이랑 이야기하는 모습도 진짜 너무 좋았음. 친구끼리 있을 때의 편안함? 그런 게 느껴지더라. 이런 분위기로 예능 한번 해줬으면.
그리고 서준이 옆에 계시던 분은 박지오 선수님. 남편도 나도 깜짝 놀람ㅋㅋㅋ
(중략)
서준이 스쿠버다이빙 해봤다길래 물어봤더니, 자격증이 있다고 함. 나중에 우리랑 로키 만나면 같이 수영할 수 있을까 싶어서 땄대ㅠㅠ
근데 대신 돌고래(로키 아님)들이 나타남ㅋㅋㅋ
(사진1)(사진2)
나 여기서 일하는 동안 돌고래는 1도 본 적 없는데(거북이는 가끔 옴.) 돌고래 떼가 나타남.
보트에 타고 있던 남편도 돌고래 떼가 다가와서 깜짝 놀랐다고.
(중략)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었음.
바로 옆에서 사진 찍을 때는 숨도 못 쉬겠더라. 숨…… 어떻게 쉬던 거였지??
(사진3)(사진4)…….
진짜 평생 잊지 못할 하루였음. 진짜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꿈인 것 같음.
-가게 이름이나 힌트라도 나올 법한데 1도 없음ㅋㅋ
=ㄱㅆ)자랑글이니까!
=하지만 새싹들은 찾아내겠지ㅋㅋ
-우리, 로키 이야기에 ㅠㅠ하다가 진짜 돌고래 나타났다는 글에 ??함.
=나도ㅋㅋ진짜 돌고래가 왜 나타나냐고요ㅋㅋㅋ
-백설공주는 바다 동물들하고도 친해요?
=이건 인어공주일 듯.
=앜ㅋㅋㅋ
-해외축구 게시판에 글쓴새싹 남편분으로 보이는 분이 쓴 글 올라옴.
=이쪽도 박지오 선수 이야기뿐이야ㅋㅋ가게 이야기 1도 없음ㅋㅋ
-일주일 전이면 저도 제주도 여행하고 있었을 땐데…….
=서준이랑 같은 곳 간 거 아니에요?
=그럴지도!
=사진 찍은 거 확인해 봐요. 다섯 명에 비슷한 옷 입고 있는 사람들 있으면 서준이일지도 몰라요!
=……헉! 서준 오빠 있어요!
=진짜요???
=(조그마한 사람들 위에 표시가 되어 있는 잘린 사진)맞는 거 같죠?
=!!!
-이제 일주일 전에 제주도 여행 간 새싹들은 다 사진 찾아볼 듯ㅋㅋ
그때 [새싹부터]에 있는 서준 전용 게시판에 새 글이 등록되었다. 제주도에서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들이었다.
너튜브 채널 [JUN]에도 새로운 영상이 등록되었는데 이것 역시 친구들이 찍어준 영상들을 간단하게 편집한 것이었다. 승마 영상, 스쿠버다이빙 영상, 바닷가 산책 영상 등이 있었다.
-나……이거 봤음.
=? 나도 보고 있음.
=아니, 진짜로.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 갔거든. 말도 한 번 타보려고 갔는데, 어떤 분이 장애물 코스를 한다는 거야. 이런 건 처음 보는 거라 부모님이랑 구경했거든. 근데 진짜 선수처럼 되게 잘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이서준이네?
=이서준이네ㅋㅋㅋ
=진짜 이서준인 거 몰랐음?
=분위기랑 실력(승마는 1도 모르지만)만 보면 그냥 선수인 줄. 거기 있던 사람들 다 선수인 줄 알더라.
-이서준 좀만 더 연습하면 말 옆구리에 매달려서 활도 쏘는 거 아니야?
=무과 시험 촬영한다고 하면 가능할지도.
=ㅋㅋ진짜 할 것 같잖아ㅋㅋ
‘해볼까?’
너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에 서준이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다치진 않을 테지만 다들 걱정할 게 뻔했다. 그 정도로 하고 싶진 않았다.
-이제 진짜 인어공주인지 아닌지 의심해야 봐야 듯.
=인어공주ㅋㅋㅋ
-근데 이서준이면 청룡님 아님? 용왕이라고 하잖아.
=용왕이 돌고래랑 이러고 논다고?
=인어공주네.
=왕자라고 하자.
=인어왕자ㅋㅋ
=어쩐지. 인간이 아닌 것 같긴 했음.
=ㅋㅋㅋㅋ
어떤 전생에서 정말 인어왕자였던 서준이 작게 웃었다.
“서준아, 다 왔어.”
최태우의 말에 휴대폰을 보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오늘 미팅이 있는 TVM방송국 지하 주차장이었다.